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호

‘만만디 토지수용’에 신도시 분양가 폭등

분당은 발표 6개월 만에 분양, 검단은 4년…

  • 김순희 자유기고가 wwwtopic@hanmail.net

    입력2006-12-13 10: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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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기 신도시는 개발계획 발표에서 분양까지 단기간에 이뤄져 토지도 싼값에 수용됐다. 하지만 이후 신도시 개발절차가 복잡해진 탓에 사업기간이 2~3배 늘어났다. 토지 보상가가 높아졌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는 고스란히 분양가로 전가됐다.
    ‘만만디 토지수용’에 신도시 분양가 폭등

    인천 검단 신도시 개발 예정부지.

    온나라가 부동산 때문에 난리법석이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입만 열면 집값(정확히 표현하면 ‘수도권 아파트 가격’) 얘기다. 거액을 대출받아 집을 산 사람은 ‘막차’를 탄 게 아닌가 싶어 좌불안석이고, 무주택자는 ‘지금 집 사면 낭패’라는 정부의 말을 믿고 매수를 늦췄다가 내 집 마련의 꿈이 영영 멀어지는 게 아닌가 싶어서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정부가 서울 강남·서초·송파 3개구와 목동, 경기도 분당·평촌·용인 등 이른바 ‘버블세븐’ 지역의 집값을 잡겠다고 호언장담했을 때 국민들은 일말의 희망을 품고 지켜봤다. 그러나 결과는 또다시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이어졌다. 전세난이 극심했던 추석 직후, 그때껏 집값 상승과 무관하던 수도권 일대의 집값이 고공비행을 시작했다. 중대형 중심으로 오르던 집값은 그동안 투자가치가 없다고 소외됐던 소형 아파트 가격까지 들썩이게 했다. 결국 이번에도 정부를 믿고 기다리다가 집을 안 산 사람만 ‘바보’가 됐다. 부동산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정부가 11월9일 집값 안정을 위한 ‘긴급 처방전’을 내놓았다.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획기적인 주택공급정책을 준비하고 있다. 양질의 값싼 주택을 대량 공급하겠다. 아파트 분양가를 20~30% 낮출 계획이고 공급물량도 충분히 확보할 방침이다.”

    정부가 공급확대와 함께 주택시장 안정대책의 일환으로 내놓은 방안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분양가 인하’다. 사실 판교의 고분양가는 강남과 분당, 용인의 집값 상승에 도화선이 됐고, 결국 선시공 후분양으로 결론이 나긴 했으나 예상을 훌쩍 뛰어넘은 은평 뉴타운의 높은 예상 분양가 또한 서울 서북부 지역의 집값 상승에 한몫을 단단히 했다. 여기에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의 검단 신도시 발표가 타오르던 불길에 기름을 끼얹었다.

    정부 발표대로 분양가가 인하된다면 판교 신도시를 기준으로 할 경우 전용면적 25.7평 이하는 평당 1085만원(실제 분양가)에서 760만~870만원까지 낮출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즉 32평 아파트를 2억4320만원~2억7840만원에 분양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부동산 전문가들은 ‘분양가 인하와 적재적소에 공급을 늘리는 것’만이 집값을 잡는 방법이라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정부는 귀를 닫았는지 정책에 반영되지 않았다. 결과는 부동산 가격 폭등이었다.



