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정원으로부터 정경학 검거를 통보받은 필리핀 수사 당국이 정경학의 숙소를 수색하고 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총기로 무장했다.
공작원이 애인을 둔다는 것은 흥미로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국정원 자료에 따르면 정경학은 평양에 부인과 1남 1녀를 둔 유부남. 유부남 공작원이 3국에 침투해 애인을 만들고 그 애인과 함께 한국에 침투한 것은 새로운 공작 유형으로 보인다. 국정원 자료에 따르면 정경학은 6년간 태국에 거주하며 현지인이 되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대 중퇴
자료에 따르면 정경학은 모두 네 번 한국에 침투했는데, 1996년 3월20일 첫 번째 침투했을 때는 태국인 남자친구인 분미 빈 핫산과 동행했고, 1997년 6월2일 두 번째로 한국에 왔을 때와 1998년 1월29일 세 번째로 한국에 입국했을 때는 태국인 애인인 밍위왓 유핀과 동행했다. 그리고 네 번째 침투 때는 혼자 들어왔다가 검거됐다.
그러나 자료는 정경학의 태국인 친구와 애인이 북한 공작원이거나 북한 공작 조직에 포섭된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는데, 이는 두 사람이 한국에 온 것이 8~10년 전의 일이고 한국에 살지 않는 외국인이라 조사를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후 정경학은 5년간 필리핀에 머물며 필리핀 사람이 되는 공작을 펴왔고 필리핀 여권으로 한국에 들어왔다가 검거됐다.
필리핀에서 그는 한국여성과 인터넷 펜팔을 하고, 북한의 35호실 본부에는 e메일로 보고했다.
자료에 따르면 함경남도 함주 태생인 정경학은 18세 때인 1976년 김일성종합대 외국어문학부(영어) 2학년을 중퇴하고 인민군 내의 노동당 조직을 관리하는 총정치국 산하 적공국(敵工局) 전사(사병)로 입대하면서 공작 세계와 인연을 맺었다. 적공국은 말 그대로 적(한국)을 상대로 공작을 하는 부대로, 통상 ‘563군 부대’로 불린다. 인민군은 김일성의 지시로 1965년 5월부터 인민군 안에 있던 적공국을 총정치국 산하로 옮겼다고 한다.
적공국의 평시 주임무는 한국군 동조자 포섭과 휴전선 부근에서 전단 살포, 그리고 심리전 차원에서 대남방송을 하는 것 등이다. 전시에는 국군으로 위장해 한국군 지역으로 침투해 군을 교란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적공국은 판문점에 나와 경비를 서는 부대로도 유명하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를 보면 판문점에서 한국군 병사를 포섭하는 북한군 병사(송강호 분)가 나오는데, 바로 이들이 적공국 소속. 몇 년 전 판문점 우리 측 초소에서 김훈 중위가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심리전 기술을 익힌 북한의 적공국 요원들이 판문점의 한국인 병사를 상대로 포섭을 위한 심리전을 펼친 것으로 알려져 주목을 받기도 했다.
정경학은 2년간 적공국 전사를 하다 20세이던 1978년 군관 양성 학교인 ‘김일성정치대학’ 보위학부에 입학했다. 재학 중 그는 노동당 당원이 됐고 22세이던 1980년 11월 이 학교를 졸업하며 중위로 임관했다. 외국어에 소질이 있던 그는 적공국 해외공작부의 공작원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