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부 독재 때부터 노태우 정권까지 TK, 특히 경북고 출신이 살맛 났다. 대통령과 국무총리는 물론 장관만 37명을 배출했다. 검찰도 예외는 아니었다. 경북고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 TK 마피아는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모습을 감췄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단행된 이번 검찰 인사의 특징은 ‘TK의 부활’. 특히 정권의 향배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정라인을 TK가 장악했다는 평이다. 인사 불만으로 옷 벗은 검사도 그 어느 때보다 많다. ‘TK 검찰’의 실체를 살펴봤다.
검사장급 이상 고위간부 및 차·부장급 중간간부 인사가 차례로 발표된 지난 3월. 언론은 일제히 ‘TK 약진’이라는 제목을 뽑았다. 인사에 불만을 품은 검찰 간부들이 줄사표를 냈다는 기사도 뒤따랐다. 전체 인사에선 지역 안배가 이뤄진 반면 사정(司正) 수사라인은 절대 다수가 대구·경북(TK) 출신이라는 게 보도의 요지였다. 특히 김경한 신임 법무부 장관의 출신고인 경북고의 약진이 두드러져 “장관 친정체제가 구축됐다”는 비판도 나왔다. 인사자료가 나간 뒤 한 관계자가 일부 출입기자들에게 “‘독식’이라는 표현은 삼가달라”고 말해 “도둑이 제 발 저리는 모양이다” “알긴 아는가 보다”라고 빈축을 샀다는 후문도 있다.
인사 대상자 및 검찰 관계자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부산·경남(PK) 출신의 전직 검사는 ‘TK 왕국’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분개했다. 전북 출신 검찰 관계자는 “TK 편중은 맞지만 대체로 능력을 인정받는 검사들이 요직에 올랐다”고 말했다. TK 출신의 전직 검사는 “(연수원) 12기 검사장급 승진자 2명이 모두 호남 출신이다. 호남도 챙길 건 챙겼다”는 의견을 보였다. 비교적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검찰 관계자는 “사정라인에 중용된 인사들 중 TK 출신이 수적으로 우세한 것은 사실”이라면서 “검찰 내부 여론이 그리 좋지는 않지만 정권 초니까 이해한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새 정부 출범 때마다 그래왔듯 이번에도 사정라인을 두고 지역 편중론이 일고 있다. 이를 두고 한 검찰 관계자는 “매년 인사 때마다, 특히 정부 출범 초기에는 능력보다 출신 지역에 초점이 맞춰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인사를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인재의 적재적소 배치”라고 말했다. 국민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효율적인 인사가 이뤄졌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얘기다.
정권 핵심부와 출신 지역이 같은 검사들이 요직에 앉으면 당연히 뒷말이 나온다. 검찰 수사가 정부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리라는 생각에서다. 혹자는 “정(政)·검(檢) 유착시대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타냈다.
‘빅4’와 ‘황금 보직’
과연 그럴까. 현재의 시대 좌표는 ‘투명성’을 지향한다. 검찰의 경우 인사 때마다 공정성 시비가 일지만 공개되는 정보의 양과 감시의 눈이 많아진 만큼 노골적인 눈 가리기는 불가능하다는 게 중론이다. 출신지역을 잣대로 인사를 바라보는 프리즘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검찰 직급은 평검사-부부장검사-부장검사-차장검사-지검장-고검장-검찰총장 순으로 나뉜다. 모든 조직이 그렇듯 검찰에서도 승진에 도움이 되는 자리가 요직으로 통한다. 특히 같은 직급이라도 보직에 따라 위상이 다르다. 엘리트 코스도 명확하다. 고지로 가는 길목이 뻔하다. 예컨대 특수통 검사의 경우 대검 중수1과장―서울중앙지검(중앙지검) 특수부장―대검찰청(대검) 수사기획관―중앙지검 3차장이 정통 코스다.
고위직 가운데 서울중앙지검장, 법무부 검찰국장, 대검 중앙수사중수부장, 대검 공안부장은 ‘빅4’로 불린다. ‘빅4’를 포함해 대검 수사기획관, 대검 중수부 1·2과장, 중앙지검 1·2·3차장, 중앙지검 특수·공안부장은 검찰의 ‘황금 보직’으로 꼽힌다.
