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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그 황홀한 수양의 공간

  • 일러스트·박진영

라디오, 그 황홀한 수양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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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그 황홀한 수양의 공간
개그맨이 무슨 라디오 이야기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사실 예나 지금이나 개그맨은 라디오의 핵심인력이다. DJ나 게스트로 나와 순간청취율을 올리고 프로그램을 다듬는 데 막대한 공헌을 하기 때문이다. 지금 라디오 채널을 돌려보시라. ‘개그콘서트’나 ‘웃찾사’에서 활동 중인 개그맨 한두 명이 여러분께 웃음을 선사하고 있을 것이다.

올해로 방송 9년째를 맞는 나 또한 4월 현재 SBS FM에서 ‘김영철, 황보의 싱글즈’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청취자에게 웃음과 여유를 선사하면서 돈을 버니 좋은 것은 물론이지만, 나는 라디오에 출연하면서 그 이상의 만족감을 얻는다.

나는 나와 비슷한 또래들이 그렇듯 ‘라디오 키드’다. 요즘의 인터넷처럼, 우리가 자랄 때는 유행어며 연예인 뒷이야기 같은 것들이 대부분 라디오를 통해 전파됐다. ‘집에 1대씩’에서 ‘방마다 1대씩’으로 막 바뀌던, 라디오 보급의 절정기였기에 더욱 인기였는지 모르겠다.

초등학교 6학년 때쯤에 ‘김희애의 FM인기가요’가 무지 인기 있었다. 내 ‘라디오 일기’가 시작되던 순간이다. 매일 밤 스피커에 귀를 기울이고,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 두 번, 세 번 들었다.

나는 울산 인근에서 자랐고, 당시 그 채널에서 지역 자체 방송이 나왔기 때문에 그 재밌다는 ‘별이 빛나는 밤에’는 못 들었지만, 중·고교 때는 그 옆 채널에서 나오는 ‘밤의 디스크쇼’와 ‘고현정의 FM인기가요’를 돌려가며 들었다. 언젠가는 내가 보낸 엽서가 당첨돼 당시 최고 인기 TV프로그램이던 ‘가요톱텐’의 ‘시청자 선정위원’으로 선발되기도 했다. 내 이름이 라디오에서 호명된 다음날 학교에 가면 나는 이미 스타가 돼 있었다. 그때 그 성취감이란….



그런 기억 때문인지 나는 요즘도 라디오를 진행할 때 청취자의 이름을 여러 번 불러줄 때가 많다. 어떤 때는 “OO동에 사는 혜련씨가 신청한 노래, 보아의 ‘No.1’ 듣고 올게요”라고 하고, 노래가 끝난 다음에 또 “네, 혜련씨가 신청한 노래 보아의 ‘No.1’이었습니다”라고 소리를 높이곤 한다. 예전 나의 그 희열을 못 잊어서, 아니면 그런 기쁨을 청취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담당PD는 그때마다 “(시간을 잡아먹으니) 이름은 한 번만 부르라”면서 스튜디오 바깥에서 손을 휘젓는다.

생방송의 묘미는 청취자에서 DJ로 처지가 바뀐 뒤에 더욱 실감하게 됐다. 녹음방송의 스릴을 알게 된 건 그로부터 더 시간이 흐른 뒤였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청취자와 만난다는 것은 굉장히 매력적인 일임에 분명하지만, 진행자는 물론 프로듀서, 작가, 엔지니어들도 한 달 내내 일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간혹 녹음을 할 때가 있다. 일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는 주말방송 중 몇 번은 녹음으로 돌리는 수가 많다.

녹음을 하고 나서 집에 있으면 다행인데, 바깥을 돌아다니는 경우엔 ‘확인사살’을 당하기도 한다. 얼마 전에 택시를 탔는데 어디선가 많이 듣던, 아니 익숙한 목소리가 라디오에서 나오고 있었다. 내 목소리였다. 내 라디오 프로그램을 녹음해놓지 않은 이상 나도 듣기 힘든 목소리였기 때문에 귀가 쫑긋 세워졌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나의 어색한 목소리도 그렇지만, 고개를 갸우뚱하며 날 쳐다보는 택시 기사 아저씨의 표정도 어색했다.

“네, 저 맞아요.”

“그렇죠? 맞죠?”

라디오에서 갑자기 내가 크게 웃는다. 그러면 택시 안의 나도 따라 웃고, 기사 아저씨도 웃는다.

“그럼 이건 녹음…?”

“네 그렇게 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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