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호

관광공사 비공개 회의록으로 본 ‘쪽박 대북사업’

김정일 비밀회사, 브로커 노릇하며 거액 요구. 북한, “南이 돈 안 대면 백두산도 중국자본에 넘긴다”

  •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6-12-07 11: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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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OSTAR, 백두산 사업 착수금 380만달러 요구
    • KOSTAR 사장은 김정일 핵심측근 김수길
    • 중국, 북한령 백두산에 대규모 투자 계획
    • 방송사들이 북한 ‘간’ 키웠다
    • 대북 주도권 통일부에 뺏기자 격분한 문광부 장관
    • 北, “현대아산은 살기 싫은데 같이 사는 부부”
    • 관광공사, 정부 돈 빌려 北에 900억원 제공
    • “우리가 왜 이 고생하는지…” 내부에서도 회의론
    관광공사 비공개 회의록으로 본 ‘쪽박 대북사업’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등 대북 현금지원 사업은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중대한 논란거리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이후 두 사업은 국제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남북한 간에는 백두산 관광, 개성 관광, 평양 관광 등 다른 대북 현금지원 사업도 추진되고 있다.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와 국내 정치권 일각에선 “북한은 대북사업을 통해 남측으로부터 거액의 현금을 제공받았기에 미사일과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었다”는 의혹이 나왔다. 한나라당 이재웅 의원은 “남측은 1998년 11월부터 2006년 8월 현재까지 금강산 관광을 통해서만 무려 4억5153만달러를 북한에 줬으며, 백두산 관광사업을 추진하면서도 100억원대의 자재 지원이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고작 2000만~3000만달러가 입금된 금융계좌(방코델타아시아 계좌)가 동결되자 이 계좌의 동결 해지를 6자회담 전제조건으로 들고 나올 정도로 외환 사정이 안 좋다. 그런 북한이 2억~3억달러의 비용이 드는 핵실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대북 현금지원 사업으로 북한에 막대한 금액의 현찰이 유입됐기 때문”이라는 게 의혹의 얼개다.

    대북사업 ‘골병’ 든 속사정 망라

    이런 상황에서 ‘신동아’는 최근 한국관광공사의 대북사업 관련 ‘비공개 회의록’을 입수했다. 공기업인 한국관광공사는 국가 예산인 남북교류협력기금을 동원해 금강산 관광사업에 참여하고 있으며 백두산·개성·평양 관광사업도 추진하는 주체다. 현대아산을 제외하면 대북 현금지원 사업에 가장 깊이 관여하고 있는 기관인 셈이다. 관광공사는 통일부 등 정부 내 사정에도 정통하다.



    ‘신동아’가 입수한 관광공사 비공개 회의록은 2005년 초부터 올해 8월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관광공사가 내부에서 남북관광 자문위원회를 열어 논의한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A4용지 100장이 넘는 분량이다. 발언자의 실명, 발언내용이 속기록 형식으로 작성돼 있다.

    회의록에는 대북사업과 관련해 알려지지 않은 정보와 내막이 망라돼 있다. 관광공사 사장, 부사장, 대북사업단장 등 고위 관계자들은 회의석상에서 8명의 대북전문가(자문위원)에게 대북사업의 어려움과 속사정을 허심탄회하게 설명했다. 이들 외부 전문가도 언론에 공개하기 어려운 북한의 사정을 관광공사측에 전했다.

    관광공사 비공개 회의록으로 본 ‘쪽박 대북사업’

    한국관광공사의 대북사업 회의록.

    따라서 이 회의록은 대북사업의 숨겨진 실상과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함으로써 이 사업과 관련된 논란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다음은 회의록에 기록된 관광공사 사장의 발언.

    “이 위원회는 정부 내에서 가장 큰 자문조직이다. 위원들의 면면만 봐도 가장 권위 있는 위원회가 아닌가 생각한다. 공사의 현황을 솔직히 말씀드리겠다. 위원들도 여기서 하신 말씀에 대해서는 대외적으로 보안을 지키고 있으니 공사 정책과 집행에 반영할 수 있도록 모두 말씀해 주시기 바란다.”

    대북사업은 현재의 안보위기 문제를 풀리게도 할 수 있고 더 꼬이게도 할 수 있는 중요한 변수다. 따라서 회의록을 입수하고도 관광공사와 자문위원들의 처지를 고려해 이를 덮어둘 수는 없다. 다만 관광공사가 회의를 비공개로 진행한 취지에 공감하고 자문위원의 경우 프라이버시를 보호받아야 하는 만큼, 기사에서 자문위원의 발언 내용은 공개하되 발언자의 실명은 밝히지 않는다. 그러나 관광공사측 발언 내용은 발언자의 직책을 명기했다. 관광공사는 대북사업에서 900억원의 정부 예산을 집행하는 공기관이기 때문이다.

