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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문화 원류 탐험기 ⑥

‘생태적 사유’의 발상지, 콩코드 월든 호수

자연 회귀, 노역의 삶에 경종 울린 두 번째 독립혁명

  • 신문수 서울대 교수·미국문학 mshin@snu.ac.kr

‘생태적 사유’의 발상지, 콩코드 월든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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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적 사유’의 발상지, 콩코드 월든 호수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62).

월든 호수는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 중심가에서 남쪽으로 1.5마일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다. 콩코드는 오늘날에는 월든 호수로 인해 세상에 알려지고 있는 감이 들지만, 19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역사의 후광이 빛나던 유서 깊은 곳이었다.

보스턴에서 북서쪽으로 약 20마일 지점에 있는 콩코드는 1635년, 매사추세츠 만에 정착한 영국의 이주민들이 그들의 정착지 너머 뱃길이 닿지 않는 내륙 쪽에 건설한 첫 정착 마을이다. 콩코드는 소로가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 보낸 한 주일’의 서두에서 자세히 밝히고 있듯이, 원래 이곳 원주민 인디언 말로 ‘머스케타퀴드’(Musketaquid, ‘초원’이라는 뜻)로 불렸다.

영국의 식민자들은 이곳에 마을을 세우고 원주민들과 화평한 관계를 맺어나가길 염원하는 뜻에서 마을의 이름을 이렇게 붙였다. 콩코드가 미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독립전쟁 때다. 1775년 4월19일, 유명한 에머슨가의 목사관(The Old Manse) 근처에 있는, 콩코드 강을 가로지르는 노스 브리지(North Bridge)에서 식민지의 민병대와 영국 주둔군이 무력 충돌하면서 독립전쟁이 발발했기 때문이다. 콩코드는 에머슨이 ‘콩코드 송가’에 쓴 그대로 ‘전세계에 울려 퍼진 첫 총성’의 무대로서 미국의 건국과 함께 역사적 명소가 됐다.

소로의 녹색 혜안

해마다 전세계에서 60만명 이상이 월든 호수를 찾는다고 안내서엔 적혀 있다. 이들에게 월든은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일까. 무엇이 월든 호수를 순례 성지로 만드는 것인가. 이 의문은 물론 소로가 생전에 출판한 두 권의 저서 중 하나인 ‘월든’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과 떼어놓을 수 없다.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 보낸 한 주일’(1849)에 이어 1854년에 출판된 ‘월든’은 장르로만 본다면 순문학의 범주에 들지 않는 산문 에세이일 뿐이다. 소로는 총 423문단, 200여 쪽밖에 안 되는 이 한 편의 산문집으로 너새니얼 호손, 허먼 멜빌, 월트 휘트먼, 에밀리 디킨슨과 어깨를 겨루며 19세기 미국문학을 대표하는 고전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의 사후에 출판된 ‘메인의 숲’(1864), ‘케이프 캇’(1864), 간디, 마틴 루터 킹을 비롯한 저항 운동가들에게 성전으로 읽혀온 ‘시민의 불복종’, 그리고 무엇보다 200만 단어에 이르는 그의 방대한 일기 또한 그가 구축한 정신세계를 살피는 데 마땅히 고려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후 100여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비로소 확고해진 그의 명성은 무엇보다 ‘월든’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작고한 저명한 소로 연구가 월터 하딩(Walter Harding)은 ‘월든’이 적어도 다섯 가지 시각에서 읽혀왔음을 지적한 바 있다. 곧, 자연에 관한 박물학적 기록, 소박한 삶을 권면하는 삶의 지침서, 물질주의에 지배되는 현대적 삶에 대한 비판서, 탁월한 언어 예술 작품, 그리고 정신적 삶의 안내서로서의 시각이 그것이다.

출판된 지 한 세기 반이 흐르면서 ‘월든’은 이렇게 다양한 해석을 유발하며 지속적으로 호소력을 발휘해왔다. 고전을 시대가 달라지더라도 인간의 삶과 현실을 새롭게 성찰하도록 자극하는 작품이라고 정의한다면, ‘월든’은 정녕 고전이라 불러 마땅하다. ‘월든’이 인생행로를 바꾼 나침반이요 삶을 계도한 등불이었다는 수많은 증언이 그 비평사의 한 자락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21세기 초입에 들어선 이 시점에서 ‘월든’의 가장 큰 호소력은 무엇일까? ‘월든’ 출간 150주년을 기념하면서 미국 소로학회 또한 이 점을 의식한 듯, 학회의 주제를 ‘월든: 어제와 오늘’이라고 내걸었다. 주지하듯 소로는 오랫동안 에머슨의 추종자 혹은 그 아류로 평가되어왔다. 에머슨이 초월주의를 창안했다면 소로는 그 충실한 실천자였다고 흔히 말해왔다. 이런 시각에서 월든은 종종 초월주의의 실천적 텍스트 혹은 그 강령을 담은 에머슨의 에세이 ‘자연’의 사례 보고서쯤으로 인식되어왔다. 그 사유의 독자성과 개성적인 언어가 공인된 뒤에도 그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초월주의의 자장(磁場)을 벗어나지 못했다.

소로에 대한 이런 일반적 평가를 바꾼 것은 1960년대 들어 본격화한 환경운동이다. 앨도 리어폴드의 ‘샌드 카운티 연감’(1949),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1964)과 같은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깨우치는 책들이 출판되고, 시에라클럽을 비롯한 환경 단체들이 환경 정화를 부르짖으면서 ‘월든’을 비롯해 소로가 만년에 쓴 글들에 나타난 자연 성찰은 시대에 앞선 탁견으로 주목됐다.

1980년대 이후로는 소로의 생태적 예지야말로 그가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이라는 주장이 공감대를 넓혀가면서 녹색 소로의 부활이 한층 가속화하는 느낌이다. 내가 소로학회에 참석한 가장 큰 동기도 ‘월든’의 현재적 의미에서 생태적 사유가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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