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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40년 만에 밝혀진 진실

국가정보원 ‘과거사 진실위’ 공식 발표

“68년 신동아 차관 기사 필화사건, 87년 제작방해 사건은 명백한 언론탄압”

국가정보원 ‘과거사 진실위’ 공식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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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 ‘과거사 진실위’ 공식 발표

진실위는 중앙정보부, 안기부 시절 있었던 각종 의혹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조사 결과를 10월24일 보고서 형태로 발간했다. 사진은 중정, 안기부의 후신인 국정원 전경.

그러나 ‘신동아’측은 동 차관기사 내용은 기밀사항이 아닌 당시 보도된 공개사항이고, 경제성장에 기여한 차관도입의 긍정적 측면을 부각했을 뿐 ‘차관망국론’을 전파한 적이 없으며 중정이 차관 기사의 긍정적인 요소를 무시한 채 기사내용 중 ‘차관과 정치자금의 연관성’ 부분에 반공법을 적용한 것은 중정 업무를 과도하게 확장하여 해석한 월권임을 주장하며 반박하였다.

이후 중앙정보부는 ‘신동아’가 1968년 10월호에 영문 ‘북괴와 중·소 분열’(조순승 당시 미주리대 교수가 1968년 3월 ‘아시아학회협의회’에서 발표한 기고문)을 번역 게재하면서 김일성을 찬양하고, 북한의 위장선전 내용을 편집 없이 인용·보도함으로써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했다며 반공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였고, 12월6일 ‘신동아’ 주간 홍승면, 부장 손세일을 구속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1969년 4월 중정 수사관은 ‘북괴와 중·소 분열’ 오역 관련 반공법 위반 사건과 관련, 피의자 손세일·홍승면은 반공법 제4조1항에 해당하나 개전(改悛)의 정(情)이 현저하여 기소 유예, 천관우·김상만은 반공법 제4조1항에 해당하나 동 논문 내용을 검토하였다는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에 각각 처분함이 가하다는 의견서를 서울지검 앞으로 송부했다. 서울지검은 1969년 4월19일 신동아 필화사건 관련자 손세일, 홍승면, 천관우, 김상만에 대해 최종 기소유예 및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3. 조사 내용

1) 박정희 정권과 동아일보의 관계



송건호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은 1960년대 후반 박정희 정권과 동아일보의 관계에 대해 “1964년 언론파동 때 전국 언론기관이 이미 박 정권에 굴복하고 다만 동아, 조선, 경향, 그리고 대구매일신문만이 자유를 주장하여 저항해왔는데 -중략 - 동아일보만이 권력당국에 유일한 장애물이 되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전 동아일보 출판국장 장행훈은 동아일보의 위상에 대해 “당시 동아방송을 가진 동아일보의 위상은 현재 조선일보나 여러 방송사와 비교할 수 없으며 동아일보는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언론사였다”면서 당시 동아일보가 박 정권에 대한 비판적 기사를 지속 게재해왔던 점을 고려하면 당시 박정희 정권의 언론정책은 대(對)동아일보정책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라고 진술한 바 있다.

따라서 차관 필화사건이 발생할 당시 동아일보의 정부 비판적인 기사가 박정희 정권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추측은 ‘동아일보사史’에도 자세히 기술되어 있는데, 당시 동아일보가 취한 박정희 정권에 대한 비판 기조는 여타 언론사보다 강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며, 방송사를 소유한 동아일보의 반정부적 논조가 박정희 정권에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고 보인다.

2) 중앙정보부의 ‘차관 필화사건’ 개입 배경

손세일 당시 신동아 부장은 ‘차관기사’를 백서 형식으로 작성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중앙정보부에 연행되었는데 연행될 당시 동 기사가 반공법 4조를 위반, ‘기타의 방법으로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했음’을 고지받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그 시절 북한이 남한 내 언론기사를 이용, 대남 선전선동을 한 사례는 많았고 그와 관련 경고 또는 연행조사를 받기는 했으나 차관기사의 경우, 구속기간 및 중정의 대응태도가 전과 달랐다면서 여당의 정치자금과 관계된 민감한 성격으로 인해 차관기사가 문제되었던 것으로 진술하였다. 손세일은 “당시 경영진에서는 동아일보 계열사인 삼양社와 경방(주)에 대한 세무조사 압력을 우려하는 동시에 동아일보 전직원에 대한 병역조사 실시 등 전방위적인 압박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중정부장 김형욱은 사건개입 배경을 1968년 11월22일 김성곤 당시 공화당 재정위원장이 박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신동아’의 차관기사를 중정에서 조사하도록 사주한 정황을 설명하면서 동 기사의 문제점은 차관과 연계된 정치자금 부분이었으며 이는 차관 수혜를 부여받은 기업과 밀접하게 관련된 정치인들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하여 중정의 개입을 유도했던 것으로 증언하고 있다(김형욱·박사월, ‘김형욱 회고록’, 아침, 1985, 295~301쪽).

그러나 박창래 당시 동아일보 경제부기자는 ‘신동아’ 차관 보도사건과 1968년 3월에 발생한 ‘한국은행 필화사건’의 연관성을 주장하였다. 동 기사는 당시 한국은행이 대통령에게 건의하는 통화량 긴축정책에 대한 내용으로 주요 내용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면서 지속적으로 도입한 차관에 대한 상환능력 부재로 우리 경제에 위기가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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