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호

한국대학생선교회 총재 김준곤 목사

“위기의 한국 개신교, 個교회주의 버리고 도덕성 회복 앞장서야”

  • 구미화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hkoo@donga.com

    입력2006-12-13 09: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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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0년간 개신교 인구만 14만4000명 감소
    • “사기업화한 한국 교회, 지구상 어떤 기업보다 과학적 경영”
    • “한국 목사, 설교 잘하고 믿음 강하지만 사회적 책임 소홀했다”
    • “돈 대신 봉사의 십일조, 노력의 십일조, 시간의 십일조를”
    • “기독교인 중심 정치세력 지지…기독교가 간섭 못할 영역은 없다”
    • “교회 세습, 나름의 사정 있지만 사회적 비난 감수할 수밖에”
    • 교회 부흥하고, 시민도 혜택 보는 성시화(聖市化) 운동
    한국대학생선교회 총재 김준곤 목사
    한해가 저물고 있다. 일찌감치 화려한 성탄절 트리를 만들어 내놓은 백화점도 눈에 띈다. 교회들도 성탄절 준비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이 즈음 개신교인들의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을 듯하다. 교회 안팎에선 공공연히 개신교가 위기라고 이야기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1985년 648만명에서 1995년 876만명으로 급성장하던 개신교 인구가 2005년 861만6000명으로 14만4000명 줄었다. 전체 종교 인구수는 지난 20년간 꾸준히 증가해 불교와 천주교 인구는 늘었는데, 유독 개신교 인구만 줄었다.

    11월6일 오전에 만난 한국대학생선교회(CCC) 총재 김준곤(金俊坤·82) 목사는 이 같은 통계 결과에 의아해하면서도 “한국 개신교에 주는 적신호이자 경고음”이라고 진단했다. 김 목사는 얼마 전 타개한 강원용 목사와 함께 개신교 내 진보와 보수세력의 양대 산맥으로 일컬어지던 인물. 1958년 한국대학생선교회를 창설한 이후 대학생 선교를 주도해온 김 목사는 초교파적으로 한국 개신교 부흥에 기여해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자리잡은 한국대학생선교회는 2000여 평 부지에 옹기종기 들어선 각기 다른 모양새의 건물 여러 채를 사용하고 있다. 그중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관 1층의 작은 사무실이 2003년 대표직에서 물러난 그의 공간이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인지 두꺼운 커튼으로 창을 가린 사무실은 소박했다. 오래된 책상과 가구, 소파 옆에 키가 큰 국화 화분이 있었는데, 얼마 전 다녀간 정동영 전 열리우리당 당의장이 보내온 것이라고 한다.



    원로 목사는 쉼 없이 3시간 넘게 인터뷰에 응했다. 중간에 직원이 갖다준 커피를 차갑게 식은 뒤에야 한 모금 입에 댔을 정도다. 그동안 마음속에 담아둔 이야기가 많은 듯했다. 수십년 설교를 해왔다지만 연도와 사람 이름, 통계 수치를 정확히 기억해낼 때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좋은 곳에 터를 잡으셨습니다.

    “건국대 이사장의 조카가 미국으로 떠나면서 1600여 평의 땅을 남겨줬어요. 지금은 2000여 평 되죠. 여기 다섯 채 건물을 다 내가 만들었는데 지금은 은퇴하고 이 작은 방 하나만 차지하고 있습니다.”

    ▼ 개신교가 쇠퇴하고 있다, 위기다 하는 얘기를 자주 듣게 됩니다.

    “지난 10년 동안 천주교 신자는 74.4%, 불교 신자는 3.9% 늘어났는데, 개신교 인구만 14만4000명 줄었더군요. 개신교가 역동적인 종교인데, 의외의 결과죠. 1970년대 하루에 6개씩 교회가 생겨나던 개신교가 왜 이렇게 됐는지 교회 내부에서도 관심이 많고, 사회적으로도 관심이 높은 것 같습니다.”

    김 목사는 이어 120년 역사의 한국 개신교가 대(大)부흥이 가능했던 이유를 한참 설명했다. 정리하면 이렇다.

    ‘한국의 예루살렘’이라 불리던 평양의 독실한 기독교인들이 기독교를 미국과 동일시하는 공산주의의 탄압을 피해 대부분 남한으로 내려왔다. 남북 대치 상황에서 기독교인들은 공산주의에 대한 저항을 신화 속 투쟁처럼 여겼고, 이승만 정부 시절, 목사들이 도지사며 국회의원이 되어 사회지도자 대열에 합류했다. 이승만 대통령도 크리스천이었다.

