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호

인명진 한나라당 윤리위원장 격정 토로

“‘나도 속았고 국민도 속았다’? 도대체 박근혜가 MB에게 뭘 속았다는 건지…”

  •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08-05-09 14: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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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대외장식용…원칙 짓밟은 계파 공천에 망나니춤 춘 꼴
    • 아무리 대통령 뜻이라도 정덕구 같은 ‘철새’를 공천하다니…
    • 친박연대와 무소속연대의 공천 불만, 일리 있다
    • 스스로 만든 당규 뒤엎는 강재섭 대표 보면서 ‘감탄’
    • 당선보다 지구당 위원장 자리 노린 ‘전당대회 공천’
    • 공천 확정 후 그만두려다 총선에서 악용당할까 봐 참았다
    • 박근혜 발언, 심증적 해당(害黨)행위지만 징계대상은 아니다
    인명진  한나라당 윤리위원장 격정 토로
    서울 구로5동에 있는 갈릴리교회는 대형 상가건물과 아파트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교인 수 500명의 평범한 이 교회가 널리 알려진 데는 담임목사의 유명세가 한몫했다. 바로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인 인명진(印名鎭·62) 목사다.

    인 목사를 찾아간 4월11일, 교회 진입로에는 박영선 통합민주당 의원의 당선사례 현수막이 나부꼈다. 박 의원 특유의 활짝 웃는 얼굴이었다. 한나라당 공천이 잘못됐다며 연일 쓴소리를 내뱉던 인 목사의 교회 앞이기에, 어색하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기묘한 풍경이었다.

    한나라당 공천심사 과정에서 인 목사의 발언은 자주 화제가 됐다.

    “계파 간 나눠먹기 공천이 된다면 한나라당 후보를 찍지 않겠다.”

    “사람을 공천해야지, 새를 공천하면 어떻게 하느냐.”



    “공천심사가 끝이 아니다. 후보자 중 처벌 전력을 고의로 누락한 사람은 끝까지 추적해 당권을 정지시키는 중징계를 하겠다.”

    “강재섭 대표와 이재오 의원은 총선 불출마를 언급할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나가 지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가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에 취임한 것은 2006년 10월. 재임 1년 반 동안 경선과 대선을 치렀고 총선을 겪었다. 언론에 비친 그의 모습은 돈키호테까지는 아니더라도 저돌적이고 무모해 보이는 ‘투사’였다. 그의 창은 언뜻 위협적이었지만 대체로 허공을 찌르는 것이었다. 과연 재야운동권 출신 목사의 정치실험은 실패로 끝난 걸까.

    실세 꼬리표 달고 온 후보들

    그의 첫인상은 짐작한 바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초등학교 교장선생님 같은 이미지. 넉넉하고 인자하면서도 때로 매섭게 회초리를 들 법한.

    ▼ 오늘 출근할 때 삼청동 길로 넘어왔는데, 꽃들이 아주 좋더라고요.

    “봄이 됐어요. 어느새 봄이 돼 가지고….”

    ▼ 꽃구경 좀 하셨습니까. 여의도에 벚꽃이 한창인데.

    “못 했어요. 선거 전까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제 조금 조용해지지 않을까, 당만 조용해지면. 그런데 조용할 것 같지 않아 걱정입니다. 내 역할이 있을 것 같지도 않지만.”

    가장 좋아하는 꽃을 묻자 줄장미라고 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수목장(樹木葬)에 쓰이기 때문이란다. ‘수목장을 실천하는 모임’에 참여할 정도로 그는 수목장에 조예가 깊다. 요즘엔 시체를 얼려 분골하는 빙장(氷葬)에도 관심을 갖고 국회 입법운동을 지원하고 있다. 그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장례법은 빙장과 수목장의 결합이다. 자신도 죽은 다음 빙장 처리된 유해가 장미나무 밑에 묻히길 바란다고 했다.

    ▼ 장미 얘기하다가 화장으로 화제가 넘어갔네요.(웃음) 오늘 인터뷰 주제는 재야운동권 출신 목사의 정치실험입니다.

    “정치실험이라… 실험은 실험이지요.”

    그가 호탕하게 웃었다.

    인명진  한나라당 윤리위원장 격정 토로

    3월27일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왼쪽에서 세 번째)가 대전·충남 총선 출마자들과 함께 거리 유세를 하고 있다.

    ▼ “계파 나눠먹기 공천이 된다면 한나라당 후보를 찍지 않겠다”고까지 말씀했는데, 실제로 누구를 찍었습니까.

    “여기(구로 을)는 중간에 (후보가) 바뀌었어요. 그래서 한나라당 후보를 찍었죠. 그런데 떨어졌어요. 재미있는 건, 정당 지지율은 (통합민주당보다) 5%인가 10%인가 더 높게 나왔어요. 이건 무슨 얘기냐, 한마디로 공천이 잘못됐다는 거죠.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조차 만족하지 못하는 공천이었다는 거죠.”

    인 목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구로 을을 실례로 들며 공천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공천심사 때 제가 딱 두 지역을 언급했어요. 제가 이 지역에서 30년 이상 살았거든요. 그러니 이 지역 민심을 잘 알지요. 그런데 공천하는 걸 보니 영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공천심사위원회에 문제 제기를 했어요. 또 한 군데는 제 고향입니다. 조상 대대로 살아왔고, 지금도 어머니가 계시고 동생과 친구들이 살고 있는 충남 당진. 그런데 거기도 공천이 잘못됐더라고요. 그러면 그 많은 지역구 중 이 두 군데만 잘못된 거냐, 아니라는 거죠.

    구로 을의 경우 처음에 8명인가 9명이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했어요. 다들 꼬리표를 달고 왔더라고요. 이재오, 홍준표, 정두언… 물론 박근혜 쪽도 있었고 이방호 사무총장의 꼬리표도 있었어요. 그런데 여기에서 살아본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그중 몇 사람이 인사하러 왔기에 내가 이렇게 물었어요. 구로동 온 지 얼마 됐느냐고. 일주일 됐대요. 구로동의 문제가 뭔지 아느냐고 묻자 대답을 잘 못해요. 물론 국회의원이 나라 일 하는 사람이지만, 그에 앞서 지역을 대표하는 일꾼이잖아요. 지역 문제 해결이 나라 일의 시작이 돼야 하는데 지역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누구누구 꼬리표를 달고 와서는 공천을 받겠다고 하니….”

    계파 추천 안 되면 문 박차고 나가

    ▼ 공천된 후보(고경화)도 마찬가지였나요.

