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호

차마고도 신비 서린 중국 윈난성(雲南省) 기행

高山淸水에서 만끽하는 느림의 미학

  • 권삼윤 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입력2008-05-07 10: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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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이 있으면 올라야 하고 길이 있으면 뛰어야 직성이 풀리는 현대인. 여행을 가서도 ‘빨리빨리’만 외치다 여행의 목적을 잃어버리기 일쑤다. 그러나 이곳에 가면 그냥 보고 즐기는 것만으로 모든 게 족하다. 느림의 공간, 느림의 음식, 느림의 여행….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다가오는 절세의 풍광과 수천년의 역사. 원시적이지만 현대적인, 촌스럽지만 세련된, 여행자 스스로 명상케 하는 구도(求道)의 고도(古都)를 찾았다.
    차마고도 신비 서린 중국 윈난성(雲南省) 기행

    해발 4506m에 위치한 위룽쉐산 전망대. 그 뒤로 흰눈에 뒤덮인 5000m급 준봉이 줄지어 있다.(위) 리장 구시가 입구의 물레방아. 물길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아래)

    중국 윈난(雲南)성의 성도(省都) 쿤밍(昆明)을 떠난 동방항공 MU5810기는 50분 만에 리장(麗江)에 닿았다. 공항이라면 높은 관제탑과 수하물 벨트, 안내 데스크 등 인공적인 냄새를 풍기게 마련인데 여기선 그런 게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공항을 벗어나자 석양빛을 받아 붉게 타오르는 농촌 들판이 바로 눈앞에 펼쳐진다. 코끝에 와 닿는 공기 또한 싱그럽다. 15위안(약 2100원) 하는 공항버스는 평탄한 들녘을 가로지르며 온갖 풍경을 드러낸다. 차창으로 검은 기와집 촌락들이 점점이 다가왔다 멀어진다. 모든 게 풍요롭고 아름답다. 차는 그런 시골길을 한동안 달리다 새로이 개발된 뉴타운에 이르러 승객들을 내려놓는다.

    길게 뻗은 대로 양쪽으로 제법 높다란 현대식 건물들이 서 있다. 호텔이 곳곳에 있어 숙소 구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별 두 개짜리 호텔을 찾아 짐을 풀었다. 호텔 프런트의 여직원은 이곳 원주민인 나시족(納西族) 출신인지 푸른색조의 전통복장을 입고 있다. 순박해 보이지만 묻는 말에도 꼬박꼬박 대답을 잘해줬다.

    슬로시티, 슬로뷰티

    중국 최남단 윈난성의 고도(古都) 리장이 관광명소로 떠오른 것은 15년 전. 당시 항저우(杭州), 쑤저우(蘇州), 시안(西安), 타이산(泰山), 상하이 등은 이미 관광객들로 만원을 이뤘기에 중국 정부는 조용하면서도 신비스러운 이곳을 199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고 전세계에 알렸다. 그러자 작은 촌락에 지나지 않던 이곳이 수년 만에 세계 배낭 여행자들의 메카로 떠올랐다.

    다른 곳에선 볼 수도, 경험할 수도 없는 특별한 매력을 리장이 간직하고 있는 덕분이다. 리장은 1300년 역사에 독특한 문화를 가진 고성(古城)이자 장강(長江, 양쯔강)이 발원해 처음으로 몸을 크게 한번 뒤틀며 커브를 그리는 곳에 자리 잡아 도시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둘러보지 않으면 여행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 한마디로 ‘느림의 미학’을 한껏 향유할 수 있는 곳이다. 그 속을 따지고 보면 느림에 관한 몇 가지 특이한 점을 찾아낼 수 있다.



    우선 이곳은 ‘느림의 공간(慢空間)’이다. 시인 도연명(陶淵明)은 일찍이 이 말을 그의 ‘도화원기(桃花源記)’ 첫머리에 남겼고, 따라서 이곳 사람에겐 느림의 공간이란 개념이 그리 낯설지 않다. 더구나 요즘은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삶을 추구하는 ‘로하스(LOHAS, Lifestyles Of Health And Sustainability)’란 말이 화두이지 않은가.

