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년 8월24일 ‘X-파일 제공자’ 박인회씨가 미국으로 강제 출국하기에 앞서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신동아’와 인터뷰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박인회(朴麟會·59)씨는 MBC 이상호 기자에게 불법 도청된 녹음테이프와 녹취록을 제공함으로써 X-파일의 존재를 최초로 외부에 알린 인물이다. 그러나 박씨는 사건이 보도된 직후 공항에서 연행되어 검찰에 구속됐기 때문에 사건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언론과 인터뷰한 적이 없다. 정작 X-파일 사건을 격발시킨 당사자에게선 한마디도 들어보지 못한 것이다.
강제 출국 전 8일의 자유
이런 가운데 지난 7월 ‘신동아’는 모 사정기관으로부터 ‘박인회씨가 8·15 가석방 대상에 포함됐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확정판결에 따르면 박씨는 오는 10월16일 만기출소 예정인데, 약 2개월 앞당겨 출소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박씨가 수감된 대전교도소측도 지난 5월, “(수형) 고과점수가 좋네요. 6월에 봅시다”라며 박씨에게 희망을 안겨줬다.
그러나 7월10일 ‘재소자 환경조사’에선 “(가석방) 자격은 되는데 워낙 큰 사건의 연루자여서…”라는 회의적인 얘기가 나왔다. 박씨는 다시 불안해졌다. 심장 지병으로 2003년 수술까지 받은 박씨는 수감생활을 무척 힘들어했다. 그는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심정으로 출소를 기다렸다. 8월10일 박씨는 교도소측과 가석방 여부를 결정하는 최종 면담을 했다. 이날도 교도소측은 가부 확답을 주지 않았다.
8월14일 오전, 박씨는 마침내 가석방 결정을 받아 대전교도소를 나왔다. 교도소측은 당일에야 가석방 사실을 박씨에게 통보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법무부가 박씨를 출소시키자마자 충북 청주의 ‘외국인 보호소’로 보낸 것이다. 사실상의 감금 상태가 계속된 것.
박씨(미국 여권에 기재된 이름은 William Hoe Park)는 법적으로는 1993년 7월 미국시민권을 취득한 외국인(미국인)이다. X-파일 사건의 중대성과 박씨의 국적이 미국임을 감안해 주한 미국대사관 관계자도 수감 중인 박씨를 두 차례 면담한 바 있다. 박씨는 미대사관측에 억울함을 호소했다고 한다.
박씨는 8월14일 외국인 보호소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법무부는 박씨를 보호소에서 곧장 인천국제공항으로 이송해 미국으로 강제 출국시킬 계획이었다고 한다. 외부인과의 접촉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의도였다. 이후 5년 동안 박씨는 한국에 입국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상황이 반전됐다. 박씨는 법무부에 “서울에 팔순 부모가 살고 있다. 언제 돌아가실지 모른다. 부모가 미국까지 먼 여행을 하기도 힘들다. 지금 내가 나가면 5년 내에 못 들어오니 상(喪)도 치르지 못할 수 있다. 며칠만 더 국내에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박씨의 변호사는 공탁금을 걸었다.
법무부는 박씨측의 요청을 어렵게 받아들여 박씨가 며칠 더 국내에 머물 수 있도록 허락(보호일시해제)했다. X-파일 사건에 대해 일절 함구하며 수감생활을 성실히 해온 점이 참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박씨는 8월16일 저녁 외국인 보호소를 나와 24일 강제 출국할 때까지 ‘8일간의 자유’를 얻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