    19세기 말부터 미국 선교사들이 전해온 선진문물의 영향도 컸다. 학교와 병원,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과학, 인권…. 그 시절 기독교는 계몽이고, 개화였다. 자신이 딛고 있는 현실보다 훨씬 앞선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는 예수 구원, 영생에 대한 믿음만큼이나 사람들을 교회로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

    한국 기독교에 보내는 적신호

    실리적인 이유에서 교회를 찾는 일은 산업화시대에도 계속됐다. 도시화 물결을 타고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은 신분과 계층을 뛰어넘어 형제자매가 되는 교회에서 큰 위안을 얻었다. 친북세력으로 의심받는 사람이나 운동권 학생들도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 일단 신분이 보증됐다.

    “친구 목사 얘기가 운동권 학생이 반체제, 반정부 데모를 하다 잡혀가 진정서를 내고 네 번을 빼내줬는데, 또 걸려 들어가서 빼달라고 하기에 더는 못하겠다고 했답니다. 그랬더니 그 학생이 ‘목자가 양을 구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더랍니다. 그래서 친구 목사가 ‘네가 양이냐, 이리지’ 했대요. 하나의 에피소드지만, 그 정도로 기독교가 신분보장의 수단이 되었습니다. 이런 프리미엄 덕분에 교회 간판만 내걸면 다 부흥했지요.”

    김 목사는 자고 일어나면 교회 십자가가 생겨나던 시절, “사기업화한 교회들이 일찍이 지구상에 존재한 어떤 기업보다 과학적으로 경영해 나갔다”고 말한다.

    “다섯 가정을 한 사람이 맡아 새벽기도 모임이다 성가대 연습이다 해서 자주 모이고, 생활 전반을 지도했지요. 결혼할 때, 병들었을 때 찾아가는 건 물론이고, 심리적인 문제며 가족 문제에 내세(來世)까지 다 상담해줬지요. 거미줄 같은 네트워크를 잘 관리했어요.”

    여기에 1970, 80년대 한국 사회에 분 ‘대형화’ 추세가 맞물려 세계 50개 대형 교회 중 절반을 한국 교회가 차지하는 ‘자랑스러운’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교회에 다닌다고 사람이 하루아침에 변하는 것은 아니다. 교회가 우후죽순으로 늘어났지만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부패지수가 심각한 수준이고, 위증·무고·사기 계통 범죄 건수가 일본보다 100배 많다는 보도도 있다. 사회에 불신이 팽배하고, 교회도 신뢰를 잃었다.

    “통계청 조사 결과는 우리에게 주는 경고예요. 적신호죠. ‘한국 개신교 자만하지 마라, 가톨릭은 조용히 부흥하지 않았냐’는. 성당은 공동체 의식이 있어요. 내 성당이라고 하지 않고, 우리 성당이라고 하죠. 그런데 교회는 이 교회와 저 교회가 경쟁을 해요. 그러니 교파가 많이 생기죠. 어떻게든 교인을 많이 모으려는 관리 시스템이 더는 안 통하게 됐어요. 큰 교회일수록 욕을 먹기 시작했어요. 내리막길이죠. 이제 교회엔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어요.”

    개(個)교회주의가 경쟁을 부추겨 개신교가 급성장한 게 사실이지만 이제 그 한계에 달했고,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진단이다.

    “네거티브 캠페인만으론 안 된다”

    “지금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어요. 이대로 두면 썰물 현상이 일어나고, 교회가 붕괴됩니다. 유럽에 궁전같이 으리으리한 교회가 많아요. 교회에 돈을 그렇게 쏟아부었지만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텅 비었어요. 교회가 교회를 위해 존재하면 그런 현상이 일어나요. 미국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유학시절, 3000명이 모이던 교회에 지금은 30명이 모입니다.”

    ▼ 교회가 교회를 위해 존재한다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입니까.

    “한국 교회가 굉장히 열심입니다. 목사님들이 설교를 참 잘하죠. 뜨겁게 믿고, 헌금도 많이 합니다. 그러나 반성해야 할 게 있어요. 사회적 책임을 소홀히 한 점입니다. 죄수들의 종교를 조사해보니 25%가 기독교를 믿는다고 했답니다. 그 수치가 얼마나 정확한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 25%가 사회의 빛과 소금이 아니라 죄수라는 점은 기독교인으로서 반성해야 할 부분입니다. 더욱이 우리 사회에 불신이 팽배해 교회가 헌금 많이 걷어서 다 어디에 쓰냐며 신뢰하지 못하고 교회를 빠져나가는 사람이 많아지지 않았습니까. 교회가 도덕적으로 빛과 소금이 돼야 합니다.”

