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2월호

‘이명박 대세론’의 뇌관, ‘X파일’ 철저 검증

재산형성, 군 면제, 청계천·버스 의혹, 창씨개명, ‘숨겨둔 자식’…

  •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7-02-12 11: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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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권 “이명박 낙마시킬 26개 파일 준비됐다”

    선친이 ‘쓰기야마’로 창씨개명 : “민족의 아픔”

    군 면제 논란 : “지금도 결핵 흔적 있다”

    선거법 위반 : “내 인생 최대 실수…사과했고 용서받았다”

    형 이상득 의혹 : “정권은 내 뒷조사 얼마든지 해보라”



    ‘다스’ 실소유주 논란 : “맏형 도와준 건 사실”

    김경준 의혹 : “제2의 조작 폭로전 가능성”

    서초동 상가 위법 적발 : “해지처분 받고 끝났다”

    강남권 재산형성 논란 : “현대는 집만 지어줬다”

    숨겨놓은 딸 있다? : “여대생이 눈물 흘리며 껴안아서…”

    버스업계 5000억원 지원 : “시민 편익 크다”

    서울시정 비리의혹 : “행자부 감사 결과 뒤져보라”

    “이명박 잡으려면 ‘도덕성’ 아닌 ‘능력’의 허구 벗겨라”


    ‘이명박 대세론’의  뇌관, ‘X파일’ 철저 검증
    2007년 대선의 해는 ‘이명박 대세론’과 함께 출발했다. 각 언론사의 신년 여론조사 결과 이명박(李明博·65) 전 서울시장의 지지율은 대선주자 중 압도적 1위를 기록했다. 이 전 시장의 지지율은 40%가 넘어 2위 주자와의 격차를 20%포인트 이상 벌려놓기도 했다(▲동아일보-코리아리서치 : 이명박 44.9%, 박근혜 17.3%, 고건 14.1%, 손학규 3.3%, 김근태 1.8% ▲조선일보-한국갤럽 : 이명박 40.7%, 박근혜 19.3%, 고건 15% ▲중앙일보-엠비존 : 이명박 39%, 박근혜 20%, 고건 18.1% ▲SBS-한국리서치 : 이명박 40.8%, 박근혜 18.4%, 고건 17.2% ▲KBS-미디어리서치 : 이명박 36%, 박근혜 20.6%, 고건 16.3%).

    열린우리당 측은 이 전 시장에 대한 견제를 시작했다. 이에 따라 대세론과 함께 ‘검증론’도 부상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민병두 홍보기획위원장(국회의원)은 지난해 12월13일 이 전 시장의 선글라스 착용에 대해 “박정희 전 대통령을 흉내내는 퇴행적 성형”이라고 비판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이 전 시장을 검증하겠다”고 밝혔다. 여권에선 “이 전 시장과 관련해 26개의 파일이 준비돼 있다”는 루머가 흘러나온다.

    한나라당 내 경쟁 주자 캠프에서도 검증론이 대두됐다. 박근혜 전 대표 측 유승민 의원은 “우리가 이 전 시장의 도덕적, 정책적 검증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유 의원은 “언론에서 이것(검증)을 제대로 해야 하는데 아직 못하고 있다”고도 했다.

    “무책임하고 음습하다”

    대선 정국에서 이명박 대세론과 검증론은 국민적 관심이 매우 높은 ‘핫이슈’가 됐다. 열린우리당 측은 “일주일에 한 번씩…”이라고 밝힌 뒤 4주가 넘도록 잠잠하다. 이 때문에 “공당으로서 무책임하고 음습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언론이 검증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유 의원의 지적은 일리 있는 얘기이기도 하다. 국민은 ‘대통령 잘못 뽑으면 나라가 위태로워진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다. 이 때문에 차기 유력주자에 대한 정보가 풍부하게 제공되기를 원한다.

    현재 이 전 시장의 가장 큰 고민은 “이 전 시장에게서 뭔가가 나올 것”이라는, 한나라당 지지자들의 막연한 불안심리다. 검증을 거치면서 이 같은 불안심리가 상당부분 해소될 수도 있으므로 검증이 이 전 시장에게 반드시 불리한 일은 아니다.

    ‘신동아’는 취재의 법적 한도 안에서 이 전 시장의 대세론과 검증론을 심층 분석해보기로 했다. ‘26개 파일’에 대해서도 상당 부분의 이야기 얼개를 입수해 사실 확인을 해봤다. 이 전 시장은 “신동아와 언제든 만날 용의가 있지만, 대세론을 다루는 기사에 당사자가 등장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듯하다”며 인터뷰 요청을 사양했다. 대신 이 전 시장의 측근들은 적극적으로 취재에 응했다.

    〈 출생, 이름, 가족 〉

    ‘이명박 대세론’의  뇌관, ‘X파일’ 철저 검증

    2002년 서울시장선거 당시 이명박 후보의 법정 선거홍보물. 약력란에 ‘출생지’는 생략돼 있다.

    최근 한 인터넷 매체는 “이 전 시장의 출생지는 경북 포항이 아니라 일본 오사카”라면서 이 전 시장이 일본 출생 사실을 숨기려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매체는 “이 전 시장의 이름이 명박(明博, 일본식 발음은 ‘아키히로’)인 것도 일본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라는 네티즌의 글을 보도했다. 이어 이 매체는 이 전 시장의 어머니가 일본인일 것이라는 허위사실도 인터넷에 돌아다닌다고 했다. 이와 관련 “2002년 서울시장선거 때 이 전 시장이 출생지를 포항으로 허위기재해 선거법을 위반한 의혹이 있다”는 루머도 나돈다.

    선거법 위반 논란과 관련,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에 확인해본 결과 이 전 시장은 2002년 서울시장선거 당시 각 가정에 배달된 자신의 홍보물 등 선거관련 자료에 출생지를 기록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명박은 서울을 바꿉니다!’라는 그의 공식 선거홍보물 ‘약력’란은 출생지를 생략한 채 ‘동지상고(야간) 졸업(1957~1960)’으로 시작된다.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출생지는 의무적으로 기록해야 하는 사안이 아니다. 서울에서 출마하는 후보자는 대체적으로 선거전략상 출생지를 기록하지 않는다. 이 전 시장이 떳떳하지 못한 이유로 출생지를 숨겼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일부 언론과 네티즌은 이 전 시장의 출생지가 오사카라는 점을 마치 새롭게 밝혀낸 사실처럼 공표하고 있으나, 2006년 11월 발행된 ‘신동아’ 12월호 ‘대선주자의 풍수’ 기사에서 김두규 우석대 교수는 “이명박 전 시장의 출생지는 오사카인데, 정확한 위치가 알려져 있지 않다”고 썼다. 이 전 시장도 ‘신화는 없다’라는 자서전(1995년 초판)에서 자신이 오사카에서 태어났음을 밝혔다.

    한국인의 이름을 연구해온 도수희 충남대 국문과 명예교수는 “명박이라는 이름은 일본식이라고 보기 힘들다. 고구려 동명성왕, 백제 성왕(부여 명) 등 한국인 이름의 중간에 명(明)자를 사용하는 경우는 흔하다. 이 전 시장의 작명(作名)에 특이점이 없다”고 했다. 이 전 시장 측근은 “이 전 시장은 한·일 국교수립 반대 운동을 벌이다 투옥된 적이 있는 등 ‘반일 민족주의’ 전력이 있다”고 말했다.

