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호

42개 정부 부처 법률자문 현황

정부도 모르는 법, 막강 로펌에 물어봐?

  • 구미화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hkoo@donga.com

    입력2006-12-07 15: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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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형 로펌의 영향력이 정부 부처 곳곳에도 미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성 확보를 위한 당연한 선택이라고 넘기기엔 석연찮은 구석이 적지 않다.
    42개 정부 부처 법률자문 현황
    로펌의 규모는 점점 커지고,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도 막강해지고 있다. 판·검사 출신 거물들이 속속 로펌으로 자리를 옮기고, 퇴직한 정부 고위공직자의 로펌 재취업도 늘고 있어 재판은 물론 정부 정책 방향까지 로펌이 ‘배후조종’ 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심심찮게 제기된다.

    최근 ‘신동아’가 입수한 정부 부처 법률자문 현황은 로펌의 파워가 정부 부처 곳곳에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나라당 이계경 의원이 국회 예산정책처로부터 받은 이 자료는 2004년부터 2006년 8월까지 행정자치부, 건설교통부, 정보통신부, 감사원과 금융감독위원회 등 정부 부처 42곳이 법률 자문한 곳과 내용, 자문료 명세가 담겨 있다.

    자료에 따르면 태평양, 김·장, 세종, 화우, 율촌, KCL이 각각 적게는 3곳, 많게는 5곳 이상의 정부 부처 법률자문에 응하고 있다. 이들 로펌 대부분이 같은 부처와 2년 넘게 계속해서 관계를 맺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감사원은 김·장, 태평양, 대륙, 다우 같은 대형 로펌에 사안별로 자문을 의뢰해왔다. 자문은 대체로 감사결과의 객관성과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며 자문료는 건당 15만원에서 220만원까지 다양하다.

    건설교통부 법률 자문은 김현(세창), 이우승(이우승법률사무소), 김조영(국토), 주완(지성), 강수진(로고스) 변호사가 공동으로 맡고 있다. 자문료는 월 30만원(부가세 별도) 정액제다.

    과학기술부 법률자문은 세창이 단독으로 맡고 있다. 자문료는 2005년 5월까지는 월 20만원, 이후로는 월 30만원(부가세 별도)씩 지급되고 있다.



    금융감독위원회는 2004년과 2005년 각각 4건과 2건의 법률자문을 했는데, 태평양, 화우, 광장이 번갈아 맡았다. 자문료는 사안별로 지급했다. 60만원(태평양, 자기주식 취득행위 해당 여부 등에 대한 질의)부터 500만원(광장, 금융산업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개정안에 대한 질의)까지 차이가 났다.

    노동부 자문변호사는 2004년과 2005년 현천욱(김·장) 변호사와 주완(지성) 변호사가 공동으로 맡았고, 2006년 김치중(바른), 박구진(낮은합동사무소) 변호사가 합류했다. 자문료로 2004년 총 960만원(1인당 월 40만원 수준), 2005년 1440만원(1인당 월 60만원 수준), 2006년 8월까지 1440만원이 지급됐다.

    산업자원부 자문은 2004년부터 KCL이 맡아왔으며 태평양과 화우, 대륙, 지성, 세종, 충정도 자문을 맡은 바 있다. 자문료는 건당 11만원(대륙, 가스도입계약 관련)부터 209만원(KCL, 부안군 위도주민 행정소송건 관련 질의 검토)까지 천차만별이다.

    외교통상부 법률자문은 태평양이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상황이나 외국 로펌과 대학교수, 율촌과 두우도 자문에 응한 바 있다. 대개 무역마찰에 대한 법률 자문 및 외국 정부에 대한 정부 의견서 작성을 대신했는데, 300만원부터 1400만원까지 상대적으로 높은 비용이 소요됐다.

    정보통신부는 일신과 최동식 변호사(김·장), 대륙(2004년), 태평양(2005년부터), 세종(2006년부터)에 자문을 의뢰하고 있다. 비용은 서면질의 1건당 10만원.

    로펌별로 정리하면, 태평양이 감사원·금감위·산자부·외교부·정통부·해수부·국민경제자문위원회·한국관광공사 등 10여 부처의 법률자문을 맡았거나 맡고 있다. 화우는 금감위·산림청·산자부·한국관광공사·국정홍보처 등 5곳, 김·장은 감사원·노동부·정통부·환경부 등 4곳, 대륙은 감사원·건교부·산자부·정통부 4곳의 법률자문을 맡았거나 맡고 있다. 그 밖에 율촌, 세창, 세종, 로고스, 바른, KCL, 광장이 3개 이상의 정부 부처와 관계를 맺고 있다.

    “로비스트 될 수 있다”

    이계경 의원측은 당초 정부 부처의 법률자문 현황을 조사하면 정부 부처와 특정 로펌의 은밀한 관계가 드러나리라 기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결과는 좀 싱거운 편이다. 대부분의 부처가 3개 이상의 로펌에 자문하고 있고, 자문료 또한 사기업에 비해 턱없이 낮다. 지난 9월 금융감독원이 한나라당 김양수 의원에게 낸 ‘국내은행 로펌별 법률 자문현황’에 따르면 로펌의 평균 자문료는 건당 700만원이다. 이에 반해 정부 부처의 자문료는 건당 10만원, 월정액 20만, 30만원이 보통이다.