    “마찬가지죠. 나는 이번 공천 과정을 지켜보며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역구 후보는 최소한 그 지역에서 1년이나 2년 이상 살았던 사람으로 공천해야 한다고. (현역의원을) 많이 잘라냈다, 몇 % 물갈이했다, 그런 건 의미가 없어요. 잘라낸 다음에 누구를 그 자리에 넣었느냐가 중요하지. 그런데 엉뚱한 사람을 넣은 거예요. 왜 엉뚱한 사람을 넣느냐. 한나라당 후보로만 나서면 다 된다고 보고 계파별로 자기 사람을 갖다 심은 겁니다. 이 지역은 우리가 할 거니 저 지역은 너희가 해라.

    김택기도 그래서 공천됐던 것 아닙니까(*강원 태백·영월·평창·정선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은 김택기 후보는 돈봉투 살포사건으로 총선 전 후보를 사퇴하고 구속됐다. 뇌물비리와 ‘철새’ 전력을 들어 그의 공천에 반대했던 인 위원장은 공천 확정 후 최고위원회에 후보 교체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내가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어떤 공천심사위원이 이 지역은 어떤 계파의 몫이라고 우기면 다른 위원들이 대상자가 부적절한 인물이라는 걸 알면서도 동의했다는 겁니다. 반대해봐야 소용없었다는 거예요. 자기 계파가 추천되지 않으면 문 박차고 나가버리니. 그렇게 해서 한나라당 공천이 망한 것 아닙니까. 완전히 계파 간 타협과 안배에 의한 나눠먹기였어요.”

    ▼ 목사님은 이번 한나라당 총선 성적을 높게 평가하지 않으시겠네요.

    “국민이 너그러워 153석이나 줬다고 생각해요. 공천은 분명 잘못됐어요. 원칙도 개혁도 이념도 없고, 당헌·당규에도 어긋나고.”

    김택기 후보와 더불어 대표적인 철새 정치인으로 인 목사의 표적이 된 사람이 바로 충남 당진에서 공천된 정덕구씨다. 김대중 정부에서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정씨는 17대 국회에서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의원을 지냈다. 이명박 대통령과는 각별한 인연이 있다. 고려대 동문에 같은 소망교회 신자다. 이 대통령이 한때 가입한 ‘소망교회 금융인 선교회(소금회)’ 회원이기도 하다.

    “당진에서도―짐작건대 대통령 측근이 나서서 그렇게 됐겠지만―그곳에 생전 살지도 않은 사람, 이 당 저 당 왔다갔다 한 기회주의적인 사람이 공천됐어요. 그 사람 아니라면 거기도 승리할 뻔했어요. 대통령 뜻이라 해도 그런 사람을 공천하면 안 되죠. 원칙에 맞지 않으니. 아마 대통령이 내 얘기 듣고 기분 나빴을 거예요.(웃음) 뭣도 모르고 떠든다고. 이런 얘기를 당에서 누가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윤리위원장으로서 제 임무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이건 박근혜 전 대표, 저건 강재섭 대표, 이건 아무래도 이재오 쪽인 것 같고, 저건 이상득 라인인 것 같고… 다 짐작이 가지만 눈 딱 감고 알려고 하지 않았어요. 확실하게 원칙에 어긋나는 공천만 문제 삼았어요. 그래선지 처음엔 내가 목사라 ‘친이(親李)’라고 하더니 나중엔 친박(親朴)인 것 같다고 해요. 그런데 요즘엔 ‘친박 측을 비판하는 걸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고 해.(웃음)”

    한나라당에 들어간 후 늘 긴장된 생활을 했습니다. 골리앗 앞에 맞선 다윗과도 같은 심정이었어요.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나라당에서 누가 나를 지원합니까. 때로는 실무자들도 나를 기피해요. 쓸데없이 문제 제기해 당을 시끄럽게 하는 사람이라고. 사실 제가 지금 지쳤어요. 지쳐서 그만두려고 하는 겁니다. 더는 못하겠어요. 신앙인이 아니라면 버텨내기 힘들었을 겁니다. 내 양심에 비춰 한나라당의 권력과 타협한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있어요. 당내에 형성된 전선에서 최선을 다해 싸워왔습니다.”

    인 목사는 “한나라당 정책 중 마음에 들지 않는 게 많다”면서 “대운하도 잘못된 것이라면 반대해야 한다”고 했다.

    “내가 오랫동안 몸담아온 기독교환경운동연대가 대운하 반대운동을 펼치고 있어요. 대표인 내가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이니 실무자들이 참 곤혹스러워 해요. 나한테 상의하러 오면 이렇게 말했어요. 내 눈치 보지 말고 힘 있게 추진하라고. 이명박 정부가 밀어붙이더라도 환경 문제를 계속 제기하는 게 우리의 책임이라고. 우리 교회도 대운하 반대활동을 하는 환경단체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는 며칠 전 기독교환경운동연대의 대표직을 그만뒀다. 실무자들이 거북스러워하는 게 맘에 걸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 공교롭게도 이번 총선에서 당내 대운하 3인방이라는 이재오, 박승환, 윤건영 의원이 다 낙선했습니다. 대운하에 대한 목사님 자신의 생각은 뭡니까.

    “솔직히 지금까지는 깊이 있게 생각하지 못했어요. 지금부터 공부하려 합니다. 다만 대운하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환경 측면에서 계속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고 봐요. 정부가 막 밀어붙여서는 곤란합니다. 반대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야 해요. 그렇지만 대운하 반대를 이명박 정부를 반대하는 정치 쟁점으로 활용하는 것에 대해선 반대합니다.”

    “기독교 내세운 정치행위 옳지 않아”

    ▼ 목사님은 지금 종교인으로서 정치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지난 대선 때 기독교계의 저명한 목사들이 각종 모임이나 예배시간을 통해 이명박 장로를 노골적으로 지지한 것이 물의를 빚었는데요. 어떻게 보십니까.

    “저는 안 좋다고 봅니다. 기독교 이름으로 특정 후보나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건. 정당을 만드는 것도 그렇고.”

    ▼ 이번 총선에서도 막판에 기독교계 일부에서 무슨 당을 만들었지요?

    “기독교 이름으로 정치에 나서선 안 됩니다. 나처럼 개인 자격으로 직책을 맡아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건 모르지만. 권력을 직접 추구하고 권력의 자리에 앉으려는 건 진짜 정치활동이죠. 그런 목적에서라면 마땅히 성직자 직을 내놓고 해야죠.”

    ▼ 교회의 기능이 여러 가지가 있지 않습니까. 개인의 구원에서부터 선교, 구제, 봉사, 사회참여에 이르기까지. 목사님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교회의 기능은 무엇인지요.

    “제가 목사 된 지 35년이 넘었습니다. 때에 따라 달랐던 것 같아요. 젊었을 때는 사회참여, 사회정의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최근에는 개인의 행복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어떤 가치관으로 세상을 살아야 행복할 것인가. 가치관의 긍정적인 변화를 교회가 이끌어야 한다고 봅니다.”

