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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인터뷰

스물넷의 완벽주의자 오승환의 야구 본능

“나는 행복하다, 그러나 이겨야 더 행복할 수 있다”

  •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스물넷의 완벽주의자 오승환의 야구 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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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기록에 따르면 오승환의 키는 178cm, 체중은 92kg이다. 기자의 키는 177cm. 눈대중으로 보니 공식기록이 1~2cm 부풀려진 듯했다. 엄청난 체구로 보이는 화면 속의 그에 비하면 크지 않은 키다. 아마도 특유의 표정이 주는 위압감이 실제보다 더 커 보이게 하는 것이리라. 보통 사람의 1.5배쯤 돼 보이는 엄청난 팔과 어깨도 한몫했을 것이다. 혹시 둘레를 재본 적이 있느냐고 묻자, “아뇨, 재본 적은 없고요, 많이 빈약해요”라고 답하며 시선을 내리깔고 수줍게 웃는다. 저 팔이 ‘많이 빈약하다’니, 겸손이 지나쳐도 농담이 된다.

▼ 눈매가 매섭다는 말을 많이 들었을 텐데요, 혹시 친구들이나 주위 사람들에게서 그런 얘기를 들어봤나요? 스스로 어떤 성격이라고 생각하는지도 궁금해요.

“TV를 본 분들은 대개 그렇게 말씀하시는데요, 밖에서는 들어본 적이 없어요. 웃기도 잘 웃고 말도 잘 하거든요. 제 표정이 왜 그렇게 되는지 생각해본 적도 없어요. 일부러 날카롭게 보이려고 의식하는 건 아니에요. 저도 모르게 그렇게 돼요. 내성적인 성격은 아닌데, 처음 만난 사람에게 낯을 좀 가리는 편이에요. 친해지면 말도 많이 하고 장난도 잘 치고. 처음 본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는 것 같아요, 내성적이라고.”

▼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고 싶네요.

“태어난 곳은 전북 신태인입니다. 익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요.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부모님이 거기서 귀금속 세공업을 하셨어요. 세 살, 네 살 터울 삼형제의 막내로 자랐습니다. 지금은 이 얘기를 하면 아무도 안 믿고 웃기만 하는데, 부모님이 원래는 딸을 낳으려고 하셨기 때문에 한동안 치마를 입히고 머리를 묶어주셨대요(웃음). 사진도 있어요. 그때는 지금처럼 몸이 좋지 않았죠. 친척이든 동네 사람이든 누나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지금도 한두 살 위 여자들한테 누나라고 잘 못해요.”



▼ 예전 기사를 찾아보니 야구를 시작하기 전에는 공부를 꽤 잘했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잘하지는 않았어요. 흥미를 못 느꼈던 것 같아요. 대략 반에서 10~15등쯤. 오히려 들에서 산에서 뛰어 노는 걸 좋아했어요. 중학교 때부터는 거의 합숙생활을 했으니까 집에는 자주 가야 일주일에 한 번 정도였죠.”

▼ 아마추어 때도 공을 던질 때 그렇게 진지한 표정이었나요.

“아뇨, 그런 거 전혀 몰랐어요. 아마추어에서는 팬층이 두텁지 않았고 봐주는 사람도 고작 부모님 정도였으니까요. 저도 프로 들어와서 처음 들었어요. 저도 모르는 뭔가가 달라진 거겠죠.”

부상, 그리고 재활의 기억

첫해와 이듬해를 엄청난 성적으로 마무리한 루키. 언뜻 보면 축복 받은 야구인생이겠지 싶다. 오승환은 이미 고교 1학년 때 메이저리그의 공개테스트 제의를 받았을 정도로 유망주 중의 유망주였다. 그러나 이후 그의 야구기록에서 공백으로 남아 있는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대학교 2학년까지, 그는 절망보다 더 깊은 나락을 맛봐야 했다. 부상의 악몽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의 허리 부상, 대학교 1학년 때의 팔꿈치 인대접합수술. 단국대 강문길 감독의 안목이 없었다면 고교를 졸업하며 야구를 그만둬야 했을 처지였다. 대학 1, 2학년 두 해를 고스란히 재활훈련으로 보내며 공 한번 만져보지 못한 그는, 4학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마운드에 복귀해 대학리그를 평정하며 팬들의 뇌리에 ‘오승환’이라는 이름 석 자를 박아넣기 시작한다. 춘계 대학리그 우수투수, 추계리그 우승. 본인에게는 눈물겨울 수밖에 없는 부활 스토리다.

▼ 미니홈피에 들어가보니 ‘미치자…내가 하는 일에 미쳐버리자’는 제목이 인상적이더군요. ‘나는 행복하다’는 글귀도 눈에 들어오고요. 마치 ‘행복해야 한다’고 되뇌는 것처럼 들린다고 할까요.

“같은 글귀를 휴대전화 첫 화면에도 적어놓았는데요, 일종의 좌우명 비슷한 거죠. 제가 한창 재활훈련을 받고 있을 때 아프지 않은데 꾀병을 부리는 친구들,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애들을 봤어요. 그걸 보면서 그때까지는 몰랐던 걸 깨달았죠,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에 나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걸. 마운드에 서서 안타를 맞고 홈런을 맞고 점수를 내줘도 그건 내가 공을 던질 수 있기 때문이고 내가 할 일이니까, 그러니까 무척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 2002년 월드컵 기간에 전국이 난리가 났는데도 재활훈련을 받느라 몰랐다면서요.

“서울 옥수동의 학교 숙소에서 아침 8시에 출발해서 잠실에 있는 재활원에 도착하면 밤 10시까지 재활훈련만 했어요. 밤중에 버스를 타고 학교 근처에서 내려 숙소까지 걸어가는데 갑자기 주택가에서 막 함성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무슨 일인가 했더니 월드컵이라더군요. 지금도 그날이 무슨 경기였는지는 몰라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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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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