    부처간 협의 지지부진

    분양가 인하를 위해 정부가 내놓은 방안은 용적률(대지 면적 대비 건물 연면적 비율) 상향 및 녹지비율 하향 조정이다. 용적률이 높아지면 실질 택지비를 줄일 수 있고 공급 가구수가 늘어나는 만큼 분양가 자체를 끌어내릴 수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 그러나 용적률이나 녹지율 조정 없이도 분양가를 인하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싼값에 토지수용을 하는 것이다. 분양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땅값이다. 싼값에 토지를 수용하는 방법은 땅값이 오르기 전에 수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간단한 것을 정부는 왜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각종 택지개발 지구지정 이후부터 보상까지 걸리는 시간이 예전에 비해 턱없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건교부가 지난 10월 말 발표한 인천 검단 신도시. 정부와 인천시에 따르면 검단 신도시는 2010년 중대형 주택(아파트 1만3000가구, 연립 3000가구)을 시작으로 2011년 3월까지 순차적으로 주택을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신도시 발표에서 분양까지 무려 4년이 소요되는 셈이다. 분양 이후 아파트 공사기간이 2년 6개월 정도임을 감안할 때 검단 신도시의 최초 입주는 빨라야 2012년 4월부터 가능하다.

    제1기 신도시인 분당은 594만평을 신도시로 개발하는 데 불과 6개월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다. 1989년 5월 택지개발지구로 지정된 분당 신도시는 9월 개발계획 승인 10월 실시계획 승인, 11월 택지공급 승인, 및 아파트 1차 분양을 실시했다. 당시에도 집값 폭등의 문제가 불거졌는데 발 빠른 대처로 시장이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또한 신도시 발표에서부터 분양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돼 주택수요자의 불안심리를 일거에 잠재웠다.

    반면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끈 판교 신도시는 이와 정반대였다. 2001년 택지개발지구로 지정될 때부터 판교는 ‘강남 대체 신도시’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개발계획이 수차례 변경되면서 올 3월에야 5년여 만에 분양이 이뤄져 그 사이 강남과 분당, 용인의 집값은 하늘을 향해 치달았다. 결국 분양이 수차례 연기되는 과정에서 토지 보상가는 뛰어올랐고 이는 고스란히 분양가로 전가됐다.

    제1기 신도시 건설 이후 신도시를 추진할 때 준비에서 택지공급 착수까지 대개 빨라야 3~4년이 걸린다. 사전 환경성 검토, 관계기관 협의,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 지구지정하는 데만도 최소한 1년이 걸린다. 여기에다 환경영향평가, 광역교통대책 등을 거쳐 개발계획 승인에 또 1년 6개월이 소요된다. 실시계획 승인을 받으려면 또 1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고 나서 3~6개월 뒤에야 택지공급 및 착공이 가능하다. 한마디로 신도시 개발은 관계 부처간 협의 과정이 늘어지면서 시간만 잡아먹는 꼴이 됐다.

    1기 신도시 개발에 참여했던 건교부의 한 인사는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 등 이른바 ‘5대 신도시’가 빠르게 건설될 수 있던 것은 사업절차가 지금처럼 복잡하지 않았고 부처간 협의가 신속히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2기 신도시 ‘굼벵이 개발’

    1기 신도시 설립 이후부터는 신도시 개발에 따른 절차가 복잡해진 탓에 사업기간이 2~3배 늘어났다. 토지 보상가 상승과 이로 인한 분양가 상승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

    판교를 비롯해 광교, 김포, 동탄 등 2기 신도시의 사업 진척이 늦어지는 이유에 대해 사업주체인 토공과 주공의 관계자들은 “1기 신도시에 비해 사업절차가 세분된 데다 사전 환경성 검토제도와 환경영향평가에 너무나 많은 시간을 빼앗겼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사전 환경성 검토제도는 신도시, 도로, 철도, 댐 등 일정 규모 이상을 갖춘 신규 행정구역을 만들거나, 골프장 등 개발사업의 인·허가를 받기 전에 환경 측면의 적정성을 검토하는 절차다. 사업계획 초기단계에서부터 입지의 타당성, 주변 환경과의 조화 등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는데, 구체적으로는 ‘개발과 보전의 조화’, 즉 ‘환경친화적인 개발’ 도모를 목적으로 한다. 이에 따라 계획을 수립·확정하거나 사업을 인가, 허가, 승인, 지정하는 관계 행정기관의 장은 환경부 장관 또는 지방환경관서의 장과 사전에 협의해야 한다.