    1월12일, 국회부의장실에서 이상득 부의장을 만났다. 이 전 시장의 출생, 가족, 친인척 문제에 대해 그의 친형인 이 부의장의 설명을 듣기 위해서다. 이 전 시장은 이충우(1907~1981)씨와 채태원(1964년 작고)씨 사이의 4남3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큰형 상은씨는 다스(주) 회장이며, 둘째형이 이 부의장이다. 또 누나 귀선씨, 여동생 윤진씨가 있으며 다른 누이와 동생은 6·25전쟁 때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이상득 부의장은 ‘일본인 생모(生母)’ 루머에 대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이 전 시장은 “내 스승은 어머니와 가난”이라고 할 정도로 어머니 채태원씨를 따랐다고 한다. 이 부의장은 정치권에서 이명박 전 시장의 ‘창씨개명(創氏改名)’ 얘기가 나오는 것과 관련, “일제 강점기 때 선친이 창씨개명을 했으며 그에 따라 우리 형제도 한때 일본 성(姓)을 썼다”고 밝혔다.

    ▼ 이 전 시장의 출생지가 일본 오사카의 어디쯤인가요.

    “어릴 적 일이라 정확한 위치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선친은 한국에서 생활이 너무 어려워 1935년 일본에 건너가 오사카의 한 목장에서 목공으로 일했어요. 거기서 1941년 이 전 시장을 낳았습니다. 광복 후 선친과 어머니, 우리 남매는 고향인 포항으로 귀국했는데, 배가 난파하는 바람에 일본에서 번 재산을 모두 잃고 말았죠.”

    ▼ 이 전 시장의 생모가 일본 여성이라는 루머가 보도되기도 했는데요.

    “그 일을 접하고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어떻게 남의 부모와 관련해 그런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지…. 나와 이 전 시장이 친형제가 아니라는 얼토당토않은 소문이 증폭된 것 같습니다.”

    ▼ 두 분이 친형제가 아니라는 소문도 있었나요.

    “이 전 시장이 2002년 서울시장이 된 뒤 나는 의도적으로 이 전 시장 근처에 얼씬도 안했어요. 서울시 공무원들이 나를 찾아오려 해도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이 전 시장 사무실에는 6개월 전 한 번 찾아갔는데 10분 만에 나왔어요. 한나라당 경선에 대해서도 얘기하지 않습니다. 국회부의장의 격을 지켜야죠. 다른 형제, 친인척도 이 전 시장과 관련된 공적인 일에 일절 간여하지 않습니다. 이러다보니 ‘이상득과 이명박 사이가 안 좋다, 친형제가 아니다’는 루머가 나온 겁니다.”

    ‘이명박 대세론’의  뇌관, ‘X파일’ 철저 검증

    이명박 전 시장 대선 캠프인 서울 견지동 ‘안국포럼’ 사무실.

    직전 대선인 2002년 대선 때는 대세론과 검증론(네거티브 캠페인)이 실제로 밀접한 ‘반비례 관계’를 보였다. 검증론이 여론에 먹혀들 경우 1위 후보의 지지율은 꺾이기 시작해 종국에는 대세론이 허물어지는 결과를 보였다.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2002년 2월 한나라당 대선주자인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은 47.5%로 ‘마(魔)의 50% 벽’을 넘어설 기세였다. 반면 상대인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은 33.7%에 그쳤다(양자 대결시). 그런데 연초 호화빌라, 원정출산 의혹 사건이 잇따라 터진 뒤인 3월23일 이회창씨의 지지율은 33.7%로 13.8% 하락한 반면, 노무현씨는 44.8%로 11.1% 상승해 1, 2위가 뒤바뀌었다. 당시 여론조사 응답자 중 무려 49.6%가 ‘호화빌라 논란이 지지후보 결정에 영향을 줬다’고 답했다.

    이회창 후보는 2002년 6월초 38.6%의 지지를 얻어 39.1%의 노무현씨(1위)와의 격차를 0.5%포인트 차로 좁혔다. 그러나 7월 들어 두 사람의 지지율 격차는 45.8% 대 31.1%로 더 크게 벌어지더니 이런 추세가 대선 막판까지 계속돼 결국 이 후보가 고배를 들었다. 한국갤럽의 ‘제16대 대통령선거 투표행태 분석’ 자료에 따르면 2002년 중순부터 본격화된 김대업씨의 병풍의혹 제기 및 검찰수사가 이회창 후보에게 상당히 불리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나타났다(응답자의 69.9%가 병역비리가 있을 것으로 봤다).

    그러나 네거티브 캠페인이 항상 유효한 것은 아니다. 2002년 대선 막판 한나라당이 제기한 안기부 도청 의혹은 사실 여부의 불명확성, 자료입수 과정의 뒷거래 의혹이 부각돼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 캠프에서 이회창 후보 검증작업을 지휘했던 핵심 인사는 “상대 후보 검증이란 ‘고고학적 발굴’과도 같다”고 했다. ‘사실 확인, 뉴스 가치, 여론의 동조’라는 3박자가 동시에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호화빌라의 경우 이회창 후보 일가가 3개 층에 나란히 살고 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 입증됐다. 이처럼 행위 자체가 100% 사실로 확인돼야 여론은 관심을 기울인다. 또한 호화빌라와 원정출산 문제는 사회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부재(不在)라는 높은 뉴스가치가 있었다. 당시 언론 환경도 박근혜 의원 탈당 등으로 이회창씨에게 좋지 않은 국면이었다. 사실, 가치, 여론 3박자가 일치하니 대세론도 무너진 것이다. 반대로 얘기하면 이렇게 3박자를 모두 맞추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 무서워 죽는 줄 알았어”

    이 인사는 이명박 전 시장의 검증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2002년 서울시장선거, 서울시장 재임 과정을 거치면서 이명박 전 시장과 관련된 많은 부분이 알려지게 됐고 평가를 받았다. ‘재탕’ 논란을 피할, 새로운 논란거리가 얼마나 나올지 모르겠다. 이회창씨는 ‘대쪽’ ‘청렴’ 이미지 하나로 성공했기 때문에 두 아들 군 면제, 호화빌라, 원정출산 등 도덕성 관련 문제가 터지자 국민이 실망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 국민이 이명박 전 시장에게 기대하는 것은 완전무결한 도덕성이 아니라 ‘능력’이다. ‘기업가 출신에겐 어느 정도 흠결은 있다’는 메시지가 은연중에 국민에게 주입되어 있다. 이런 상대에게 도덕성 관련 공격을 하더라도, 치명적 사안이 아니라면 이회창씨에 대한 공격만큼 여론에 잘 먹히지 않을 것이다. 능력으로 1위를 한 사람에게는 그 능력이 허구임을 입증해 보이는 식으로 공격을 해야 효과적인데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 인사는 “1위 후보는 정치권과 언론 검증의 집중 타깃이 된다. 수많은 사람이 녹음기, 카메라, 캠코더를 들고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할 것이다. 말 실수, 선거법 저촉, 가족의 일탈행위 등 의외의 사안이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렇다고 늘 애매한 말만 하거나 언론을 기피할 경우 ‘OOO스럽다’ 등 더 큰 역풍을 맞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박용후 에이스미디어(TV프로그램 외주제작업체) 대표는 “이명박 전 시장은 ‘점퍼 이미지’ 유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대선주자였던 고 정주영 현대 회장은 ‘나, 무서워 죽는 줄 알았어’라는 코미디언의 혀 짧은 패러디 한 방에 정치생명을 거의 잃었다. 언론이 붙여준 ‘수첩공주’라는 별명도 박근혜 전 대표에게 큰 짐이 됐다. 대세론도 따지고 보면 ‘이미지’에 불과하다. ‘희화화(戱畵化)’가 확산되는 순간 끝난다. 홍보 전략이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전 시장 부부는 서울시장직을 퇴임한 뒤 종로구 가회동 북촌 전통 한옥을 구해 전세로 들어갔다. 관광명소였던 집이었다고 한다. ‘불도저’ 이미지를 희석하기 위한 참모진의 아이디어였다. 한 측근은 “풍수 전문가의 자문도 구했다. 이 전 시장이 살게 된 동네는 반경 500m에서 대통령 2명, 총리 3명이 난 명당이라고 하더라. 다만 소방도로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게 흠”이라고 말했다.