    “숲이 끝나는 곳에 수원(水源)이 있었고 그곳에 산 하나가 막아섰다. 거기에 작은 동굴이 있었는데 그 안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왔다. 어부는 배를 버리고 동굴 입구로 들어갔다. (중략) 그곳에는 너른 들판이 늘어서 있었는데, 그 사이를 사람들이 오갔다. 남녀가 입은 옷은 모두가 이국풍이었다. 기름도 바르지 않고 장식도 없는 머리를 하고 한결같이 기쁨과 즐거움에 넘쳐 보였다. (중략) 그들은 바깥세상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둘째는 슬로푸드(slow food)다.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브라(Bra)에서 시작된 슬로푸드, 슬로시티 운동은 기실 동양에선 무슨 운동이라며 떠들어대진 않아도 생활화한 지 이미 오래인데, 된장국과 김치 등 발효식품과 함께 자체 생산한 밥과 나물 등을 천천히 씹어먹는 만식(慢食)이 바로 그것이다.

    차마고도 신비 서린 중국 윈난성(雲南省) 기행

    ‘느림의 미학’을 보여주는 원삐하이 정경.

    셋째는 느리게 여행하기다. 수박 겉핥기식의 ‘깃발여행’이 아니라 천천히 걷거나(慢走) 이동하면서 주위를 두루 구경하며(慢看) 여행을 과정까지 속속들이 즐기는 것이다. 그 대표적 형태가 명상 여행, 사색 여행인데, 리장에선 굳이 결심하고 찾지 않았더라도 누구나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넷째는 느리게 운동하기다. 중국인들이 공원이나 광장에 모여서 태극권을 즐기는 것처럼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근육과 관절 하나하나를 풀어주는 방식의 운동법으로, 언뜻 보기엔 ‘저게 무슨 운동이 되랴’ 싶지만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삼기에 비만 해소에도 그만이다.

    다섯째는 느리게 사랑하기. 쉬 달아오른 사랑이 쉬 식듯 은근한 사랑은 은근히 오래 지속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오래 같이 있고 싶다면 리장을 찾을 일이다.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변화의 시대’, 하지만 리장에 가면 전통 그 자체가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래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머나먼 곳임에도 리장을 찾는다. 리장에선 어슬렁거리며 산책하는 게 좋다. 어디에서나 멈춰도 되고 어디에서나 다시 출발해도 되는 그런 발걸음으로.

    물의 도시

    리장 관광의 핵심은 구시가지다. 그 입구에선 대형 물레방아가 쉼 없이 돌아간다.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의 글씨가 적힌 하얀 벽면이 병풍 노릇을 하며 이곳이 세계문화유산임을 알리고 있다. 물레방아로부터 시작되는 작은 개울들이 이곳저곳을 돌고 돌아 흐른다. 이름처럼 맑은(麗江) 물빛은 도시를 청량한 빛깔로 수놓는다. 해발 2000m 고원의 고성 안으로 들어가자 개울은 크게 세 가닥으로 갈린다. 서하, 동하, 중하.

    작은 시냇가에는 레스토랑과 카페가 있다.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며 흐르는 물을 바라본다. 그 여유로움을 무엇에 비견하랴. 가게 앞에 세워진 토속적인 장식물은 아기자기한 멋을 풍겨 발길을 쉬 옮기지 못하게 만든다.

    중국에 대한 선입관 중 하나가 ‘지저분하다’는 것인데, 리장은 이처럼 도시 전체가 깨끗하다. 수로에 흐르는 물도 바닥이 훤히 비칠 정도로 맑다. 물은 저 멀리 위룽쉐산(玉龍雪山)의 만년설이 녹아 흘러내린 것이라 시리도록 차고 투명하다. 수량 또한 넉넉해서인지 물살도 거세다. 사람의 발길로 반들반들 닳은 돌 포장길 좌우에는 고풍스러운 가옥들이 들어서 있다. 신시가 쪽으로 난 언덕배기에는 전통가옥들이 빼곡하다. 대부분 여행자 숙소로 사용된다는데 방값은 무척 싸다. 하루 80위안(약 1만1200원)이면 괜찮은 곳을 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친절한 주인을 만나면 리장의 숨은 뒷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수로 주변의 꽃나무는 맑은 물 때문인지 더러 꽃을 피운 채 푸른색을 머금고 있다.