    ▼ 길거리나 전철에서 “예수 불신 지옥”이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잘못된 거죠.”

    ▼ 이 교회에서는 그런 활동 안 하나요?

    “자랑할 것은 아니지만 우리 교회는 헌금의 반을 밖을 위해 씁니다. 가난한 사람들, 외국인 노동자들, 장애인, 비정규직 노동자를 돕는 일에 교회 예산의 반을 씁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15년째 매주 일요일 우리 교회에 나옵니다. 현재 200~300명 돼요. 한나라당 윤리위원장 하는 것보다 이 사람들하고 일요일 오후를 같이 보내는 것이 훨씬 더 행복합니다. 또 사랑의 도시락이라고 해서 이 지역에 사는 무의탁 노인 150명한테 한 달에 두 번씩 배달합니다. 또 교회에서 운영하는 방과후 학교의 원장을 제가 맡고 있어요. 가난해서 학원에 보낼 수 없는 맞벌이 부부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죠. 내 삶의 큰 기쁨입니다. 제 인생의 경험 가운데 지금 교회에서 하는 일만큼 행복한 게 없어요.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은 외도 한 번 한 거죠.”

    ▼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그만둔 후에는 뭘 하실 계획인가요. 목회활동만으로는 성에 안 차는 분이라는 평이 있던데요.

    “(웃음) 정치발전을 위한 시민운동을 해보고 싶어요. 말하자면 한나라당 윤리위원회 같은 일을 초당적인 시민운동으로 벌이는 겁니다. 정당과 정치인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이죠. 친박연대 결성이나 박사모의 이방호 낙선운동 같은 비상식적 정치행위가 비판대상이죠. 그런데 제가 나이가 많아서….”

    ▼ 뭐 아직 한창이신데요.

    “(민주당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았던) 박재승씨하고 같이 하면 좋을 것 같은데…. 하여간 이런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을 것으로 봅니다.”

    “왜 장관과 비서까지 일찍 깨우는지”

    ▼ 혹시 이 정부에서 뭘 좀 맡아달라고 요청하면 어떡하시겠습니까.

    “글쎄요. 그런 건 기대하지 않습니다. 다만 목사의 직분, 목사로서 해온 일과 어긋나지 않는 범위에서 고려해볼 순 있겠죠. 예를 들어, 그럴 일도 없겠지만, 나보고 장관 하라고 하면 내가 하겠습니까.(웃음) 인생을 그렇게 마무리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그에게 스트레스 해소법을 묻자 기도와 찬송이라는 뻔한 대답이 돌아왔다.

    ▼ 아무리 목사님이라도 뭐 다른 게 있을 것 아닙니까.

    “저, 자전거 타요. 한강에 나가서 일주일에 서너 번, 한번에 두세 시간씩.”

    그는 골프도 치고 교인들과 고스톱도 친다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술도 마신다고 했다. 포도주는 기본이고, 예전에 노동운동할 때는 소주를 많이 마셨는데 요즘은 건강이 좋지 않아 주량이 줄었다고 한다. 술자리에서 분위기 깨지 않을 정도로만 마신다는 것.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충고를 주문하자 ‘독선(獨善)’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이 대통령의 경험이나 경륜은 굉장히 기대할 만해요. 추진력도 대단하고요. 일머리를 아는 분이잖아요. 부지런하고. 다만 부지런한 건 좋은데, 자기 혼자 일찍 일어나지 왜 장관과 비서까지 일찍 깨우는지, 나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봐요. 단거리는 모르지만 먼 길은 그렇게 가면 안 되죠. 또 부지런하고 경험 많은 사람은 남의 말을 잘 안 듣는 경향이 있어요. 내가 다 안다고, 다 해봤다고 하면서. 그 말이 무서운 것이거든요.

    이 대통령을 도왔던 사람들, 지금도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옆에서 따뜻한 충고를 많이 해줘야 합니다. 김진홍 목사 같은 분이 그런 일을 해주면 좋겠지요. 내가 한 가지 희망을 갖는 건 이 대통령이 신앙심이 깊은 분이니 하나님 앞에서 겸손할 거라는 점입니다. 언젠가 어려움이 닥칠 겁니다. 그분의 성격과 스타일 때문에 빚어지는 위기가. 그때 그 시련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도와야 합니다.”

    인명진  한나라당 윤리위원장 격정 토로
    ▼ 이번 총선 결과에 대해 진보세력의 몰락, 보수우파 중심의 정계 개편, 신(新)지역주의 할거, 집권세력에 대한 경고 등 다양한 평가가 있습니다.

    “개표를 지켜보면서 잠을 설쳤어요. 국민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153석. 한마디로 교만하지 말라는 것 아닙니까. 방송사 출구조사에서 170~180석 얘기가 나올 때 나는 한나라당 망하겠다, 이명박 정부가 불행해지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대통령의 성격과 일을 추진하는 스타일에 굉장히 염려스러운 점이 있거든요. 그런데 만약 국회에서 170석 이상을 차지하면 무소불위의 권력이 될 텐데, 그걸 누가 견제할 것인가.

    시대 흐름이 보수라는 건 인정해요. 지난 10년 동안 정권이 국민 정서와 맞지 않게 왼쪽으로 많이 치우쳤으니. 그런데 진보에 대한 반동으로 완전히 보수로 기우는 걸 저는 걱정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가 경제 살리기와 실용을 강조하는데, 그렇다면 비정규직 등 약자 문제는 어떻게 처리할 거냐. 경제만 살리면 다냐. 실용이면 다냐. 철학이 있어야 할 것 아니냐는 거죠. 철학이 없는 경제는 건강하지 못하죠. 뭐든 마구 밀어붙이는 거대한 보수세력이 탄생할까봐 국민이 보수 표를 세 군데로 나눴다고 봐요. 보수 안에서 서로 견제하라고. 정말 국민의 보이지 않는 힘을 절감했어요. 최고의 학자들이 사회학적으로 정치학적으로 아무리 잘 디자인해도 만들어내지 못할 구도를 국민이 한 표 한 표 모아 만들어냈다고 생각하니 참 기가 막히더라고요. 이명박 정부의 행운이죠.”

    인 목사는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 친박연대 보수 3각 편대의 고유 기능을 강조했다. 인위적으로 연대하거나 통합하지 말고 독자 지분을 갖고 서로 견제하는 게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통합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의 존재이유는 말할 것도 없고.

    “투표장 가고 싶지 않더라”

    ▼ 내용에선 목사님 말씀처럼 상당한 의미가 담긴 선거였지만, 형식상으로는 사상 가장 낮은 투표율을 기록한 부실 선거였죠.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이 같은 정치 무관심에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볼썽사나운 공천싸움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나도 투표장에 가고 싶지 않더라고요.(웃음) 아내도 안 간다고 하고. 그래도 무관심보다는 차선이라도 선택하는 게 국민의 도리라고 여기면서 같이 가서 투표했죠. 투표할 수 있는 상황에서 투표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 건 살면서 이번이 처음이에요.”