권재진, 박용석, 최교일, 김수남, 최재경(왼쪽부터 차례로)
김강욱(좌) 김광준(우)
반면 정권의 칼날이라 할 사정라인에는 TK 출신이 잔뜩 포진했다. 사정라인이란 대검 중수부 산하와 중앙지검 특수부를 뜻한다. 총장 직속 기구인 대검 중수부는 일선 지검에서 처리하기 힘든 대형 사건을 수사하는 한편 전국 검찰청의 특수수사를 조율한다. 중앙지검 특수부는 ‘검찰의 꽃’으로 불린다. 공무원, 정치인, 기업인 등이 연루된 대형 특수사건을 수사한다. 검찰 안에서도 일 잘하는 핵심 인재들로 구성된, 이름 그대로 ‘특수한 조직’으로 통한다.
‘TK 검찰’의 대부는 김경한(경북고 43회, 연수원 1기) 법무부 장관이다. 요직에 앉은 TK 출신 검사를 서열 순으로 살펴보면 권재진(경북고 53회, 10기) 대검 차장, 박용석(경북고 54회, 13기) 대검 중수부장, 김수남(대구 청구고, 16기) 중앙지검 3차장, 최재경(대구고, 17기) 대검 수사기획관, 김강욱(경북고 58회, 19기) 청와대 민정수석실 민정2비서관, 박정식(경북고 61회, 20기) 대검 중수2과장, 김광준(대구 영신고, 20기) 중앙지검 특수3부장이 있다.
경북고 인맥 대부 김경한 장관
이처럼 주요 보직을 꿰찬 TK 출신 인사들의 면면은 어떨까. 검찰 TK 인맥의 대부인 김경한 법무부 장관은 이명재 전 검찰총장 등 TK 출신 법조인들이 장관 후보로 적극 추천했다는 소문이 있다. 이 전 검찰총장과 김 장관의 아름다운 우정이 거론되기도 한다. 김 장관은 이 전 총장과 함께 총장 후보로 거론되던 2002년 “명재 형이 검찰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총장 자리를 양보했다고 한다. 이 전 총장과 김 장관은 30년간 함께 검사의 길을 걸어왔다. 이 전 총장이 고교와 대학 1년 선배다.
김 장관은 검사 시절 인사를 담당하는 법무부 검찰 1과장을 3년간 맡은 경험이 있다. 그 덕분에 검찰 인사에 정통하다는 평이다. 업무와 인사에서 자신의 생각이 옳다 싶으면 소소한 비판은 신경 쓰지 않는 ‘소신파’라는 평가도 있다. 대놓고 TK를 많이 등용한 것도 ‘소신’의 산물이라는 시각이다.
권재진 대검 차장은 서울지검 형사3부장, 대검 공안부장 등을 거쳐 대구고검 검사장으로 있다가 대검으로 자리를 옮겼다. 1995년 수원 시의원 당선자 조창일을 600여만원 상당의 금품과 향응을 제공한 혐의로 구속했다.
박용석 대검 중수부장은 일처리가 무난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2001년 대검 중수2과장 시절 경부고속철 선정 로비 사건을 맡으며 황명수 전 국회의원을 구속 기소했다. 서울지검 특수2부장이던 2002년에는 신승남 당시 검찰총장의 여동생 관련 사건을 맡아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수사해 호평을 받았다.
김수남 중앙지검 3차장은 1990년 서울지검(현 중앙지검)에 입성한 후 수사력을 인정받아 1년 만에 특수부로 발령 받았다. 1997년 한보특혜비리의혹(김현철 사건) 재수사 당시 홍만표, 김경수, 오광수, 지익상 검사와 더불어 이른바 ‘드림팀’을 형성해 1차 수사에서 무혐의 처리한 ‘정태수 리스트’에 오른 정치인 33명을 소환 조사했다. 2003년 대검 중수3과장 시절에는 나라종금 퇴출 저지 로비 의혹 사건을 수사했다. 평검사들이 늦은 밤 집 근처에서 예고 없이 전화를 걸어 “술 사달라”고 조르면 슬리퍼 차림으로 나오는 소탈한 성품이라고 한다.
지난 3월 단행된 검찰 인사에서 경북고를 중심으로 한 TK 출신 검사가 사정라인의 절반을 차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대구 수성구 황금동의 경북고 전경.
