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적인 미래학자 8명이 한국의 미래 보고서 ‘비전 2030’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이들은 대한민국이 그리는 미래의 실현 가능성 여부를 떠나 미래를 예측하는 방법, 국민을 설득하는 자세, 세계의 흐름을 반영하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정부 보고서를 바탕으로 국회가 대안적 보고서를 내놓는다면 한국이 설정한 목표는 현실과 좀더 가까워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밝혀놓았다는 ‘비전 2030’ 보고서. 이는 노무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관계자들을 만나 “내가 당과 국민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내놓은 것이다.
먹기도 전에 식어버린 음식?
60명의 전문가가 60차례의 토론을 거쳐 작성했다는 미래 보고서는 우리 국민뿐 아니라 세계 미래학자들에게도 관심의 대상이었다. 한 나라의 미래 보고서는 최고의 지성들이 모여 자국은 물론 세계의 변화를 예측한 것이다. 이를 통해 현재의 좌표를 확인하고, 향후 나아갈 방향에 대한 힌트를 얻는다. 한 사람의 운명을 바꿔놓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보고서가 나온 뒤의 반응은 차가웠다. ‘세금 부담을 독촉하는 보고서’라는 언론의 냉소적인 비판은 차치하더라도 국회나 학계, 시민단체에서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논쟁할 거리가 없어서였을까. 사실 보고서는 장밋빛 전망으로 가득하다. 이를 비판하면 비관적인 전망을 바라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 성장과 분배의 조화라는 핵심 컨셉트도 이 정부가 출범할 때부터 떠들던 얘기여서 귀에 익은 내용이다. 이런 무관심 탓에 대통령이 선사했다는 선물은 포장지도 뜯기지 않은 채 방치된 느낌마저 준다.
이미 식어버린 음식에 ‘신동아’가 다시 숟가락을 대는 이유는 좀더 생산적인 토론을 위해서다. ‘정부가 내놓은 보고서니까 으레 그렇다’는 상투적인 비판은 삼가자. 세금 더 내라는 내용이라고 간단히 치부하지도 말자. 조금 다른 각도에서 비전 2030을 바라보자. 선진국은 4∼5년에 한 번씩 미래 보고서를 발간한다. 이를 법으로 규정한 나라도 있다. 이들이 낸 보고서와 한국이 낸 보고서를 비교하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차분하게 따져보자. 또 세계의 미래학자들은 이 보고서에 대해 어떤 지적을 하는지도 들어보자.
박영숙(朴英淑·51) 유엔미래포럼 한국대표는 전세계 미래학자들과 교류하는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해외 미래학자들을 초청해 국제포럼을 개최하고, 대학에 미래연구센터를 설립하며 세계미래회의에 참석하는 등 미래에 대한 관심은 국내 누구보다 높다. 퇴근한 뒤에도 그는 메신저를 켜놓고 400여 명의 미래학자와 토론을 벌인다. 박 대표를 통해 미래학자들이 비전 2030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들을 수 있었다.
미래학자 8명의 코멘트
▼ 박 대표께서도 비전 2030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일부 관여한 것으로 압니다.
“보고서를 작성하는 정부 관계자나 한국개발연구원(KDI) 박사를 만난 적은 있죠. 만나서 선진국의 미래 보고서 작성 요령 등을 조언해줬어요. 그게 전부입니다. 보고서가 나온 뒤엔 일부러 언론을 피했어요. 내가 미래학자들의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안 기자들이 코멘트를 부탁했지만, 내가 보고서 작성한 사람들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비판만 할 것 같아 모두 거절했어요.”
▼ 세계의 미래학자들에게 이 보고서에 대한 의견을 묻게 된 계기는.
“정부가 9월 초쯤 비전 2030을 내놓는다는 것을 해외에 있는 미래학자들을 통해 들었어요. 보고서가 나오기 일주일 전부터 메신저를 켜면 나에게 ‘정부 보고서를 봤느냐’ ‘너의 의견은 어떠냐’ ‘지난 번 캐나다 토론토 회의에서 제정한 미래보고서 작성 준칙을 정부에 요구했느냐’는 등의 질문을 막 퍼붓더라고요.