    김준곤 목사 인터뷰를 앞두고 김철영 한국CCC 총재특보는 기자에게 종이가방 한 가득 책을 보냈다. 김준곤 목사의 저서와 김 목사에 관한 책들이다. 그중 ‘CCC와 민족복음화 운동’이라는 책에서 김 목사의 일관된 고민을 읽을 수 있었다. 21세기를 목전에 둔 1999년 세밑에 쓴 ‘21세기 기독교의 강은 어디로 흘러가는가’라는 글의 일부를 보자.

    한국대학생선교회 총재 김준곤 목사

    엑스플로 ’74 대회 당시 빌 브라잇 박사, 빌리 그레이엄 목사, 김준곤 목사(왼쪽부터).

    “한국 교회는 전도하고, 예배드리고, 모이고, 기도하고, 성경 암송하고, 헌금 열심히 하는 일에는 A학점을 줄 수 있어도 사랑하고, 깨끗하게 살고, 하나 되는 점에서는 D나 F학점밖에 못 받은 에베소 교회일지 모릅니다. 에베소 교회가 첫사랑을 상실한 것을 경고받고 회개치 않아 촛대가 옮겨지고 교회도 없어지고 말았던 교훈을 되새겨볼 때입니다.”

    김 목사는 현재 한국이 신앙적 위기, 도덕적 위기와 함께 북한 핵실험, 좌파의 득세 같은 안보 위기를 맞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에 대해 기독교인이 무거운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교회의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교회가 이 민족의 정신적 운명을 책임진다는 생각을 가져야 해요. 우리가 할 일을 제대로 안 했기 때문에 이 사회가 도덕적으로 부패했고, 하나님이 심판의 채찍을 때리고 있음을 자각해야 해요. 민족의 안보와 도덕적 운명에 대해 나부터 회개하고 기도해야 해요. 그리고 전도해야 해요. 그것이 부흥의 기본입니다.”

    ▼ 이런 문제의식을 목회자들이 이미 느끼고 있지 않습니까. 김 목사님의 영향을 받은 분도 많고요. 그런데도 변화가 쉽게 일어나지 않는 것은 왜일까요.

    “구조적인 문제지요. 그것이 한국 교회의 장점이자 약점인데, 상당한 시간과 자극과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네거티브 캠페인만으로는 안 되고, 좋은 것은 좋은 것대로 살려야 합니다. 세계적으로 자랑스러운 것들은 인정해줘야죠.”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고신대, 총신대, 장신대, 한신대…. 개신교 교회는 교단과 목사의 출신 신학대에 따라 각기 다른 성향을 보인다. 기독교 단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CCK)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는 각각 보수 교단과 진보 교단을 대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듯 세분된 형태가 위기를 탈출하려는 개신교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게 교회 안팎의 공통된 지적이다. 여기에 더해 교회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영세한 개척교회가 한 해 수천 개씩 문을 닫는 현실도 개신교 내부 결속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김 목사는 “개신교가 개(個)교회주의를 버리고 공동체의식을 회복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국인의 18% 정도가 개신교를 믿는다고 합니다. 내 교회를 부흥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한 도시를 완전 복음화하겠다는 목표로 안 믿는 82%를 전도하기 위해 그 지역 모든 교회가 재정과 인적 자원과 관심을 총 집중해야 해요. 한국 개신교 인구 800만이 한덩어리가 되면 대단한 에너지를 발휘할 겁니다. 모일수록 커지고, 활동할수록 커지는 태풍의 눈과 같지요.”

    천주교 벤치마킹해야

    최근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천주교는 개신교의 적극적인 선교 방식을 배우고 있다는데, 김 목사는 거꾸로 개신교가 천주교를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진석 대주교 말씀 중에 서울대교구에 본당 100개가 더 필요한데, 성당을 새로 짓지 말고 여러 구역이 하나의 성당 건물을 함께 사용하는 공동사목을 하자고 제안하신 게 있어요. 그 말씀을 교회에도 적용해야 합니다. 다만 거꾸로 큰 교회 하나를 짓는 대신에 10개의 작은 교회를 사용하는 거죠. 그렇게 내 교회, 네 교회 구분 없이 모든 사람을 전도하기 위해 나서면 교회가 부흥할 게 당연합니다.”