    구시가는 쓰팡제(四方街) 광장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이곳을 중심으로 네댓 개의 작은 골목길이 거미줄같이 뻗어나 있다. 구시가의 교통 요지답게 그야말로 인파가 물결친다. 그런 와중에도 나시족은 푸른색 전통복장을 입고 둥글게 원을 그리며 춤추고 노래한다. 흥이 난 여행객들도 덩달아 춤을 춘다. 이 광장은 낮에는 약속의 장소로 쓰이고, 해가 지면 돌 포장길에 긴 그림자를 남기다가 주변 상가에 불이 켜지면 갖가지 퍼포먼스가 벌어진다. 다목적 공간인 셈이다.

    아름답고 친근한 다리들

    좁은 골목이 미로처럼 이어지는 리장에서는 지도가 없으면 길을 잃기 십상이다. 하지만 애써 길을 찾을 필요는 없다. 곧 익숙해지는데다 어디를 가나 머물고 싶을 만큼 편안하고 멋진 풍경이 펼쳐지고, 낯선 거리라도 여행객이 있고 이들을 맞이하는 레스토랑과 카페가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카페건 상가건 전통가옥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성 한가운데에는 물이 솟아나는 빨래터가 있다. 물이 아주 맑고 양도 많다. 나시족 특유의 푸른 옷을 입은 아낙들이 빨래를 하고 그 물을 길어 나르기도 한다. 더러 채소나 음식물을 씻기도 한다. 고성을 걷다보면 어느새 목부(木府)란 곳에 이르게 된다. 13세기 칭기즈 칸에게 정벌되기 전까지 리장 일대는 목(木)씨 성을 가진 사람이 다스렸다는데 이곳엔 아직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말하자면 궁궐 같은 곳이다.

    차마고도 신비 서린 중국 윈난성(雲南省) 기행

    리장 구시가에서 민속춤을 추는 나시족 여인들(왼쪽 위). 개울가에는 식당과 카페가 진을 치고 있다. 오른쪽은 한때 궁궐이던 목부의 내부.

    목부 건물의 뒤편에는 리장 고성을 조망할 수 있는 5층 목탑인 만고루가 우뚝 서 있다. 그 위에 올라 아래를 굽어보자 납작한 2층 기와집들이 고성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날씨가 화창해서 그런지 저 멀리 눈 덮인 위룽쉐산이 모두 보인다.

    고성에는 개울이 많아 다리도 많다. 흔히 리장을 일러 ‘다리의 도시’라 부르는 것도 과장이 아니다. 다리 하나마다 고유의 이름이 붙어 있고 모양도 조금씩 다르다. 겉으로 보기에 조그맣고 낡은 나무다리들인데 예사롭지 않다. 어떤 나무다리는 리장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세월 사람들을 왕래시켜줬다고 한다. 다리들은 실용성에 아름다움까지 갖췄다. 중세 유럽의 다리가 아름답다 하나 리장처럼 친근하면서 아름다운 다리를 보기란 쉽지 않을 듯하다.

    스케치북을 펴든 학생들이 그런 다리가 잘 보이는 곳에 터를 잡고 그림을 그린다. 솜씨는 아직 서툴지만 열성만큼은 대단하다. 저쪽 다리 옆에선 서양 여인이 바윗돌에 걸터앉아 책을 읽는다. 한가로움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는, 그 자체로 한 폭의 풍경화다. 사람들이 리장을 일러 ‘고원의 쑤저우’ ‘동방의 베니스’라고 한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런데 만약 이곳에 개울이 흐르지 않는다면 무엇이라 했을까.

    1000년 넘은 모계사회

    점심때를 조금 넘긴 시각, 리장의 많은 다리 중 하나인 완쯔차오(萬子橋)를 지났다. 좁은 길을 따라 나아가자 작은 카페가 보였다. 운치 있는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안으로 들어갔다. 2층 창가에 자리를 잡았는데, 3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주인이라고 했다. 그의 이름이 특이하게도 완쯔(萬子)였다. 청두(成都)에 살다가 최근 이곳에 왔다는데, 40만위안(약 5600만원)의 거금을 주고 이 카페를 빌려 장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집의 식사와 커피, 그리고 서양식과 중국식이 퓨전을 이룬 특이한 분위기가 내 취향에 딱 맞아 이후에도 두어 차례 더 찾았다.