그땐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서가 나오자 해외 미래학자들이 ‘당신이 한국에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으니까 보고서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 ‘그러고도 유엔미래포럼 한국대표직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며 비난하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그래서 어떻게 한국 보고서를 봤냐고 했더니, 구글이나 야후에서 검색해서 봤다는 겁니다. 요즘엔 영어 번역이 쉬운가 봐요. ‘비전’이라는 말만 나오면 다 번역해서 본다는 거예요. 숨을 수가 없는 거죠.”
▼ 어떤 사람들과 토론했습니까.
“많은 사람의 의견을 들어보려고 했어요. 보고서의 내용을 꼼꼼히 코멘트해준 학자는 8명입니다. 다들 바쁠 텐데 나로선 고맙죠. 그만큼 한국의 미래에 대해 관심이 높은 겁니다. 제롬 글랜 유엔미래포럼 회장은 ‘한국 정부가 양극화와 저출산, 고령화 때문에 국가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절박한 상황에서 중장기적 비전을 공론화했다는 점에선 의미가 있다’고 하더군요.”
▼ 보고서 작성 과정에서부터 그들의 의견이 반영됐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랬으면 좋았겠지만, 오히려 보고서가 발표된 지금부터 할 일이 많습니다. 핀란드의 예를 들어볼까요? 핀란드에선 정권을 잡으면 무조건 15년 후를 예측하는 미래 보고서를 작성해야 합니다. 그게 법으로 명시돼 있어요. 집권기 4년 안에 보고서를 내놔야 해요.
정부가 보고서를 내면 국회의 미래상임위원회에서 그걸 갖고 치열한 논쟁을 벌입니다.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에 따른 대안을 내놓죠. 여당은 이를 토대로 대안적 성격의 미래 보고서를 새로 작성합니다. 정부와 집권당이 더 나은 결과를 내려고 서로 경쟁하는 거죠.
막강한 핀란드 미래상임위
이렇게 되면 4년에 한 번씩, 15년 앞을 예측하는 보고서가 두 편씩 쌓입니다. 이 같은 핀란드 방식이 상당히 체계적이고 모범적이어서 세계가 표준으로 간주합니다. 세계 각국이 통상 15년 앞을 예측하는 보고서를 내는 것도 핀란드의 예를 따른 거예요. 급변하는 사회에서 20년 예측은 너무 멀고, 10년 예측은 미래를 맞이할 준비기간이 너무 짧죠.
미래보고서는 발표하고 잊어버리는 게 아닙니다. 그걸 놓고 어떤 토론을 벌이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이런 데이터가 수십년 축적된다고 생각해보세요. 이게 국가의 경쟁력이 됩니다. 핀란드의 국민기업 노키아가 오늘날 세계적인 IT기업이 된 것도 국회의 미래상임위원회 덕분이에요. 목재 산업으론 핀란드가 먹고살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IT산업으로 산업구조를 재편해야 한다는 예측 보고서를 작성했지요. 그래서 국회의원들이 노키아의 CEO를 설득해서 기업을 전면 개혁한 것 아닙니까.
일단 정부의 일은 끝났으니 이젠 국회가 답할 차례입니다. 열린우리당이 대안 보고서를 내야죠. 정부가 하겠다고 한 정책 중에 문제점을 지적하고 실현 가능한 것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에 따라 기업과 국민 그리고 공무원은 각각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계획을 세우고 설득해야죠. 이제부터 시작이에요.”
▼ 아까 캐나다 토론토 회의에서 미래 보고서 작성 준칙을 정했다고 했는데, 그게 뭡니까.
“지난 7월 세계미래회의에서 제롬 글랜 회장이 제안해 중대한 합의를 본 게 있어요. 세계 4대 미래회의로 알려진 세계미래회의, 세계미래연맹, 미래주의자연합, 로마클럽을 통합하자는 것이었죠. 전세계 5000개의 미래예측기구가 있는데, 이를 한데 통합하고 정보를 나누자는 취지예요. 초대 회장은 제롬 글랜이 맡기로 했어요.
그리고 체계적인 미래예측 보고서를 발간하는 게 중요하다는 데 뜻을 모았죠. 중구난방으로 작성하면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것이 이유였어요. 이를 위해 첫째,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미래예측 방법론을 적어도 2∼3가지는 사용하자고 했습니다. 미국에서 내놓는 보고서를 보면 통상 4∼5가지 방법론을 씁니다.
