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렉슬러 박사는 “지구 온난화를 유발하는 이산화탄소를 분리해서 없앨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 사람이 세상을 움직인다
천지창조의 비밀을 푸는 데서 멈추지 않고, 직접 세상을 만들어보자는 나노공학의 창시자는 에릭 드렉슬러(K. Eric Drexler·51) 박사로 알려져 있다. 그가 1981년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에서 엔지니어링을 전공하던 대학원생 시절, 미국 과학아카데미 회보에 기고한 ‘분자공학’ 논문이 나노의 시대를 알리는 효시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드렉슬러 박사는 5년 뒤 ‘창조의 엔진’이란 책을 펴냈고, 일약 세계 과학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새 시대를 연 선구자답게 그는 1988년 스탠퍼드대에서 세계 최초로 나노기술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MIT에선 나노기술 연구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1992년 미국 상원위원회는 그를 초청해 나노과학에 대해 강연을 들었으며, 8년 뒤 클린턴 행정부는 5억달러를 투입하는 나노기술계획(NNI)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그 뒤를 이어 영국,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는 총 1조530억원(2004년)의 나노기술 연구개발비를 책정했고, 일본도 1조원이 소요되는 개발계획을 세웠다. 한 사람의 창의적인 힘이 세계를 움직인 것이다.
‘나노’란 10억분의 1을 뜻한다. 숫자로는 단순하게 표현할 수 있어도 실제 ‘1나노미터’가 어느 정도의 크기인지 짐작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가 흔히 더 이상 쪼개질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 원자의 크기가 10분의 1 나노미터다. 따라서 나노기술이란 원자 단위의 물질을 조정해 물건을 제조하는 것쯤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러나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작은 원자를 움직일 수 있다는 걸까. 1990년대부터 나노과학에 대해 수많은 글을 발표한 이인식 과학문화연구소장은 ‘나노기술이 미래를 바꾼다’는 책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1981년 주사 터널링 현미경(STM)이 발명되면서 인류는 원자나 분자를 눈으로 볼 수 있게 됐다. STM엔 끝이 매우 예리한 탐침이 달려 있다. 이 탐침을 물질 표면에 거의 닿을 정도로 대고 둘 사이에 전압을 걸어준다. 바늘 끝이 움직이면서 표면을 주사하는 동안에 발생하는 전류의 변화를 측정하면 표면의 구조를 나노미터 수준으로 밝혀낼 수 있다.
이를 통해 분자나 원자를 살펴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들을 변형시킬 수 있음도 확인됐다. 마치 개가 양떼를 몰 듯 분자를 몰 수 있고, 원하는 곳에 갖다놓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STM의 한계는 한 번에 한 개의 분자만 이동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이용해 물건을 조립하는 데는 너무나 긴 시간이 소요된다. 그렇다면 드렉슬러 박사는 어떻게 하루아침에 수십억개의 물건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장담하는 것일까. 여기에 그만의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빛을 발한다. 다음은 이 소장의 계속되는 설명이다.
“자연에 답이 있다”
“고등동물의 세포는 단백질 제조 회사에 비유할 수 있다. 단백질은 20종류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분자기계다. 아미노산의 배열을 결정하는 것은 디옥시리보 핵산(DNA)이 갖고 있는 유전정보다. 유전정보에 따라 아미노산이란 원료로 단백질을 만드는 공장을 리보솜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드렉슬러 박사가 말하는 나노기계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