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호

김창범 의전비서관

대통령과 일면식 없이 뽑힌 외교부 실력자

  • 박민혁(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입력2008-05-16 17: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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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범 의전비서관
    “의전 경험은 많지 않지만 직업 외교관 가운데 가장 엑설런트(excellent)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김창범 대통령의전비서관의 인사를 담당했던 청와대 관계자가 밝힌 김 비서관에 대한 평가다. 이명박 대통령과 큰 인연이 없던 김 비서관의 발탁은 순전히 ‘실력’과 ‘전문성’에 의한 것이란 얘기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386 최측근들이 대통령의전비서관을 맡았다. 대통령을 늘 가장 가까이에서 ‘모셔야’하기 때문에 ‘복심(腹心)’이 발탁된 것.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달랐다. ‘일면식(一面識)’도 없는 외교통상부 간부를 ‘유능하며 가장 실수가 없다’는 유명환 외교부 장관의 평가만 믿고 곁에 둔 것이다.

    실제 한 달 반가량 김 비서관과 함께 생활한 청와대 관계자들의 평가도 좋다. 김 비서관은 청와대 내부에서 ‘젠틀맨’으로 통한다고 한다. 사람이 점잖고 성격이 좋다는 이유에서다. 업무처리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말없이 꼼꼼하게 일을 처리하는 모습에서 ‘그림자 비서관’이란 얘기도 나오고 있다.

    김 비서관은 외교부에서 이른바 ‘잘나가는’ 엘리트 외교관이다.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김 비서관은 1981년 제15회 외무고시에 합격한 뒤 주일본대사관 2등서기관, 대통령비서실 파견, 주미국대사관 1등서기관, 외교부 북미3과장, 국무조정실 파견, 혁신인사기획관, 평화체제교섭기획단 단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첫 부임지인 주일대사관에서는 한·소 수교 업무를 담당했다. 그는 “소련 영사단의 한국 파견, 모스크바 주재 한국영사관 설립, 한·소 수교까지 단계별로 양국의 수교 업무를 담당할 수 있었던 것은 외교관으로서 값진 경험이었다”고 회고한다.

    김 비서관은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주미대사관에 부임해 경제력이 한 국가의 위상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치는지 몸소 느꼈다고도 했다. 청와대로 자리를 옮기기 전 외교부 신생조직인 평화체제교섭기획단 단장으로 있으면서 현재의 남북 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시키기 위한 다자안보 업무를 담당했다.

    그는 공직을 은퇴하면 그동안의 경험과 노하우를 살려 민간 외교관으로 NGO 활동을 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나라에 있는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좋은 인상을 받고 고국으로 돌아간다면 이들은 세계 각국에 한국을 알리는 훌륭한 문화 사절이 될 것입니다.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도와주는 것은 민간외교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金昌範

    생년월일 : 1960년 2월2일

    출생지 : 서울

    학력 : 명지고,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미국 존스홉킨스대 대학원 SAIS(석사)

    경력 : 외무고시 15회, 주일본대사관 2등서기관, 대통령비서실 파견, 주미국대사관 1등서기관, 외교부 북미3과장, 혁신인사기획관, 평화체제교섭기획단 단장

    상훈 : 홍조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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