    토공의 다른 관계자는 “1993년 1월부터 ‘행정계획 및 사업의 환경성 검토에 관한 규정(국무총리훈령)’을 통해 개발사업 시행 전 사전협의를 거치도록 하고 있는데다 1999년 12월31일 ‘환경정책기본법’ 개정을 통해 사전 환경성 검토제도가 법제도화한 이후 이를 승인받기까지 너무나 긴 시간이 소요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또 “분당의 용적률은 184%, 개발 밀도는 1㏊당 197명이었다”며 그러나 “판교 신도시의 경우 사전 환경검토 과정에서 환경부와 시민단체의 반대로 169%, 95명으로 낮춰졌다”고 밝혔다.

    사전 환경성 검토제도는 환경영향평가제도가 대부분 대규모 개발사업에 국한되어 있을 뿐 아니라 계획이 확정된 후 사업실시 단계에서 오염물 절감방안을 주로 검토하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 생겨난 제도다. 이 제도를 통하면 신도시 입지의 타당성을 좀더 구체적으로 검토할 수 있고, 친환경적 개발을 유도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현재 신도시를 개발하려면 두 번의 환경평가를 받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환경단체 ‘결재’ 안 나면 개발 지연

    환경부의 한 관계자는 “사전 환경성 검토를 할 때 “환경단체들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경향이 적지 않아 심사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또 “환경부는 정부 및 사업주체와 환경단체 사이의 의견을 조율하는 ‘조정자’의 노릇밖에 하는 일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이 정부 들어서 환경단체의 입김이 더 세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환경단체가 나서서 개발지역의 환경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부각하면 환경부로서는 불편하기 짝이 없기에 웬만하면 환경단체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일부 사업기간이 늘어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경기도 김포 신도시는 환경단체의 반대로 사업추진이 늦어진 대표적인 지역이다. 환경정의시민연대는 2003년 9월16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김포지역의 철새 서식현황을 파악하려면 철새가 찾아오는 10월부터 다음해 3~4월까지 세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하는데도 토지공사가 제시한 사전 환경성 검토 보고서에는 2003년 8월10~12일 사흘간만 조사한 것으로 돼 있다”면서 전면 재조사를 촉구했다.

    ‘만만디 토지수용’에 신도시 분양가 폭등

    서울 은평뉴타운 예정지에 원주민들이 토지수용가 인상을 요구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김포 신도시 개발을 담당했던 한 관계자는 “철새와 환경의 보존도 중요하지만 이 때문에 신도시 개발계획 수립이 1년6개월이나 늦어졌다. 또 당초 498만평 규모로 추진됐던 것이 국방부의 요구로 155만평으로 줄어들었다가 이후 358만평으로 최종 확정됐다”고 말했다. 환경부와 국방부 때문에 신도시 개발에 커다란 차질이 발생했다는 것. 그는 “1990년대 이전의 국토개발은 농지전용과 관련해 농림부의 승인을 받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그러나 사전 환경성 검토제도 시행 이후로는 환경부가 사업 진척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수용지 주민 “시간이 돈이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삼송동 김모(45)씨는 조만간 삼송 신도시의 토지 수용에 대한 보상을 받을 예정이다. 대지 60평, 전(田) 87평, 건물 60평을 소유한 김씨는 삼송신도시주민연합대책위 관계자로부터 최근 대지는 평당 600만원, 전은 300만원, 건물은 평당 150여만원의 보상가가 책정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김씨가 손에 쥐는 보상가는 대략 7억1100만 원. 김씨는 “만일 정부 발표대로 삼송신도시 개발이 진행돼 예정대로 올 초에 보상을 받았다면 보상가가 이보다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라며 “보상가는 시간이 흐를수록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씨에 따르면 사업주체인 토공이 내세운 2명의 감정평가사와 삼송신도시주민연합대책위원회측이 내세운 1명의 감정평가사가 매긴 권리가액의 평균치가 보상가이다. 감정평가사들이 토지 가격을 평가할 때의 기초 자료는 공시지가(건설교통부 장관이 조사, 평가해 공시한 표준지의 단위면적·㎡ 가격)이다. 공시지가는 합리적이고 일관성 있는 지가 정보체계를 세우기 위해 부동산가격 공시 및 감정평가에 관한 법률에 따라 산정해 공시되는 땅값이다.