둘째, 15년 앞을 예측하려면, 적어도 과거 15∼20년의 데이터 추이는 분석해야 합니다. 한국은 이 점에서 특히 약해요. 제대로 된 통계자료를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영아 사망률, 산림률(산림이 국토에서 차지하는 비율), 에이즈 감염자 수, GDP(국내총생산) 등 경제와 사회의 변화를 망라하는 데이터의 추이를 분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바탕에서 미래를 보여줘야 국민이 믿어요.
박영숙 유엔미래포럼 한국대표가 비전 2030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사실 이 기준은 한국과 일본 때문에 정해졌어요. 두 나라가 워낙 외국인의 시각을 반영하지 않아서 그렇게 됐습니다. 한국은 무역 아니면 먹고살기 힘든 나라잖아요. 당연히 외국의 변화가 중요한 변수예요. 이번에 정부에서 내놓은 비전 2030에 외국인이 얼마만큼 참여했는지 모르겠어요. 적어도 보고서상에는 한 사람도 발견할 수 없어요.”
▼ 실제 외국에선 어떻게 미래 보고서를 내고 있습니까. 한국 보고서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미국 CIA에서 발간한 NIC(국가정보위원회) 2020을 보죠. NIC는 CIA에서 은퇴한 요원들이 백악관에 자문하고 조언하는 단체를 말하는데, 이들은 5년 주기로 미래 보고서를 작성합니다. CIA라고 하는 정부기구가 자금을 대지만, 실제로는 민간인이 제작하는 거죠.
보고서 첫 페이지를 볼까요? 2003년 11월부터 작성하기 시작했다고 돼 있군요. 초기엔 25명의 전문가를 데려와 논의했고, 3명의 세계적인 미래학자를 초빙해 밑그림을 그렸다고 언급하고 있어요. 델파이 기법(미래예측방법)을 창안한 테드 고든 유엔미래포럼 초대 회장, 짐 듀어 랜드연구소 미래팀장, 게드 데이비스 쉘 인터내셔널 프로젝트 전 팀장 등이 초빙한 미래학자들입니다. 이들이 보고서의 신뢰도를 책임지게 되죠.
여기서 한국 보고서와 몇 가지 차이가 드러납니다. 비전 2030엔 누가 책임을 질 것인지, 누가 밑그림을 그렸는지, 누가 논의에 참여했는지 씌어 있지 않아 알 수 없어요. 궁금한 점이 있으면 누구에게 물어봐야 합니까. 대강 연구소 이름 몇 개와 대학 이름을 나열하는 데 그쳤죠. 또 하나의 문제점은 외국에선 비전 보고서 작성에 국책연구소 연구원은 뺍니다. 정부가 제시한 장밋빛 전망에 휩쓸릴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죠.”
▼ 한국개발연구원 박사들이 보고서를 썼다는 점 자체가 문제라는 얘기군요.
“여기 또 다른 차이를 발견할 수 있는데요. NIC 2020엔 전세계에서 발행한 미래 보고서를 참조했다는 내용이 있어요.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 남미, 싱가포르, 동유럽의 전문가들을 초청해 의견을 청취하고, 이들이 발행한 미래 보고서를 읽었다고 했어요. 또 교수, 기업인, 관료, NGO, 연구소 관계자들을 보고서 작성에 참여하도록 했다고 했고요. 참여자 명단을 써놓았고, 이들이 언제, 어디서, 어떤 주제로 토론을 벌였는지도 자세히 기술해놓았어요.”
‘세계의 흐름과 동떨어진…’
▼ 비전 2030이 그리는 세계는 24년 뒤의 일입니다. 한국 정부가 예상하는 미래와 미래학자들이 예상하는 미래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사실 그 부분에 대한 지적이 많았어요. 한마디로 이번 보고서는 미래를 바꿀 변수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얘깁니다. 해외의 미래학자들도 궁금할 것 아닙니까. 한국에선 어떻게 미래를 그리고 있는지, 그에 따라 자신의 의견을 수정할 것은 없는지 비교해보고 싶잖아요. 미래보고서를 보면서 어떤 ‘영감’을 얻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이를 전혀 채워주지 못했다는 것이죠.