    골목 군데군데에는 기념품을 펼쳐놓은 좌판과 가게들이 자리 잡고 있다. 밤이 되자 중국풍의 홍등과 오색찬란한 네온사인에 불이 켜진다. 가게 안은 때를 만난 듯 영어와 일본어를 해대는 사람들로 들끓는다. 그날은 마침 보름날이라 골목길에서도 둥근 달이 훤히 보인다. 그때 문득 ‘한(閒)’자를 떠올렸다. 열린 문틈 사이로 달이 보인다는 뜻. 이 얼마나 한가로운가! 노대(露臺)에서 보는 달은 방안 문틈으로 보는 그것과는 또 다른 운치가 있다. 그 차이가 바로 한가로움, 여유로움을 가르는 잣대가 될 터. 하늘의 둥근 달과 가게 처마에 걸린 홍등은 보색 대비의 묘한 조화를 이루며 조우한다.

    작은 개울을 지나다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에 나오는 ‘道法自然(도는 자연을 따른다)’이란 글씨가 길게 내걸린 가게가 눈에 띄어 안으로 들어갔다. 40대의 서예가는 후난(湖南)성 출신이라 했고 글씨를 배우는 학생은 나시족 처녀들이었다. 리장의 총인구 28만 중 57%가 나시족이라는데, 나시족이 이곳에 뿌리내린 건 약 2000년 전이라 한다. 그들은 송나라 시대에 이르러 동바(東巴) 문화를 찬란하게 꽃피웠다. 동바 문화의 유적지답게 소박한 건축양식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차마고도 신비 서린 중국 윈난성(雲南省) 기행

    나시족이 천년 전부터 사용해왔다는 동바 문자.

    천년 전부터 전해오는 그림 형태의 동바 문자 간판들이 이채롭다. 그네들 말로는 상형문자를 일상적으로 상용하는 곳은 세계에서 이곳뿐이다. ‘동바’는 나시족의 제사나 역사를 기록하는 서기관을 뜻하는 말로, 결혼식이나 장례식, 작명식을 주관하고 병을 고치거나 점을 치는 지혜로운 사람을 일컫는다. 그리고 종족을 이르는 ‘나시’는 티베트어로 ‘검은 사람’이란 뜻. 고도가 높아 자외선이 강하다 보니 검게 타서 그리 부르게 됐다 한다.

    나는 ‘도법자연’이라 쓴 족자가 마음에 들어 하나 샀다. 그 답례로 주인은 내게 차를 대접했다. 나는 그에게 이것저것 묻다가 나시족의 노래를 듣고 싶다고 했다. 여러 번 몸을 빼던 나시족 처녀는 거듭 청하자 기어이 한 곡조 뽑았다. 구성지긴 했으나 판소리에서 배어나는 한(恨)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독립자존의 기상이 느껴졌다. 리장이 자랑하는 한인(閑人, 한가로움을 즐기는 사람)적 삶의 태도는 한인(漢人)의 것이라기보다는 나시족의 것인 듯했다.

    나시족은 1000년 넘게 모계사회를 이루며 살고 있다. 가옥의 매매나 전세 등 중요 계약에 있어 책임 있는 계약의 주체는 모두 여자다. 집안 대소사에서도 여성이 최종 결정권을 갖는다. 모계사회에서 남자들이 하는 일이란 차 마시기, 어슬렁거리기 정도라 거리에는 남자 보기가 힘들다.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나시족 여성의 의복은 화려하고 별스럽다. 허리띠에는 벌이나 나비 모양의, 어깨걸이에는 금색이나 그 밖의 갖가지 색 별이나 달 모양의 수를 놓아 꾸몄다.

    원비후의 고즈넉함

    고성을 둘러본 다음 거기서 멀지 않은 상산(象山) 헤이룽탄(黑龍潭) 공원에 들렀다. 맑디맑은 물에 비친 주변 공간은 아름답다 못해 선경(仙境)의 풍취를 느끼게 한다. 가까스로 정신을 수습하고 시내에서 8km 떨어진 원비후(文筆湖)로 향했는데, 대중교통편이 없어 갈 때는 택시를 탔다. 가이드북 어디에도 나오지 않은 원비후를 찾은 것은 어느 책자에서 그곳 사진을 본 때문이었다. 실제 도착해보니 그 광경은 너무나 운치가 있었다.

