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베를린에 있는 구 슈타지 본부 건물(왼쪽 사진). 동서독 화해의 물꼬를 튼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는 그의 보좌관인 권터 기욤(오른쪽 사진)이 1956년 동독에서 위장 귀순한 간첩으로 밝혀져 위기에 처했다.
지금의 한반도 상황은 1960년 중반부터 통일될 때까지의 독일 사정과 흡사한 면이 많다. 서독이 동방정책(Ostpolitik)을 펼친 1960년대 중반 이후 양독(兩獨) 간의 긴장은 외견상 크게 완화되었다. 그러나 이면에서는 양쪽 정보기관의 치열한 공작과 정보활동이 펼쳐졌다. 서독이 동방정책을 펴던 시절 동독이 감행한 대(對)서독 공작에 대한 연구는 ‘평화와 번영 정책’이 펼쳐지는 지금 북한이 벌이는 공작의 실체와 규모를 짐작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지난 8월 만프레드 빌케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교수는 미하엘 쿠비나, 빌헬름 멘징 연구원과 함께 ‘동독의 대(對)서독 간첩활동 실태 및 서독의 대응조치’란 제목의 논문을 베를린 자유대 산하 동독 사회주의통일당 독재체제 연구협회를 통해 출간했다. 이 논문을 토대로 동방정책이 펼쳐진 시기 동독의 대서독 정보활동을 분석해보고 북한의 대남공작 정도를 가늠해보기로 하자.
동독 공산당, 서독 사민당은 같은 뿌리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정당은 사회민주당(사민당)이다. 1875년 전(全)독일노동자연맹과 사회민주노동당이 통합함으로써 생겨난 사민당은, 나치 시절 활동을 금지당했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부활했다.
그 후 동서독이 갈리자, 1946년 동독의 사민당은 소련이 부활시킨 독일공산당과 합당해 사회주의통일당(SED)이 되었다. 사회주의통일당은 동독 정부가 세워진 1949년부터 민주화를 요구하는 민중 봉기로 호네커 총비서가 사임한 1989년까지 40년간 동독을 이끌었으므로, ‘동독 공산당’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북한의 조선노동당이 이와 유사한 길을 걸어왔다. 1945년 광복과 함께 서울에서 조선공산당이 재건되었다. 공산당은 1당 독재를 하므로 한 나라에는 하나의 공산당만 두는 ‘1국1당(一國一黨)’ 체제를 고수한다. 따라서 소련이 군정을 한 북한 지역에서는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分局)’이 생겨났다. 그런데 조선공산당이 미 군정의 추적으로 약화되자 소련은 분국을 북조선공산당으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