예를 들면 첨단기술의 발전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글로벌화가 더욱 진전된다면 한국사회는 어떻게 바뀔 것인지, 국제기구의 위상과 역할이 강화되는 데 따른 한국 정부의 전략은 무엇인지 예상하고 논의했어야 합니다.
특히 기술변화에 따른 사회의 변화는 중요한 주제예요. 세계 미래학자들은 2009년에 음성으로 판독하는 컴퓨터가 나와 키보드가 사라진다고 예상하고 있어요. 불과 3년 뒤의 일이죠. 레이 쿠츠웨일이라는 미국의 발명가가 음성판독 컴퓨터를 이미 만들고 있어요. 자신이 직접 제작하고 있으니, 이만큼 정확한 예측이 어디 있습니까. 빌 게이츠는 음성인식기술로 인해 신문이 2018년에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어요. 음성으로 뉴스를 듣고, 음성으로 자료를 찾는 세상이 온다는 거죠. 한국의 컴퓨터 산업계가 어떻게 재편돼야 하는지 힌트를 얻을 수 있겠죠.
이뿐입니까. 2023년엔 지금보다 5배나 빠른 비행기가 나온다고 합니다. 전세계가 2시간대로 연결되는 것이죠. 엄청난 인구가 세계를 무대로 이동할 것이고, 그야말로 지구촌은 하루 생활권으로 접어듭니다. 국경은 없다고 봐야죠. 사람들이 직장과 놀이를 찾아 세계를 떠돌아다니는 세상이 오는 겁니다. 지금부터 대책을 찾아야죠. 이런 논의가 빠졌다는 게 아쉬워요.”
▼ 전세계가 단일 생활권으로 접어든다면 여러 가지 변수가 생기겠군요. 특히 교육정책에서 많은 변화가 생길 것 같은데요. 지금도 자녀들을 외국에 유학 보내려고 안달인데, 그땐 더하겠습니다.
“비전 2030에 대학 개혁에 대한 언급이 많더군요. 그런데 세계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했어요. 유럽에선 지금 ‘볼로냐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 중이에요. 유럽 45개국의 6000개 대학을 2010년까지 통합한다는 겁니다. 이에 따라 3200만명의 대학생이 서로 교류할 수 있는 길이 열려요. 이는 유럽의 특수한 상황 때문인데요. 경제적으로 부유한 국가의 대학으로 학생들이 몰리는 것을 막겠다는 거죠. 대학을 통합해 학점 교류 등을 추진하면 어느 나라의 대학을 나와도 프랑스나 독일 대학의 졸업장을 받을 수 있는 겁니다. 이를 위해 유럽연합이 대학품질인증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선언했어요.
이런 소식을 듣고 호주와 뉴질랜드가 프로젝트에 참여하겠다고 했고, 동남아 국가들도 이 시스템에 들어가고 싶다고 발표했어요. 세계의 대학이 통합되고 있는 현실에서 한국대학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비전 2030을 통해선 전혀 짐작할 수 없죠.”
‘2020년에 쓴 가상 일기장’
▼ 그런 수요가 있다면 한국으로선 기회이지 않습니까. 뛰어난 정보기술(IT)을 앞세워 유럽의 대학통합 시스템을 만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죠. 네트워크를 구축하면 돈도 벌 수 있고, 한국의 대학도 이 흐름에 동참할 수 있어요. 교육 분야에서 새로운 기회가 열릴 수 있죠. 비전 2030이 그리는 미래는 2006년 한국의 모습을 2030년으로 옮겨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 정부 보고서가 너무 한 방향으로만 흘렀다는 비난도 받고 있습니다. 당장 내일 일도 알 수 없는데 25년 뒤의 일을 단정적으로 예상한다는 것이 무리하다는 지적입니다.
“미래는 절대 단선적이거나 하나만 존재하지 않아요. 따라서 보고서는 통상 3∼4가지의 시나리오를 예상해서 제시해야 합니다. NIC2020 51쪽을 보면, 2025년까지 중국의 국방비를 예측한 그래프가 있어요. 여기에도 세 가지 시나리오를 토대로 예상한 것이 보이시죠. 최고(high), 중간(middle) 그리고 최저(low)의 경우를 산정, 국방비 증액 규모를 예상하고 있어요.
