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9월호

몽골 칭기즈칸 골프장

호쾌한 장타의 쾌감, 억센 동토(凍土) 러프의 좌절

  • 김맹녕 한진관광 상무, 골프 칼럼니스트 kalgolf@yahoo.co.kr

    입력2006-09-14 15: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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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 곳이든 깃대만 꽂으면 훌륭한 골프장이 될 것 같은 초원의 나라 몽골. 유일한 18홀 골프장인 칭기즈칸 골프장은 고산지대인데다 심한 내리막 코스가 많아 골퍼들이 애를 먹는다. 하지만 스코어가 나쁘면 어떠랴. 절경과 목가적 정취, 맑은 공기와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것을.
    몽골 칭기즈칸 골프장
    하늘에서 내려다본 몽골은 한 폭의 수채화다. 광활한 초원에선 양떼와 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흰 버섯 모양의 둥근 텐트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초원을 가로지르는 강줄기는 햇빛을 받아 은빛으로 빛나고, 가르마 같은 길을 따라 낙타를 타고 가는 이들의 행렬도 눈에 들어온다.

    아름다운 풍광에 심취한 것도 잠깐, 비행기는 울란바토르 국제공항에 사뿐히 내려앉는다. 입국심사장에서 만난 몽골인들은 얼굴 생김새와 체형이 우리와 비슷한데다, 어릴 적 할머니에게서 들은 몽골반점 이야기 때문인지 왠지 친근하게 느껴진다. 이 유목민들은 13세기에 이곳 중앙아시아 대초원에서 시작해 남으로는 남중국해, 서로는 발트해에 이르는 거대제국을 일궜지만 지금은 1인당 국민소득 600달러에 불과한 빈국(貧國)으로 전락했다. 그래서인지 지금 칭기즈 칸의 후손들에게선 800년 전을 떠올리게 하는 패기와 위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들은 그저 온순하고 친절하기만 하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의 풍광은 우리나라의 1960년대 도시 풍광과 비슷하다. 높은 빌딩과 아파트촌이 있는가 하면 한편에 빈민과 유목민의 텐트촌도 널려 있다. 몽골의 면적은 남한의 16배이지만 인구는 290만명에 불과하다. 이중 85만명이 울란바토르에 거주하고 있어 심각한 주택난과 물 부족을 겪고 있다.

    우리에겐 ‘몽고’라는 국명이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이곳에서는 반드시 ‘몽골’이라고 해야 한다. 몽고는 중국인이 주변 민족을 몽매한 야만인이라고 경시해 부르던 데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1924년 수립된 몽골인민공화국의 약자인 몽골(Mongolia)이 정식 명칭이다. ‘외몽골’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중국 자치주인 내몽골과 구분해 부르는 명칭이다.

    몽골은 공업주도형 시장경제로 전환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또한 국가 이미지 쇄신에 주력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칭기즈 칸의 부활이다. 1921년 사회주의 혁명 후 한동안 그를 봉건압제자로 규정해 이름조차 거명하지 못하게 했지만 지금은 공항, 거리, 호텔, 골프장, 보드카에까지 그의 이름을 붙이는 등 몽골의 상징으로 부각하고 있다. 지난 7월엔 울란바토르 시청 앞에 칭기즈 칸의 대형 동상이 세워졌는데 국민에게 옛 영화와 향수를 고취시키고 있다.



    시내로 들어서니 거리를 질주하는 차량의 절반 이상이 현대자동차이고, 한글 간판도 눈에 많이 띈다. 슈퍼마켓엔 우리나라 화장품, 과자, 식기류, 생필품이 널려 있다. TV에서는 ‘모래시계’ ‘대장금’ ‘겨울연가’를 방영하고 상점이나 극장, 카페엔 으레 한국 연예인 사진이 걸려 있다. 한류 열풍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한국식당도 60여 곳이 성업 중이라고 한다.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도 많아 17개 대학과 3개 중등학교에 한국어학과가 설치되어 있다. 몽골인들은 한국이 학교와 병원을 세워주고, 양국간 청소년 교류도 활발해 한국을 ‘솔롱고스’, 즉 ‘무지개 나라’라고 부르며 좋아한다.

    다음날 아침 칭기즈칸 골프장으로 가기 위해 시내를 벗어나니 광활한 초원이 끝없이 펼쳐진다. 푸른 산야는 아무데나 깃대만 꽂으면 골프장이 될 것처럼 평탄하고 매끈하다. 생계형 목축국가여서인지 가는 곳마다 양떼와 소들로 가득해 풍요로워 보였다.