    ▼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인 목사님까지 그럴 정도면….

    “목사가 투표도 안 한다고 손가락질 당할까봐 투표하긴 했지만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울며 겨자 먹기로 투표하는 선거가 되면 안 된다, 정말 공천 잘해야 한다고 그렇게 충고했는데….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인 내가 한나라당 후보를 안 찍을 수도 없고, 정말 곤혹스러웠어요. 그런데 통합민주당도 마찬가지였어요. 광주 투표율이 가장 낮았잖아요. 똑같은 마음 아니었겠어요. 민주당 후보 안 찍을 수 없는데, 찍으려니 마음에 안 들고. 그러니 에이 그만두자…. 정치 지도자들이 선거를 코미디로 만든 거죠.

    나는 이방호 사무총장이 떨어진 건 국민의 의미 있는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가 그 지역에 몰려가 낙선운동한 건 코미디 아닙니까. 이념도 맞지 않는 민노당 후보가 유리하도록. 또 있어요. 나 참 기도 안 막혀서. 세계 어떤 나라에 어떤 사람의 이름을 따서 만든 정당이 있습니까. 도대체 친박연대가 뭡니까, 정당 이름이. 코미디 아닙니까. 국민을 우습게 여기는 것 아닙니까. 또 어떻게 안에 있으면서 밖으로 뛰쳐나간 사람들이 만든 정당을 지원합니까. 이게 어느 나라 역사에 있는 일입니까. 웃음 나오고 화나는 일이죠. 그러니 투표하러 가고 싶었겠습니까.”

    한밤중의 협박전화

    인명진  한나라당 윤리위원장 격정 토로

    인명진 목사가 시무하는 갈릴리교회는 대운하 반대활동을 하는 환경단체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 3월17일 최고회의에서 공천 대상자를 확정 발표한 직후 “정당이 원래 이런 곳인가. 이해할 수 없다”고 강한 불만을 터뜨리셨는데요.

    “윤리위원장의 임무는 당이 당헌·당규대로 운영되도록 하는 겁니다. 윤리위원회에서 국감 때 골프 친 의원, 향응 받은 의원, 심지어 말 잘 못한 의원까지 징계하지 않았습니까. 기준은 당헌·당규죠. 그런데 가장 중요한 정치행위인 공천 과정에는 윤리위가 소용없었습니다. 당헌·당규대로 하지 않고 자기들 멋대로 했습니다. 당규에 따르면 벌금 이상의 형이 확정된 사람은 공천 신청도 하지 못합니다. 지난해 재보선 선거에서 참패한 후 강재섭 대표가 만든 규정입니다. 그런데 그걸 안 지키겠다는 거예요. 논란 끝에 벌금이 아니라 금고가 공천 배제의 기준이 됐지요.

    그런데 그것조차 안 지키더라고요.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사람에게 공천 신청을 허용하고 실제로 공천도 줬어요. 나중에 사고 터진 김택기 건이 대표적인 경우지요. 그뿐 아니라 당규에 따르면 경선에 불복해 탈당했던 사람, 다른 당으로 옮겨 갔거나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사람, 해당(害黨) 행위자는 공천 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전혀 개의치 않고 막 주더라고요. 완전히 계파 나눠먹기로. 내가 명색이 윤리위원장인데, 당헌·당규를 들어 재심을 요청하면 귀를 기울여야 할 것 아닙니까. 최고위원회에 아무리 얘기해도 듣질 않아요. 공천심사위원회에 자료 올리면 되돌려 보내고. 들은 척도 않고 막무가내로 가더라고요. 이게 정치인가 싶었죠.”

    그의 얼굴이 붉어졌다. 공천 과정에서 자존심도 상하고 상처도 받은 듯싶었다.

    “강재섭 대표의 요청으로 내가 한꺼번에 24명을 징계한 적도 있어요. 징계하고 나면 가슴이 아파요. 밤에 잠도 안 오고. 나도 사람인데 남의 정치생명에 타격을 입히는 게 좋겠습니까. 식구들, 가까운 사람들이 걱정했지요. 겁도 없이 왜 그러느냐고. 아닌 게 아니라 협박전화 오지, 인터넷에서 공격하지, 새벽 한두 시에 전화해 술 취한 목소리로 ‘두고 보자’고 하질 않나…. 당사자뿐 아니라 주변사람들까지 그러더라고요.”

    강재섭 대표의 말 뒤집기는 그에게 정치에 대한 환멸을 느끼게 했다고 한다.

    “강 대표가 ‘밖에서 윤리위원장을 모셔 와서 당이 많이 깨끗해졌다’고 했어요. 그런데 진짜 깨끗해져야 할 공천에서는 내 얘기를 안 듣는 거예요. 그러니 나는 괜히 국민에게 미안하잖아요. 망나니처럼 앞에서 뭣도 모르고 칼춤 춘 거 아니냐. 강 대표가 2월13일 철새 공천을 하지 않겠다고 천명했어요. 나는 당 지도부의 약속이니 지켜질 줄 믿었지요. 당헌·당규도 있으니. 그런데 실제로는 철새들을 공천하지 않았습니까. 그냥 밀어붙이더라고.”

    박희태와 이상득의 차이

    그는 공천심사에 참여했던 당내 인사들을 총선 후 윤리위원회에 회부해 징계할 생각까지 했다고 털어놓았다. 대상자는 이방호, 강창희, 정종복, 임해규, 이종구 의원 5명. 공천심사위원 11명 중 6명은 외부 인사였다.

    “당헌·당규에 이러이러한 사람은 공천 주면 안 된다는 조항이 있는데, 그걸 어기고 공천을 줬으니 책임을 물으려 한 거죠. 불러다 물어봐야죠. 당신, 이 사람 공천줄 때 찬성했느냐, 반대했느냐. 찬성했다 하면 당헌·당규에 이런 조항이 있는 줄 알았느냐, 몰랐느냐고 추궁해야죠. 그렇게 책임을 물으면 다음에 공천할 때는 당헌·당규를 지키지 않겠습니까. 그런 계획을 세웠는데, 최고책임자인 이방호 사무총장과 강창희, 정종복 의원이 낙선했기 때문에 (징계를) 안 하려 합니다. 국민이 책임을 물은 셈이니.”

