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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훈 한국산업개발연구원장에게 듣는 개발연대 비화

“광부, 간호사 몸값 갚으려 머리카락 자르고 쥐도 잡았죠”

  •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parker49@donga.com

백영훈 한국산업개발연구원장에게 듣는 개발연대 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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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훈 한국산업개발연구원장에게 듣는 개발연대 비화

1964년 박 대통령과 에르하르트 서독 수상이 대담하는 사진 앞에 선 백 원장. 두 사람 사이에서 통역하는 백 원장은 당시 32세였다.

광부 파견과 관련해 알려지지 않은 사실 한 토막.

“혈기왕성한 젊은 광부들을 보냈잖아요. 가족과 떨어져 사는 외로움도 컸지만 청년의 욕구도 참을 수 없었나봐. 그중 몇 명이 동네 독일 여자와 사고를 쳤어요. 자칫하다간 사회 문제가 될 것 같았어. 그래서 서독에 노동관을 파견했죠. 주말이면 광부와 간호사를 버스에 실어 파리로 무료 여행을 보내줬어요. 맘에 맞는 사람끼리 결혼하라고. 그래서 수많은 처녀 총각이 거기서 결혼했습니다. 거의 다 짝을 지어줬어요. 그래서 내가 독일에선 ‘갓 파더(代父)’로 불립니다. 몇 년 전엔 그간 한국에 한 번도 오지 못한 광부, 간호사 400명을 한국으로 초청했고, 이들의 2세도 한국으로 데려왔어요. 내가 보냈으니 내가 책임을 져야죠. 서영훈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도움을 많이 줬습니다.”

서독 정부에 “비행기 좀 빌려주오”

서독에서 머문 17일 동안 백 원장은 박 대통령에게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열심히 가르쳤다. 대통령이 현장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히틀러가 닦아놓은 아우토반을 달렸고, 제철소를 견학했다. 독일 국민 특유의 근면성으로 폐허가 된 경제를 다시 살려낸 성공 스토리도 들려줬다. 모든 것이 신기했던 박 대통령은 밤마다 백 원장을 불러 경제강의를 청했다. 그럴 때마다 육 여사는 커피잔을 나르느라 바빴다.

한국 경제가 초기 도약을 하는 데 서독의 도움은 절대적이었다. 반면 미국은 쿠데타 정권이라는 이유로 도움을 주기는커녕 훼방을 놓았다. 미 의회는 박 대통령의 서독 방문 직전에 비행기를 안 빌려줘 하마터면 독일행이 취소될 뻔했다.



“서독으로 떠날 날만 기다리고 있는데, 하루는 청와대 회의가 있다고 오래요. 가보니 다들 심각한 표정이야. 장기영 부총리가 5만달러를 주고 20일 동안 미국의 노스웨스트 에어라인을 빌렸는데, 미국 의회가 반대했다는 거예요. 쿠데타로 집권한 한국 군인이 미국 비행기를 이용하면 다른 나라를 자극한다고. 독일 방문 열흘 전이었어요.

이동원 외무부 장관이 나더러 서독에 가서 비행기를 제공해달라고 요청해보래요. 알아보니 이런 일은 대통령 특사가 나서야 한다고 해요. 그래서 동아일보 사장을 지낸 최두선씨를 찾았어. 그이가 일제시대 독일 유학생이었거든. 최씨를 모시고 독일에 갔는데 비행기 구해달라는 얘기를 차마 못 하겠더라고. 입이 안 떨어져요. 그래도 어떻게 해. 서독 대통령과 비서실장, 노동부 차관이 배석한 자리에서 어렵게 얘기를 꺼냈죠. 그랬더니 다들 놀라는 표정이야. 한동안 물끄러미 우리를 쳐다보더니 일단 돌아가래요. 우린 안 되는 줄 알았죠. 떠나기 사흘 전까지 연락이 없었으니…. 결국 1964년 12월3일 홍콩을 경유해 서독으로 들어가는 루프트한자 여객기가 예정에 없이 서울에 착륙했어요. 비행기에 오르니 1등석은 대통령과 장관들을 위해 비워뒀더군. 우린 서독 사람들과 이코노미 클래스에 탔습니다.”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박 대통령 일행의 서독 방문은 성공적이었다. 기분이 좋았던 박 대통령은 서독을 떠나기 전, 백 원장을 불러 경제비서관으로 발령을 냈다. 서독 수상의 조언대로 경제를 이끌어 가자면 뜻을 공유하는 백 원장 같은 브레인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당황했어요. 독일서 박사학위 받을 때 은사이던 폭트 교수와 맺은 약속 때문이었습니다. 폭트 교수는 학위를 받은 내게 ‘한국으로 돌아가면 정부나 기업체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이 들어올 것이다. 그렇더라도 교수로 남아 있어야 한다. 라인 강의 기적이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은 아니다. 학문의 바탕이 없으면 불가능했다. 가서 후학을 양성하는 데 힘을 쏟으라’고 거듭 당부하셨거든요.”

“백 박사, 큰일났어!”

백 박사는 대통령에게 “이번 방문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 은사에게 인사라도 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박 대통령은 주머니에서 1000달러를 꺼내주며 은사에게 선물을 하라고 했다.

“그 돈으로 선물을 사들고 폭트 교수를 만났는데, 노발대발하는 거예요. 경제비서관으로 가면 안 된다며 학교로 돌아가래요. 수많은 유학생을 보고 경험적으로 알았던 거죠. 정부로 들어가면 이용만 당하고 학자로서의 발전은 정체된다는 것을. 나는 은사의 말씀대로 하겠다고 했습니다.

서울에 들어와 청와대로 인사하러 갔더니 대통령이 폭트 교수로부터 온 편지를 보여주는 거예요. ‘백영훈을 학교로 보내달라’는 내용입디다. 대통령은 ‘훌륭한 은사님을 모시고 있다’며 격려하더군요. 이 소문이 청와대에 쫙 퍼졌죠. 그랬더니 청와대에 적(敵)이 없어졌어. 나는 다시 교수로, 그리고 내가 설립한 생산성본부 연구소 소장으로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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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parker4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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