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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훈 시인의 작가 열전

‘소통’을 꿈꾸는 작가 김연수

벽돌 같은 문장으로 빚어낸 ‘떨켜’ 같은 소설

  • 원재훈 시인 whonjh@empal.com

‘소통’을 꿈꾸는 작가 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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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가 번역한 그 시를 한 단락 인용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힌다.

‘소통’을 꿈꾸는 작가 김연수
착해지지 않아도 돼

무릎으로 기어 다니지 않아도 돼

사막 건너 백 마일, 후회 따윈 없어

몸속에 사는 부드러운 동물들,



사랑하는 것을 그냥 사랑하게 내버려두면 돼

절망을 말해보렴, 너의, 그럼 나의 절망을 말할 테니

그러면 세계는 굴러가는 거야.

그러면 태양과 비의 맑은 자갈들을

풍경을 가로질러 움직이는 거야

대초원들과 깊은 숲들

산들과 강들 너머까지

그러면 기러기들, 맑고 푸른 공기 드높이

다시 집으로 날아가는 거야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너는 상상하는 대로 세계를 볼 수 있어

기러기들, 너를 소리쳐 부르잖아, 꽥꽥거리는 달뜬 목소리로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이 세상 모든 것들

그 한가운데라고

-메리 올리버 ‘기러기’

김연수는 미소년형이다. 불혹이 가까운데, 소년 같은 인상과 단정한 말투가 매력적이다. 날카로우면서 부드러움을 품은 좋은 인상이다. 우리는 커피 하우스 ‘가자니아’에 마주 앉았다. 일산에서 서너 시간 집중적으로 이야기하기 적당한 장소다. 이 집에는 바라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바리스타가 있다. 상당한 미인이다. 오랫동안 안 보여서 어쩐 일인가 싶었는데, 좀 쉬었단다. 미인을 보니 일단 기분이 좋아진다.

불혹의 미소년

인생은 새옹지마라더니, 그녀가 뽑아낸 커피를 마시니 기분이 풀리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김연수는 늦가을인데도 짧은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다. 건강하게 야윈 몸매다. 역시 건강한 웃음을 짓는다. 김연수와는 그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부터 꽤 오랫동안 알고 지내는 사이지만, 만난 횟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 술자리에서 어울리거나 우연히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친구 같은 후배다.

요즘에 어떠냐고 근황을 물었다. 얼마 전에 황순원문학상을 탔으니 우문일 수도 있으나, 소설말고 뭐 다른 일은 하는 것이 없느냐는 물음이었다. 그러자 담백하게 대답한다.

“번역을 하고 있어요.”

그레이엄 그린의 소설을 번역 중이란다. 소설과 번역 일을 같이 하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너무 열심히 일하는 것이 아닌가 염려되었다. 김연수는 우리 문단에서 중요하고 매우 뛰어난 작가다. 동인문학상, 동서문학상, 대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을 탔으니 이제 누가 상 준다고 하면, 상금에 따라 달라지긴 하겠지만, 점잖게 거절할 수도 있으리라. 이런 작가는 잠시 쉬었다가 다시 작품에 매진해야 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래도 번역하는 일이 어떠냐고 물었다.

“우선 재미있어요. 그리고 책을 꼼꼼하게 읽는 훈련도 됩니다. 게다가 돈도 받으니, 저에게는 꿩 먹고 알 먹고 식의 일이에요.”

그는 번역을 오랫동안 했다. 농구잡지의 쪼가리 글을 번역하면서 시작된 번역 일은 어린이 그림책들을 비롯해 비소설과 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번역 일은 그가 소설가로 살아가게 하는 생계의 징검다리가 되기도 한다.

전업작가 생활을 하기 전 ‘출판저널’ 기자로 근무했고, 인터넷 서점인 리브로에서는 과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근무했다. 출판저널 기자 시절과 리브로 과장 사이에도 잠시 공백 기간이 있었다. 역시 글만을 쓰고 싶어서였다. 모 백과사전 편집자가 매달 일정액의 원고료를 보장해주는 일을 의뢰해서 출판저널을 그만둔다.

그런데 그 일이 만만치 않았다고 했다. 필자가 오전에 마감 원고를 쓴 이야기를 하자, 씩 웃으면서 자신도 그 기분 잘 안다고 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쓰는 글은 문학이 아니라 일이다. 일은 항상 그런 것이라는 말에 동감했다. 하지만 매달 일정액을 월급처럼 넣어주던 그 일도 어느 날 아내와 시장을 보고 있는데 걸려온 사무적인 전화 한마디, “오늘부터 원고 안 보내주셔도 됩니다”로 끝이 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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