경남 산청 출신 최재경 대검 수사기획관은 줄곧 특수라인에서 경력을 쌓아온 정통 특수통이다. 공안부 등에서 정치사범을 오래 담당한 검사는 공안통, 조직폭력배나 마약 등 강력사건을 주로 수사한 검사는 강력통, 검찰이나 법무부에서 기획업무를 많이 한 검사는 기획통으로 불린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공안통이 검찰의 실세였지만 지금은 특수통에 그 자리가 넘어갔다.
최 기획관의 경우 이례적인 발탁 인사다. 전임 15기에 이어 16기가 수사기획관에 오를 차례였으나 17기인 최 기획관이 치고 들어갔기 때문. 수사기획관은 검사장 승진 1순위인 황금보직. 또래 검사 가운데 일 잘하기로 소문난 최 기획관은 이명박 당시 대선후보의 도곡동 땅 차명보유 의혹 및 BBK 주가조작 의혹 사건을 수사해 무혐의 처리했다. 철저하게 사건을 조사했다는 게 검찰 내부의 평가지만, 이번에 대표적인 발탁인사의 주인공이 되면서 오히려 부담을 안게 됐다는 시각도 있다.
‘소년 급제’ 와 ‘서울대 불가사의’
김강욱 청와대 민정2비서관은 특별수사 경험과 리더십을 갖춘 인물로 평가받는다. 민정2비서관은 검찰, 경찰, 국정원 등에서 올라온 정보를 수사기관에 안배하는 사정라인의 핵심. 김 비서관은 국정원 불법 도청 사건, 삼성그룹 비자금 의혹 사건, 법조브로커 윤상림, 김흥수 사건 등을 수사하며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앙지검 특수1부 부부장 시절 그는 국정원 불법도청 사건을 맡아 임동원·신건 전 국정원장을 구속 기소했다. 대검 중수2과장 재임 중엔 론스타 주가조작 및 헐값매각 사건을 수사했다. 조사 당시 그레이켄 론스타 회장에게 “한국에 투자하려면 한국 법을 지키라”며 기 싸움을 벌였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명박 대통령과 개인적인 인연은 없으나 대구 오성고 출신인 박영준 대통령기획조정비서관의 추천으로 청와대에 입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정식 대검 중수2과장은 인천지검 특수부에 근무하던 2005년 안상수 당시 인천시장을 ‘2억 굴비상자’를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속해 징역 1년6개월을 구형했다. 안 전 시장은 대법원에서 무죄선고를 받았다. 검찰 관계자는 “경력을 볼 때 박 과장은 정통 특수통은 아니지만 여러 분야를 거친 검사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검사장으로 승진한 최교일 중앙지검 1차장과 경북고 동기다. 중·고등학교 때는 박 과장이 최 차장보다 훨씬 공부를 잘 했다고 한다. 박 과장은 서울대 법대, 최 차장은 고려대 법대 출신. 사법고시 합격은 최 차장이 5기수 빠르다. 당시 박정식 학생이 사시에 계속 불합격하는 게 ‘서울대 불가사의’ 중 하나였다고 한다.
경북 영주 출생의 최교일 차장은 남보다 일찍 사시에 합격한 ‘소년 급제’로 유명하다. 경북고 61회 졸업생이지만 대체로 연수원 19기인 57·58회 선배들보다 4기수나 빠르다. 최 차장은 이번에 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바로 중앙지검 1차장을 꿰차 검찰 내 경북고 동문들에게 미안한 감정을 숨기지 못한다고 한다. 검사장 승진 첫해에는 지방 근무나 고검 차장을 해도 나쁘지 않은데, 요직에 올라 다른 동문들의 인사에 결과적으로 걸림돌이 됐다는 것.
이와 관련해 강력한 중앙지검 2차장 후보이던 박청수 서울 남부지검 차장이 피해를 봤다는 후문도 있다. 박 차장은 서울·부산·울산·수원지검 공안부장, 대검 공안 2·1과장, 대검 공안기획관을 거친 정통 공안통. 공안기획관을 거친 뒤에는 공안부서를 관할하는 중앙지검 2차장으로 승진하는 게 관례다. 한데 1차장에 이어 2차장까지 경북고 출신을 앉히면 모양새가 좋지 않을 것을 우려해 인사를 조정했다는 얘기다.