이렇게 하는 이유는 미래도 불확실하거니와, 보고서의 최종 소비자인 국민 때문이에요. 단편적인 미래만 예측한다면 누가 믿겠습니까.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줘야 보고서에 신뢰가 가는 겁니다. 미래보고서는 국민을 설득해서, 미래를 준비하도록 하는 게 최종목적이에요. 그냥 툭 던져놓고, 알아서 판단하라고 하는 게 아니에요. 미국은 미래보고서에 2020년의 한 주민이 쓴 가상 일기장도 집어넣고, 테러리스트 오사마 빈 라덴의 사촌이 2020년 보내온 편지도 게재합니다. 재미있죠?
요즘 서구 미래학의 동향은 좀더 많은 시민을 참여토록 해 민주적인 비전을 수립하는 겁니다. 국가 차원에서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 각계각층의 의견을 듣고 비전을 만들어가는 게 더 중요합니다. 비전 2030엔 이런 노력이 녹아 있지 않아요.”
▼ 비전 2030을 작성한 계기가 고령화, 저출산으로 경제의 성장 동력이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에 따른 대책도 자주 언급하고 있는데요. 이에 대해 미래학자들은 어떤 의견을 갖고 있던가요.
“이 문제를 좀 다른 각도에서 봤으면 어땠을까요? 나이 많은 사람이 늘어난다, 그래서 경제에 참여하는 인구가 줄어든다, 그래서 위기다라는 것은 상식적인 견해에 불과하고요. 미국은 1946년 이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어요. 이 세대가 젊을 때는 히피였고, 반전운동을 했어요. 나이가 들면서 여성운동에 참여했고요. 이젠 고령인권운동을 한다고 합니다. 이 여파로 한국의 노인들도 권리를 찾으려는 운동을 할 것이고, 이에 따라 사회가 변화할 겁니다. 정부에선 노인들의 요구에 따른 예산을 책정해야 할 겁니다.”
다른 나라는 놀고 있나
▼ 한미 FTA가 진행되는 등 글로벌화의 진전에 따른 효과 분석도 없다는 비판을 듣고 있습니다.
“앞으로 수년 뒤 지구촌 경제는 모든 나라가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세금 없이 교역하는 시기가 올 거예요. 그럼 지금의 잣대로 예측한 지표나 수치는 아무 의미가 없어요. 한국이 2030년에 국가경쟁력과 삶의 질 부분에서 세계 10위로 올라설 것으로 예측하지만, 외부 변수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겁니다. 다른 나라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정체하고 있으리란 법이 어디 있습니까.
외부의 변화에 대한 예측이 없다보니 정말 중요하게 논의해야 할 이슈가 빠지기도 했어요. 지구촌의 일원으로서 겪어야 할 환경오염이나 자원고갈에 대해서는 어떤 예측도 하지 않았어요. 정보사회를 넘어 후기정보사회로 진입하는 데도 대응책이 언급돼 있지 않고요. 하와이대의 짐 데이토 미래학 교수가 한국은 후기정보사회에서 지구촌을 리드할 역량을 갖고 있다고 평가한 적이 있는데요. 정작 한국은 이에 대한 고민이나 미래상을 그리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내일 없는 오늘’
▼ 정부 보고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게 ‘일할 능력과 뜻만 있으면 누구나 평생 배우며 일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는 대목입니다. 지난해 63.7%였던 고용률(15∼64세)이 2030년이 되면 72%로 올라간다고 하네요. 평생학습 참여율은 2004년 22%에서 2030년 50%로 상승해 일자리를 잃어도 재교육을 받아 다시 취업할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미래학자들은 그와 상반된 얘기를 했어요. 앞으로 인류는 완전고용이 아닌 완전실업을 정책의 목표로 삼는다고 합니다. 세계미래회의가 2004년 9월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에는 줄기세포가 보편화돼 최고 육질의 쇠고기나 채소를 공장에서 대규모로 생산한다고 합니다. 먹을거리가 해결되면서 인류는 특별히 똑똑하지 않으면 일하기 힘든 시대를 맞는다고 해요. 일자리가 없어 자살하는 사람도 늘고요. 이 때문에 미래는 끊임없이 일을 꾸미고, 사람들을 모으고, 행동하는 사람만이 성공하는 시대가 된다고 합니다.”
