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29일 코리안시리즈 6차전에서 한화를 상대로 마무리 투구를 하는 오승환.
기자는 야구를 잘 모른다. 야구뿐 아니라 스포츠라는 것 자체에 그다지 조예가 깊은 편이 못 된다. 그나마 프로야구 원년 OB베어스의 어린이 팬클럽 회원이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때 명징하게 각인된 우승 환호의 기억 때문에, 매년 가을 코리안시리즈 경기만은 빼놓지 않고 시청하는 정도다.
그런 기자에게 문득 오승환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바로 그가 코리안시리즈 6차전에서 던진 마지막 공 하나 때문이었다. 우승의 향방이 자신의 오른쪽 어깨에 걸려 있는, 누구나 도망가고 싶을 수밖에 없을 그 순간에 한 점 흔들림 없이 정면승부를 거는 저 선수의 영혼이란 어떤 것일까. 오직 단 한번 주어진 그 공을 던지면서 그의 머릿속에는 무엇이 스쳐갔을까. 그는 무엇 때문에 저 극단의 긴장에 온몸을 던져 마주하는 것일까.
11월3일, 코나미컵 아시안시리즈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삼성팀이 훈련하는 대구구장을 찾았다. 돌부처라는 별명,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는 중평, 그리고 그 굳게 다문 입술. 오승환과의 인터뷰는 쉽지 않을 것임이 분명했다. 제법 쌀쌀한 기운이 느껴지는 한적한 경기장에 선수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똑같은 유니폼, 백넘버가 없는 점퍼를 입은 선수들 사이에서 오승환 선수를 찾기란 간단치 않았다. 화면에서 본 압도적인 체구와 가면인 듯 차가운 표정의 오승환은 거기 없었다. 대신 훈련을 마치고 기자와 마주앉은 사람은 운동선수답지 않은 말끔한 피부와 겸손한 말투를 가진 ‘미소년’이었다.
오승환이 내내 진지한 자세로 훈련에 임한 그날은, 공교롭게도 그가 후보로 올랐던 정규리그 MVP 시상식 다음날이었다. 수상은 올해 데뷔한 한화의 선발투수 류현진(19)에게 돌아갔다. 지난해에도 유력한 MVP후보였지만 신인상에 그치고 만 그에게 아쉬움이 없을 리 없다. ‘인간 오승환’을 엿보기 위해 난감할 수밖에 없는 첫 질문을 던졌다. 극히 ‘모범적인’ 답이 돌아온다.
“시상식장에서도 그렇고 전에도 그렇고 전 정말 마음 편하게 있었어요. 지난해 MVP를 탄 손민한 선배가 시상식장에서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MVP 트로피보다 우승반지를 끼고 싶다, 바꾸고도 싶다.’ 모든 선수가 1월부터 힘들게 훈련하면서 세우는 목표는 우승입니다. 누구도 ‘나는 올해 꼭 MVP를 할 거야’ 하고 마음먹는 경우는 없거든요. 그런데 저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우승을 했어요. 그것보다 더 기쁜 일은 없습니다.”
치마 입고 자란 어린 시절
시즌 최하위, 수모에 수모를 거듭하던 삼미 슈퍼스타즈가 일본에서 은퇴를 준비하고 있던 장명부에게 영입을 타진하던 1982년에 오승환은 태어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야구공을 잡은 그는 이후 경기고와 단국대를 거쳐 2005년 프로에 데뷔했고, 첫해에 트리플더블(승리, 세이브, 홀드에서 모두 두 자리수를 기록한 투수)을 기록해 신인왕과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한다. 올해 들어서는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보여준 발군의 피칭으로 세계 야구계를 긴장시키더니, 마침내 한 시즌 47세이브라는 아시아 최고기록을 세우며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 최전선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