    평원을 따라 구불구불 달리는 시골도로 주변은 그대로 관광코스다. 전통복장을 하고 걸어가는 할아버지, 특이한 승복을 입은 늙은 라마승, 말을 타고 장에 가는 시골 아낙들, 풀을 뜯는 검은 야크들, 떼 지어 연못에서 물을 마시는 가젤, 먹이를 찾기 위해 하늘 위를 빙빙 나는 독수리떼…. 다큐멘터리 필름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몽골 칭기즈칸 골프장

    칭기즈칸 골프장의 이국적인 풍광과 맑은 공기가 골프의 맛을 더해준다.

    몽골 유일의 18홀 골프장

    1시간쯤 걸려 텔레지 국립공원에 있는 칭기즈칸 골프장 클럽하우스에 도착하니 여성 캐디들이 일렬로 서서 반갑게 맞이한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고 초원의 공기는 신선하기 그지없다. 이런 때 묻지 않은 싱그러운 대자연에서 골프를 한다는 것은 축복이고 행운이다.

    몽골 전체를 통틀어 9홀 골프장은 몇 개 있지만 18홀 골프장은 이곳이 유일하다. 골프장 주인은 한국인 이명학씨다. 일본인들이 ‘강우량과 토양 등을 고려할 때 골프장을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며 포기한 곳을 인수해 직접 설계 시공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 어려움이 얼마나 많았을지 상상이 갔다. 지난해 문을 연 이 골프장은 총 길이 5946m로 비교적 짧은 코스이지만, 주변의 아름다운 산세와 경관에 매료돼 텔레지 국립공원에 관광 온 골퍼들이 다음날 다시 와서 라운드를 할 정도다.

    1번 티로 나아가 언덕을 향해 힘차게 티샷을 날리니 공이 빨랫줄처럼 쭉 뻗으며 푸른 하늘을 향해 비상한다. 첫 타부터 장타가 나오니 기분이 좋았다. 동반자 4명이 4명의 캐디와 함께 넓고 푸른 페어웨이를 걸으니 마치 별세상에 온 기분이다.

    두 번째 샷은 남은 거리가 120m였지만 앞바람이 불고 오르막인 점을 감안해 7번 아이언을 빼어들자 캐디가 8번 아이언으로 바꿔준다. 그린을 향해 샷을 날리니 평소보다 한 클럽 짧게 잡았는데도 공이 그린을 넘어가 언덕 러프 속으로 떨어졌다. 피칭웨지로 어프로치 샷을 하니 공은 또다시 그린을 넘어 결국 트리플로 첫 홀을 마감하고 말았다. 두 번째, 세 번째 홀에서도 드라이버는 장타를 쳤지만 두 번째 샷이 그린을 넘어 연속 보기를 기록했다.

    다섯 번째 홀이 되어서야 코스 특성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곳은 해발 1800m의 고지대인데다 연중 강우량이 200mm밖에 안 되고, 게다가 여름철엔 비가 내리지 않는다. 그래서 수분이 부족해 페어웨이가 딱딱하고, 인조 그린이라 그린 앞에 공을 떨어뜨려야 굴러서 온이 된다. 또한 높이 띄우는 어프로치 샷보다는 러닝 어프로치가 유리하다.

    고원지대의 골프 코스에서는 공기 밀도가 낮고 건조해 평균 비거리가 20∼30야드 더 나간다. 특히 내리막 홀에서는 뒷바람이 불 경우 최고 40야드 더 나갈 때도 있다.

    경사진 홀에서는 거리 측정이 중요하다. 고원지대의 내리막 홀에서는 실제보다 멀리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린 뒤편에 나무나 숲이 없는 경우, 홀이 해가 넘어가는 반대편에 있는 경우, 그린 앞에 연못이나 깊은 벙커가 있는 경우, 그린이 주위의 벙커에 비해 작게 보이는 경우 실제보다 거리가 길게 느껴져 골퍼들은 한 클럽 길게 잡거나 힘을 주어 샷을 한다. 이렇게 되면 공은 그린을 넘거나 러프 속으로 빠질 확률이 높다. 일단 그린에서 멀어진 공은 어떤 상황이든 핀에 붙이기가 만만치 않다.

    8번 홀로 들어서니 노란 유채꽃과 야생화가 홀을 따라 피어 있어 마치 꽃밭에서 라운드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런 낭만적인 흥취도 한순간, 드라이버 샷이 오른쪽으로 휘면서 공이 꽃밭으로 들어가버렸다. 꽃 속에 파묻힌 공을 4번 아이언으로 그린을 향해 힘껏 내려쳤는데, 10m도 날아가지 않고 다시 러프 속에 박혔다. 다시 쳐도 역시 공은 15m를 나아가지 않는다. 겨우내 영하의 땅속에 있었던 풀이라 그런지 억세고 질겨 아이언으로 쳐도 끊어지지 않는다.