    푸르고 드넓은 호수 둘레에 두 개의 18홀 골프코스가 자리 잡고 복층 구조의 빌라형 호텔이 경사지에 30여 채 들어서 있다. ‘설산수성(雪山水城)’이라 써붙인 호텔에 들어서자 관리자가 빌라를 안내했다. ‘그림처럼 아름답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곳. 입지와 디자인이 앙상블을 이루는데다 객실에서 내려다본 호수는 막힌 기를 탁 트이게 한다. 그들은 이곳을 일러 ‘자연적 인공물’ 또는 ‘인공적 자연물’이라 한다. 외부적으로는 자연을 그대로 살리고 내부적으로는 삶의 질을 향유할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는 게 빌라 관계자의 설명이다. 산과 물의 배치는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독특한데, 누구도 복제할 수 없을 듯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나는 호수를 호젓이 즐기고 싶어 왔던 길 반대쪽에 위치한 마을로 향했다.

    수면 위로 기다랗게 생긴 목선 한 척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한 사람이 서서 낚싯대를 들어 올리는 것으로 보아 고기를 잡는 것 같다. 커다란 그물도 보인다. 골프장과 호수가 만나는 접점에는 갈대가 무성하다. 마치 경계병인 것처럼. 얕은 물속에선 수초가 고개를 내밀고 찾는 이를 반긴다. 이 모든 것이 한데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낸다. 잔잔한 호수 너머로 노년기 지형이 빚은 유연한 곡선과 잭슨 폴록의 그림에나 나옴직한 형태의 구름이 일렁인다. 그렇게 보니 이곳에선 모든 게 완만하고 느리다. ‘재빨리’란 말이 어울릴 만한 것은 전혀 볼 수 없다. 기계나 디지털이 침투하지 않아 수확은 미미하나 이곳 사람들은 절대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이 또한 한인(閑人)의 자세가 아니겠는가. 리장은 요즘 떠오르는 생태관광(eco-tourism)의 적지임에 틀림없다.

    차마고도의 다리 짧은 말

    이튿날 아침, 리장의 빼놓을 수 없는 보물 위룽쉐산으로 가는 투어버스에 몸을 실었다. 1시간을 달려 동바인들의 민속촌이 있는 동파곡(東巴谷)에 닿았다. 거기서 두어 시간 머물며 토속 기념품과 결혼식, 신앙의식 등을 구경했다. 천년 넘게 전통문화를 지켜오고 있는 것이다.

    일행 가운데 외국인은 나뿐이었다. 안내인도 중국어만 사용했다. 이때 나를 도와준 사람이 있었는데, 광저우에서 온 젊은 부부였다. 그들이 통역 겸 말동무가 돼주었다. 덕분에 현지어 설명을 얼마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차마고도 신비 서린 중국 윈난성(雲南省) 기행

    리장 구시가 한가운데 위치한 빨래터. 물은 맑고 양도 많다.

    차는 거기서 다시 남쪽으로 달려 위룽쉐산 공원 입구에 이르렀다. 먼저 들른 곳은 현지 약초를 파는 기념품 가게. 인근에는 설산극장도 있다. 해발 3100m,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극장이자 영화감독 장이머우(張藝謀) 등 세 사람이 연출을 맡아 ‘인상(印象), 리장-설산편’을 공연한 곳이기도 하다. 당시 공연실황을 담은 DVD 한 장을 샀는데 차마고도를 생명줄로 생각하며 살던 나시족의 기상이 잘 드러나 있다. 그런데 작품을 보니 주인공은 모두 남자다. 작은 일, 집안일은 여자들에게 맡겨놓았지만 큰일, 바깥일은 남자들이 도맡아 해치웠던 모양이다. 그들의 용감한 기상과 튼튼한 몸은 이를 잘 말해준다. 역사물을 만드는 데 뛰어난 장이머우 감독은 ‘인상, 리장’에서도 자신의 특기를 마음껏 발휘하고 있었다.

    이곳은 차마고도(茶馬古道)상의 도시 가운데 가장 잘 보존된 지역이다. 실크로드보다는 약간 늦지만 거의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차마고도는 윈난성 남부에서 출발한 동서교역의 중요한 길로 7세기경에 개통됐는데, 현재까지 세계적으로 지세가 가장 높고 험준한 문명 전파의 길로 알려져 있다. 역참도로를 따라 마방이 끊임없이 만들어졌고, 이 길로 티베트나 인도, 네팔에 차, 설탕, 소금 등 생활필수품을 운송했다. 주요 운송품목이 차이고, 보통의 운송수단이 말이라 ‘차마고도’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한다.