    8명의 자문위원은 북측 고위인사와 자주 접촉하는 대북기관의 최고 책임자이거나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저명한 대북 전문가들인데, 이들은 주로 자신이 북한에서 직접 경험한 바를 관광공사측에 전해준 것이어서 이들이 밝힌 내용은 그 뉴스 가치와 신빙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KOSTAR는 힘 있는 기관”

    회의 참석자들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직속기구와 그 측근이 대북 현금지원 사업에 직접 관여했다”고 밝혔다. 또한 북측은 남측에 상당한 액수의 달러를 요구했다.

    대북기관 총책임자로서 북측 고위인사들과 자주 접촉해온 A자문위원은 2005년 6차 관광공사 자문회의에서 “백두산 개발의 주체는 노동당 내에 신설된 ‘삼지연지도국’이다. 삼지연지도국 국장은 김수길이라는 사람인데, 그는 최고인민회의 두 번째 최연소 위원이자 ‘KOSTAR’라는 회사의 사장이다”고 말했다. A위원은 “삼지연지도국은 김정일 위원장과 직접 연결되는 특수한 조직”이라고 덧붙였다. 삼지연지도국과 KOSTAR, 김 위원장의 최측근 김수길이 백두산 관광사업에 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A위원은 KOSTRA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북측 조직은 대부분 공무원 조직에 가깝지만 KOSTAR의 경우 산학협동 시스템을 통해 낮은 수준에서나마 R·D(연구개발) 능력도 확보하는 등 경영 마인드가 상대적으로 있는 조직이다.”

    관광공사 대북사업본부장은 백두산 관광사업과 관련 KOSTAR와 접촉한 내용을 공개했다. KOSTAR가 지나치게 많은 금액을 요구해 일이 잘 안됐다는 것이다.

    “관광공사는 KOSTAR를 세 번 접촉해 안(案)을 잘 만들어왔으나 북측이 요구하는 380만달러를 마련하지 못했다. 융자를 받아 KOSTAR에 대가를 지급할 경우 수익을 맞추기 위해 2만명의 관광객을 모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는데 이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봤다.”

    이어 본부장은 “협의과정에서 KOSTAR가 상당히 힘 있는 기관임을 알 수 있었다. 국가정보원에서 협의를 잘 해왔다는 말까지 들었는데 막상 재원 문제에 부딪혀서 더 이상 추진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남측 언론엔 노출이 안 된 김정일 위원장 직속 비선조직과 김 위원장의 최측근이 대북사업의 전면에 직접 나서 거액을 요구한 것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국정원이 KOSTAR와 협의했다는 관광공사 문건 내용에 대해 국정원 관계자는 “KOSTAR는 국내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북한의 대외사업 회사다. 김수길이 사장이며 주로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측 요원이 KOSTAR와 접촉한 사실은 없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이재웅 의원에 따르면 관광공사는 KOSTAR와 접촉한 이후 백두산 관광사업을 추진하면서 북측에 100억원 상당을 지원했으나 북핵 사태 이후 이 사업은 교착상태이다. 북측에 보낸 자재도 용처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다음은 이 의원측 설명이다.

    “관광공사는 2005년 6월30일 북측과 백두산관광 합의서를 체결한 뒤 그해 8~9월 50억원 상당의 아스팔트를 지원했다. 지난 1월 관광공사는 다시 50억원 상당의 건설자재를 지원하기로 결정하고 1~3월 물자를 북측에 보냈다. 그러나 7월 미사일 실험 등으로 협상이 결렬되는 바람에 이들 물자는 회수조차 못 할뿐더러 합의 내용대로 백두산으로 보내졌는지도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퍼주고도 받은 게 없다니…”

    회의록에 따르면 관광공사 부사장은 지난 5월 “북측에 물자를 두 번이나 줬기 때문에 올해 안에는 기필코 백두산 가는 길 포장과 시범관광을 해야 한다”며 결의를 보였다. 그러나 연내 백두산 관광은 무산됐다. 지난 8월 관광공사 남북관광사업단장은 “백두산 관광과 관련해 북측과 체결한 합의서의 실천을 위해 북측과 협의했으나 백두산 주변 공사현장 체류기간에 대한 이견으로 부속합의서가 체결되지 않고 있다”면서 사업이 지지부진한 것을 답답해했다.