    사기업화한 교회에 교구(敎區) 단위의 성당이 추구하는 공동체 개념을 입히고자 하는 김 목사는 나아가 교회가 지역의 목민(牧民)센터로 거듭나야 한다고 제안했다.

    “목민센터란 쉽게 말해 그 지역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고, 더러운 곳을 청소하고, 지역의 어떤 문제든 협의할 수 있는 곳이에요. 제가 일제 강점기에 전남 신안의 지도란 섬에서 태어났는데, 지도의 부속도 중에 증동리라는 곳이 있어요. 그곳에서 목회하신 문준경이라는 제 친척 아주머니가 목민센터의 모델입니다. 제가 예닐곱 살 때 예수님에 대해 처음 얘기해주신 분이죠. 신학교를 졸업하고 두 달 반가량 증동리교회에 머물며 지켜봤는데, 믿는 사람 안 믿는 사람 가리지 않고 다 도와주는 그야말로 선한 목자였어요. 집에는 병든 사람 네댓 명이 머물고 있었죠, 새벽기도가 끝나면 큰 바랑을 들쳐 메고 나갔는데, 동네 사정을 샅샅이 꿰고 있었어요. 부잣집, 굶는 집, 병든 집, 제삿날, 잔칫날을 다 파악하고 있다가 형편이 넉넉하거나 제사 음식, 잔치 음식이 있는 집에서 먹을거리를 얻어다 굶는 사람, 병든 사람에게 나눠줬어요. 누룽지도 죄다 걷어 말려놓았다가 춘궁기에 나눠주니 아무리 가난해도 굶는 사람이 없었죠. 지인들에게 갖가지 약을 보내달라고 해서 병든 이에게 쥐어주고, 도박하는 사람, 가정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 불효하는 청년들을 타이르기도 했어요. 그러니 그 지역 주민의 90%가 예수를 믿었죠.”

    김 목사는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에 작은 섬에서 행해진 ‘기적’이 오늘날 한국 개신교에도 일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교회가 목민센터가 돼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누구를 비난하기보다 화해하고 협력하며, 절망이 있는 곳에 소망을 심고, 악한 것이 있는 곳에 선을 행하고, 분열이 있으면 화합을 도모해야죠. 100인 100역을 하는 거죠. 교회가 어떤 일에 대해 ‘그건 교회가 할 일이 아니다’ 하고 선을 그을 때가 있는데, 이젠 모든 교회가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 사람들이 대형 교회로 몰리는 이유 중 하나가 작은 교회에 가면 할 일이 많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 이유로 교인이 빠져나가니 작은 교회에 남은 사람들은 할 일이 더 많아지고, 그래서 또 빠져나가고…. 목민센터의 취지엔 공감하더라도 교인들이 쉽게 나설지 의문입니다.

    “모르몬교가 이단이면서도 지금과 같이 발전한 결정적인 이유는 우리나라에도 와 있는 선교사들을 비롯해 자원봉사자가 많아서죠. 한국 교회에도 자원봉사자가 수만명 생기면 좋겠어요. 입원비가 없어 병을 키우고 있는 사람을 위해 기독교인이 잘사는 사람을 찾아가 사정을 얘기하고 좀 도와달라고 하면 분명히 도움을 받을 겁니다. ‘자녀 안심하고 학교 보내기운동’에 조직적으로 동참하면 학교폭력이니 각종 10대 청소년 문제도 줄어들 거예요. 그런데 이 일들을 모두 월급 줘가면서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기독교인들이 의무라고 생각하고 자원봉사에 나서야 합니다. 돈으로 십일조를 내는 대신 봉사의 십일조, 노력의 십일조, 시간의 십일조를 내야 해요.”

    ▼ 목사님 말씀대로 기독교인이 솔선수범해 나서면 세상이 변할 것도 같은데, 교회에 나가는 목적이 사람마다 다르지 않습니까. 그중엔 기독교정신과 일치하지 않는 것들도 있고요.

    “허허. 물론 교회에 각기 여러 목적으로 오지요. 하지만 땅을 파다보면 다이아몬드가 나오듯 진실로 의로운, 마음의 불이 확 붙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래서 계기를 만들어야 해요. 은퇴한 목사님 150명이 모였을 때 나부터 ‘친절’ ‘정직’이 씌어진 어깨띠를 두르자고 했어요. 이걸 두르고 날마다 공원을 다니며 예수 믿으라고 하는 분들도 있어요. 이것도 100만명 단위로 하면 사회에 바람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묵묵히 걸어다니라

    김 목사는 얘기를 잠시 멈추더니 천천히 몸을 일으켜 캐비닛을 열고 뭔가를 찾았다. 의중을 알아챈 김철영 특보가 사무실을 나가더니 ‘친절’ ‘정직’ 등의 글자가 씌어진 노란색 띠를 갖고 들어왔다.