▼ 공상과학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로 들리는데요.
“미래는 늘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었으니까요. 이런 미래에 대해 상상하는 힘이 중요합니다. 실제 이런 미래를 준비하는 국가가 있어요. 미래는 상상하고 그걸 실행하는 사람들 것이란 얘기가 있잖아요. 여기서 밀리면 우린 이들이 구상한 미래를 그저 따라갈 수밖에 없는 거죠. 지금의 기준으로 내일을 상상해봐야 맞지 않아요.
예를 들어보죠. 노조 문제에 대해 한국사회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데요. 2005년 호주노동조합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10년 동안 호주에서 창출한 일자리의 90%가 비정규직이라고 합니다. 1980년 미국의 노조 가입 근로자는 23%였는데, 2008년엔 10% 이하로 감소한답니다. 서구의 근로자 30%가 재택근무를 하는데, 이 비율은 2010년이 되면 60%로 상승합니다. 왜 이런 이슈에 대해서는 어떤 논의도 없는 겁니까.
기업의 미래도 마찬가지예요. 현재 지구촌에서 1인 기업인이 10억명이라고 해요. 유럽기업의 90%가 10명 안팎의 직원을 갖고 있습니다. 평생직장은 사라지고, 대부분 프로젝트 단위로 움직이며, 파트타임, 시간제 고용이 일반화한다는 얘기도 설득력을 얻고 있어요. 기계의 발달로 인간의 노동력이 점차 필요없게 되는 시대입니다. 전세계 청소용 로봇만 150만개가 있다고 합니다. 달에는 인간이 먼저 갔지만, 화성엔 로봇이 먼저 갔어요. 로봇과 인간의 관계도 연구거리죠. 비전 2030엔 기업의 위기, 노조의 위기에 대해 예측해볼 만한 어떤 단서도 없어요.”
▼ 이제 총평을 좀 해주시죠.
“한마디로 비전 2030은 목표로 가득 차 있어요. 그걸 어떻게 이룰 것이냐는 대책이 약합니다. 사회와 기술의 변화를 고려하면서도 목표에 다가설 수 있다는 다양한 전략이 없어요. 혹, 우리의 목표를 방해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빠져 있어요. 최악의 시나리오를 항상 염두에 두는 것이 미래 보고서의 기본입니다. 1997년 금융위기와 같은 사태가 오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잖아요.
지구촌의 고민
2006년의 오늘과 2030년의 오늘이 어떻게 다른지 분석한 대목도 찾을 수 없어요. 오늘의 일자리와 놀이가 24년 뒤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요즘 미래학자들이 가장 고민스러워하는 것이 뭐냐면, 삶의 의미가 흔들리고 있다는 겁니다. 스웨덴 같은 북유럽에선 부부가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로 삶의 열정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을 꼽습니다. ‘살아서 뭐해?’라는 회의감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거죠.
우리라고 다릅니까? 온라인게임 때문에 폐인 되는 사람 많잖아요. 대한민국을 도박공화국으로 몰아넣은 바다이야기 사태만 봐도 정부의 실책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에 삶의 의미를 상실한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잖아요. 비전 2030엔 대한민국 국민에게 삶의 열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고민이 담겨 있지 않아요.”
▼ 무엇보다 걱정인 것은 미래예측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는 것 아닐까요? 정부에 대한 비판이 자칫 미래를 대비하려는 노력을 저해한다면 그거야말로 막아야 하는 사태 아닙니까.
“미래학자들은 우스갯소리로 ‘한국시장에서 떼돈을 벌 수 있다’고 합니다. 점쟁이들이 있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이들에게 기꺼이 돈을 지급하는 나라이기 때문이죠. 누구보다 미래에 대한 관심이 많은 국민이니만큼 미래에 대한 영감을 줄 수 있는 훌륭한 미래 보고서가 많이 나와야 합니다. 정부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연구소, NGO, 교수들도 미래를 예측하는 보고서를 펴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