    2006년 이 전 시장에 대한 ‘언론 환경’은 좋지 않았다. 특히 인터넷 여론을 주도하는 네이버, 다음 등 ‘포털 언론’의 공세는 매서웠다. 2006년 4월 ‘황제 테니스’ 논란이 불거졌을 때 네이버는 뉴스메인 화면을 이 주제로 ‘도배’하다시피 했다. ‘황제 테니스’ 특집란을 별도로 만드는가 하면, 제목도 ‘해명도 짜깁기’ 등으로 자극적으로 처리해 이 전 시장 측을 공격했다. 신문, 방송 등 대다수 오프라인 언론은 처음엔 침묵했으나 이처럼 인터넷 포털에서 집중적으로 사회 이슈화를 선도하자 뒤따라 받게 되어 파장이 확산됐다. 이 전 시장의 지지율 하락세도 뚜렷해졌다.

    그러나 이 전 시장이 테니스를 친 남산 실내 테니스장의 관리인인 이윤훈씨는 이후 ‘신동아’와의 최초 인터뷰에서 “황제 테니스는 없었다. 이 전 시장에 의한 특권적 코트 독점은 없었다”고 밝히며 테니스 코트 대여 전(全) 과정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핵심 당사자에 의해 의혹의 중심축이 허물어진 것이다.

    이 사건 이후 ‘포털 저널리즘’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치권에서 나왔다. 민주당 측은 “포털은 여권의 눈치를 본다. 포털은 언론사 기사를 받아쓰면서 자의적으로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정파적으로 편향되게 편집해 여론을 왜곡하고 있다”며 포털 규제 목적의 입법화를 시도했다. 이후 포털의 ‘정치 개입’ 논란은 소강상태를 맞았다. 대선정국에서 신문, 방송, 잡지, 인터넷 등 언론 환경은 주요 대선주자에게는 중요한 변수가 된다.

    검찰 등 사정기관의 태도 역시 대선의 향배를 좌우할 요인이다. 1998년 대선 때 ‘김태정 검찰’은 야당 측 김대중 후보 비자금 계좌에 대한 수사를 하지 않았다. 여당인 신한국당이 증거자료를 제시하며 수사를 요청했는데도 검찰은 거부했다. 대선중립성을 훼손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2002년 대선 때 검찰은 김대업씨의 병풍 주장에 동조해 야당 소속 이회창 후보 측을 수사했다. 수사 착수만으로도 이 후보는 결정적 타격을 입었다. 대선주자 관련 수사에 있어서 검찰에 이처럼 일관성이 없다. 이런 점에서 야당 소속 1위 후보에게 투표일까지 남은 11개월은 ‘가시밭’ ‘살얼음판’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이명박 대세론 유지된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2007년 1월11일 박동현 MRCK 대표이사, 신창운 중앙일보 여론조사 전문위원, 이상일 TNS 부장, 홍영림 조선일보 여론조사 전문기자, 고한석 사회디자인센터 소장, 김헌태 KSOI 조장, 박성민 민기획 대표, 김윤재 미국변호사, 고원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정상호 한양대 제3섹터 연구교수 등 10명의 정치-여론 전문가를 상대로 서면 인터뷰를 통해 조사한 결과 응답자들은 “이명박 전 시장의 대세론이 유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남북정상회담, 통합신당 출범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이들은 제3후보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많이 언급하는 가운데, “‘등장 과정과 비전’에 따라 새 여권주자는 경쟁력이 있다”고 내다봤다.

    이들 중 절반은 “이명박 전 시장에게 재산 문제는 큰 타격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다른 절반은 “타격을 줄 것”이라고 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는 “재산 문제 영향이 미미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바탕에는 이명박 후보의 도덕성에 대한 유권자의 기대가 약하다는 시각이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상당수 전문가는 경제와 관련된 각 대선주자의 ‘비전 경쟁’이 이번 대선에도 성패를 좌우할 핵심 요소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김무곤 교수는 “국민은 총선이나 지방선거에선 집권 정부의 ‘과거’를 평가하는 투표양상을 보인다. 그러나 대선에선 ‘미래’를 보고 선택한다. ‘심판론’보다는 ‘건설론’에 무게중심을 둔다. ‘안 된다’는 후보는 ‘해보겠다’는 후보를 이길 수 없다”고 했다.

    이 전 시장 측은 전국 광역시도에 포럼 형식의 전문가 네트워크(대구 선진한국국민포럼, 부산 밝은미래포럼, 광주-전남 나라사랑시민포럼, 울산 국원포럼, 강원 비전강원포럼, 충남 충청미래포럼, 전북 마주보며포럼, 경남 미래사회국민포럼)를 두고 있다. 현재 3000여 명이 참여하고 있으며 이중 30%는 지역 대학 교수들이다. 광주포럼 회원 200여 명은 전원이 교수다. 1월중 대전, 충북, 경북에도 포럼이 발족될 예정이다. 이들은 해당지역의 숙원사업을 공약화하는 작업을 맡고 있다. 서울에선 안국포럼, 국제전략연구소(GSI), 바른정책연구원, 구 서울시정자문위원단, 한반도운하연구회 등의 싱크탱크에서 500여 명의 교수, 전문가들이 이 전 시장을 위해 정책 개발을 맡고 있다.

    박영준 전 서울시 국장은 “전국 포럼 회원들은 자비로 사무실을 얻어 자발적으로 운영한다. 우파는 이제 정치와 선거에 적극 참여하고 희생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포럼은 그 전초단계”라고 말했다.

    “조지프 나폴리탄 가라사대…”

    그러나 이 전 시장의 경우 대선주자 중 가장 규모가 큰 조직을 운영하고 있는 만큼 자금 문제의 투명성을 유지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견지동 안국포럼의 경우 임차료, 상근직원 월급 등으로 월 2200만~2500만원이 지출된다고 한다.

    청와대의 한 비서관은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당선을 이끈 전설적 정치 컨설턴트인 조지프 나폴리탄(Joseph Napolitan)은 ‘대세론 효과는 없다’고 했다. 대선은 ‘구도’의 싸움이다. 그러나 지금의 대선주자들에겐 ‘시대정신에 대한 캐치프레이즈’가 없다”며 ‘이명박 대세론’을 평가절하했다.

    ‘큰 달이 몸 안에 들어오다’

    이런 소문은 이 전 시장의 형들(상은, 상득)은 ‘상(相)’을 돌림자로 쓰는데 이 전 시장만 이름이 ‘명박’인 점에 근거를 둔다. 이에 대해 안국포럼(이 전 시장의 대선 캠프)의 박영준 전 서울시 국장은 “이 전 시장의 어머니는 커다란 달이 몸 안에 들어오는 꿈을 꾼 뒤 이 전 시장을 잉태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밝을 명, 넓을 박’이라고 이름지었다는 것이다. 이 점은 이 전 시장이 이미 자서전 등에서 밝힌 바 있다”고 말했다.

    ▼ 일제 강점기 많은 한국인이 창씨개명을 해야 했습니다. 정치권에선 ‘이 전 시장도 창씨개명을 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일제 강점기 호적자료는 본적지 행정기관에서만 열람이 가능해 절차가 다소 복잡하기는 하지만, 향후 대선주자 검증과정에서 공개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 전 시장의 창씨개명 여부를 밝혀줄 수 있습니까.

    “숨길 게 없습니다. 선친께서 창씨개명을 했어요. ‘쓰기야마(月山)’라는 성을 썼습니다. 일제 강점기 가난한 서민이던 선친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겪은 신산고초는 이루 말로 설명하기 어려워요. 다른 대다수 한국인처럼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이름을 바꾼 겁니다. 민족의 아픔이었습니다. 다만, 이 전 시장이 스스로 창씨개명을 한 것은 아니에요. 이 전 시장은 선친이 지어준 이름을 그대로 받은 것뿐이죠.”