    그의 견해로는 공천에 관한 한 친박연대와 무소속연대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

    “당헌·당규대로 하지 않으니 공천의 원칙이 없어졌죠. 친박연대와 무소속연대 사람들이 계속 문제 삼은 게 그것이었잖아요. 원칙이 없다는 것. 그러면 공천심사위원회에서 이러이러한 게 원칙이라고 내놓아야 하는데 내놓을 게 없는 겁니다. 예컨대 당규에 따라 금고형 이상을 받은 전력이 있는 사람의 공천 신청은 거부당했어요. 서청원, 서상목, 김현철 등이죠. 그런데 김택기는 금고형 이상인데도 공천을 받았습니다. 또 박종웅의 경우 탈당한 전력을 문제 삼아 복당조차 허용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똑같은 전력을 가졌는데도 공천받은 사람이 여러 명 있어요. 누구는 여론조사로, 누구는 당선 가능성을 보고 공천했다는 겁니다. 기준이 들쑥날쑥한 거예요. 그것이 친박연대와 무소속연대를 만들어낸 거예요. 그 사람들 주장이 맞는 거죠. 공천을 잘못했기 때문에 생긴 후유증이에요.”

    인명진  한나라당 윤리위원장 격정 토로

    일주일에 서너 차례 한강에 나가 자전거 타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푼다는 인명진 목사.

    그렇다고 그가 친박연대와 무소속연대의 탈당에 공감을 표시하는 건 아니다.

    “당원이라면 부당한 일을 당했다고 해서 나가면 안 되죠. 당내에서 해결해야지 탈당해 당을 헐뜯으면서 출마하는 건 해당행위죠. 그건 그들이 잘못한 거죠. 억울한 사람이 한둘입니까. 박희태도, 김덕룡도, 맹형규도 억울하다 하죠. 그래도 이 사람들, 탈당 안 했잖아요. 예컨대 박희태는 나이 많다는 게 탈락 이유예요. 그런데 그보다 고령인 이상득은 공천됐잖아요.”

    “최연희 된 것 보세요”

    인 목사의 실망감은 생각보다 심한 듯싶었다. “이용당했다”는 표현까지 썼다.

    “정치에 회의가 들었어요. 국민에게 약속했으면 지켜야 하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나만 괜히 순진하게 이 사람들에게 이용당했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순진한 사람 데려다가 자기네 손에 피 묻힐 일을 대신 하게 하고, 원칙 준수가 가장 필요한 공천 과정에서는 철저히 무시한 거죠.”

    ▼ 총선 전에 그만두시려 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공천이 그 모양으로 되는 걸 보고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이상 내 역할이 없는 것 같아서였죠. 당헌·당규를 지킬 책임이 있는 윤리위원장의 말을 당에서 들은 척도 안 하니…. 그런데 정치하는 사람들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그렇게 얘기하는데도 한마디 대꾸도 없이 그냥 밀어붙이더라고. 너 떠들 테면 떠들어라, 우리는 간다…. 야, 이거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죠. 당 윤리위원장의 말을 무시하고 언론의 비판에도 눈감고. 국민을 얼마나 무시하면 이럴까 싶더라고요.

    그런데 왜 그때 그만두지 않았느냐. 선거 때 다른 정당들에 의해 이용당할 것 같아서였습니다. 떠날 때 좋게 떠나야지 당에 상처를 줘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박차고 나가면 굉장히 소신 있고 결단력 있는 사람으로 비칠지 모르지만 몸담았던 당에 생채기가 나지 않겠어요? 일단 총선이 끝난 다음 적당한 시기에 맡은 일을 정리하고 떠나야겠다는 생각으로 참고 머무른 겁니다.”

    인 목사는 자신의 발언에 대한 지도부의 무반응에 대해 “한편으로는 기가 막혔지만 한편으로는 고마웠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한나라당에 들어온 뒤 너무 재미있는 건 지금까지 내가 언론을 통해 수많은 말을 했는데―그중엔 지도부의 심사를 거스르는 것도 있을 테고 곤혹스럽게 하는 것도 있었겠죠―단 한 번도 내 말에 반응을 보이지 않더라는 거죠. 지도부 중 누구도. 한마디도 안 해. 와, 정말 훌륭한 당이야.(웃음) 덕분에 지금까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누구와의 교감도 없이 말하고 싶은 대로 다 말했어요. 또 하나는 윤리위 활동을 하면서 어떠한 간섭도 받지 않았다는 겁니다. 정말 독립적으로 했어요. 윤리위 활동에 문제가 있었다면 전적으로 제 책임입니다. 물론 처음엔 고생 좀 했지요. 윤리위에 들어가보니 딱 양 계파로 나뉘어 있더라고요. 다 국회의원이었죠. 내가 뭘 할 수 없는 구조였어요. 외부 인사들을 영입한 후 달라졌지요.”

    3월17일 공천이 확정된 후 인 위원장은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비리 전력자와 철새 정치인 등 12명의 후보에 대해 교체를 요구하는 한편 비리 혐의가 제기된 2명의 후보에 대해 재심을 요청했다. 당시 인 위원장은 “이제 국민이 심판할 것”이라며 공천심사위원회와 지도부를 강하게 비판했는데, 14명 중 절반만이 금배지를 달았다. 특히 철새 정치인으로 꼽은 5명의 후보 중 3명이 낙선했다.

    ▼ 교체를 요구한 후보 중 절반이 당선됐네요.

    “되고 안 되고의 문제가 아니라… 이번에 최연희씨가 된 것 보세요.(웃음) 박지원씨 보십시오. 이인제씨는 어떻고요. 그런 건….”

    ▼ 설명이 안 된다는 말씀이죠?

    “그렇죠. 되고 안 되는 것보다 중요한 건 공천 기준이죠. 정당이 국민 앞에 후보를 내놓을 때 어떤 기준으로 공천했는지 명확히 밝힐 수 있어야죠. 그래야 정당이 발전하는 것이고.”

    결론은 이방호 1인극?

    한나라당 공천은 ‘계파 나눠먹기’ ‘연줄 공천’ ‘쪽지 공천’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인 목사는 여기에 덧붙여 ‘전당대회 공천’이라는 표현을 썼다.

    “총선을 위한 공천이 아니라 전당대회를 염두에 둔 공천을 했어요. 당선보다 지구당 위원장 자리를 차지하는 걸 더 중요하게 여긴 것 같아요. 당락에 관계없이 자기 계파 사람을 지역구에 밀어 넣고 보자는 의도가 아니었나 싶어요. 그런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런 사람들을 공천할 수 있을까, 설명이 안 돼요.”

    그가 관전한 바로는 한나라당 공천 분쟁은 단순히 친박과 친이의 싸움이 아니었다. 그가 주목한 것은 이방호 사무총장의 숨은 영향력이다.

    “나중에 보니 친박, 친이의 대결만은 아니더라고요. 지방자치단체장 중에서 대권 꿈 가진 사람도 개입했고, 강재섭 대표도 뭘 어떻게 해보려 했고, 이방호 총장도 나름대로 힘을 썼어요. 이 총장에 대해 사람들이 ‘청와대 지시를 받는다’고 했지만, 내가 들은 얘기로는 청와대에서 ‘우리도 뒤통수 맞았다’고….”

