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동 순사 살해사건 기사가 실린 ‘신여성’ 1934년 4월호(큰 사진)와 1930년대 조선인이 재판을 받는 광경.
그러나 그날 가와카미 순사는 귀가하지 않았다. 새벽이 지나고 아침이 되어도 소식이 없었다. 가와카미 부인은 불안에 떨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땅 설고 물 선 조선에서 경찰의 아내로 10여 년을 살면서 늦게 돌아오는 남편을 기다리는 일이라면 이골이 났지만, 그날만큼은 유난히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아내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날이 밝기를 기다려 경찰서에 달려가 소식을 알아보니 남편은 경찰서에도 출근하지 않았다. 경찰 생활 10여 년 만에 처음이자 마지막 결근이었다. 그러나 외박과 결근 사실만으로 실종됐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밤새 놀다 결근했을 수도, 보안을 요하는 사건 수사를 위해 잠복근무 중일 수도 있었다.
“실종처리 하기엔 너무 이릅니다. 별일 없을 것이니 걱정 마시고 집에 돌아가 기다리세요. 곧 돌아올 겁니다.”
불안에 떠는 부인을 간신히 달래 돌려보낸 경찰은 가와카미 순사의 소재 추적에 나섰다. 오전까지만 해도 경찰은 사건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가와카미 같은 베테랑 순사가 불미스러운 일을 당했을 가능성은 희박했다. 조만간 미소를 지으며 제 발로 걸어 들어와 전후사정을 설명해주리라 믿었다. 그러나 경찰의 안이한 기대는 오후에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 산산이 부서졌다.
참혹한 사체
“안동읍에서 예천 방향으로 1.5㎞ 정도 떨어진 도로의 콘크리트 다리 밑에 사람 시체가 있어요. 어서 와주세요.”
인근 야산으로 나무하러 가던 초동의 제보였다. 주막집 개가 다리 밑에서 짖고 있길래 다가가 살펴보니 얼굴이 피범벅이 된 남자의 시체가 있다는 것이었다. 아침나절부터 가와카미 순사의 소재를 추적하고 있던 경찰은 뜻밖의 제보를 받고 아연실색했다.
“설마 가와카미 순사가….”
얼마 후 사건 현장에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 아오야마(靑山) 검사대리와 우에다(植田) 안동경찰서장을 위시한 경관 수십명이 달려왔다. 사체 감정을 위해 도립 안동의원 야마다(山田) 원장까지 나타났다. 안면부가 참혹하게 뭉개진 사체를 살펴본 경관들은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설마’가 ‘현실’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마는 심하게 깨어졌고 이는 부러졌고 귀밑과 손등의 할퀸 자국을 비롯해 온몸에 크고 작은 상처가 나 있었다. 코허리를 맞은 것이 치명상 같았다. 웃옷은 벗겨지고 바지는 정강이까지 흘러내려 속옷이 드러나 있었다. (‘미궁에 든 안동 순사 살해사건’, ‘신여성’ 1934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