    일제 강점기 기록에 따르면 창씨개명은 1939년 조선총독부가 공포한 ‘조선민사령’에 따라 1940년 2월부터 8월까지 이뤄졌다. 이 전 시장은 창씨개명이 마무리된 이후인 1941년에 태어났다. 1940년 당시 한국인 가구의 79.3%가 창씨개명을 한 것으로 되어 있다. 아소 다로 일본 외상이 2003년 5월 “창씨개명은 조선인이 원해서 이뤄졌다”고 망언(妄言)을 했지만 일본 ‘아사히신문’은 “창씨개명은 일본이 조선인의 마음속까지 통제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강권적 지배였다”고 보도했다. 1982년 8월 ‘도쿄신문’에 따르면 일본 문부성은 “6개월간 창씨개명을 한 비율이 80%였다는 사실을 보면, 상당히 무리가 있었음은 확실하다”며 강제성을 시인했다. 1993년 11월 호소카와 모리히로 당시 일본 총리는 한일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여러분이 예를 들어 타국어의 사용을 강요당하고, ‘창씨개명’이라는 이상한 일이 강제되고, 군대위안부와 노동자 강제연행 등 각종 문제가 있었는데,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강요당한 데 대해 가해자로서 우리가 한 일을 깊이 반성하며…”라고 말했다.

    司正기관에서 주변 조사

    최근 한 사정(司正)기관은 전국 각 지부를 통해 주요 인사의 소득, 돈 거래 명세를 광범위하게 조사해 그 정보를 축적하고 있다. 조사대상에 이명박 전 시장의 주변 인사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 여권의 ‘이명박 검증론’과 관련, 주목되는 움직임이다. 이 사정기관 관계자는 “이명박 전 시장의 형 이상득 국회부의장이 대기업 계열사로부터 연간 5000만원 정도의 돈을 받고 있다는 보고도 올라와 있다. 문제가 있는지 알아보고 있다”고 밝혔다. 당사자인 이 부의장에게 경위를 들어봤다.

    ▼ 사정기관에 따르면 부의장께선 코오롱그룹 계열사인 FNC코오롱으로부터 연간 5000만원을 받고 있다는데요.

    “나는 1983년부터 1988년까지 코오롱상사 사장을 역임하는 등 코오롱에서 수십 년 동안 일했습니다. 코오롱 측은 내가 경영인으로서 큰 기여를 했다고 평가합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퇴임 후 1988년부터 19년째 코오롱 계열사의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월 400만~500만원을 받고 있는 겁니다. FNC코오롱은 코오롱상사의 후신입니다.”

    ▼ 국회에 겸직신고는 돼 있습니까.

    “국회에도 신고했고 세금도 제대로 내고 있어요. 그러나 다른 외부활동은 일절 하지 않습니다. 동생이 야당 유력 주자라서 정권이 내 고문료까지 뒷조사를 하나본데 얼마든지 해도 좋습니다.”

    이 전 시장은 부인 김윤옥(60)씨와의 사이에 1남3녀를 두고 있다. 막내아들 시형(29)씨는 군복무(현역)와 미국 유학을 마친 뒤 국내 한 외국계 투자은행에서 일하고 있다. 장녀 주연(36)씨와 차녀 승연(34)씨는 미국 줄리어드 음대에서 기악을 전공했고 막내딸 수연(32)씨는 이화여대 미대를 졸업했다. 셋째사위 조현범(35)씨는 한국타이어 조양래 회장의 차남으로 현재 한국타이어 부사장이다. 맏사위 이상주(37)씨는 검사 출신으로 현재 삼성화재 법무담당 상무보로 재직 중이고, 둘째사위 최의근(34)씨는 서울대 의대 내과전문의다.

    이 전 시장의 가족과 관련해 “숨겨놓은 자식이 있다”는 루머도 떠돌고 있다. 이 전 시장 측근인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반박한 바 있다. 정 의원은 2006년 8월 ‘이명박에 관한 7가지 거짓말’이라는 보도자료에서 “숨겨놓은 자식설과 관련, DNA 검사까지 다 해놓았다고 하는 얘기까지 들었다. 너무 고전적이고 유치한 흑색선전이라 대꾸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다. 한번 데려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명박 대세론’의  뇌관, ‘X파일’ 철저 검증

    1964년 고려대 재학시절 한·일 회담 반대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는 이명박 전 시장(오른쪽에서 세 번째).

    2006년 이 전 시장은 서울여대에서 강연을 한 뒤 학생들로부터 사인 공세를 받았다. 그런데 갑자기 한 여학생이 이 전 시장에게 달려오더니 그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인터넷에 숨겨놓은 자식 소문이 떠돌고 있던 차였기에 취재기자 등 주변 사람들이 순식간에 이 전 시장 주위로 몰려들었다. 이 전 시장은 사석에서 기자에게 “당시 나도 적지 않게 당황했다”고 말했다. 이 학생은 이 전 시장을 찾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고등학교 때 학비가 없어 학교를 중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교장 추천으로 학비 전액을 장학금으로 받아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이번에 이명박 전 시장의 강연을 들으면서 그 때 내가 받은 장학금이 서울시에서 준 ‘하이 서울 장학금’이었고 이 전 시장이 이 장학제도를 만든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학교와 서울시는 누가 장학금을 주는지 전혀 알리지 않았던 것이다. 너무 고마워서 이 전 시장을 끌어안게 됐다.”

    〈 병역 〉

    이명박 전 시장은 고려대 재학 중이던 1964년 6·3한일회담반대운동 당시 한일회담 반대시위를 하다 내란죄로 구속 기소된 바 있다. 다음해인 1965년 이 전 시장은 활동성 폐결핵과 기관지확장증 판정을 받아 병역이 면제됐다. 이 해 그는 현대건설에 공채로 입사한다.

    이 전 시장의 병무청 기록은 ‘1961년 갑종(현역입영대상)-63년 입영 후 귀가(질병), 64년 징병처분미필(無故), 65년 병종 제2국민역(활동성 폐결핵, 기관지확장증)’이라고 돼 있다. 이 전 시장 캠프는 최근 검사 출신인 김준선·오세경 변호사 등을 중심으로 네거티브 선전 방어팀을 운영하고 있는데, 우선적으로 군 문제에 적극 대처하고 있다. 다음은 이 전 시장 측의 설명이다.

    “이 전 시장은 1963년 8월15일 자원입대해 논산훈련소에 입소했으나 다음날 신체검사에서 고도의 기관지확장증과 축농증이 발견돼 귀가조치됐다. 1964년 재검에서 다시 질병이 발견돼 ‘다음해 다시 재검을 받으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1965년 3월29~30일 흥해국민학교에서 실시된 재검 때 보건소에서 촬영한 X-레이에서 이상이 발견돼 지정병원인 포항영남병원에서 정밀 촬영한 결과 ‘기관지확장증 고도, 폐활동 결핵 경도’가 나타나 내과 군의관과 판정관이 병종(징집면제) 판정을 했다.”