    윈난의 말은 다리가 짧다. 그래서 빨리 달리지를 못한다. 대신 힘은 산악지대를 오르내리는 데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나시족 남자들은 험준하기 그지없는 꼬불꼬불 좁은 길을 이 노새 같은 말을 이끌고 다녔다. 그들이 노새에 실어 나른 주요 교역품은 야크 털 담요, 차, 도자기, 한약재 등이었다고 하는데, 그 험한 히말라야의 산길을 넘었을 옛 사람들에게 리장은 잠시 들러 쉬며 아득한 여행길의 고달픔을 씻을 수 있는 중요한 곳이었다.

    위룽쉐산 중턱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해발 4506m의 전망대에 올랐다. 이미 입구에서 두꺼운 방한복을 빌린 처지라 추위가 두렵지 않았다. 그때 케이블카 아래로 삼나무 원시림에 둘러싸인 푸른 오아시스가 나타났다. 푸른 하늘과 하얀 만년설, 원시림이 서로 어울려 환상적이고도 이국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만년설 ‘처녀산’ 위룽쉐산

    전망대에 도착하자 모두 밖으로 나가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해발 5596m의 주봉은 흔히 접할 수 없는 사진의 배경이 됐다. 위룽쉐산은 열두 개의 봉우리로 이뤄져 있으며 사시사철 눈이 녹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 눈앞에 펼쳐진 높은 봉우리에도 눈이 하얗게 덮여 있다. 거기서 흐른 물이 느림의 도시 리장을 맑고 시리게 적시고 있는 셈이다. 예로부터 이 산의 봉우리들은 마치 은색의 용이 춤추는 모습과 같다 해 ‘옥룡’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놀라운 사실은 아직 이 산을 정복한 이가 아무도 없다는 것. 설산의 기묘한 자태가 예부터 많은 여행자의 시선을 끌었지만, 아직 이 산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정복된 적 없는 처녀산이다. 보기에는 아름답지만, 정복하기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산의 풍광에 빠져 있을 즈음 이제까지 맑던 하늘에 갑자기 구름이 끼면서 앞이 보이지 않는다. 고산 기후답게 날씨가 오락가락한다. 여행객들이 일거에 전망대로 돌아온다. 더러는 산소가 부족한 이곳에 적응하지 못해 산소통 신세를 진다. 대부분은 남자다. 혹 여인국에 왔기 때문일까? 전망대 벽면에는 ‘體驗自然主義(자연주의를 체험하라)’는 글귀가 눈에 띈다. 날씨를 탓하지 말고 자연의 섭리에 따르라는 준엄한 명령이다.

    차마고도 신비 서린 중국 윈난성(雲南省) 기행
    권삼윤

    1951년 출생

    한국외국어대 무역과 졸업

    중동지역 등 60여 개국 여행

    저서 : ‘문명은 디자인이다’ ‘세계문화유산’ ‘나는 박물관에서 인류의 꿈을 보았다’ ‘꿈꾸는 여유, 그리스’ 등


    돌아오는 길에 눈 녹은 물에 달이 비친다고 알려진 계단식 수로를 거쳐 수허(束河)에 들렀다. 큰길에서 약간 비켜난 곳에 자리한 수허 역시 맑은 물을 온 사방에 흘려보내며 개울을 만든다. 그곳엔 기념품을 파는 상가도 있고, 그림처럼 곱고 다양한 문양의 동바 문자 간판들도 있다. 대대로 이곳에서 살아온 나시족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다. 기념품 가게가 빼곡히 들어선 입구의 상인거리를 지나자 티베트식 사원이 나타난다. 사원의 기둥은 무척이나 굵다. 마당에는 오색 천이 나부끼는 돌산과 탑이 있어 장족(藏族)의 전통신앙과 신심(信心)을 살필 수 있다.

    저녁 무렵 리장에 돌아와선 완쯔 카페부터 찾았다. 광저우의 젊은 부부를 위해 저녁을 사고자 해서였다. 그들과 헤어진 이튿날 아침 3박4일의 리장 일정을 끝내고 북서쪽에 위치한 중뎬(中甸)으로 향했다. 흔히 ‘내 마음속의 해와 달’을 뜻하는 샹그릴라(香格里)라 부르기도 한다.

    리장이 있는 윈난성의 면적은 우리나라보다 4배나 넓은데 쿤밍, 다리(大理·대리석은 이곳에서 유래됐다), 리장, 그리고 중뎬 등 느림의 미학을 보여주는 명소가 한두 곳이 아니다. 내가 보기엔 그중에서도 리장이 단연 으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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