법무부가 3월6일로 예정된 인사를 하루 늦춘 것이 이와 관련됐다는 추측도 있다. 한 출입기자는 “‘왜 인사가 늦춰졌느냐’고 묻자 법무부 관계자가 ‘자리 하나를 놓고 조정하느라 그랬다’고 답했다. 이를 두고 기자실에서는 그게 아마 중앙지검 2차장일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고 말했다.
총장 가는 길목마다 TK
경북 영주 출신인 김광준 중앙지검 특수3부장도 발탁 인사다. 현재 형사1부와 특수1부를 제외한 중앙지검 부장검사는 모두 19기. 김 부장은 그보다 한 기수 낮은 20기다. 서울지검 특수1부 검사로 지내면서 최순영 대한생명 회장의 외화밀반출 사건을 수사했고, 부산지검 특수부장으로 근무한 2007년엔 정윤재 의혹 사건을 맡았다.
사정라인에 속한 검찰 간부들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다음은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검찰 관계자의 말이다.
“한 기수에서 50~100명이 출발해 십수년 동안 정글 같은 평가를 거쳐 10명이 간부급으로 남는다. 어느 정도 검증된 인물들이라는 얘기다. 또 TK는 자원 자체가 많다. 이 때문에 과거 정권에서 TK 편중이 심할 때도 검찰 내부에서 결정적인 불만은 없었다. ‘너무하다’는 인식은 있었지만. 과욕이라고 비난 받으면서도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몰고 가는 일은 없었던 거다. 엄격하다고 할까, 교묘하다고 할까. 이중적인 면이 있다.”
그러나 TK를 제외한 충청·강원·호남·PK 등 타 지역 검사들은 불만이 많다. 특히 PK의 피해의식이 크다. TK와 PK를 영남으로 묶어 인사를 진행하다 보니 PK 자리까지 TK가 차지했다는 것. 한 검찰 관계자의 말이다.
“검사장급 승진자 11명 가운데 PK는 한 명도 없다. 사정라인은 물론 부장급 인사에서도 PK 소외가 확연히 드러난다. 중요한 자리로 평가받는 중앙지검 2·3차장 산하 공안부, 특수부, 금융조사부에 TK는 한 명씩 포함됐지만 PK는 단 한 명도 없다. 조금만 소홀해도 눈에 띄는 호남 쪽은 배려한 흔적이 보이지만 PK는 학살에 가까운 수준이다. 이번 인사는 ‘TK 대약진, 중부권 비교적 약진, PK 몰락’으로 요약할 수 있다.”
앞으로가 더 문제라는 견해도 있다. 권재진 대검 차장, 박용석 대검 중수부장 등 총장으로 가는 길목마다 TK 출신을 깔아놨다는 것이다. 한 전직 검사는 “장관이 TK를 집합시킬 게 아니라 ‘우리가 양보하자’고 설득해 타 지역 인사들을 중용했다면 조직을 아우르는 확실한 구심점이 됐을 것”이라며 “이번 인사가 검찰 사기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 건 틀림없다”고 말했다.
사정라인 내정자로 유력하게 거론되던 검사가 다른 자리로 밀려난 것을 두고도 뒷말이 무성하다. 역량과 경력 면에서 최고의 수사력을 인정받는 검사가 ‘TK 배려’라는 지역논리에 밀려 마땅히 가야 할 자리에 못 갔다는 얘기다.
갈 자리 못 간 검사들
대표적인 인물이 조은석(광주 광덕고, 19기) 중앙지검 형사3부장. 조 부장은 검찰에서 손꼽히는 특수통이다. 2003년 12월 서울지검 부부장 시절 현 중앙지검 3차장인 김수남 당시 대검 중수3과장의 지휘 아래 썬앤문 사건을 맡아 노무현 대통령의 재정적 후원자이던 문병욱 썬앤문그룹 회장을 정치자금법 위반, 횡령,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했고, 문 회장의 청탁을 받고 감세해준 손영래 국세청장을 구속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 이광재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여택수 청와대 행정관, 신상우 전 국회부의장 등이 조 검사의 조사를 받았다. 이들은 모두 불구속 기소됐다. 조 검사는 또 굿모닝시티 사건을 맡아 대선 당시 노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맡았던 신계륜 의원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신 의원은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아 의원직을 상실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인 2003년 4월 나라종금 로비의혹 사건을 수사해 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염동연 의원, 한광옥 전 청와대 비서실장, 이용근 금융감독위원장을 구속했고, 김홍일 민주당 국회의원을 불구속 기소했다. 1999년 서울지검 특수부 시절엔 신동아그룹 외화밀반출 사건을 수사해 최순영 회장을 구속했다.