    ▼ 그래요?

    “그럼 이방호가 이재오 지시를 받은 거냐. 이재오 쪽도 아니라고 하거든요. 우리도 뒤통수 맞았다….”

    ▼ 다들 뒤통수 맞았네요. 박근혜 전 대표 쪽도 당연히….

    “박근혜 쪽도 뒤통수 맞았고.”

    ▼ 그럼 누굽니까.

    “그럼 이상득이냐. 이상득 쪽에서도 뒤통수 맞았대요. 그러면 결론은, 이방호 혼자 한 거다.”

    기자와 인 목사는 한참 웃었다.

    “이방호가 자기 계파를 만들어 자기 사람을 많이 집어넣었다는 겁니다. 부산고, 연세대 라인 등. 강재섭 대표와 사이가 나쁜 것처럼 보였지만 어떤 경우엔 둘이 합작했죠. 이재오 최고위원과도 같이 한 게 있고. 또 청와대 지시를 받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죠. 이상득 국회 부의장의 의견을 대신한 것처럼도 보였고.”

    ▼ 공천심사위원회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사람이 이 총장이라고 봐야겠죠?

    “가장 컸죠. 그러니 사람들이 그렇게 공격을 하지 괜히 그러겠습니까.”

    ▼ 수도권 공천자 55명이 ‘형님 공천’이라며 이상득 부의장을 걸고넘어지기도 했잖습니까.

    “그런 면도 있죠. 그래서 나는 박근혜 전 대표 쪽의 ‘보복 공천’ 주장에 설득력이 없다고 봐요. 대국민 설득력일 뿐이죠. 그쪽에서 얻지 못한 게 뭡니까. 계파 중에서는 가장 큰 수혜자였죠. 측근 중에는 김무성 의원 하나 안 됐잖아요.”

    ▼ 그쪽 계산은 다르죠.

    “그러면 박근혜 계파 사람은 누구든지 다 공천해야 합니까. 자격이 없어도? 말이 안 되죠. 그만큼이면 많이 차지한 거지. 더 이상 뭘…. 박 전 대표가 ‘왜 원칙을 지키지 않는 공천을 했느냐’고 말했다면 많은 사람이 공감했을 겁니다.”

    “도대체 국민이 뭘 속았다는 건지”

    ▼ 그런 얘기도 한 것 같은데요.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보다는 ‘(경선 때) 박근혜 도운 게 무슨 죄냐’ ‘왜 공천에서 탈락시키느냐’ 뭐 이런 얘기가 국민에게 부각되지 않았습니까.”

    ▼ 감성적인 호소였지요.

    “나는 그런 것 때문에 박 대표의 대국민 이미지가 이번 총선에서 크게 손상됐다고 봐요.”

    2월1일 강재섭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이방호 사무총장의 퇴진을 요구했다. 공천심사위원회가 친박계 핵심인 김무성 최고위원을 벌금형 전력을 이유로 심사대상에서 제외한 게 발단이었다. 당시 인 목사는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나도 물러나겠다”며 이방호 총장을 거들었다.

    ▼ 그때는 이방호 총장이 나름대로 원칙에 충실했던 것 아닙니까.

    “그렇죠. 강 대표가 자신이 만든 당규를 지키지 않겠다고 하니 윤리위원장인 나로서는 원칙대로 하겠다는 사람을 편들 수밖에 없었죠. 그때는 이 총장이 원칙대로 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 다음에 보니 원칙대로 안 하는 거야. 참 이해할 수 없는 게 정치인이야. 철새 공천 안 하겠다고 공언한 강 대표가 철새인 최종찬(안양 동안 갑)한테 가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훌륭한 후보’라고 치켜세우질 않나.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춰야 할지.”

    ▼ 목사님 어록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사람을 공천해야지 새를 공천하면 어떻게 하느냐”인데, 사실상 정덕구 후보를 가리킨 것이죠?

    “(웃음) 맞습니다.”

    ▼ 이 대통령과 고려대 동문이고 같은 소망교회 신자인데, 신경 쓰이지는 않았습니까.

    “그런 것 고려하지 않았어요. 아무리 대통령의 의중이 실린 공천이라도 잘못된 건 잘못됐다고 누군가 얘기를 해야죠. 내가 뭐 자리 욕심이 있다거나 청와대 덕을 볼 생각이 있다면 그런 말 못 했겠죠.”

    ▼ 비슷한 맥락에서 김장수 전 국방부 장관이 한나라당 비례대표가 된 것을 비판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장관에 임명됐다면 괜찮았을 텐데 … 전문성이 있으니. 그런데 의원은 경우가 아닌 것 같아요. 격이 안 맞잖아요. 김전 장관에 대해 실망하는 국민이 많은 것 같아요.”

    18대 총선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박근혜 전 대표의 대중적 흡인력과 파괴력이다. 그의 말 한마디에 한나라당은 휘청거렸고, 영남의 민심이 출렁거렸다. 그의 깃발을 들고 한나라당에 맞선 친박연대와 무소속연대는 기대 이상의 목표를 달성했다. “18대 총선의 승자는 한나라당이 아니라 박근혜”라는 언론의 평가는 과장된 게 아니다.

    ▼ 박근혜 전 대표가 공천과 관련해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고 했는데….

    “누구하고 뭘 약속했는데요?(웃음) 그렇게 선문답하듯 얘기할 게 아니라 자기가 누구와 어떤 약속을 했는데 속았다는 건지, 또 국민은 뭘 속았다는 건지 밝혔어야죠.”

    박관용의 분통

    ▼ 공천의 공정성에 대한 문제 제기라기보다는 자파 챙기기라는 비판이 제기될 만했죠.

    “차라리 ‘이명박 대통령과 만났을 때 우리 계파에 얼마를 주기로 했는데 안 지켜졌다. 그러니 속은 거다’ 이렇게 솔직하게 말하면 나았죠. 또 국민이 속았다는데,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냐. 속은 게 뭐냐. 얘기 좀 해봐라. 그래야 우리도 속은 줄 알지.(웃음) 내용은 밝히지 않고 속았다고만 하니 우리도 답답하죠.”

    ▼ 박 전 대표의 일부 언행은 해당행위라고 볼 수 있지 않나요? 목사님이 이것을 문제 삼지 않은 것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던데요. 봐준 것 아니냐고.

    “심증적으로는 해당행위가 맞아요. 유감스러운 일이에요. 자신은 박사모와 관계없다고 했지만 박사모의 해당행위는 박 전 대표를 빼고는 설명이 안 되죠. 또 밖으로 뛰쳐나간 친박연대가 자기 이름을 걸고….”

