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28일 목포를 방문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환영 나온 목포시민에게 답하고 있다.
김인준씨는 서울의 명문대를 졸업한 엘리트였다. 고향에선 공부 잘하는 학생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의 가족과 이웃은 그에게 거는 기대가 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서울에서 몇 년 살다가 3년 전 덜컥 고향으로 돌아왔다. 깜짝 놀란 동네 어른들이 그의 귀향을 나무랐다. 서울에서 성공해 내려와도 늦지 않을 텐데 너무 일찍 내려왔다는 것이었다.
한 엘리트 청년의 귀향
그가 “10년 앞을 보고 내려왔다”고 하자, 동네 어른들은 “김대중 정부 때도 소외됐던 목포가 10년 뒤라고 달라지겠냐”며 혀를 찼다. 그 말을 듣고 인준씨는 잠시 대답을 망설이다 그냥 말없이 웃는 것으로 주위의 걱정 어린 시선을 피했다. 그러나 그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목포는 대한민국이 아껴둔 천혜의 땅입니다.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무한합니다. 그걸 보고 내려왔습니다.’
그가 이 말을 아낀 것은 고향사람들의 뿌리 깊은 좌절감 때문이다. 194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6대 도시 중 하나였던 목포는 쇠락을 거듭, 지금은 가장 낙후한 지역으로 꼽힌다. 목포가 키웠다는 DJ도 대통령 시절 목포에 이렇다 할 선물을 안겨주지 않았다. 오히려 역차별이라 할 만큼 경제적으로 소외됐다. 일자리가 부족한 목포에 인구는 유입되지 않았고, 그나마 유능한 인재들은 기회를 찾아 고향을 떠났다. 동네 사람들이 보기에 인준씨의 귀향은 ‘가상한’ 행동이지만, 바다에 떨어진 한 방울의 물로 시름에 잠긴 목포를 변화시킬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목포에 도착한 첫날, 우리는 인준씨와 헤어진 뒤 목포 토박이들과 저녁을 먹기로 했다. 여행은 먹는 것에서 시작해 먹는 것으로 끝난다. 잘 먹어야 여행이 즐겁다. 첫날 저녁은 목포 사정을 훤히 꿰뚫는 사람들과 약속한 덕분에 식당을 고르는 데 문제가 없었다. 목포 경제를 뒷받침하는 어선이 들어오는 곳, 북항 근처의 횟집에 자리를 잡았다. 북항을 통해 들어오는 해산물은 한 해 1200억원어치에 달한다. 이 덕분에 24만 목포시민이 먹고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