검찰 관계자들은 “조 부장은 평검사 때부터 굵직한 사건을 도맡아온 유능한 특수통이다. 대검 중수부 과장이나 중앙지검 특수부장 자리에 적합한 인물임에도 ‘TK 장벽’에 막혀 형사부로 밀렸다는 느낌이 든다”고 입을 모았다. 검찰 사정에 밝은 국가기관의 한 관계자는 조 부장에 대해 “이번 인사에서 지역논리에 밀려 갈 자리를 못 간 대표적 사례”라고 귀띔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중앙지검 특수1부장에 호남 출신인 문무일 검사를 임명했기 때문에 같은 호남 출신인 조 검사를 대검 중수부 과장에 앉히기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았다.
임수빈(서울 장충고, 19기) 중앙지검 형사2부장이 공안부장이 안 된 것도 의외로 꼽힌다. 임 부장은 이번 인사 직전에 대검 공안1·2과장을 지낸 공안통. 대검 공안과장을 지낸 뒤에는 중앙지검 공안부장에 오르는 게 관례였다. 이번 인사에서 공안1부장에는 대구고 출신인 공상훈(19기) 검사가 임명됐다.
“능력이 처지는 건 아니지만…”
중앙지검 형사4부장으로 자리를 옮긴 지익상 검사도 특수부장 감으로 평가 받는다. 1997년 한보특혜비리 재수사 때 드림팀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1999~2002년에는 대검 중수1과 파견 검사로 근무하면서 북한 문화재 밀반출 사건, 중앙일보 홍석현 사장 탈세사건, 세풍사건 등을 수사했다. 2003년 중앙지검 특수부 시절에는 수사무마 청탁 대가로 거액을 챙긴 전직 경찰 고위간부의 사촌동생을 불구속 기소했다. 서울 북부지검 형사6부장과 3부장을 역임했다.
“최근 이상희 국방부 장관의 ‘전투복’ 발언이 화제다. 군인은 만에 하나 일어날 수 있는 전쟁에 대비한다. 하지만 검찰은 늘 전시(戰時) 상태다. 매일 부패와의 전쟁을 벌인다. 그렇기에 그 자리에서 최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검사가 배치돼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인사에서는 수사능력보다 출신지역이 더 중요한 잣대로 작용했다. 최상의 검찰 기능을 위한 인사가 아닌 것 같아 안타깝다.”
전직 검찰 간부의 말이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적재적소의 실용인사를 강조했지만 검찰에서는 그것이 적용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법무부와 대검 요직을 거친 검찰 고위간부는 “사정라인에 편입된 TK 검사들의 능력이 심각하게 뒤처지는 건 아니지만 분명 에이스급은 아니다. 최적의 인사가 앉았다면 80~90% 성과를 내겠지만 현 상태로는 60~70%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능력 위주로 인사가 이뤄졌다는 TK측 주장과 달리 능력이 의심스러운 검사가 더러 요직을 꿰찼다는 것이다.
인사권은 법무부 장관이, 수사 지휘권은 검찰총장이 갖는다. 하지만 장관과 총장이 서로 협의해 인사를 하는 게 관례다. 고정된 패턴은 없다. 두 사람의 관계에 따라 협의 수준이 달라진다. 인사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총장은 종이호랑이다. 권력을 갖기 힘들다. 반면 장관은 총장을 통해서만 수사 개입이 가능하다. 그래서 장관은 인사 권한의 40~50%를 총장에게 위임하고, 총장은 장관에게 수사 상황을 귀띔하며 수사에 의중을 반영하기도 한다.
