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2일을 잠만 자는 토포러(toporer), 잃어버린 손가락 대신 만들어 넣은 나무손가락에 살이 붙고 피가 돌아 육질화(肉質化)하는 피노키오 아저씨, 남녀 성기가 한 몸에 있어 자신의 정액을 자신의 질 속에 넣어 스스로 임신이 가능한 네오헤르마프로디토스, 인생에서 몇시간씩, 며칠씩 시간을 잃어버리는 타임스키퍼(time skipper)….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인 이 작품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30대 공기업 직원이 회사의 캐비닛 속 파일을 정리하다 발견한 375명의 변종 인간, ‘심토머(symtomer)’의 이야기다. 언뜻 엽기 소설 같아 보이나 읽어보면 전적으로 허무맹랑한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갖가지 에피소드와 캐릭터를 묘사한 내용 중엔 내 이웃을 연상시키는 대목들이 있다. 문학동네/392쪽/9800원
▼ 대인관계의 심리학, 자기주장의 심리학, 의사소통의 심리학 홍경자 지음
전남대 명예교수 홍경자 박사의 ‘대화의 심리학 시리즈’ 세 권이 출간됐다. 저자는 지난 30여 년간 전남대 사범대 교육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상담심리 등을 강의하고 연구한 것을 토대로 한국인의 문화와 정서에 맞는 대화의 심리와 기술을 정리해 책으로 펴냈다. 대개 처음에는 자기를 잘 드러내지 않다가, 뒤늦게 공격적으로 폭발하고 마는 자신의 혹은 상대의 감정을 어떻게 통제하고 관리해 대화의 물꼬를 틀 것인지 갖가지 사례를 바탕으로 소개하고 있다. ‘확신과 배짱을 가지고 자기표현하기’ ‘품위 있게 자기 주장하는 기술’ ‘세련된 방식으로 부탁하고 거절하며, 칭찬하고, 비평하기’ 같은 일상생활에서 대인관계에 도움을 주는 유용한 내용들이 두루 담겨 있다. 이너북스/각 232, 212, 208쪽/각 8900원
▼ 바보배 제바스티안 브란트 지음, 노성두 옮김
1494년 스위스 바젤에서 출간되어 라틴어와 유럽 여러 나라 말로 번역돼 대중적 인기를 끌었던 고전. 저자는 뛰어난 관찰력을 바탕으로 바보의 유형 100가지 이상과 그들의 다양한 행위를 진지하면서도 재치 있게 풍자시로 묘사하고 있다. 권력의 종말을 모르는 바보, 운명의 장난에 놀아나는 바보, 남을 조롱하는 바보 등 온갖 형태의 타락과 어리석음이 비판의 대상이 되는데, 특히 성경을 무시하고, 신성을 모독하는 등 기독교 신앙의 퇴락현상에 비난의 강도를 높인다. 시대 불평, 계급 풍자, 교훈 문학, 사육제 습속 등 중세말의 전통 요소도 작품 속에 잘 녹아 있다. 글을 읽지 못하는 이도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한 각 장의 목판화도 인상적이다. 안티쿠스/420쪽/2만8000원
▼ 상하이런 베이징런 루쉰 외 지음, 지세화 옮김
‘상하이런 베이징런(上海人 北京人)’은 루쉰, 린위탕, 저우쭤런, 양둥핑 등 시대를 넘나드는 중국의 문학가 16인이 각각 남방문화와 북방문화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상하이 사람들과 베이징 사람들의 각기 다른 기질에 대해 풀어 쓴 것이다. 린위탕은 “남방과 북방 중국인의 성격이나 생김새, 생각, 생활 습성의 차이는 지중해와 북유럽 사람들만큼이나 크다”고 했다. 도시의 형성 과정과 역사부터 확연히 다른 두 도시. 오늘날 개혁 개방의 상징 상하이와 정치적이고 전통적인 문화의 상징 베이징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다를까?
책에 소개된 내용을 일부 살펴보면, 한 베이징 교사가 상하이에서 길을 묻다가 크게 감동한 적이 있다. 그가 가려는 곳이 A와 B의 중간 지점인데 상하이 사람이 “A에서 내리건 B에서 내리건 거리는 같지만, A에서 내리면 차비가 0.5위안이고, B에서 내리면 1위안이니까 A에서 내리는 게 더 유리하다”고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합리적이고 실리적인 상하이 사람들 이면에는 상대를 쉽게 믿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일단 친구가 되면 죽을 때까지 신의를 지킨다고 한다.
베이징 사람들의 호방함은 손님 접대에서 드러난다. 응접실이 좁으면 손님을 침실로 데려가 침대 위에서 함께 술을 마신다. 손님이 마시다 취하면 그대로 침대에 엎어져 잠을 자라는 것. 베이징 사람들은 손님이 자기 집인 것처럼 굴어야 오히려 편안해한다. 사생활을 중시하는 상하이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일빛/460쪽/1만8000원
▼ 야쿠자와 요코즈나 조헌주 지음
1970년 스물일곱의 나이로 일본 스모의 최고봉 ‘요코즈나’에 등극했으나 그 이듬해 사망한 다마노우미. 지금껏 일본인으로만 알려졌던 그는 조선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재일 한국인 2세로, 일본 스모계를 제패하고도 ‘조센징’이라는 출생의 비밀이 밝혀질까 전전긍긍하다 요절했다. 그리고 그의 형은 ‘조센징’의 멍에를 벗고자 야쿠자의 길로 들어섰다. 형제는 ‘조선’이 무엇인지 모른 채 태어났으나 곧 ‘조선’은 도박을 업으로 삼으며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아버지의 야만과 폭력의 다른 이름이 되었고, 형제의 가슴은 조선에 대한 원망과 조센징이라는 수치심으로 채워졌다. ‘동아일보’ 도쿄특파원을 지낸 저자가 발굴한 드라마 같은 실화다. 나남출판/416쪽/1만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