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린우리당 중진, 통합신당파, 친노계, 민주당 지도부, 고건 캠프, 국민중심당, 대선주자 물망에 오르는 야심가 등등, 그는 요즘 만나는 사람이 많다. 또한 많은 사람이 그를 찾는다. 너무 많이 찾아서, 그의 비서는 “대표님은 휴대전화가 없다”고 말한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결합은 통합 신당의 핵이다. 끊어진 근육을 이어 붙이듯, 두 당을 붙여줄 ‘집도의(執刀醫)’로는 정대철이 적임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민주당 쪽에서 억셉트(accept)할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란다.
되살아나는 ‘비운의 황태자’
정대철 고문이 되살아난 데는 8선 의원·외무장관을 지낸 선친 정일형 박사와 어머니 고(故) 이태영 변호사의 후광이 작용한 게 사실이다. 정 고문은 2002년 대선 당시 선대위원장으로서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의 일등공신이었지만 여권에서 냉대를 받다 사법처리 됐다. ‘팽(烹) 당해 나락으로 떨어진 콘셉트’로 인식되면서 “죄는 밉지만…”이라는 동정심이 발동하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비운의 황태자’라는 수식어가 붙게 되어 그는 수감생활을 하면서도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누가 면회를 왔다갔는지가 일일이 뉴스가 될 정도였다.
특히 그는 ‘전쟁’이나 다름없던 대선을 지휘하면서도 ‘인심’을 잃지는 않았다. 한나라당으로부터도 말이다. 타고난 낙천성과 유연함. 이것이 그를 되살린, 그의 컬러였다. 11월14일 오전 서울 중구 약수역 부근 개인 사무실에서 정 전 대표를 인터뷰했다. 인터뷰라기보다는 대화에 가까웠다.
그는 “지난 대선 때 우리 남산에서 한잔 했었죠?”라며 기자를 맞았다. 당시 노무현 후보 선대위원장이던 그가 폭탄주를 몇 잔 마신 뒤 “서청원(당시 한나라당 대표, 이회창 후보 선대위원장)과 내가 얼마나 가까운지 아나…”라며 너스레를 떨었던 기억이 났다.
▼ 그 사이 옥고(獄苦)도 치르고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요즘 다시 활발한 정치 행보를 보이고 있는데, 여권 정계개편에 뛰어든 까닭은 무엇입니까.
“원상복구하자는 거예요.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당이 힘이 부족하니까 합쳐서 한나라당에 한번 대항해보자는 겁니다.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정치에 활력을 주는 일이기도 하고요.”
▼ 잘 되겠습니까. 열린우리당 내에서는 ‘당 사수론’을 지지하는 의견도 적지 않은데요.
“통합 신당이 된다, 안 된다 여러 얘기가 많은데 가장 중요한 것은 대선주자예요. 오픈 프라이머리에 좋은 분이 많이 참여해 제대로 된 대선주자가 나오면 대선은 해볼 만해지는 겁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열린우리당으로는 안 들어오겠다고 하고, 새 거 만들면 고려해보겠다고 하니 신당을 만들자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