    1964년 징병처분미필이 기재된 것에 대해 이 전 시장 측은 “1964년 상반기 지정기일에 재신체검사를 받지 않았지만 같은 해 하반기 재검에 응했다. 상반기 재검에 응하지 않은 것은 1963년 말 고려대 학생회장에 당선되면서 1964년부터 학생회를 주도했고 당시 최대 이슈였던 한일국교정상화 반대운동에 매진했기 때문이다. 1964년 6월 구속됐다 10월 집행유예 선고로 석방된 뒤 같은 해 하반기 재검에 응했다. 병역기피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기관지확장증은 만성 기관지염 등으로 기관지가 탄성을 잃고 일부 변형해 확장되는 증세다. 치료를 하면 정상에 가까운 생활을 할 수 있다. 폐 활동성 결핵은 결핵균에 폐가 감염되어 나타나는 질병으로, 대부분 완치된다. 다만 일부 폐조직의 항구적 손상을 가져오기도 하며, 저절로 낫지는 않는 질병이어서 완치 때까지 항결핵제를 복용해야 한다. 기관지확장증과 폐 활동성 결핵은 서로 다른 질병이지만 동시에 걸리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이 전 시장 측은 “이 전 시장이 2006년 1월16일 국립암센터에서 흉부 X-레이 및 CT를 촬영한 결과 좌우측 폐에 기관지확장증 및 폐결핵을 앓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고 했다.

    X-레이 사진이 없는 까닭

    병역 논란과 관련,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될 수 있는 것은 1964년 3월29~30일 포항영남병원에서 정밀 촬영한 이 전 시장의 가슴 X-레이 사진이다. 그러나 취재 결과 이 사진은 시간이 워낙 오래 지나 관계기관에 보존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이 전 시장이 병역논란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의미도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병역 논란의 파괴력을 약화하는 요인도 된다.

    이 전 시장은 자서전에서 ‘현대건설에 입사한 뒤 신입사원 연수 때 정주영 회장과 밤늦도록 술을 마셨다’고 썼는데, 호흡기 질환을 앓는 사람이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실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이 전 시장 측은 “병무청 기록에 나타나듯 폐결핵은 경증(輕症)이었다. 특별한 자리에서 술을 다소 많이 마시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 전 시장은 얼마 전 조류인플루엔자 감염 농가를 다녀온 뒤 오랫동안 기침이 멈추지 않아 고생했다. 강연도 취소해야 했다. 이 전 시장 특유의 약간 쉰 듯한 목소리도 호흡기 후유증”이라고 덧붙였다.

    〈 다스, 김경준, 김모 비서관 〉

    ‘이명박 전 시장이 현대자동차 협력업체인 (주)다스(DAS,·옛 ‘대부기공’)의 실제 주인이 아니냐’는 의문도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어 왔다. 이 전 시장의 ‘숨겨놓은 재산’ 루머의 상당부분도 다스가 근원지다. 사실이면 이 전 시장은 법적, 윤리적으로 궁지에 몰릴 수 있다.

    1996년 10월10일 검찰은 총선에 출마해 당선된 이 전 시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을 조사한 끝에 이 전 시장의 선거기획단 기획부장 강모씨를 구속기소한 바 있는데, 강씨는 당시 다스 과장이었다. 2002년 이 전 시장이 서울시장에 당선된 뒤 검찰은 이 전 시장을 선거법 위반혐의로 다시 기소했으나 법원은 이 전 시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때도 다스가 등장했다. 1993년부터 1997년까지 이 전 시장이 위원장으로 있던 지구당 총무부장인 신모씨가 2000년 6월부터는 다스의 충남 아산공장 관리팀장으로 일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서울고법 판결문).

    현대자동차에 자동차 시트부품을 납품하는 다스는 일본 후지키코와의 한일합작 형태로 1987년 7월10일 설립됐다. 초기 자본금 중 3억6000만원은 한국 측이, 2억4000만원은 일본 측이 댔고 이후 증자가 이뤄졌다. 설립 당시 이 전 시장은 현대건설 사장이었다. 회사 등기부 등본에 따르면 최초 임원은 이 전 시장의 큰형 이상은씨, 김성우씨, 박헌진씨, 일본인 한 명인데 김씨와 박씨는 현대건설 출신이다. 이상은씨와 처남 김재정씨가 이 회사의 최대주주다. 이 회사는 2002년 40억원, 2003년 10억원대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다스의 김모 사장은 ‘신동아’ 인터뷰에서 이 전 시장의 형과 처남이 같은 회사의 대주주가 된 경위에 대해 “이상은 회장이 회사를 설립할 때 일시적으로 자금이 달려 이 전 시장의 처남인 김재정씨가 자금을 댔다”고 말한 바 있다.

    이 전 시장은 ‘신동아’ 인터뷰에서 “나는 다스와 전혀 관련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현대자동차는 후지키코로부터 부품을 공급받고 있었는데 정부의 자동차부품 국산화 정책이 추진되자 한일합작 회사 설립이 필요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 이상득 부의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정세영에게 얘기한 것뿐”

    “이 전 시장이 현대건설 사장 재임 때 정세영 당시 현대자동차 회장에게 얘기해 대부기공(다스의 전신)이 안착할 수 있도록 약간의 도움을 준 것으로 안다. 이상은씨가 주주인 다스와 이 전 시장의 관련성은 그것이 전부다. 지분구조는 법인 등본에 나온 그대로다. 이 전 시장은 다스에 대한 법적 권리가 전혀 없고, 주주와 운영자가 엄연히 별도로 있는데 이 전 시장을 자꾸 끌어들이는 것은 지속적인 흠집 내기로밖에는 안 보인다.”

    이 전 시장 측근은 “검찰은 다스 직원이 이 전 시장의 선거운동을 한 것과 관련해 두 차례(1996년, 2002년)에 걸쳐 조사해 모두 이 전 시장을 기소했다. 다스의 실질적 주인이 이 전 시장이었다면 강도 높게 진행된 검찰 조사에서 밝혀지지 않았을 리가 없다”고 말했다.

    다스는 ‘김경준 사건’과도 연결된다. 1995년 이명박 전 시장은 에리카 김이라는 재미교포 변호사의 서울 출판기념회에 참석했다. 미국 방문길에 교포의 소개로 한두 번 만난 인연이 있었다고 한다. 그후 1999년 4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BBK라는 투자자문회사가 설립됐다. 한국지사인 ‘BBK Capital Partners Ltd’의 대표는 에리카 김의 동생 김경준씨였다. 2000년 2월 이 전 시장은 김경준씨와 동업으로 LK이뱅크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두 사람은 각각 30억원을 투자했으며 이 회사의 공동대표에 올랐다.

    다스는 2000년 3월부터 12월까지 BBK에 190억원을 투자했다. 그런데 2001년 3월, 김경준씨가 LK이뱅크에 투자한 30억원은 BBK의 회사자금인 것으로 금융감독원 조사에서 드러났다. 김씨는 각종 서류를 위조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직후 이 전 시장은 LK이뱅크 대표이사직을 사임했으며 BBK증권중개 예비허가를 철회했다.

    BBK는 금감원 조사 직후 광주의 뉴비전벤처캐피탈(구 광은창투)을 인수해 옵셔널벤처스로 상호를 바꿨다. 김씨가 대표이사에 올랐다. 외국 기업에 인수, 합병된다는 소식에 옵셔널벤처스 주가는 급등했다. 김씨는 주식을 매각해 차익을 실현하는 한편 옵셔널벤처스의 회사자금 384억원을 빼돌린 뒤 위조여권으로 출국했다.

    이 전 시장과 다스는 각각 30억원(LK이뱅크 투자금)과 140억원(BBK 투자금)의 피해를 봤다며 미국에서 김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김경준씨는 미국 검찰에 체포되어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연방법정에서 한국 송환 판결을 받았다. 김씨의 변호인은 법정에서 “한국 검찰이 이명박 전 시장을 겨냥한 표적수사를 해 김씨가 희생양이 됐다. BBK는 이 전 시장의 회사”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금감원은 ‘신동아’에 “이 전 시장은 BBK와 전혀 관련이 없다. BBK는 김경준씨와 관련된 회사다. 서류위조 등 김경준씨가 BBK를 활용한 불법행위에도 이 전 시장은 무관하다”고 밝혔다. 여권은 금감원 등 해당 기관을 상대로 이 전 시장 관련 증거 찾기에 나섰으나 벽에 부딪히자 현재는 작업을 중단한 상태다.