둘의 궁합이 잘 맞으면 인사는 매끄럽게 진행된다. 반대로 강금실 장관-송광수 총장 때처럼 요직 인사를 두고 의견이 좁혀지지 않으면 갈등을 빚게 된다. 이번 인사에서는 임채진 총장이 힘을 쓰지 못했다는 게 다수 의견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임채진 총장의 오른팔인 정병두 전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이 중앙지검 3차장이 못 되고 수원지검 1차장으로 밀렸다”며 “임 총장이 전 정권에서 임명된 탓에 입지가 좁아 자기 사람조차 못 챙길 형편이었다”라고 말했다. 정병두 수원지검 1차장은 2005년 임 총장이 법무부 검찰국장을 지낼 때 한 식구였다.
한 전직 검사는 “임 총장과 김 장관은 기수차가 너무 크다”며 두 사람의 관계를 설명했다.
“경북고 자원이 많은 걸 어쩌나”
“김 장관은 연수원 1기, 임 총장은 9기로 무려 8기수 차이다. 어린아이와 어른인 셈이다. 게다가 민정수석도 연수원 2기라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가 양쪽에서 벼르는 형국이다. 7기 정상명 전 총장도 6기 선배인 김성호 전 장관에게는 힘을 못 쓰지 않았나. 천정배 장관은 그보다 한 기수 후배였지만.”
수혜집단으로 공격 받는 TK 출신들의 심사는 어떨까. 일부 TK 검사는 ‘독식’이라는 표현에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TK 출신의 현직 검사는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권 15년 동안 피해를 보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경북고 출신 중견 변호사는 “그동안 불합리하게 요직에서 밀리다가 이제야 제자리를 찾은 것”이라고 ‘TK 독식’ 주장을 반박했다. 이런 시각에 대해 TK 출신 전직 검사는 “DJ정권 때 ‘깜’이 안 되는 사람들이 요직에 앉아 검찰 조직 전체가 피해를 보지 않았느냐. 그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작용일 것”이라고 목소리를 누그러뜨렸다.
검찰 내에 경북고 출신의 자원이 많다는 지적도 있다. 경북고 58회가 검사장 승진 전후 기수인 13~17기에 많이 포진해 있다는 것. 한 TK 변호사의 말이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경북고는 다른 지역보다 평준화가 1년 늦게 이뤄졌다. 이 때문에 그해, 즉 58회가 입학할 때는 경상남·북도 전체에서 수재가 몰렸다. 58회 졸업생 중 45명이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지금 9명이 남아 있으니 굉장히 많은 숫자다. 정진영(13기) 창원지검 검사장이 선두를, 박기준(14기)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 국장이 그 뒤를 달리고 있다.”
‘경고 중의 경고’라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비평준화 마지막 세대인 58회 졸업생 뒤로 경북고 출신 검사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이에 경북고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경북고뿐 아니라 대구 지역 고교로 인맥 지형을 넓혀야 한다는 것. 한 경북고 출신 변호사는 “대구고 등 대구 지역 고교 출신과 경북고 출신이 서로 선후배라 부르며 모여야 힘이 생긴다. 전라도 쪽은 학교에 관계없이 얼마나 잘 뭉치느냐”고 말했다.
“뛰어난 동기 이름 적어내라”
여론의 지탄을 받으면서까지 같은 지역, 같은 고교 출신끼리 서로 챙기는 이유는 뭘까. 검사 출신의 모 변호사는 “검사의 업무에는 수사 기밀 등 민감한 내용이 많다. 자칫 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검사들은 수사할 때 상하 간 신뢰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이런저런 연고를 바탕으로 믿을 만한 후배검사를 고르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인맥은 일반의 상식과 다르게 형성되는 예도 많다. 같은 학교에 같은 과 출신이지만 일면식조차 없는 경우도 있고, 연결고리 하나 없는 이들이 진득한 우정을 자랑하기도 한다. 최근 검찰에서 나간 한 변호사는 “수사를 하다 보면 엉뚱한 변호사가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그들 나름대로 내 학력과 경력, 고향을 조사했겠지만, 무엇보다도 검찰에서 함께 일한 식구들에게 친밀감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검찰 인사는 철저한 연공서열로 이뤄진다. 예컨대 올해 중앙지검 부장은 19기, 차장은 16기라는 식으로 승진 기수도 분명하다. 후배에게 추월당하거나 제때 승진을 못한 선배는 옷을 벗는 게 관례다. 그렇지만 이 연공서열에 덧붙는 ‘알파’가 문늘제다.