    “아주머니들도 핸드백에 넣고 다니다가 교회 오고 갈 때만이라도 꺼내 두르고, 자동차에도 달고 다니면 작은 것이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 변화를 일으킬 거예요. 정직하고 친절하고 부지런하면 만유인력만큼 절대적으로 보장된 좋은 힘을 얻어요. 그건 논쟁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에요. 아이들에게도 정직하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가정에서 가르치고, 학교에서도 가르치고. 그런데 요즘 선생들은 전교조에 가입해서 학생들에게 반미(反美) 가르치고, 공산주의 가르치고, 역사 왜곡해서 가르치고 있으니…. 요즘 거리에서 데모하는 걸 보면 죄다 남을 고발하는 거잖아요. 증오가 증오를 낳지요.”

    ▼ 숫자가 중요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급성장한 개신교가 질적으로 다듬어지는 시기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누구나 교회만 다니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깨고, 기독교인으로서의 책임을 무겁게 갖는 계기로 만드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교회가 물량에만 신경 쓰지 말고, 질을 생각하라고들 하는데, 사랑만은 물량으로 따질 수 없어요. 82%가 예수를 믿지 않는다면 전부 믿게 해야 해요. 그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아요. 교회에 오면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누구나 변하니까요. 요새 극단적인 사람들은 전도 그만하라고 하는데, 전도는 기독교의 본질입니다.”

    ▼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배타적인 전도 행위가 개신교 쇠퇴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하는데요.

    “내가 원로 목사들에게 세 가지를 당부했습니다. 소리 지르지 마라. 보행 가로막지 마라, 시야 가리지 마라. 묵묵히 걸어다니라. 잘못하면 굉장한 혐오감을 줄 수 있거든요. 물론 그분들도 신념이 있어서 그럴 테지만.”

    ▼ 개신교도 진보와 보수로 성향이 갈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목사님 스스로도 다른 목회자들과 인식의 차이를 느낄 때가 있습니까.

    “기독교 안에도 극과 극이 있지요. 교파나 사회주의에 대한 시각이 다를 수 있지만 그건 절대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보고 보수적인 사람이라고 해요. 그러나 보수 신앙을 갖긴 했어도 학생 청년운동을 해왔으니 진보적인 성향도 있죠. 예수의 신성, 속죄의 필요성, 부활과 재림에 대한 믿음 등 신앙의 절대적인 면에선 보수적이지만 그밖엔 자유로운 편이에요.”

    기독교 정치세력화

    ▼ 최근 뉴라이트전국연합의 김진홍 목사를 비롯해 기독교 인사들이 자신의 정치적 시각을 적극적으로 밝히고, 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어떻게 보십니까.

    “김진홍(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 목사, 서경석(선진화국민회의 사무총장) 목사, 김상철(국가비상대책협의회 상임의장) 변호사가 모두 내 제자입니다. 내가 직접 나서진 못해도 그분들이 하는 일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김 목사는 기독교인의 정치참여를 지지하는 편이다. 나아가 기독교인의 정치세력화를 열망한다. “기독교가 간섭 못 할 영역은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는 2004년 총선 때는 기독당 창당을 주도하기도 했다. 김 목사 외에 조용기(여의도순복음교회), 김기수(전 한기총 대표회장), 박영률(한기총 상임총무) 목사 등이 발기인 대표로 참여했다. 기독교 원로들의 이 같은 움직임을 보는 사회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양적 성장에 기반을 둔 자신감 도취’ ‘종교인의 기득권 수호’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김 목사는 당시 상황에 대해 할 얘기가 있다고 했다.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주권이 실현되기를 바랍니다. 기독교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야 할 영역은 없어요. 다만 교회가 직접 정치를 해서는 안 되죠. 목사나 특정 기독교 단체가 정치를 해서도 안 되고요. 하지만 기독교인들이 표를 모아서 정당이나 정치인 가운데 신앙이 좋고 양심적인 사람을 내세울 수 있어요. 이건 하나님의 뜻과 정의가 이 땅에 이뤄지게 하는 차원에서 판단해야 할 일이에요.