    이에 대해 F자문위원은 “금년에 최소한 두 차례는 백두산 시범관광을 해야 했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G자문위원도 “NGO들은 관광공사의 백두산 관광사업과 관련해 잘못된 것을 신랄하게 얘기하고 다닌다. 1차, 2차에 걸쳐 북측에 물자를 주고도 아무것도 받은 게 없다는 식으로 흘리고 있다”며 우회적으로 관광공사를 비판했다.

    “중국의 백두산 야욕, 상상초월”

    특히 북측은 ‘남한이 돈을 안 대면 북한령(領) 백두산도 중국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위협성 발언을 남측 인사에게 했다고 한다. 중국은 수년 전부터 ‘동북공정’을 강력히 추진하면서 자국 영역 내의 백두산을 중국화하는 데 전력을 쏟고 있다. 그런데 회의록에 따르면 중국은 이에 그치지 않고 북한령 백두산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북측에 제의하고 있다. 북측은 이 같은 사정을 활용, 남측에 대해 백두산의 ‘몸값’을 계속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A자문위원은 2005년 6차 자문회의에서 KOSTAR와 접촉한 결과를 관광공사 경영진에게 전달하면서 “중국은 백두산 관광개발에 상당한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중국은 북한에 상당한 거액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관광공사와 KOSTAR 간 협의가 있었을 때 KOSTAR는 ‘백두산이 중국으로 완전히 넘어갈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었다. (남측이) 사업성에 지나치게 연연하지 말고 우선 백두산을 잡아놓을 수 있는 조치라도 해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가 한가하게 사업을 하느냐 마느냐를 따질 상황이 아니다. 경쟁자를 염두에 둬야 한다. 북한 쪽 백두산에 대한 중국의 적극성은 상상을 초월한다”며 말을 맺었다.

    관광공사측도 백두산 문제와 관련, 중국의 움직임을 우려하고 있었다. 관광공사 본부장은 “중국이 백두산에 활발하게 투자하고 있다는 점 또한 어려운 문제다.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백두산을 관리해 오다가 최근 재원 문제 때문에 길림성으로 관할권이 넘어가고 있다. 자치주에서는 찬성도 반대도 못하고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우리가 빨리 백두산에 접근해야 함을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백두산 주변에 공항도 건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회의록에 씌어 있는 B자문위원의 말에 따르면 지난 7월10일 중국은 길림성 무송현 송강에서 ‘백두산 공항’ 기공식을 열었다. 백두산에서 약 10.6km 떨어진 곳이라고 한다. 공사비는 400억원, 활주로는 2.6km 정도. B자문위원은 “중국은 이 공항을 만들기 위해 백두산 산림 146ha를 벌채했다. 엄청나게 많이 벤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8년 이 공항이 개항하면 중국 각지에서 연간 54만명이 백두산을 찾게 된다. 중국은 우리보다 훨씬 더 야심 찬 백두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백두산에 대한 중국의 야심은 그간 설(說)로만 나돌았으나 이젠 가능성의 영역이 아니라 현실이 됐다. 중국이 북한령 백두산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북한에 제안했다는 점이 이 문건을 통해 처음으로 확인된 것이다. 현재 남북은 경색 국면인데다 남측은 북측 영토에 대해선 관여할 만한 특별한 수단이 없다. 문건에 따르면 북한은 중국의 제의를 단호히 뿌리치지 않은 채 이를 남측으로부터 한몫 단단히 받아낼 수 있는 외화벌이 기회로 인식하고 있다. 실제로 관광공사는 백두산 관광사업의 사전 정비 차원에서만 북측에 100억원 상당의 물자를 제공했다. 그런데도 북측은 남측이 원하는 것은 주지 않은 채 협상에서 손을 놓아버렸다.

    이런 정황으로 봤을 때 북측은 중국자본과 줄타기를 하면서 남측의 불안심리를 자극해 백두산 관광의 대가로 터무니없이 많은 금액을 요구할 수도 있다. KOSTAR가 뛰어드는 등 백두산 관광사업은 김정일이 직접 챙기다시피 하는 중대 수익사업이기 때문이다. 북측이 실제로 중국자본을 유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의 억지와 서투른 장삿속이 오판으로 이어져 ‘독이 든 과일’인 대규모 중국자본을 북한령 백두산에까지 끌어들임으로써, 민족적 자존심과 한반도 영토주권에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힐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다.

    “北, 초청장에서 ‘현대아산’ 빼”

    관광공사 비공개 회의록으로 본 ‘쪽박 대북사업’

    한국관광공사의 대북사업 관련 자문위원회 비공개 회의 광경(관광공사측 촬영).