법무부 검찰국 검찰과의 심우정 검사에 따르면 검찰의 기본 공무평가는 6개월에 한 번 이뤄진다. 단 부부장 검사 이상은 복무평가에 더해 동기 추천, 검사장 추천 등 다면평가도 받게 된다. 동기 추천은 2003년부터 진행됐으며, 본인을 포함해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동기의 이름을 정해진 숫자만큼 적어내는 제도. 한 현직 검사에 따르면 신기하게도 그 내용과 순위가 대부분 일치한다고 한다. 이런 평가자료 외에 인성, 태도, 전공분야의 자료를 종합해 서열이 매겨진다.
한 현직 검사는 “관리된 서열과 실적을 토대로 부장, 차장 인사 때 후보를 몇 명씩 받아 법무부가 낙점한다. 물론 데리고 일할 사람의 의중이 가장 비중 있게 반영된다”고 말했다. “같은 값이면 고향 후배, 학교 동창을 뽑기에 인사 때마다 편중 현상이 나타난다”고도 했다. 이와 관련, 법무부에 복무평가 항목과 비슷한 능력의 후보군에 대한 최종 결정 기준을 문의하자 “비공개”라는 답이 돌아왔다.
정권이 바뀌면 권력기관도 탈바꿈한다. 역대 정권에서는 정권 핵심부와 가까운 사람이 어떤 기관의 수장에 오르면 그 기관은 자연히 정부의 손아귀에 들어왔다. 알아서 기는 충성을 보였기 때문이다.
정권 핵심부는 사정기관과 정보기관부터 장악하려 한다. 그 중 가장 먼저 손대고 싶은 대상이 수사권을 가진 검찰이다. 검찰 지휘부의 성향과 사정 수사의 방향에 따라 정권의 향배와 안위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알아서 기거나, 의혹 씻거나
그 수단은 인사다. 새 정부 출범 직후 검찰 사정라인에 지역 편중 현상이 일관되게 나타난 것은 그 때문이다. 김영삼 정부 첫인사 때는 대검 중수부장을 비롯한 사정라인 검사 9명 중 PK가 5명, 호남이 3명, TK가 1명이었고, 김대중 정부 출범 때는 9명 가운데 호남 출신이 3명으로 가장 많았다. 노무현 정부 때는 PK가 3명으로 선두를 달렸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사정라인의 절반이 TK로 채워진 것을 두고 누군가는 “검찰의 수치이던 호남정권 때처럼 조직이 변할까 두렵다. 시대가 변하긴 했지만 정권의 성격과 정권과의 관계에 따라 얼마든지 휘둘릴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사정라인이 정권 창출 지역 검사들로 채워졌어도 시대 흐름을 거스르긴 힘들 것”이라는 상반된 의견도 있다. 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검찰 내부 분위기가 완전히 변해 출신 지역이 절대 기준이 아니며, 차·부장 검사가 일선 검사의 수사를 통제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것.
특수통 검사의 상징으로 ‘국민검사’로 불리던 안대희 대법관은 2006년 7월 서울고검장 퇴임사에서 검찰 인사의 공정성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소수를 제외한 구성원 대다수가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인사구조에서는 조직의 일체감과 안정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인사 시스템이 불안정하면 전근대적인 지연·학연·혈연 등에 의한 연고주의가 침투해 급기야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을 취약하게 만든다. 자의와 연고주의를 배척하는 보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인사 시스템을 구축해 진정한 법치주의 실현을 위한 검찰의 역할을 보장해야 한다.”
이번 인사는 정권 초 사정 수사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인사 결과는 우려하던 대로였다. 하지만 결론을 말하기엔 이르다. 정권과 가까운 인사나 그 반대 인사에 대한 수사 방향과 결과를 지켜 본 다음 이번 검찰 인사를 평가하는 게 적절할지 모른다.
선택은 검찰이 한다. 의심을 품은 눈이 많아 오히려 몸가짐을 반듯이 할 수도, 아니면 ‘이제야 TK가 제자리를 찾았다’며 독단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집권 측 인사는 봐주면서 반대쪽 인사를 표적 수사한다거나 지역코드로 보복성 인사를 한다면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의도가 깔린 인사’라는 불신을 씻는 것은 검찰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