    2004년에 내가 기독교시국대책위원회 회장을 맡고 있었어요. 초교파적으로 교계지도자들이 국가 문제를 놓고 기도하고, 성명도 발표하는 모임인데, 그 단체에서 나온 얘기가 총선을 앞두고 어느 사이비 종교가 정당을 만들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기독교도 정당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 기독교인이 투표할 그릇을 만들어보자는 의견이 나왔어요. 그래서 회장인 내가 근간을 만들었는데, 자유시장경제, 민주주의, 한미동맹 수호였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뤄지도록, 싸움의 중재자가 나오도록 기독교인의 표를 모아주면 좋겠다는 의도였지, 내가 직접 정치를 하진 않았습니다.”

    ▼ 결과는 어땠습니까.

    “기독교인이 많이 참여했는데, 한국 최대 교회의 목사님도 같이 하려 했다가 잡음이 이니까 중간에 그만두더라고요. 같이 가던 사람들이 나는 아니다, 나는 아니다 하고 중도에 그만두고 또 내부에 문제가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아직은 시기상조다 싶어 그만뒀어요. 그러나 여전히 기독교인의 표가 모아져 양심적인 정치 세력이 되어주길 바랍니다. 종교인이 불신자보다는 양심적이고 국익을 더 생각하니까요.”

    국가조찬기도회의 功과 過

    ▼ 종교인이 비종교인보다 상대적으로 양심적일 거라는 기대에서라면 굳이 기독교 정당일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기독교 정당은 결국 타종교를 자극하고 종교 정당이 경쟁적으로 생겨날 가능성이 큰데요.

    “내 생각엔 가톨릭과 함께 하면 좋겠어요. 민주주의를 논하고, 안보를 염려하고. 그렇다고 기독교인만의 정치세력화를 하겠다는 배타적인 생각은 결코 아닙니다. 3·1 운동 때도 여러 종교인이 합심했듯, 그런 식의 정치 세력이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지금 김진홍 목사나 서경석 목사가 하고 있는 형태의 일을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은 게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지난번엔 교계에서 생각을 달리하는 분이 많았고, 시기상조인 측면도 있었지만 앞으로는 잘할 수 있을 겁니다.”

    ▼ 1966년부터 국가조찬기도회를 하셨는데, 그것도 같은 맥락에서 시작한 겁니까.

    “국회도 복음화하자, 국회의원과 대통령에게 설교를 하자는 취지였죠. 대통령과 장관 등 VIP를 상대로 설교하는 장을 만들려면 그 수밖에 없었어요. 미국에서 배워온 거죠. 김종필, 김영삼, 정일권, 박현숙 같은 기독교인 정치인을 모아 얘기를 했더니 한번 해보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1966년 3월에 외국 공관장까지 280명을 모았어요. 한경직 목사, 김수환 추기경 등 신·구교 인사도 한자리에 모였죠. 박정희 대통령도 참석하겠다고 했는데, 결국 안 왔어요. 하지만 2회부턴 참석했습니다.”

    ▼ 영향이 있었습니까.

    “있었죠. 그 얘기는 깁니다. 내가 박 대통령을 설득한 부분도 있고, 교회에 해서는 안 될 일도 많이 고쳤죠. 그 자리에서 얘기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었어요. 문교부에서 성경을 못 배우게 하는 게 가장 큰 고통이었는데, 그것도 고쳤어요. 전군(全軍) 신자화도 제안했고요.”

    김 목사는 국가 지도자에게 기독교 정신을 심어주고, 정치도 복음화하자는 취지로 국가조찬기도회를 이끌었다고 설명하지만, 그에겐 유신정권과 유착하고, 군부독재에 침묵하며 교세(敎勢) 확장에 몰두했다는 비난도 따라다닌다. 김 목사 주도로 수십만 신자가 동원된 ‘엑스플로 74’ ‘80년 세계복음화대성회’ 등은 한국 개신교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대규모 집회였지만 일부에선 암울한 정치 현실을 외면했다고 폄하한다.

    ▼ 당시 대학에서는 박정희 정권에 저항하는 학생운동이 있었습니다. 대학생 선교의 틀을 마련하신 목사님이 박 대통령과 기도 모임을 한다는 것에 학생들의 반발은 없었습니까.