    중국에서 독립한 몽골의 경우 정치적 이유에서 중국의 대규모 차관 제공 제의를 거부한 바 있다. 백두산은 한민족의 발원지이고 중국과의 국경분쟁 소지가 남아 있는 곳이며 동북공정의 진원지이다. 특히 북한령 백두산에 대한 중국자본의 대규모 투자는 일본이 독도에 투자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어 한국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다. 따라서 한국은 필요하면 “중국자본이 북한령 백두산에 들어가는 일은 묵과하지 않겠다”는 경고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회의록에 따르면 북한이 금강산, 백두산, 개성 관광사업을 적극 밀어붙이고 있다고 한다. “방코델타아시아 계좌가 동결된 이후 부족한 캐시(cash)를 메우기 위한 목적”이라는 것이다. A자문위원은 “북측은 관광사업에 무척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금강산 관광사업을 하면서 정치, 군사적 부담은 있지만 수입이 매우 짭짤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대아산의 사세(社勢)가 예전만 못하자 북측이 현대아산의 대북사업 기득권을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는 정황도 드러났다. E자문위원은 “북한은 삼각구도로 가고 있는데, 금강산은 현대, 백두산은 한국관광공사, 개성은 롯데에 맡기려 하는 듯하다”고 밝혔다. 관광공사측도 이에 공감을 표시했다. 다음은 관광공사 부사장의 말이다.

    “북측은 ‘현대아산과 살기 싫은데 자꾸 살라고 하니까 결혼생활은 계속하겠는데 아이는 더 안 낳겠다’고 우회적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우리는 북측에 ‘현대아산과 북한 간 합의서를 파기할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가 백두산 관광을 협의하기 위해 현대아산 인원을 넣어 북측에 초청장을 요청하면 현대아산 사람을 뺀 초청장을 보낸다.”

    롯데측은 북측의 상당한 위치에 있는 윗선으로부터 ‘조건만 맞으면 개성관광을 열어보겠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회의록은 “신격호 롯데 회장은 공산주의자와는 사업을 안 한다는 생각이 확고하다. 특히 대북제재에 나선 일본 정부가 ‘일본 롯데’에 대해 세무조사를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개성관광 사업은 신 회장과는 관련이 없다. 회사 차원에서 단독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北이 낙점하자 사업 착수

    백두산 관광사업의 경우도 북측이 먼저 한국관광공사를 남측 사업주체로 낙점하자 관광공사가 이 사업에 발을 담그게 됐다고 한다. A자문위원은 “백두산 관광과 관련해 그 과정을 말씀드리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원래 백두산 관광 기획안을 만든 곳이 교원공제회였고 북측도 호응을 했다. 그러나 교원공제회 이사장이 총리비서실장으로 영전한 뒤 후임으로 온 분이 사업에 소극적이었다. 그러자 북측이 ‘한국관광공사가 백두산 관광사업을 맡으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하게 되어 관광공사가 이 사업에 참여하게 됐다.”

    회의 참석자들은 북한의 사회 인프라가 워낙 열악해 대북사업에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고 평가했다. 관광공사 담당팀장은 “남북협력기금이 1조원이 넘지만 많은 돈도 아니다. 북한에 전기 철도를 1km 건설하려면 300억원 정도 드는데 1조원이래 봐야 30km 놓아주면 끝이다”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북한이 대북사업 협상과정에서 남측에 턱없이 많은 금액을 요구하는 것은 방송사의 탓도 있다는 게 회의 참석자들의 분석이다. B 자문위원은 회의록에서 “한국의 각 공중파 방송사들은 각자 대북사업을 추진해왔다. 나는 방송사들이 개별적으로 북측과 접촉해 경쟁하는 것에 강하게 반대한 적이 있다. 경쟁으로 인해 지원규모가 계속 늘어나게 되는 것이 상당히 우려됐다”고 말했다. “방송 3사에서 기본적인 지원규모를 너무 키워버린 까닭에 케이블TV 등에서는 북측과 접촉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연 한 번에 100만달러 주니…”