    김모 비서관의 출현

    검찰은 2002년 BBK와 이 전 시장의 연루의혹에 대해 수사를 벌인 결과 이 전 시장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모 언론사는 2002년 BBK와 이 전 시장의 연루의혹을 제기한 바 있는데 언론중재위원회는 이에 대해 “이 전 시장은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다”는 정정보도문을 게재하라고 결정했다. 증권선물거래소는 “옵셔널벤처스와 이 전 시장은 관련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정치권에선 김경준씨의 한국 소환으로 검찰이 이 사건을 본격 수사하게 될 경우 이 전 시장이 곤궁에 처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검찰 관계자는 “김경준씨는 파렴치한 사기행각을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다. 그의 말은 신뢰성이 크게 떨어진다”고 했다. 김경준씨는 한국 송환을 두려워하면서도 미국 법정에서 이 전 시장에게 책임을 돌릴 증거를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 전 시장 측근은 “2002년 대선 때 김대업씨가 녹음테이프 음성까지 조작해 병풍(兵風)의혹을 제기한 점, 한인옥 여사(이회창 후보 부인) 20억원 수수 의혹이 제기됐을 때도 조작된 돈 수수 서류가 제시된 점에 주목한다. 정치권이 사기꾼의 어설픈 서류로 공세를 편다면 그것은 제2의 김대업 조작 폭로전으로 규정되어 역풍을 맞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 전 시장은 1995년 15대 총선 때 종로에서 당선됐으나 법정 선거비를 초과 지출하고 이를 폭로한 김모 비서관을 해외에 도피시킨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아 의원직을 상실했다. 그런데 서울시가 추진해온 상암동 DMC(디지털미디어시티) 국제비즈니스센터 내 초고층 랜드마크 빌딩 건설 사업의 시행권을 따내기 위해 움직이는 4개 시행사 중 한 업체에 김 모 비서관이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김씨가 최근까지 대표로 재직했던 회사 측이 랜드마크 빌딩 시행권을 받기 위해 몇 차례 방문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이 전 시장의 선거법 위반 전력은 대선 과정에서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나 충격적인 사실이 추가로 드러나지 않을 경우, 2002년 서울시장선거 때 유권자들에게 이미 심판을 받은 사안이기 때문에 ‘재탕’ 논란이 일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 전 시장 측은 “이 전 시장은 방송토론 등 여러 차례에 걸쳐 ‘내 인생 최대 실수이며 깊이 뉘우치고 있다’고 사과했다. 이 때문에 서울시장선거 때 유권자들에게 충분히 알려졌다. 유권자들이 이 전 시장의 사과와 반성을 이해했기에 이 전 시장을 선택한 것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김모 비서관이 다시 등장한 데 대해 이 관계자는 “우리는 그를 만나지 않았고 만날 이유도 전혀 없다. 랜드마크 빌딩 사업은 공개경쟁입찰과 객관적 심사에 의해 시행사가 결정되므로 로비가 개입될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상암동 DMC 사업과 관련, 열린우리당 선병렬 의원은 2006년 “이명박 시장 취임 직후 한국산학협동단지의 사업부지가 외국인학교 용도에서 주상복합시설 건립가능지역으로 바뀌었다. 한국산학협동단지 측이 큰 이익을 얻게 될 가능성이 높다”며 특혜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사안은 이후 추가적 문제 제기 없이 소강상태를 맞고 있다.

    〈 강남권 부동산 등 재산형성 〉

    2006년 8월31일자 서울시보에 공개한 이 전 시장의 재산 신고가액은 총 179억6750만원에 이른다. 명세는 서울 서초동 영포빌딩(건평 1753평) 62억8769만원, 서초동 상가(252평) 46억6646만원, 양재동 영일빌딩(830평) 43억181만원, 논현동 단독주택(대지 203평, 건평 99평) 12억2527만원, 논현동 대지(105평·배우자 명의) 6억830만원, 견지동 서흥빌딩 사무실(79.8평) 전세권 4000만원, 2006년식 에쿠스 자동차, 2006년식 그랜드 카니발 자동차, 2006년식 그랜저TG 자동차, 1998년식 쏘나타Ⅲ 자동차, 본인 예금 9억4576만원, 배우자 예금 및 보험 6728만원, 제일컨트리클럽 골프회원권 1억원, 두양산업개발클럽700 골프회원권 9200만원, 호텔롯데 헬스회원권(배우자) 570만원, LK이뱅크 출자지분 30억원 등이다.

    서울 서초동, 논현동, 양재동 등 강남권 부동산(빌딩 2채, 상가, 주택, 대지)이 이 전 시장 재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 전 시장은 주로 현대건설 재직시절 이들 부동산을 매입한 것으로 되어 있다.

    “보너스 많았다”

    ‘이명박 대세론’의  뇌관, ‘X파일’ 철저 검증

    이명박 전 시장 소유 서울 서초구 1717-1 상가 건물(맨위). 서초구청 건축물대장에는 이 건물에서 두 번 위법 사항이 적발됐으며, 이후 이들 위법사항이 해지됐다고 기록돼 있다(중간).2006년 ‘황제 테니스’ 논란 때 공개된 이 전 시장 처남과 현대 고위간부들 소유의 경기 가평군 전원주택. 이 전 시장 측근은 “YS 정권 때 사정기관이 이 전원주택의 인허가 과정 등을 조사했다”고 말했다.

    현대건설을 퇴직한 임직원 모임인 ‘현대 건우회’는 이 전 시장의 부동산 취득 등에 대해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는 곳이다. 이 단체 우한영 사무총장을 인터뷰했다. 우 총장은 이 전 시장과 함께 현대건설에서 오랫동안 재직했으며 임원으로 퇴직했다.

    ▼ 이 전 시장은 강남권 다섯 군데에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데, 현대건설과는 관련이 없습니까.

    “논현동 집은 회사에서 지어준 것으로 압니다. 개인이 땅을 구입하면 회사가 집을 지어주는 방식이었죠. 이 전 회장을 포함해 현대 계열사 사장 4명이 그런 혜택을 봤어요. 업무 성과에 대한 일종의 인센티브 성격이었죠.”

    ▼ 그 외의 다른 부동산은.

    “서초동 법원 앞 빌딩은 법원이 개발될 때 이 전 시장이 구입한 것으로 압니다. 논현동 집 외엔 회사가 이 전 시장에게 도움을 준 것은 없다고 들었습니다.”

    ▼ 이 전 시장은 강남권 부동산 구입 자금을 어떻게 마련했을까요.

    “이 전 시장은 중동 등 전세계를 돌며 공사를 많이 했고, 회사를 국내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시켰어요. 현대는 건설에서 수익을 많이 내게 되어 자동차, 조선 사업도 하게 된 것 아닙니까. 이 때문에 이 전 시장은 사주인 고 정주영 회장으로부터 보너스를 많이 받은 걸로 압니다. 한 번에 1000만~2000만원, 혹은 2000만~3000만원이었던가. 당시 서울 전농동 주택 가격이 500만원 정도였으니, 보너스로 받은 돈으로 강남권 부동산을 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죠.”

    ▼ 이 전 시장이 재산을 증식하는 과정에 회사에 피해를 준 경우가 있었나요.

    “있을 수 없는 일이예요. 내가 아는 한 전혀 없었어요. 현대건설 퇴직자 대다수는 이 전 시장을 공사(公私)가 분명하고 능력 있는 경영인으로 기억합니다.”

    ▼ 그렇게 잘 나가던 현대건설이 위기를 겪게 된 데는 이 전 시장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지 않을까요.

    “이 전 시장과는 무관한 일이에요. 이 전 시장이 1992년 퇴직하고 한참이 지난 뒤 정주영 회장 자식들의 주도권 다툼과 참모들의 반목으로 회사가 어렵게 된 거지요.”