    “박 대통령 때문에 반정부, 반체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기독교 안에도 있었어요. 난 그 시절 큰 전도 집회를 했는데, 나더러 그런 걸 하지 말라고 합디다. 그래서 내가 이전부터 해왔던 일인데, 정권이 맘에 맞지 않는다고 전도를 하지 않아서야 되겠느냐고 반박했어요. 힘들었죠. 나더러 친(親)박정희파, 유신파라고 덧씌워 비난도 하고요. 그 시절 하루에 교회 6개가 새로 생겨날 정도로 기독교가 성장했어요. 교회 부흥이 최대로 이뤄졌죠. 그런데도 일부 사람들이 이 정부가 교회를 박해한다고 왜곡된 사실을 나라 밖에 알렸어요. 외국에 나가보면 어느 목사가 감옥에 갇혀 있다느니 하면서 한국 정부를 악마처럼 알고 있더라고요.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반독재운동을 한 분들은 내가 집회나 전도활동도 않길 바랐지만 시국관(時局觀)은 다를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건 기독교에서 절대적인 문제가 아니죠. 정부가 내게 학생 선교 하지 마라, 예배 드리지 마라고 강요한 적이 없어요. 예수는 가짜라든가, 성경이 틀렸다는 식으로 기독교를 부정한 적도 없고요. CCC 안에도 그런(반독재, 반체제) 운동을 하는 사람이 많이 있었어요. 내가 이름을 거론하진 않겠지만 현재 이 정부의 심장부에도 있고. 기독교 사회주의 경향을 보이기에 내가 ‘너희 마음 맞는 데 가서 하라’며 내보냈어요.”

    김 목사는 실명 거론을 피했지만 ‘통혁당 사건’에 연루됐던 한명숙 총리와 남편 박성준 성공회대 교수가 한국CCC 출신인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며 김근태 열린우리당 당의장도 한국CCC 출신이다. 이들은 모두 한국CCC 내 ‘경제복지회’에 소속돼 있었다. 당시 이 모임에 함께 참여했던 김상철 전 서울시장은 “경제복지회가 일종의 민중신학적 경향으로 흐르게 됨으로써 김 목사님께 많은 염려를 끼쳤다. …김 목사님의 복음적 신앙노선에 배치됐기 때문에 퇴출됐다”고 기록하고 있다(‘나와 김준곤 목사 그리고 CCC’).

    교회도 ‘체질’이 있다

    11월12일 순복음교회를 이끌어온 조용기 목사 후임으로 로스앤젤레스순복음교회 담임 이영훈 목사가 결정됐다. 순복음교회의 후임자 결정은 교계뿐 아니라 비기독교인들의 관심도 집중됐던 사안이다. 순복음교회가 76만 교인을 자랑하는 세계 최대 교회인 점도 그렇고, 최근 국내 대형교회들이 직계 자손에게 담임목사직을 이양, 이른바 ‘교회세습’ 논란이 기독교 이미지 실추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한국CCC도 지난 2003년 ‘세습’ 논란에 휘말렸다. 현 한국CCC 대표 박성민 목사는 김 목사의 셋째사위다. 한국대학생선교회십대선교부(HCCC)와 CCC에서 활동한 박 목사는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석사와 박사 과정(공학)을 마치고, 미국 트리니티 신학대학원에서 다시 신학 석사와 박사를 했다.

    ▼ 한국에 대형 교회가 많은 것은 기독교계의 자랑입니다만, 대표 목사 세습이나 교회 재정 문제로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교회엔 원래 세습제라는 게 없습니다. 그러나…CCC도 세습을 했어요. 내가 키워서. CCC는 하도 독특해서 외부에서 사람을 데려올 수가 없어요. 미국에 본부가 있고, 아시아에도 본부가 있는데, 구세군과 비슷하게 중앙집권제가 굳어 있어서 한국에서 자생적으로 일어난 사람을 데려다 대표로 세우기가 어려워요. (세습 논란이 제기됐을 때) 그런 설명을 다 했습니다.

    교회는 CCC와 다르기는 하지만, 자녀를 키워서 교회의 동의를 받아 세습의 모양을 갖춘 데가 몇 군데 있어요. 되도록 그 목사님(후임자)이 위대했더라도 다른 데서 목회를 하고, 사회의 비난을 피하면 좋으나 어쩔 수 없는 교회 사정이 있을 거예요. 또 교회엔 당회라는 게 있어서 장로들이 목사가 하자는 대로 안 하고 자체적으로 누군가를 후임으로 정했어도 밖에선 목사가 그렇게 한 거라고 덮어씌울 수도 있죠. 교회가 감수해야 할 일이죠.

    교회도 하나의 체질입니다. 그러니 외부에서 갑자기 후임자를 데려오면 이질적인 것들끼리 서로 부닥칠 수 있어요. (세습도) 긍정적인 눈으로 보면 괜찮은데, 사회에서 자꾸 ‘말할 거리’를 만드는 겁니다. 감수해야죠. 교회가 커서 그런 겁니다.”

