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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호 특별부록 | 한국의 核주권

북한의 원자력정책

‘조선반도 비핵지대화’라는 기만과 집요함으로 이룬 ‘그들만’의 핵 억제력

  • 전성훈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swc339@kinu.or.kr

북한의 원자력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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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원자력정책

한국의 아리랑 2호 위성이 찍은 함북 길주군 풍계리 일대. 북한은 이 지역에서 핵실험을 한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에 들어 북한의 제안은 더욱 구체화되었다. 1990년 5월31일 발표된 한반도 군축안(案)에서 북한은 10개항의 신뢰구축 및 군축방안을 제시했다. 이 군축안에서 북한은 한반도를 비핵지대화할 것을 주장하면서 이를 위해 ▲한국 내의 모든 핵무기가 즉각 철수되도록 공동 노력할 것 ▲핵무기의 생산과 구입을 금지할 것 ▲핵무기를 적재한 외국 비행기와 함선의 한반도 내 출입과 통과를 금지할 것을 실천방안으로 제시했다.

1991년 7월30일에는 남북한이 1992년 말까지 한반도 비핵지대화를 선언하고 1993년 말까지 주변의 핵보유국들로부터 비핵지대화의 지위를 보장받을 것을 제의하기도 했다.

이상의 제안을 보면, 북한의 비핵지대화 주장은 한국보다는 한반도에 주둔하고 있는 주한미군과 미국의 핵전력을 겨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1991년 12월 기존의 비핵지대화 주장을 접고 한국의 비핵화 정책을 수용해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에 합의했다.

한국의 비핵화 정책은 한반도에 핵무기를 두지 말자는 비핵지대화와 달리 남북한의 핵보유 금지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북한의 태도 변화에 당시 많은 사람이 ‘북한의 핵정책이 변했다’고 판단했으나, 비핵화 공동선언 합의 이후 북한이 보인 행태는 이런 변화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전술적인 변화에 불과했음을 증명해주었다.

김일성 “핵 개발 의사도 능력도 없다”



북한은 비핵화 공동선언의 이행을 위한 후속협상에서 다시 비핵지대화의 내용을 주장했다. 북한이 한국의 비핵화 정책을 수용한 것은 소련의 붕괴와 동구 공산정권의 몰락으로 인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임시방편이었다.

김일성 생존 당시부터 2003년 4월 미·중·북 3자회담에서 북한 당국자가 핵 보유를 시인하기 전까지, 핵문제에 대한 북한의 공식 발표는 “핵무기를 개발할 의사도 능력도 없다”는 것으로 일관했다. 김일성이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처음 공개적으로 표명한 것은 1977년 10월 일본 NHK 논설위원장과의 대담에서였다. 김일성은 1991년 9월26일 이와나미(岩波) 서점 사장과 한 대담에서도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할 의사도 능력도 없다고 단언했다.

1992년 신년사와 같은 해 2월20일 남북고위급회담 대표단과의 오찬 담화에서도 같은 내용의 말을 했다. 김일성은 이 오찬 담화에서 “우리에게는 핵무기가 없는 것은 물론 그것을 만들지도 않고 만들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주변의 큰 나라들과 핵 대결을 할 생각이 없으며 더욱이 동족을 멸살시킬 수 있는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라고 주장했다.

원자력 평화적 이용 가장

그러나 김일성이 이 연설을 하던 당시에 북한은 비핵화 공동선언을 위반하고 있었다. 공장 규모의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시설을 가동하고 있었고, 이를 통해 일본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탄 두 개 정도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 10∼14kg을 확보하고 있었다.

2005년 2월10일 핵무기를 만들었다는 북한 외무성의 성명과 2006년 10월9일의 핵실험은 김일성의 연설이 완전히 기만이었음을 입증한다.

북한이 원자력 기술을 습득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나 언제부터 핵무기 개발에 심혈을 기울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일본 제국주의시대에 일본인이 북한의 우라늄광을 개발하기 시작했으니 북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우라늄의 가치를 인식하게 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400만t이 넘는 양질의 우라늄이 매장된 우라늄광을 보유한 북한으로서는 원자력을 매력적인 에너지원(源)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6·25전쟁 이전인 1949년 원산의 소련문화원에서는 원자력의 기초지식을 담은 소련 원전을 한글로 번역한 자료를 토대로 원자력에 대한 강좌가 개설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드러난 바에 따르면, 평화적 목적으로 시작된 듯한 북한의 원자력 이용 정책이 1980년대 후반부터 핵무기 개발 정책으로 본격 전환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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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훈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swc339@kinu.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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