    ▼ 사실상 방조한 것 아닙니까.

    “그 사람들한테 ‘그렇게 하지 말라’ ‘내 이름 팔지 말라’고 했어야 하는데 그냥 가만히 내버려뒀잖아요. 방조한 거죠. 그러나….”

    ▼ 윤리위원회 징계감 아닌가요.

    “행위가 있어야지. 어떤 구체적인 행위가 있어야 징계할 것 아닙니까.”

    ▼ 말은 있었잖아요.

    “‘살아서 돌아오라’….”

    ▼ 당을 박차고 나간 사람들을 지원하는 얘기 아닙니까.

    “나 같아도 가까운 후배가 탈당해 출마한다고 하면 ‘잘해봐라’ 그러지 ‘너 가서 죽어라’ 하겠습니까.(웃음) 그건 인간적인 정리죠.”

    인 목사는 이와 관련해 일화 하나를 들려줬다.

    “한번은 경상도 쪽에서 난리가 났어요. (공천에서 탈락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최구식(진주 갑) 의원이 보도자료를 냈는데, 박관용 전 국회의장과 최병렬 전 대표가 지원유세를 하러 온다는 내용이 있다는 거예요. 내가 깜짝 놀라 박 전 의장과 최 전 대표한테 전화했어요. 가시면 안 된다고. 해당행위이기 때문에 윤리위에서 보고만 있을 수 없으니 제가 난처해진다면서 만류했지요. 그랬더니 박 전 의장은 전에 비서로 데리고 있던 사람이라며, 최 전 대표는 집안 조카라며 안 가볼 수 없다는 거예요.

    일단 막아놓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박 전 의장이 전화를 걸어와 ‘지놈들이 공천 잘못해놓고 인간적인 의리도 끊으라는 얘기냐’면서 ‘탈당하고 대국민 성명을 발표한 다음 내려가 지원유세를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그럼 지원유세는 하지 말고 선거사무실만 다녀오시라. 그 정도는 윤리위원장으로서 눈감아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박 전 의장이 내려가 최 의원 손 한번 잡고 돌아왔지요. 박근혜 전 대표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인간적으로 이해되는 면이 있지요. 내가 봐도 친박연대나 무소속연대에 억울한 사람이 있거든요. 사실은 제가 속으로 빌었어요. 제발 박 전 대표가 선을 넘지 말기를. 다행히 구체적 행위를 하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문제 삼지 않은 겁니다. 봐준 게 아니라.”

    “근본적인 변화는 역부족”

    인 목사의 정치참여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시각과 부정적인 시각이 있다. 긍정적인 평은 한나라당의 윤리적 정화에 이바지했다는 것이고, 들러리만 섰다는 게 부정적인 평이다. 그 자신은 어떻게 평가할까.

    “일종의 정치실험 아닙니까. 윤리위원장이 굉장히 힘 있는 자리거든요. 나 같은 사람이 한나라당에서 이런 일을 했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에서 나보고 통제가 불가능한 사람이라고 했잖아요. 부정적인 면은 성과가 크지 않았다는 거죠. 난 처음에 내가 애쓴 만큼 한나라당이 변화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공천하는 걸 보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제자리로 되돌아간 느낌이었습니다. 내 활동이 당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엔 역부족이었던 거죠. 윤리위원장 직책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근본적이고도 본질적인 문제엔 접근하지 못한 겁니다.”

    인 목사의 윤리위 활동은 종종 당내 반발에 부딪혔다. 초기엔 징계도 맘대로 못했다. ‘광주 해방구’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김용갑 의원과 피감기관에서 평일에 골프를 친 김학송, 공성진, 송영선 의원을 징계하려 했으나 당사자들의 강력한 반발로 흐지부지됐다.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는 ‘공천 살생부’ 발언을 한 정두언 의원과 ‘이명박 재산 8000억설’을 흘린 곽성문 의원에 대해 제명 방침을 세웠다가 ‘당원권 정지’로 물러서기도 했다.

    ▼ 한나라당에서 칠고초려 끝에 영입한 걸로 알려졌습니다. 재야운동권 출신 목사가 가장 보수적인 정당에 들어갈 때는 어떤 포부가 있었을 것 아닙니까. 당을 어떻게 바꿔보겠다는.

    “1차적인 목표는 도덕적으로 국민의 지탄을 받는 정당을 정화하는 거였죠. 당에서도 그런 걸 기대했을 테고. 그 점에서는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봅니다. 그동안 함부로 행동했던 것, 이를테면 국정감사 때 향응을 받고, 술 먹고 주정하고, 성희롱하고, 골프장에서 부적절하게 행동하는 건 이제 더는 한나라당에서 용납되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제가 더 욕심을 낸 건 근본적인 변화였습니다. 그런데 거기까지는 제 영향력이 미칠 수 없었어요. 당에서도 거부반응을 보였고. 윤리위원장이 정치까지 관여한다고. 하지만 당헌·당규대로 당을 운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윤리죠. 짐작건대 앞으로 한나라당에서 나 같은 윤리위원장은 안 두려 할 겁니다.”

    ▼ 이번에 데어서요?

    “처음에 나를 데려갈 때 내가 그랬거든요. 내가 간단한 사람이 아니다, 당신들 후회할 거다, 무거운 짐이 될 거라고. 대선 끝나고 그만두려 하자 총선 때까지만 있어달라고 해서 남았어요. 총선 때도 어떤 역할을 해달라는 요청이었죠. 그래놓고는 내 얘기를 듣지 않더라고요. 못 들은 척하고 차단하고. 술 먹고 실수하는 사람이나 다스려달라는 뜻이었죠.”

    ▼ 대외적 간판으로 활용하려는 속셈도 있었겠죠.

    “그게 훨씬 더 컸겠지요. 우리가 외부에서 이런 사람을 데려와 이런 징계도 한다고. 장식용으로.”

    “2년 이상 거주자만 공천신청 받아야”

    현재 윤리위 활동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당내 윤리위원 중 몇 명이 낙선해 위원회 구성 자체가 힘들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다. 인 목사는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새 집행부가 윤리위를 새로 구성하면 한나라당을 떠날 것”이라고 밝혔다.

    “윤리위원장을 그만두기 전에 꼭 바꾸고 싶은 게 몇 가지 있어요. 먼저 공천심사위원회에 윤리위원회가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만드는 겁니다. 공천심사의 윤리적 기준을 판단할 수 있게 말이죠. 또 논란이 이는 몇 가지 당규를 바꿔야 합니다. 탈당 전력자는 공천을 주지 못하게 한 9조라든지, 벌금 이상의 형이 확정된 사람은 공천을 신청하지 못하게 한 3조 2항이라든지…. 이번 공천 과정에서 이를 두고 논란이 컸잖아요. 차후 논란의 여지가 없도록 잘 손질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아까 얘기한 대로, 당규를 바꿔서라도 지역구 출마자의 경우 해당 지역에서 2년 이상 거주한 사람만 공천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제가 건의는 하겠지만, 아마 지금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겁니다. 언젠가 당에 위기가 오면 바뀌겠죠.”

