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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섭 기자가 다시 열어 본 ‘이회창 취재수첩’

昌, 풍수학자가 찍어준 이촌동 이사 뒤 총체적 ‘기력’ 회복

  •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허만섭 기자가 다시 열어 본 ‘이회창 취재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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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섭 기자가 다시 열어 본 ‘이회창 취재수첩’

이회창 전 총재가 11월14일 부산 해운대구에 있는 한 장애인 재활원을 방문해 원생과 포옹하는 장면.(좌) 11월13일 오후 대구 서문 시장에서 이회창 전 총재가 30대 시민이 던진 계란을 이마에 맞자 경호원들이 이 전 총재를 에워싸고 있다.(우)

“그렇게 보고 받았고요”

TV토론에서도 이 전 총재의 말은 어색했다. 한 TV토론에서 “상품에 일괄적으로 붙는 부가세를 저소득층만 어떻게 면제해줄 수 있느냐”고 패널이 묻자 이 전 총재는 “그런데 이제 저희 전문가들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해서 올라왔는데요. 그건 뭐 가능하다고 보고를 받았고요. 그리고 그 범위를 저소득층으로 국한하기 때문에 그렇게 큰돈이 드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보고를 들었습니다”라고 답변했다.

‘보고를 받았다’는 표현이 두 번이나 들어가 있었다. TV에서 저소득층을 위한 공약을 설명할 때는 저소득층과 눈높이를 맞추고 ‘따뜻한 마음’을 담아 전해줄 필요가 있었지만, 이 전 총재의 답변에는 ‘인간미’가 없었다. ‘본인 공약 숙지 의문’ ‘답변 태도의 오만함’ 등 이미지 감점 요인이 다분했다.

신문, TV, 잡지 등 미디어를 통한 선거운동이 더욱 힘을 발휘한 2002년 대선에서 대선 후보는 언론을 통해 유권자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알릴 수밖에 없다. 언론은 후보자를 대신해 유권자에게 후보자를 ‘브리핑’한다. 후보자가 언론인에게 일부러 잘 보일 필요는 없지만 언론인에게 불필요하게 부정적 인상을 줄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이회창 전 총재 측의 경우 언론과의 관계가 그다지 매끄럽지 못했다. 한 기자는 당시 이 전 총재를 단독 인터뷰한 뒤 불만을 터뜨렸다.



“이 전 총재 측에 질문 내용을 서면으로 미리 다 줘야했다. 대면해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질문은 5개로만 제한하더라. 인터뷰를 위해 집무실에 들어가서는, 먼저 멀찍이서 이 전 총재에게 고개 숙여 인사해야 했다. 기사 거리도 안 주고 절만 시키고…. 김대중 대통령 인터뷰보다 더 까다롭다.”

이를 두고 이 전 총재만 탓할 수는 없었다. 한나라당의 선거 캠페인은 도처에서 모순투성이였다.

“표독하지도, 제왕적이지도 않은”

이 전 총재가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패한 뒤 어느 날 기자는 이 전 총재가 ‘국회 시 사랑회’라는 단체에 보낸 그의 애창시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류시화)를 읽어 보게 됐다.

물 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흐르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을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이 전 총재를 잘 아는 지인들은 “그는 표독하지 않으며 제왕적이지도 않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대법관 시절 소수의견을 많이 낸 것도 그런 성품 때문이라고 한다. 이 전 총재가 내면에 이러한 서정성, 인간애, 포용을 품고 있다면 본인은 2002년 대선에서 그것을 잘 보여주지 않은 것에 대해 회한을 갖고 있을 것이다.

대선 패배에 따른 이 전 총재 부부의 상심은 꽤 컸을 것이다. 거기다 한인옥 여사의 건강도 나빠졌다고 한다. 한인옥 여사는 다리를 수술했다. 2005년 초, 보다 못한 둘째며느리(이 전 총재의 차남 수연씨의 부인)가 김태균 수원과학대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어머님의 건강이 안 좋으신데 혹시 집터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닌지 알아봐 달라”는 얘기였다. 수연씨 부인의 친정어머니가 풍수지리로 이름이 난 김 교수를 소개해 주었다고 한다.

이 전 총재 부부는 2002년 초 호화 빌라 파문이 터지자 수 년 째 살던 종로구 가회동 빌라에서 나와 수소문 끝에 2002년 4월 서울 종로구 옥인동 단독주택을 6억5000만원에 매입해 2005년 초까지 3년여 동안 살고 있었다. 당초 이 전 총재는 용산구 동부이촌동 신동아아파트 56평짜리를 월세로 계약하려 했으나 월세가 500만원이라는 얘기를 듣고는 ‘서민정서’와 또 충돌할 수 있다고 보고 포기했었다.

김 교수는 옥인동 집을 둘러본 뒤 “이런 집에서 어떻게 선거를 치렀나. 지세(地勢)가 이 전 총재 가족과는 안 맞다. 여기 계속 살면 큰일 치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 전 총재 측은 이사할 만한 집들을 알아보고는 그 리스트를 김 교수에게 건넸다. 김 교수는 그 중 용산구 동부이촌동 신동아아파트를 찍어주었다고 한다. “단지의 위치, 동과 세대의 방향이 이 전 총재 측과 가장 잘 어울린다”고 했다. 이 전 총재 측은 옥인동 집이 안 팔리자 집을 담보로 대출을 내어, 2005년 4월28일 비어 있던 신동아아파트 56평형에 전세로 들어갔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이사할 뻔 했던 이 아파트에 3년 만에 들어오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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