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 유엔 사무총장은 사무국 7000여 직원과 전문기구 5만여 직원을 지휘·감독하는 막강한 자리다.
“지난 8월초 일본을 방문한 반기문 외교부 장관이 일본의 차기 총리로 유력시되는 아베 신조 관방장관을 만나 한일 정상회담 재개에 응할 용의가 있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뜻을 전달했다.”
지난해부터 독도와 역사왜곡 문제로 대일외교에서 ‘외교전쟁’에 가까운 강경노선을 유지해온 정부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내용이었다. 외교부는 이날 오전 긴급하게 해명자료를 냈다. 일본 언론의 보도내용을 부인하는 내용이었다. 그 요지는 이러했다.
“반 장관이 8월9일 하시모토 총리 장례식 조문사절로 방일한 계기에 아베 장관을 만나 한일 관계의 어려움과 갈등요인이 빠른 시일 내에 해소돼 한일 정부간 정상적인 교류가 재개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언급한 것은 맞다. 그러나 한일 정상회담 개최나 일본 차기 총리의 방한 등에 관해 언급한 바는 없다.”
상황을 확인하기 위한 청와대의 움직임도 분주했다. 무엇보다 노 대통령 본인의 진노가 컸다는 후문. 청와대 관계자들 역시 ‘정상회담’이라는 말은 없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지만, ‘정상적인 교류 재개’ 의사만 해도 문제가 있다는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그간의 강경 분위기를 주도해온 한국 정부가 먼저 화해의 제스처를 내보인 것으로 해석될 수 있을뿐더러, 무엇보다 청와대의 최종 재가를 거치지 않은 의사 전달이었다는 것이다.
청와대의 분노가 전해지자, 당국자들 사이에서는 반 장관이 굳이 ‘앞서 나간’ 메시지를 전달한 이유가 무엇인지 다양한 해석이 쏟아져 나왔다. 우선은 본질적으로 대립보다 협조관계를 선호하는 직업외교관 특유의 마인드가 반영된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다소 음모론적인 시각으로는, 일본이 다가오는 유엔 사무총장 선거에서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으로 투표권을 갖고 있음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흘러나온다. 일본은 사무총장이 결정될 것으로 보이는 10월에 순번에 따라 안보리 의장국을 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