    김씨가 소유한 땅 가운데 전의 2005년 1월1일 공시지가는 평당 119만원. 한 해 전의 공시지가는 103만원이다. 한 해 동안 평당 16만원이 오른 것이다. 공시지가가 오른 폭만큼 토지보상가가 높아졌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김씨는 2004년 2월, 자신이 사는 삼송동을 비롯해 동산동 신원동 오금동 원흥동 용두동 대자동 일대 149만평에 주택 2만2000호가 들어서는 신도시를 개발한다는 건설교통부 발표를 접했다. 그달 16일부터 주민 공람이 실시됐다. 건설교통부는 그해 3월16일 택지개발사업 공고와 더불어 2주간 주민의견을 수렴한 후 5월 지구지정을 확정하고 2005년 6월까지 개발사업계획을 확정했다. 개발사업계획이 확정되면 택지개발로 수용되는 토지와 건물에 대한 보상협의가 진행된다.

    당초 계획대로 하면 주민들의 토지 수용은 올해 3월까지 마칠 예정이었다. 건교부는 삼송 신도시의 주택분양은 2007년 하반기, 임대는 2008년 상반기로 예정했다. 그러나 삼송 신도시는 당초 계획보다 1년여 늦게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사업이 늦어진 만큼 보상비는 높아졌고 이는 분양가로 그대로 떠넘겨질 전망이다.

    삼송 신도시의 개발이 늦어진 데 대해 삼송신도시주민협의회의 한 관계자는 “군사보호구역에 대해 국방부와 협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데다 환경영향평가에서도 브레이크가 걸려 사업속도가 늦어지고 있다”면서 “똑같이 지구지정을 한 경기 남양주시 별내지구는 지난해 12월 토지 보상을 마쳤다”고 했다.

    서울시 은평구 은평뉴타운 내의 토지를 수용당한 박모(53)씨는 지난해 연말 대지 50평에 대해 평당 830여만원씩 보상을 받았다. 대로변에 위치해 다른 집보다 높은 평가를 받은 박씨는 “은평 뉴타운 계획이 발표된 이후 만 3년여 만에 보상이 이뤄졌다”면서 “1년만 사업기간이 단축됐다면 토지보상가가 그만큼 낮아져 은평뉴타운 분양가 인하에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김씨와 박씨 등은 “사업 진척 속도가 느려져 보상액을 많이 받게 됐다고 좋아하는 지주는 없다”면서 “높은 보상가는 고분양가로 이어지고 이 분양가는 인근 부동산 시세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즉 보상가의 오름폭보다 인근 부동산과 아파트 가격 상승폭이 더 크기 때문에 보상받은 돈으로 쓸 만한 집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양질의 주택을 다량, 단시간 내에 공급하겠다고 공언했다. 사업기간을 단축하려면 무엇보다 토지수용이 빨리 이뤄져야 한다. 신도시와 같은 택지지구의 경우 개발계획 승인 2~3개월 전 보상공고를 내고 협의보상에 들어간다. 이후 개발계획 승인이 완료되면 협의보상이 이뤄지지 않은 땅에 대해 재결 신청을 하거나 강제수용에 나서게 된다. 판교 신도시의 경우 2003년 첫 보상공고 후 2005년 12월에야 보상이 끝났다. 그만큼 사업기간이 늘어났다.

    정부의 집값 잡기 대(大)프로젝트가 성공하려면 분양가를 낮추고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집값이 잡힌다고는 장담할 수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집 없는 무주택자가 싼값에 주택을 공급받을 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낡은 아파트를 비싼 값에 사려고 달려들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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