    심하게 일그러진 내 표정을 본 캐디가 얼른 클럽을 피칭웨지로 바꿔준다. 그제야 러프가 한 움큼 잘리면서 공이 페어웨이 쪽으로 나온다. 상황을 무시하고 오직 온 그린시키겠다는 욕심을 부리면 실패한다는 교훈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깊은 러프 속에서는 9번 같은 짧은 아이언으로 쳐 공을 일단 페어웨이로 내놔야지, 4번 같은 롱 아이언은 헤드가 작아 러프의 저항을 이길 수 없기 때문에 공을 빼내기가 힘들다. 골프도 인생이나 마찬가지로 무리하면 반드시 후유증이 따른다.

    뒤를 돌아다보니 아름답고 탐스럽던 꽃밭이 내 샷으로 뭉개져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함께 18홀 골프를 쳐보면 골퍼의 성격과 매너를 가늠할 수 있다고 강조해온 내가 정작 골프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발끈 화를 낸 게 부끄러웠다.

    몽골 칭기즈칸 골프장

    우리나라 1950~60년대 풍광을 연상케 하는 몽골 울란바토르 시내 정경. 이곳에도 한류 열풍이 불어 몽골인들은 한국을 ‘솔롱고스’, 즉 무지개 나라라고 부른다.

    그늘집에 들르니 마치 한국인 듯 설렁탕, 김밥, 라면, 육개장이 차려져 있다. 일행 중 한 골퍼가 식탁 위에 모자를 뒤집어 올려놓자 함께 라운드한 몽골인이 기겁을 하며 모자를 바로 세운 다음 선반 위에 갖다놓는다. 몽골에서는 모자를 대단히 중히 여겨 이를 뒤집어놓는 것은 큰 실례라고 한다.

    과욕은 실패를 부르고

    후반 9홀은 내리막 홀이 많다보니 공이 원하는 방향으로 날아가지 않아 티샷하는 데 매우 어려웠지만, 언덕 아래로 쭉 뻗어나가는 장타의 맛은 통쾌하고 짜릿하다. 그러나 페어웨이와 러프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고 나무 한 그루 없는 광활한 벌판에서 페어웨이 한가운데로 공을 보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절감했다. 이는 주위의 산세로 인해 착시현상이 생긴 나머지 방향 감각을 제대로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리막이 심한 파5 홀에서는 사전에 공략 작전을 세우는 게 좋다. 공이 놓인 상태가 좋지 않아 어드레스가 불편할 때 굳이 우드를 잡을 필요가 없다. 공을 오른발 쪽에 놓고 페어웨이우드로 풀스윙을 하면 토핑이나 심한 훅, 또는 슬라이스가 나기 쉽다. 어차피 세 번째 샷에서 그린 온을 할 바에는 무리할 까닭이 없다. 두 번째 샷을 5번이나 6번 아이언으로 가볍게 쳐도 내리막이라 공이 많이 구르기 때문이다. 고지대의 경사가 심한 내리막 홀에서는 공격적인 골프보다는 신중하고 안전한 골프가 더 바람직하다.

    골프는 그날의 컨디션과 동반자, 골프장에 따라 스코어 변화가 많은 스포츠다. 공이 잘 맞으면 감동과 희열에 빠지나 반대일 때에는 낙담하고 실망한다. 골프의 매력은 우리네 인생사와 같이 좋고 나쁨이 반복되고, 이를 극복하려는 의지와 용기를 주는 데 있다. 스코어가 나쁜들 어떠랴. 가끔은 스코어를 의식하지 않고 있는 힘을 다해 샷을 하면 정신건강에도 좋고 스트레스도 해소된다.

    골프의 가장 큰 매력은 자연에 도취해 라운드하는 즐거움이다. 복잡한 도시를 떠나 시원하게 탁 트인 대초원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텔레지 국립공원의 풍광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의 평화와 삶의 여유가 생겨 더 바랄 게 없다.

    여름 더위가 맹위를 떨치는 7월말인데도 이곳은 우리나라 추석 무렵 날씨 같아 골프 치기에 더없이 좋다. 내리 36홀을 치고 나니 다리는 뻑적지근하고 몸은 피곤했으나 마음은 개운하기만 했다.

    골프를 마친 후 몽골의 전통 음식인 양고기로 만든 허르헉 요리와 보쯔(몽골식 고기만두)에 말젖으로 만든 아이락을 즐기면서 이곳 몽골의 역사와 최근 동향, 그리고 우리나라와의 관계 등을 화제로 정담을 나누다보니 밤이 가는 줄 몰랐다. 클럽하우스를 나와 하늘을 보니 마치 검은 천 위에 은가루를 뿌려놓은 듯 별들로 꽉 차 있다. 갑자기 별똥별 하나가 긴 꽁지를 그리며 머리 위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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