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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D 무기개발 3총사의 핵·미사일 개발 비화

“박정희 정권 핵 개발은 헛소문… 설계 도면만 그리다 말았다”

  • 이은영 신동아 객원기자 donga4587@hanmail.net

ADD 무기개발 3총사의 핵·미사일 개발 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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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D 무기개발 3총사의 핵·미사일 개발 비화

KIST 연구원 출신인 이경서 박사. 현 단암전자 회장.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한 공군장교 출신의 홍재학 박사. 핵물리학을 전공한 해군장교 출신의 구상회 박사.(외쪽부터 차례로)

구 박사는 “현대전의 승패는 미사일 보유 수준에 달렸다”면서 “역대 대통령 중 박정희만큼 미사일 개발을 적극 지원한 대통령이 없다”고 박 전 대통령의 자주국방 의지를 높게 평가했다. 그에 따르면 한국의 미사일 개발이 지지부진한 것은 정권마다 안보관(觀)이 다르고 미국이 사거리를 제한하는 등 독자 개발을 막았기 때문이다. 정권의 성격에 따라 방위산업 지원도 들쭉날쭉했다.

때마침 한 일간지에 기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기사가 실렸다. 박 전 대통령이 은밀히 추진하던 핵무기 프로그램을 신군부가 이끄는 보안사령부가 폐기했다는 내용이다.

‘1979년 12월8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로 바로 이틀 전 소집된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제10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최규하 대통령은 갑자기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대전 대덕으로 향했다. 대덕의 국방과학연구소를 방문하기 위해서다. 당시 국방과학연구소는 박 전 대통령 말기에 한미간 갈등의 불씨가 됐던 ‘독자적인 핵무기 개발’의 산실이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이끌던 국군보안사령부가 국방과학연구소측에 핵무기 개발과 관련한 모든 자료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는 보고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최 전 대통령은 신군부의 갑작스러운 요구로 혼란에 빠져 있던 연구원들을 진정시켰다. 하지만 최 전 대통령의 이런 노력은 무위로 돌아갔다. 며칠 뒤 12·12 쿠데타 성공 이후 보안사는 국방과학연구소에 있던 핵무기 관련 자료와 장비를 모두 가져가 폐기하고 말았다.’(‘동아일보’ 2006년 10월23일자)

“중공업 육성하면 탱크 만들 수 있다”

기자는 수소문 끝에 ‘그때 그 시절’ 얘기를 소상하게 아는 세 명의 과학자를 만났다. 1970년대 ADD 3총사로 불리던 이경서(70), 홍재학(74), 구상회(71) 박사다. 이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지시한 긴급 무기개발사업 ‘번개’ 프로젝트를 완수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주인공이다.



홍재학 박사는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한 공군장교 출신, 이경서 박사는 미국 MIT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연구원, 구상회 박사는 핵물리학을 전공한 해군장교 출신이었다.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건 1970년대 초 ADD가 설립됐기 때문. ADD는 1970년 8월6일,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탄생한 국립 연구기관이다. 당시 ADD의 설립 배경과 상황에 대해 구상회 박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기술주권에 의한 자주국방정책’을 실현하자는 취지였어요. 1960년대 북한은 4대 군사노선을 채택해 군비(軍備)를 증강했습니다. 1968년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습격하는 사건이 터지고, 같은 해 울진·삼척에 무장공비 120명이 침투했죠. 북한의 무력도발이 격해지던 시기였어요. 1970년에는 닉슨 독트린 발표 후 미군이 한국에서 철수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어요. (박 대통령은) 이런 국내외 정세에 ‘아차’ 싶었던 거죠. 자주국방의 필요성을 절감한 겁니다. 자주국방이란 게 입으로 부르짖는다고 되는 게 아니잖습니까. 당시 우리 군에는 지대지유도탄이 단 한 발도 없었어요. 쏘면 포탄처럼 날아가는 비(非)유도 로켓탄인 어니스트 존(Honest John) 1개 대대가 배치돼 있을 정도로 비참했어요. 우리 기술로는 소총조차 제대로 만들지 못하던 시절이었죠.”

‘번개사업’으로 이름붙여진 ADD의 무기 국산화 프로젝트에는 이경서 구상회 홍재학 박사 외에도 군 출신 공학박사와 민간 과학자가 많이 참여했다.

당시 ‘백곰’ 미사일 개발의 총괄책임자이던 이경서 박사는 군수산업에 대한 박 대통령의 의지가 얼마나 강했는지를 엿볼 수 있는 일화를 소개했다.

“(박 대통령은) 무기 국산화 의지가 대단했어요. 제가 KIST에 있을 때 박 대통령이 상공부 장관에게 ‘기계공업을 육성하라’고 지시했어요. 상공부 장관은 이 프로젝트를 KIST에 내려보냈고, 제가 ‘기계공업 육성방안’을 작성해 청와대에 들어가 브리핑을 했어요. 그때 제가 ‘조선(造船)을 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브리핑 차트 마지막에 ‘중공업=군수산업’이라고 썼어요. 순간, 박 대통령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더라고요. 제가 중공업을 육성하면 탱크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어요. 비료공장에서 화약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처럼요. (박 대통령이) 그 자리에서 OK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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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영 신동아 객원기자 donga458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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