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빈 자리를 보면서 누군가 빼내었을 사진의 주인공을 혼자 생각했어요. 어쨌든 콜랭은 대단한 수집가였어요. 중국, 일본, 한국, 그가 머무는 곳마다 그 나라의 문화유산을 컬렉션했죠. 많은 물품을 모았는데, 어쩌면 그는 리진을 조선에서 ‘수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죠.”
컬렉터로서 콜랭의 모습을 그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조선의 궁중에 있는 아름다운 한 여인, 서양인의 눈으로 보기에 도자기와 같은 작품처럼 느낀 것일까. 콜랭은 리진과 헤어진 후 프랑스 여인과 결혼한다.
그는 현실적인 정치인이었다. 격동하는 근대기의 조선에서 자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외교관으로, 정치인으로 활동하는 그의 행보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는 여인보다는 한 나라의 외교관으로서의 삶에 더 충실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가 조선에 머문 기간은 1896년부터 10년간이다.
기록이 없다는 것은, 소설가로서는 어쩌면 상상력의 공간을 더 확보할 수도 있는 일이다. 작품을 구상하면서, 그리고 소설을 써내려가면서 그는 이런 생각을 하고야 만다.
‘리진, 이 여자가 정말로 존재했던 여자일까?’
명성황후도 리진과 같이 살아나고 있었다. 연재를 하던 지난해에는 명성황후에 대한 뉴스가 유독 많았다. 황후에 대한 생각도 많아지고, 그녀가 작가의 마음에 점점 더 살아났다. 리진이 명성황후의 딸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황후를 생각하면 ‘비감’ ‘슬픔’ 이런 감정들이 스며든다고 한다.
“사람 죽이기 싫어요”
이 소설은 역사소설인가.
“글쎄요. 이전에 제가 쓴 소설과는 좀 다르죠. 내 식으로 쓰면서도 나같이 안 쓰려고 한 작품이었다고나 할까. 역사소설은 아니에요. 단지 그 시대를 살던 한 여인의 이야기를 하려다보니 우리 근대 역사의 배경에 등을 기대고 있을 뿐이죠.”
그래서 결말도 사료(史料)에 의존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귀띔했다. 기록에 따르면 리진은 콜랭과 프랑스로 건너갔다가 버림받고 조선에 돌아와 결국 자결한다.
표정이 잠시 어두워지면서, 신경숙은 “소설에서 사람 죽이기 싫다”고 했다. 소설이 사실과 같아야 할 필요가 있나? 그 고민의 근본에는 사람에 대한, 사람의 죽음에 대한 그의 결 고운 마음이 있다.
“아직도 ‘깊은 슬픔’에서 은서의 죽음이 마음에 걸려요. 그땐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그녀가 생각나서…. 그래서 리진이 안 죽었으면 좋겠어요.”
무슨 말인가. 그는 은서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잠시 은서가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지내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쓰고 있는 소설이 아닌가. 그녀가 안 죽었으면 좋겠다니, 자신이 쓰고 있는 소설이 아니란 말인가. 이게 무슨 말인가.
카페 실외 테라스의 탁자와 의자에는 눈이 앉아 있었다. 세상에 빈 곳은 없는 것이다. 마음을 가지고 바라보면 돌덩이에도 따듯한 온기가 느껴진다. 하물며 한 인간의 영혼이 녹아 있는 소설, 신경숙에게는 그것이 바로 삶이면서 사람이다. 생명이다. 그는 자신의 원고지 위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안부를 궁금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