    이 전 시장은 1993년 공직자 재산신고 때 274억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그는 재산신고 직전 서초동 법조타운 앞 땅 470평(1718-1, 1718-2)을 시세에 못 미치는 60여억원에 처분했다. 2006년 신고액은 179억원이므로 지난 13년간 그의 재산 신고액은 감소 추세에 있다.

    2002년 서울시장선거 때 김민석 당시 민주당 서울시장후보는 “이 전 시장은 재산가(당시 175억원)이지만, 월 2만원 정도의 건강보험료만 내고 있다”고 공격했다. 이 전 시장은 자신의 건물을 관리하기 위한 회사의 대표가 되어 직장보험에 가입됐는데, 자신도 종업원과 비슷한 수준의 월급을 받는 것(99만~133만원)으로 돼 있어 건강보험료도 적게 나왔다.

    이에 대해 이 전 시장 측은 “3년간 4억1770만원의 세금을 냈는데, 고의로 건강보험료를 적게 내려고 했겠는가. 공단 측이 시키는 대로 납부했는데 이후 공단 측은 ‘규정을 잘못 해석한 실수’를 인정했다”고 반박했다. 이런 가운데 당시 ‘서울 YMCA 유권자 10만인 위원회’는 서울시장후보자 자체 검증을 벌인 끝에 이명박 후보의 건강보험료 납부는 불법사항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두 번 위법, 두 번 해지

    ‘이명박 대세론’의  뇌관, ‘X파일’ 철저 검증

    2006년 서울시에 대한 행자부 감사 결과를 담은 문서.

    건축물 인허가 및 관리에 문제가 있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관할구청에서 이 전 시장 소유 부동산의 건축물대장을 살펴봤다. 그 결과 서초동 1717-1번지 지하1층, 지상3층 상가 건물(제2종 근린생활시설)의 경우 2001년 1월22일 ‘위법건축물’로 적발된 점이 드러났다. 이어 같은 해 3월31일 위법 해제된 사실이 기록돼 있었다. 당시 이 전 시장은 공직을 맡고 있지 않았다.

    이어 2003년 4월11일, 이 건물은 다시 위법건축물로 적발됐다. 사유는 ‘철판/철판. 캐노피. 7㎡’로 되어 있었다. 이 때는 이 전 시장이 서울시장직을 수행하고 있었다. 캐노피는 통상 눈, 비 등을 막아주기 위해 건물에서 돌출된 처마와 같은 구조물인데 서류상으로는 이 전 시장 소유 건물의 어느 부분인지 나와 있지 않았다. 건축물대장 기록에 따르면 9개월여 뒤인 2004년 1월26일 이 부분도 위법 해제됐다. 이 전 시장 소유 상가의 구체적인 위법 내용이 무엇인지, 또한 어떤 사후조치가 취해져 위법이 해제됐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서초구청 담당 직원을 인터뷰했다.

    ▼ 서초동 1717-1 건축물대장엔 2001년, 2003년의 위법 적발 사실만 간략히 나와 있는데, 이 건물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안을 위반한 건가요.

    “건축물대장에 기록된 내용 이상은 현재로선 알 수 없습니다.”

    ▼ 위법 내용을 처음부터 기록해두지 않은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위법 적발된 건축물의 해당 부분, 위법의 이유, 위법해지의 이유를 모두 기록해두고 있는데 현재는 관련 규정에 의거해 폐기된 상태입니다.”

    ▼ 그렇다면 이 건축물의 위법 사유가 경미한 것인지, 문제가 되는 것인지 추정할 수 없나요.

    “위법 사유가 뭔지 알 방법이 전혀 없네요.”

    ▼ 위법 해지 과정은 적절했다고 봅니까.

    “통상 건물주가 시정조치나 적법한 절차를 거치면 해지됩니다. 건축물대장에 따르면 그런 과정을 거쳤다고 봐야겠죠. 그런데 이 경우는 상세한 내용에 대한 기록이 없으니 단정적으로 얘기하진 못하죠.”

    ▼ 이 건물은 2004년 2월11일 1층 8.1㎡, 3층 54.80㎡를 각각 증축하겠다고 신청해 구청에서 증축사용승인을 받은 것으로 돼 있습니다. 이 부분이 위법 사안과 관련 있습니까.

    “구청이 법률 검토 끝에 증축사용을 허가한 것이므로 그 부분은 적법하게 처리됐다고 보면 됩니다.”

    정리하면, 이 전 시장의 서초동 상가는 두 차례 위법으로 적발됐다가 해지된 사실은 있으나, 공식 문서로 그 구체적 내용을 알기 어렵다는 얘기다.

    〈 서울시정(市政) 〉

    ‘이명박 대세론’의 혁혁한 공로자는 그가 청계천 복원과 버스 준공영제 등 서울시정(市政)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는 이미지다. 이 전 시장의 경쟁자들은 이 같은 ‘성공 신화’를 무너뜨려야 대세론을 꺾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향후 서울시정에 대한 검증작업이 치밀하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전 시장 재임 시절 서울시에서는 두 가지 비리의혹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고법은 2006년 2월 양윤재 전 부시장이 청계천 인근 주상복합빌딩 재개발 추진업자인 길모씨로부터 고도제한 해제 등의 청탁과 함께 1억원을 받은 점을 인정해 징역5년, 추징금 2억5500만원을 선고했다. 2006년 5월15일 박모 서울시 주택국장은 현대자동차 양재동 사옥 증축 인허가 과정에서 현대차 그룹으로부터 금품로비를 받은 혐의로 검찰소환을 앞둔 시점에 강물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

    현재까지 검찰에서는 새로운 수사결과가 나오지 않아 양 부시장 등의 ‘개인 비리’로 마무리되는 모양새다. 그러나 정치권 일각에서는 서울시정 관련 비리의혹 사건이 향후에 확대되기를 기대하는 시각도 있다. 이런 견지에서 몇몇 대선주자 진영은 이 전 시장이 중점적으로 추진해온 청계천 복원, 버스공영제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다.

    한 대선주자 캠프 관계자는 “청계천 복원 공사를 맡은 건설사들에게 집행된 공사대금이 실제보다 부풀려졌거나 축소된 것은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 또한 이명박 전 시장은 ‘서울시 공무원들이 청계천을 복원하기 위해 4200번이나 주변 상인 등 민원인들을 만나 설득했다’고 자주 말하고 있는데 복원 3년간 4200번 만났다는 건 지나친 과장 아니냐”고 주장했다.

    “서류상 4160번 만나”

    이에 대해 청계천 복원사업을 총괄했던 장석효 전 서울시 행정2부시장은 “공사대금 허위지급 및 기재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다음은 장 전 부시장의 설명이다.

    “청계천 복원구간 5.8㎞는 3공구로 나눠 동시에 진행했기 때문에 공기(工期)가 단축됐다. 1공구는 대림건설과 삼성건설, 2공구는 LG건설(현 GS건설)과 현대산업개발, 3공구는 코오롱건설과 현대건설이 맡았다. 서울시는 공개경쟁입찰을 통해 이들 시공사를 선정했다. 청계천 복원에는 3840억원이 들었는데 대부분 이들 시공사에 지급됐다.

    설계 발주금액과 실제 공사에 소요된 금액에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 차액은 정산하여 시공사에게 지급됐다. 발주금액과 실지급액 등에 대해선 문서로 일일이 기록을 남겨두기 때문에 속일 수가 없다.”