    ▼ 대형 교회는 재산도 엄청나지 않습니까.

    “당회가 예산을 만들고, 집행한 명세를 재직회(집사들의 모임)에 보고하고, 교인 전체에 공고해요. 그런 절차가 있는데, 목사님들에겐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구제(救濟)의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러니 교회에서 목사님에게 재량껏 쓸 수 있는 금전을 제공하곤 하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그렇습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도 마찬가지고요. 세상에 그렇게 훌륭한 한경직 목사님 교회에도 한 달에 한 번씩 투서가 날아들었어요. 한 목사님이 이렇게 저렇게 나쁘다고. 그건 피할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도 유다를 키우셨잖아요. 안티 세력은 자연적으로 생겨요. 안티의 파괴력은 병균 퍼지듯이 커지고, 교회를 분열시키고 하는데, 영원히 피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러니 목사가 재정에 전혀 손대지 않는데도 의혹이 불거져요. 교회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고, 만일 문제가 생기면 당사자를 만나 해결해야 하는데, 안티는 그걸 언론에 먼저 터뜨리고, 법정 플레이를 해서 교회를 벌집 쑤셔놓듯 합니다. 그러나 점점 나아질 거예요.”

    전인적이고 입체적인 복음

    ▼ 교파가 다른 목회자들도 종종 모입니까.

    “그럼요. 그런데 교계도 자유시장경제 원리가 적용돼 목사님의 설교 능력과 명성에 따라 교회가 잘되기도 하고, 아무리 좋은 교회를 맡겨도 잘 안 되는 때도 있어요. 초교파적 총연합회가 1년에 한 번 총회장을 바꾸는데 이때는 정치가 들어갑니다. 그건 인간의 세계에선 피할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러나 ‘세상의 모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하여’ 교회가 연합한다면 할 일이 참 많아요. 돈도 풀(Pool)로 만들어 쓰고, 인력도 그렇고요. 모든 지역 교회가 하나로 뭉치고, 분과를 만들어 활동하면 좋을 텐데, 지금은 내 마당만 쓰니까 문제예요. 교회끼리 경쟁할 필요 없이 전 시민을 목회 상대로 한다면 개교회도 크고, 엄청나게 부흥할 겁니다.”

    ▼ 한국CCC가 개신교의 미래를 위해 어떤 일을 하리라고 기대합니까.

    “CCC는 사람이 변하면 가족이 변하고 도시가 변하고 세상이 변한다는 생각으로 개인 전도를 합니다. 캠퍼스 전도는 대학의 복음화, 민족의 복음화, 세계 복음화라는 체계를 갖추고 있어요. 대학 시절 CCC에서 훈련받은 사람이 각자 처한 곳에서, 가정이나 직장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겁니다. CCC는 씨앗을 심듯 (사회 곳곳에 기독교인을) 심지요. 그러다보니 우리는 선교단체일 뿐인데 사회적으로나 기독교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어요.”

    한국CCC가 현재 중점을 두고 있는 사업은 ‘성시화(聖市化) 운동’이다 기독교인이 중심이 되어 한 도시의 격을 높인다는 취지. 앞에서 언급한 교회 공동 사목, 교회의 목민센터화 등을 통해 시민이 양심을 회복하고, 신뢰성을 확보해 도시를 하나의 브랜드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CCC는 성시화 운동과 3전(全) 전략에 주력하고 있어요. 전 교회가 전 시민에게 전 복음을 전하는 겁니다. 전 복음이란 전인적이고 입체적인 복음, 친절하고 정직하게 생활하고, 나눔을 실천하며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교회의 의무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알고, 교회에 오는 게 전부가 아니라 교회 밖에 있는 사람에게 사랑을 나눠주자는 거지요. 전 교회가 전 시민에게. 만일 100만명이 재산을 남기지 않기로 결의한다면 삼성도 따라올 수 없어요. 어느 한 도시가 이 운동에 성공하면, 다른 지역의 목사님들도 동참하리라 생각해요. 교회도 부흥하고, 시민도 혜택을 보니 ‘윈윈’이지요.”

    한국 개신교 성장을 이끌어온 김 목사는 한국 개신교 부흥에 대한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했다. 김 목사는 “다들 나더러 나이를 생각하라고 하는데, 내 가슴엔 불이 있다”며 웃고는 “한국 사회의 위기를 타개할 희망은 그래도 기독교”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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