    건교부와 과기부, 해양부의 법률자문을 맡고 있는 법무법인 세창의 김현 대표변호사는 “정부 법률자문에 응하는 것은 거의 무료 봉사에 가깝다”며 “공익이나 명예 차원에서 하는 일이지 혜택이 돌아오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일부 로펌이 여러 부처의 자문변호사를 겸하는 것 또한 보수는 작고 일은 많다보니 소규모 로펌에서는 선뜻 나서지 않기 때문이라는 게 김 변호사의 설명이다.

    그러나 정부를 상대로 한 법률자문이라는 점에서 단순히 ‘봉사’로만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들의 의견이 정부의 정책과 법률에 직접적으로 반영될 개연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일부 대형 로펌이 각종 인허가 및 규제 등을 명시한 법이나 금융 관련 법 개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돼왔다.

    정부가 자문하는 로펌이 대부분 대기업 법률 자문 및 소송 대리도 하고 있어 로펌의 로비력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 이계경 의원측은 “정부와 기업 양쪽 사정을 잘 아는 로펌이 장차 로비스트 노릇을 할 수 있다”며 “이런 우려 때문에 노무현 정권 초기 정부의 법률 관련 업무를 전담하는 부처를 만들고자 했으나 변호사계의 반대에 부딪혀 추진하지 못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 변호사는 “지금도 부처마다 법무담당자가 있지만, 대개 법을 전공하지 않은 비전문가이고 6개월마다 바뀌어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편 대형 로펌에 실력 있는 전문가가 모여 있으니 정부의 법률자문 의뢰가 대형 로펌으로 몰리는 건 당연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정부 부처의 법무담당자도 “전문성이 검증된 변호사에게 자문을 의뢰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감시·견제장치 필요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 법률자문 현황은 로펌 집중 현상이 당연한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부처로선 드물게 로펌이 아닌, 학계에 법률자문을 해왔다. 2005년과 2006년 각각 6건에 대해 한상일(한국기술대), 박병형(동아대), 이원우(서울대), 정광석(연세대), 김재원(한양대), 박상인(서울대학원), 김상조(한성대), 신진영(연세대), 장하성(고려대), 전성인(홍익대), 김우찬(한국개발연구원) 교수와 김동환 한국금융연구원 박사가 자문에 응했다고 나와 있다.

    공정위 송무팀 관계자는 “공정거래법 위법성 판단에는 경제 분석이 필수적인데, 동일한 경제현상을 놓고도 시대 상황이나 판단 기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며 “공정성과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학계에 자문을 의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무래도 사기업은 자사에 유리한 형태로 해석할 여지가 있지 않겠냐”는 얘기다. 그렇다고 로펌에는 자문을 의뢰하지 않는다는 고정된 틀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태평양 감사원 금감위 산자부 한국관광공사 정통부 통일부 외교부 해양부
    화우 금감위 산림청 산자부 한국관광공사 국정홍보처
    김&장 감사원 노동부 정통부 환경부
    율촌 방위사업청 외교부 환경부 한국관광공사
    대륙 건교부 산자부 정통부 한국관광공사
    광장 감사원 금감위 산림청
    지평 산림청 국정홍보처 통일부
    세창 건교부 과기부 해양부
    지성 건교부 노동부 산자부
    로고스 건교부 방위사업청 행복도시건설청
    KCL 산자부 조달청 여성가족부
    세종 산자부 정통부
    2004년부터 2006년 8월까지 정부 부처별 법률자문 현황을 주요 로펌별로 재구성했다.


    이 관계자의 말대로 로펌은 의뢰인의 최대 이익을 위해 노력하는 사기업이다. 그리고 그 의뢰인 또한 대부분 사인(私人)이거나 사기업이다. 진실이 명백해 보이는데도 소송을 하는 것은 법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흐려질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의뢰인에게 유리하게 법을 해석하고, 관계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느냐가 로펌의 생명력일지 모른다.

    그런 로펌이 ‘푼돈’을 받으며 합법적으로 정부 자문에 응하고 있으나 여기엔 원칙도, 감시나 견제장치도 없다. 부처별로 고문변호사 위촉에 관한 규정(훈령)이 있으나 형식적인 선에 머문다. 자문료만 해도 ‘월 50만원 이하’ 하는 식이라 “다른 부처 사정을 봐가면서 책정한다”는 게 정부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런 현실을 잘 아는 변호사들은 “정부 법률자문료 현실화가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내지만 그보다 감시와 견제장치가 우선이라는 게 제3자의 의견이다. 다음은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박근용 팀장의 말이다.

    “최근 사회 전반에 걸쳐 로펌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국민으로부터 아무런 권한을 위임받지 않은 로펌이 거의 모든 정부 정책에 관여하고 있지만 그들을 감시하고 견제할 통로가 없다. 정부가 외부에 자문한 내용이 뭔지 일정 시간이 지나면 공개하고, 정부와 기업 사이에서 자문변호사의 이해가 충돌할 여지가 없는지 감시할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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