    인 목사는 지난해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검증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검증위 활동에 대해 그는 “한나라당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를 뚫고 승리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고 자평했다.

    ▼ 검증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아쉬웠던 점이라면.

    “법률적인 검증보다 더 중요한 건 국민적 검증입니다. 법조인들이 위원회를 주도한 탓에 법률적인 검증에 머물렀어요. 법적으로 옳으냐 그르냐가 주요 기준이었죠. 여론에 바탕을 둔 국민적 검증에 충실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 검증위 활동도 그렇고 윤리위 활동도 그렇고, 목사님에 대해 정치현실을 모르는 도덕주의자라는 비판이 따랐지요.

    “그랬지요. 사실 내가 그렇게 도덕적인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나 같은 사람을 도덕주의자라 하니, 자신들이 얼마나 비도덕적인지 자인한 셈이죠.”

    지난해 7월 인 목사는 내기골프 금지, 고성방가 금지, 10만원 이상 선물 금지, 예절 준수 등 23조항에 이르는 윤리강령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일부 의원들은 “우리보고 수도승처럼 살라는 거냐”고 반발했다.

    ▼ 좀 지나친 점도 있지 않나요. 특히 고성방가 금지 같은 건.

    “아니에요.”

    ▼ 아닙니까?

    “사실 창피한 얘깁니다.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었거든요, 한나라당 의원 중에. 외국 정당의 윤리강령을 참조해 만든 겁니다. 그런 수준의 윤리강령은 다른 나라에도 다 있어요.”

    “박정희, 존경스러운 면 있다”

    1970년대 영등포 도시산업선교회를 이끌었던 인 목사는 박정희 정권에서 긴급조치 위반, YH사건 등으로 세 번 구속됐다. 1980년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구속됐다가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남다를 듯싶은데요.

    “박 대통령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감정이 좋지 않지만, 경제발전 공(功)은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존경스러운 점이 있죠.”

    ▼ 유신체제에서 투쟁할 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 아닙니까.

    “그때는 그런 생각 안 했지요.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나도 잘했고 박정희도 잘했던 것 같아요. 박정희에게 공(功)과 과(過)가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공과가 있어요.”

    ▼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 대통령의 업보를 딸에게 물리는 건 옳지 않다고 봐요. 아버지의 잘못을 딸이 책임질 수도 없는 것이고. 물론 관계가 없지는 않죠. 다만 박 대통령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비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 박 전 대표는 유신체제에서 직책을 갖고 정치적 활동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것까지 책임을 묻기는 좀 그렇죠. 젊었을 때 일이고. 중요한 것은 역사의식입니다. 내가 박 대통령의 공을 인정하듯이 박 전 대표도 민주화운동에 대해 정당한 평가를 내려야죠. 그러면 양쪽의 화해가 가능합니다. 그래서 (대선후보 검증 당시) 내가 다른 검증위원들과 실랑이를 벌이면서까지 박 전 대표에게 물어본 것 아닙니까. 유신과 5·16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그랬더니 ‘구국의 혁명’이라고….”

    ▼ 실망하셨겠네요.

    “실망 정도가 아니죠. 역사관에 큰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죠. 박근혜 전 대표의 세력이 건재하는 한 한나라당이 풀어야 할 큰 숙제죠.”

    그는 1987년 6월 항쟁 당시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대변인을 끝으로 재야운동권을 떠나 시민운동권으로 진입했다. 김영삼 정부 때는 대통령 직속 세계화추진위원회, 노사관계개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 제도권 밖에서 투쟁하다 안으로 들어와 보니 어떻든가요.

    “저는 김영삼 정부 때도 민주화운동 한다는 생각으로 일했어요. 정체성의 괴리는 없었습니다.”

    ▼ 정권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없었나요.

    “있었죠. 김영삼 정권에서 역사적인 화해가 이뤄졌으면 했는데 안 됐어요. 김대중 정부도 그렇고. 내가 한나라당에 들어온 것을 두고 변신한 것 아니냐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아무런 갈등을 느끼지 않아요. 내가 동의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선 언제든 아니라고 내 양심껏 얘기할 수 있었으니까요. 한나라당에 들어갔다고 해서 한나라당의 모든 정책에 동의하는 건 아니거든요. 거꾸로 한나라당 내부에선 아직도 나를 좌파로 보는 시각이 있죠. 김용갑씨 같은 사람. 좌파가 들어와 보수의 목에 칼을 겨누고 있다는 것 아닙니까.(웃음)”

    ▼ 계간 ‘황해문화’ 2006년 겨울호에 ‘87년 혁명 그후 20년’이라는 특집기사가 실렸습니다. 거기에 박상훈 교수가 1987년 6월의 국민운동본부(국본) 성명서를 언급하며 “이 성명서를 낭독했던 인명진 국본 대변인이 현재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맡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 민주주의의 슬픈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고 말했던데요.

    “(웃음) 세상을 그렇게 일방적으로 보면 안 되죠. 한나라당도 우리나라 역사에서 부인할 수 없는 엄청난 존재 아닙니까. 제게는 전선(戰線)이 달라졌을 뿐입니다. 국민운동본부 성명서를 읽을 당시의 전선이 지금은 한나라당 안으로 옮겨진 겁니다.”

    “투쟁대상이 달라졌을 뿐”

    ▼ 변신이 아니라 투쟁의 연속선상에 있다는 거죠?

    “그럼요. 내가 해온 일의 연속이죠.”

    ▼ 투쟁의 공간이 바뀌었다?

    “대상이 달라진 것뿐이지.”

    ▼ 그런데 목사님의 민주화운동 경력이나 가치관에 비춰 열린우리당에 들어가 이런 일을 해야 어울리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됐지요.

    “아마도 내가 한나라당에 동화했다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요. 밝은 빛이 있는데 촛불이 왜 필요합니까. 소금은 썩은 곳에 필요하지 않습니까. 한나라당이니까 그렇지 열린우리당에 왜 나 같은 사람이 필요하겠습니까. 물론 그 당이 도덕적으로 깨끗한 정당이라는 건 아니지만. 그 글을 쓴 분도 그랬겠지만, 제 주변에서도 많은 사람이 제가 한나라당에 들어갈 때 ‘거기 가서 동화될 거다’ ‘실컷 이용만 당할 거다’ ‘뒤치다꺼리만 하다 나올 거다’고 염려했습니다. 내가 권력의 맛을 알고 새 정권에서 자리 하나 차지하려 한다고 짐작하는 사람도 있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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