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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경력 호텔리어가 털어놓은 서울 특급호텔 野史

낮엔 ‘제2 국무회의장’, 밤엔 ‘야화(夜花)’ 들의 밀실

  • 최영수 SR레저개발(주) 대표이사 0319ysgd@hanmail.net

30년 경력 호텔리어가 털어놓은 서울 특급호텔 野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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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식당은 제2의 국무회의장

광복과 6·25전쟁을 거친 이후 한국에선 관광호텔의 양적 확대가 진행됐다. 1959년 29명의 민간 호텔업자로 구성된 대한관광호텔업협회가 발족했다. 1961년 박정희 정권이 ‘관광사업진흥법’을 제정한 것은 관광호텔의 획기적 발전을 가져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사회의 다른 부분에서는 외국제품 수입을 철저히 차단하면서도 호텔만큼은 규제를 상당히 완화해줬다. 박 정권의 도움으로 서울에 많은 호텔이 생겨나 호황을 누렸다. 당시 권위주의 정권하에서도 호텔리어들은 특별한 대접을 받았다. 사회 분위기 자체가 그랬다. 경찰도 통행금지 단속 때 호텔 직원 신분증을 제시하면 집으로 보내줬다.

호텔산업의 부흥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호텔 소유주 간의 개인적 친분도 적잖이 작용했다. 서울 A호텔은 북한 원산에서 양조장을 하던 거부(巨富) B씨가 월남해 지은 것이다. 호텔업계에선 B씨가 박 전 대통령의 5·16 군사정변 거사자금을 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거사에 성공한 이후 박 전 대통령은 B씨를 불러 서울시내 지도를 펼쳐 보이면서 원하는 곳에 표시하라고 했다. B씨가 조그맣게 동그라미를 치자 박 전 대통령은 측량을 하여 그 위치, 그 면적 그대로 땅을 살 수 있게 해줌으로써 B씨가 호텔을 짓게 됐다는 것이다.

C호텔은 원래 서울 차이나타운이 있던 자리에 세워졌다. 박정희 정부는 이곳에 있던 중국인들을 내쫓은 셈이다. K회장은 이 땅을 국가로부터 불하받았다. 당시 일본 미쓰비시는 이 호텔 건설에 1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가 발을 뺐다. 그러나 박 정권은 미쓰비시측을 압박해 예정대로 투자가 이뤄지게 했다. 일본은 이 호텔 건설에 별도로 100억원의 해외차관을 제공했다.



이 호텔 건너편에 있던 조선호텔은 고객을 빼앗길 것 같아 이 호텔 건설에 강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이 호텔이 들어선 뒤 이 일대에 호텔촌이 형성되면서 오히려 조선호텔은 장사가 더 잘됐다.

1962년 국제관광공사(현 한국관광공사)는 워커힐과 반도호텔을 인수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1963년 워커힐호텔이 문을 열었다. 부산과 경주 등지에도 많은 호텔이 개관했다. 조선호텔은 육군 공병대가 지었다. 그래서 이 호텔의 사원번호 1번이 공병대 병장으로 알려져 있다.

최덕문씨는 1970년대 한국 호텔업계의 전설적 바텐더였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그는 6·25전쟁 때 통역장교로 참전했다 포탄에 맞아 다리가 불편했다. ‘서서 일하는 직업’을 찾던 그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영어로 대화하며 칵테일을 만들어주는 바텐터 일에 흥미를 느꼈다. 이후 조선호텔이 바 지배인으로 그를 스카우트했다. 최씨는 해외의 칵테일 관련 자료를 죄다 끌어모아 한국어로 번역하는 데 매달렸다. 한국의 호텔들에 단시간에 칵테일 제조법이 체계적으로 보급된 것은 그의 노력 덕분이다. 웬만한 특급호텔의 음료부장은 모두 최씨의 제자라고 봐도 무방하다.

1960~70년대 호텔리어는 수입이 좋아 선망의 직종이었다. 그래서 청와대 직원이 호텔에 취업청탁을 해오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호텔이 늘어나면서 호텔 간 경쟁도 치열했다. 오늘은 업계 1위라도 내일은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1970년대에 뉴코리아호텔은 조선호텔 다음으로 큰 호텔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문을 닫게 됐다. 이 호텔 직원들은 대부분 서울 하얏트호텔로 옮겨갔다. 당시 벨맨으로 근무하던 직원은 후에 하얏트호텔의 이사가 됐다.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빌딩 자리에 있던 엠파이어호텔은 재일동포가 주인이었다. 과거엔 재일동포 소유의 호텔이 서울시내에 꽤 있었다. 퍼시픽호텔, 아스토리아호텔도 재일동포 소유였다. 퍼시픽호텔의 극장식 레스토랑인 ‘할리데이 인 서울’은 1980년대 중반까지 서울의 유흥 문화를 선도하던 곳이다.

그런데 엠파이어호텔의 주인과 박정희 전 대통령 사이에 핫라인이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아무도 이곳을 못 건드렸다. 엠파이어호텔이 운영하는 일식집에는 장관들이 워낙 많이 찾아 국무회의장을 옮겨놓은 듯했다. 지금은 강남·북 할 것 없이 유명 음식점이 많이 생겼지만, 그 무렵만 해도 고위층이 즐겨 찾는 곳은 제한적이었다. 이 일식당은 일본 관광객도 많이 찾아 서울시내에서 장사가 가장 잘되는 집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렇게 잘나가던 호텔도 결국 문을 닫았다. 2년이나 장기 투숙하던 독일인 기술자가 방값을 내지 않고 자살한 사건은 이 호텔의 불운을 알리는 전주곡이었다.

1975년경 서울시청 앞 서린관광호텔은 ‘정치 1번지’로 통했다. 커피숍의 테이블마다 전화기를 설치해 손님들이 쓸 수 있도록 한 것이 큰 효과를 봤다. 그러나 이 호텔도 이후 무리한 투자 등으로 건물을 매각해야 했다.

1978년, 가정의례준칙에 의거해 호텔 예식이 전면 금지됐다. 그러나 H호텔 등 일부 특급호텔은 문을 걸어 잠그고 고위인사들의 자녀 결혼식을 비밀리에 진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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