    장 전 부시장은 ‘4200번 논란’과 관련, “이 전 시장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청계천 사업 때 관련 민원담당 서울시 공무원은 100여 명이었다. 청계천 주변 점포는 6만여 개였고 무허가 상인, 점포 종사자까지 합쳐 청계천 사업과 관련해 20만명의 민원인이 있었다. 100여 명의 공무원은 청계천 현장에 매일 상주하면서 밤낮없이 민원인들을 만나서 이들의 요구를 듣거나 이들을 설득하는 업무를 수행했다. 공무원들은 민원인들의 요구사항 등 민원인 접촉결과를 보고서 형식으로 제출했다. 민원인과의 대화 4200번은 이런 보고건수를 통해 객관적으로 증명된다.”

    서울시 취수과 청계천관리팀은 “서울시 기록에 따르면 청계천 복원 당시 서울시 공무원들이 민원인들을 만나 대화한 횟수는 ‘4160번’으로 되어 있다. 당시 담당자에게 문의해보니 집계에 누락된 부분도 있어 실제 민원인 접촉횟수는 그보다 훨씬 많다고 한다”고 밝혔다.

    버스 준공영제와 관련해 여권의 한 인사는 “이명박 전 시장이 버스 준공영제를 시행한 이후 서울시의 버스업계 지원금이 크게 불어나 의혹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버스체계 개편은 2004년 하반기부터 지금까지 이뤄지고 있는데, 이 기간 서울시는 버스업계에 2004년 하반기 816억원, 2005년 2221억원, 2006년 1950억원 등 4987억원을 지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버스체계 개편 이전에도 서울시는 2003년 970억원, 2004년 상반기 482억원 등 버스업계에 지원을 해왔다. 개편 이후 지원금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굴절버스 도입 등 버스 서비스의 질 개선과 사실상의 요금인하 효과로 시민 만족도가 크게 높아진 점도 고려돼야 한다. 2006년부터는 버스이용자가 늘면서 2005년 대비 지원금이 271억원 감소하는 등 점차 개선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명박 전 시장은 버스 지원금 증대에도 불구하고 시정 다른 부분에서 예산을 절감해 전체적으로 서울시 부채 7000억원을 갚았다”고 덧붙였다.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시민의 버스서비스 만족도는 개편 전 58.2%에서 개편 후 86.2%(2006년)로 28%포인트 높아졌다. 하루 버스 이용자수는 개편 전(2004년 상반기) 382만7000명에서 개편 후(2006년 상반기) 445만5000명으로 늘었다. 버스와 지하철 연계 효과로 인해 하루 전체 대중교통(지하철+버스) 이용자수는 933만8000명에서 1034만4000명으로 10.8% 증가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난 10년간 대중교통 이용자수가 지속적 감소추세였던 점을 감안하면 매우 긍정적인 변화”라고 설명했다.

    시민단체인 ‘녹색교통운동’의 2005년 7월 조사에 따르면 버스체계 개편 이후 서울시민의 버스요금 부담은 7.1%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차로제에 대한 만족도는 48%, 불만족도는 13.1%로 나왔다.

    청계천과 버스 감사

    ‘이명박 대세론’의  뇌관, ‘X파일’ 철저 검증

    2006년 서울시에 대한 행자부 감사 결과를 담은 문서.

    행정자치부는 2006년 하반기 청계천 사업, 버스 준공영제 사업을 포함한 서울시정 전반에 대해 감사를 벌였다. 그 결과를 담은 ‘정부합동감사결과 처분 요구서’에 따르면 청계천 사업과 관련해선 ‘모전교 공사시 사전검토 부실에 따른 33억원 예산낭비’ 1건이 지적됐다. 그러나 138건의 처분 요구 사항 중 뇌물 수수, 횡령, 인허가 특혜 등 사안이 중대한 비리는 없었다.

    〈 한반도 운하 〉

    이명박 전 시장이 지금까지 발표한 대선 공약 중 핵심적인 것은 ‘국제과학비즈니스 도시 사업’과 ‘한반도 운하 사업’이다. 이중 한반도 운하 사업은 낙동강과 한강을 잇는 ‘경부운하’, 영산강-금강-한강을 잇는 ‘호남운하’를 건설해 물류비용 절감, 관광자원 개발, 고용창출, 낙후된 내륙 도시의 내항(內港)화를 도모하겠다는 게 취지다.

    이 전 시장 측에 따르면 대구를 중심으로 한 영남내륙, 광주를 중심으로 한 호남내륙, 충주를 중심으로 한 충청-경기 내륙의 ‘표심(票心)’을 자극하는 효과가 없지 않다. 안국포럼의 박영준 전 서울시 국장은 “설 이후 한반도 운하에 대한 본격적인 대(對)국민 홍보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운하 검증 4대 포인트

    반면 여권과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 진영에서는 한반도 운하를 꼼꼼히 검증하겠다는 태세다. 박 전 대표 측근인 유승민 의원은 이 전 시장에 대한 정책검증의 첫머리에 한반도 운하를 올려놓았다. 운하가 2007년 경선 또는 대선 국면에서 정책대결의 한 축을 이룰 것으로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운하사업 검증은 크게 네 가지로 나타날 공산이 크다. 환경오염 논란, 경제적 타당성 논란, 부동산 논란, 사업방식에 대한 논란이 그것이다.

    환경오염 논란은 운하가 지나는 한강과 낙동강이 식수원으로 이용되는 점, 국토의 단절과 훼손, 건설과정에서 부유물질 증대에 따른 수질 악화, 바지선 운항에 따른 오염사고 우려 등이 주요 논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 타당성 논란은 한마디로 ‘건설비용 대비 물류비 절감효과가 있는가’라는 얘기다. 운하 건설비 조달의 문제, 운하와 도로-철도-항만 연계비용의 문제, 바지선 운행 비용의 문제가 핵심 쟁점이다.

    부동산 논란은 운하가 지나는 전국 수 십 곳의 내항 예정지, 선착장 예정지를 중심으로 부동산 가격 안정화 기조가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에서 출발한다. 사업방식 문제의 경우, 국토를 개조하는 초대형 사업인 만큼 사업에 참여하는 민간 건설·토목기업의 이권(利權) 역시 막대할 것이므로 사업권 배분과정에서 권력형 특혜-비리 의혹이 나올 수 있다는 추정에 따른 것이다.

    이 전 시장은 최근 기자에게 “운하는 친수(親水)공간을 넓히는 친환경 사업이다. 국토의 단절이 아니라 물길로서 인정(人情)을 이어주는 것이다. 식수원-수질 문제는 대책이 마련돼 있다. 또한 운하는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열기 위해 꼭 필요한 경제정책이다. 골재 채취 등 재원 마련 방안도 있다. 사업추진은 투명하고 공정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다음은 강승규 전 서울시 공보관의 설명.

    “독일 뒤스부르크는 라인강변에 위치한 유럽 최대의 루르 공업지대 중심도시가 됐다. 내륙도시인 뒤스부르크는 RMD(라인강-마인강-도나우강) 운하 덕분에 내항을 가질 수 있게 되어 눈부신 발전을 하게 된 것이다. 운하는 한국 내륙도시 도약의 계기가 될 것이다. 또한 자동차 대신 물길을 열어두는 것은 석유 절약과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소가 절실한 한국에 꼭 필요하다”.

    이 전 시장 측은 한나라당 경선을 앞두고 운하사업의 구체적 내용을 자연스럽게 공개해 정책대결을 벌일 계획이다.

    “후보 검증은 고고학적 발굴”

    김무곤 동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선거에서 지지율이 뒤지는 후보가 1위 후보를 상대로 네거티브 캠페인(상대후보의 비리를 폭로하거나 비난해 상대후보가 지지를 받지 못하도록 하는 선거운동)을 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유권자에게 비전을 설득력 있게 홍보해 득표로 이어지게 하는 포지티브 캠페인(Positive campaign)에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투입돼야 하지만, 상대후보를 깎아내리는 데는 비용이 훨씬 적게 들고 표 대결에 있어 효과도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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