    C자문위원도 이에 동의했다. 그는 방송사가 일회성 이벤트 행사를 하면서 북한에 너무 많은 돈을 주다보니 정작 남북한의 항시적 교류에 필요한 남북경협이 제대로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벤트를 열기 위해 북측에 거액을 지원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북한에서는 경협사업에 대한 관심이 적어지게 됐다. 삼성은 TV 1대 임가공하는 데 7달러를 북한에 지급하고 있으며 1년에 2만대 정도를 생산한다. 북한이 1년 (TV 임가공) 해봐야 14만달러를 버는데, 무슨 공연 한 번 하면 100만달러씩 지급하니 협상이 안 된다. 행정당국도 사회문화 교류 중심의 현 상태로 가다가는 앞으로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대북사업 경쟁은 방송사뿐 아니라 정부 내에서도 나타났다고 한다. 회의록에 따르면 D자문위원은 “통일부 장관과 문화부 장관은 친한 사이면서도 라이벌 의식이 있다. 개성관광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두 분 다 앞에 서고 싶어했는데, 언론 포커스는 통일부에 95% 맞춰지고 문화관광부엔 5%밖에 가지 않았다. 그러자 문화관광부 장관이 화를 낸 것으로 알고 있다. 통일부 장관과 문화관광부 장관이 화해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보려고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광공사는 2002년 9월부터 금강산 문화회관, 온천장, 온정각 등 금강산 관광사업에 844억원을 투자했다. 이 돈은 정부예산(남북경협기금)에서 빌려 충당했다. 앞서 언급했듯 관광공사는 이밖에도 백두산 관광사업을 성사시키기 위해 북측에 100억원의 자재를 제공했다.

    야당에서는 관광공사의 대북투자가 ‘말이 투자이지, 퍼주기였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관광공사 사장도 회의에서 대북투자는 투자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수익성이 나쁘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는 “금강산 관광의 경우 투자가 시작된 2002년 9월부터 2005년 8월까지 총수입액이 38억여 원, 지출된 이자가 38억여 원으로 종합해본 결과 5000만원 정도 적자가 났다. 여기엔 시설 개보수 비용은 제외돼 있다”고 밝혔다.

    2006년 들어 금강산 관광사업 수지는 더욱 나빠졌다. 관광공사 남북관광사업단장은 회의에서 “올해 1~7월까지 금강산 관광객은 전년 동기보다 17% 감소한 15만1000명에 그쳤다. 특히 미사일이 발사된 7월은 전년 동월 대비 44%가 줄었다. 이에 따라 공사의 임대 수입 또한 대폭 감소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했다. 관광공사는 연내 금강산에 대형 면세점을 열 계획이었으나 이마저 북한 핵실험 이후 무기한 연기된 상황이다.

    관광공사, 대북사업으로 망할 판

    2005년 9월 현재 관광공사의 장기부채 규모는 1125억원 정도로 알려졌다. 금강산 관광사업 투자금이 관광공사의 재정에 커다란 부담이 되고 있는 것이다. 회의록에 따르면 관광공사는 당초 약속한 기한 내에 900억원의 원금을 정부에 상환하는 것이 불가능한, 사실상 채무불이행 상태에 처한 것으로 나타났다. 원금 상환이 연기되면 이는 국민 부담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 관광공사 사장은 회의에서 “공사는 금강산 사업에 참여해 별다른 수익을 올리지 못하면서 900억원의 원금과 이자를 상환해야 하는, 아주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통일부에 원금 상환기간을 18년에서 23년으로 연장하는 안을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더구나 북한에 이렇듯 거액을 투자했음에도 수입이 획기적으로 늘거나 백두산 관광 등 신규 사업이 빨리 진척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국은 지금 관광수지 적자가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는 상황이다. 올해 1~7월 7개월 동안 한국의 관광수지 적자는 70억달러를 넘었다. 그럼에도 관광공사의 재원이 대북사업에 집중되면서 관광공사 본연의 업무인 국내 관광 인프라의 경쟁력 제고, 해외관광객 유치에 들여야 할 재정이 절대부족하게 됐다.

    관광공사 경영진도 복잡한 심정인 듯하다. 관광공사는 금강산 관광사업을 이끌어온 현대아산이 재정적 어려움에 처하면서부터 이 사업에 연루됐다. 야당은 “북측에 현금을 계속 제공하려는 정부의 의도가 작용해 공기업인 관광공사가 이 사업에 개입했다”고 의심한다.

    지금은 관광공사 내부에서도 대북사업에 대한 회의론이 나온다. 돈도 돈이지만 미래도 불투명하고 자존심도 상한다는 것이다.

    회의록에 따르면 관광공사의 팀장은 “북한 관광이 지금까지는 호기심에 의해 수요가 충족됐지만 앞으로 호기심이 줄어들면 수요도 그만큼 줄게 된다. 또한 사업 추진시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의 결단으로 ‘보여준다’는 식의 시혜적 태도로 나오는데…”라고 했다. 관광공사 부사장은 “국회 국감 때만 되면 우리가 왜 대북사업을 하면서 이렇게 곤욕을 치르는가 싶을 정도로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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