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차 정상회담 때 김정일 위원장의 ‘개성공단 발언’이 도화선
- 뒤이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성립 이래 최대 규모’의 反부패 조사
- ‘불난 집에 기름 부은’ 김하중 장관 발언
- 北 군부 “개성 문 닫을 각오하고 (남측에) 본때 보여주라!”
- 공단 폐쇄, 이후는?
개성공단이 중대 기로에 서면서 북측 근로자들의 앞날도 불투명해졌다.
“저도 남북이 서로 만나서 이야기하는 데 매우 적극적이지만 과거식으로 하지는 않겠다. (…) 금강산 사업과 개성공단 사업은 개선의 여지가 많기는 하지만 계속돼야 한다.”(이명박 대통령, 3월26일 통일부 업무보고 석상에서)
“당장 이번 사건과 관련해 당근책을 내놓거나 북측에 무엇을 따로 제의할 생각은 없다. 민간 차원의 경협이 돌아가고 있기에 사업에 큰 지장이 없어 급할 게 없다.”(홍양호 통일부 차관, 북측 요구로 3월27일 새벽 남북경협사무소 남측당국 인원 11명이 철수한 사건에 대한 논평)
이명박 정부 출범 후 경색국면으로 치달아온 남북관계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려는 것 같다. 개성공단의 앞날에도 짙은 암운(暗雲)이 드리워졌다. 북핵 문제 진전과 개성공단의 추가 개발 연계 방침을 확실히 한 김하중 장관의 발언은 북측의 개성공단 내 남측 당국자 추방을 불렀다. 그럼에도 사건 발생 하루도 안 지나 홍양호 차관은 ‘급할 게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바야흐로 남북이 각자 제 갈길을 향해 등을 돌린 형국이다.
‘햇볕 상징’의 폐쇄 여파는?
4월8일 싱가포르 북·미회담이 끝나고 나서 여러 경로에서 개성공단이 위험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떠돌기 시작했다. ‘통미봉남(通美封南)’ 이야기가 서서히 서울을 달구던 때였다. 그런 차에 4월12일, 북한 내부 사정에 정통한 A씨를 통해 급한 뉴스를 접했다. 그는 “북한이 조만간 개성공단에 대해 모종의 조치를 취할 움직임이며, 요즘 돌아가는 분위기로 볼 때 공단 폐쇄라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갈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향후 북한이 취할 행동으로 ‘북한 노동자들의 태업→파업→철수→통행금지’의 단계별 수순을 제시하기도 했다. 단순한 위험 징후가 아니라 확실한 폐쇄 시나리오까지 흘러나왔다는 점에서 상황을 면밀히 점검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1단계 330만㎡(100만평) 기반시설 조성공사가 마무리된 개성공단에는 지난 2월 말 현재 69개 기업이 가동되고 있으며, 38개 기업이 공장을 건축 중에 있다. 2004년 12월 첫 생산을 시작한 이래 3년2개월 동안의 누적 생산액은 3억997만달러. 공단에서 일하는 북측 노동자 수는 2만3953명으로, 복지비를 포함해 북한 노동자 1인당 평균임금을 월 100달러로 계산하면 북측에 돌아가는 돈은 매달 240만달러 정도가 된다.
개성공단에 대해 그동안 남측에선 햇볕정책의 상징적인 성과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원산지 규정 등 수출 통로만 확보되면 세계적인 산업지구로 키울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도 많았다. 일례로 지난해 발표된 한국은행의 한 자료는 “개성공단 3단계 조성공사가 마무리되는 2012년부터 남한 경제에 연간 24조4000억원, 북한 경제에는 연간 6억달러의 부가가치가 창출되고, 남한에 10만4000개, 북한에 72만5000개의 일자리를 만들어줄 것”으로 예측했다.
만약 이런 개성공단이 폐쇄된다면 그 여파는 어떤 양상으로 나타날 것인가. 일각에서 안이하게 예상하는 식으로 어느 시점에 남북관계 경색이 풀린 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재개하면 그만인 것일까? 가뜩이나 적자에 시달려온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의 운명은 또 어떻게 될까. 등 떠밀 듯 개성공단 입주를 권유했던 정부는(물론 이명박 정부가 그 당사자는 아니지만) ‘민간의 일’이라며 나 몰라라 방관할 수 있을까? 당장 ‘한국 정부를 믿고 개성공단에 투자한 기업의 손실을 정부가 보전해줘야 하는가’라는 현실적 문제가 발생할 게 뻔하다. 무엇보다 이런 사태를 목도한 여타 국내 기업들은 과연 남북경협 사업에 선뜻 나설 용기가 생길까? 신변 안전과 사업 개런티가 안 된다는 정신적, 경제적 불안감과 압박이 확산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개성공단을 둘러싼 북측 내부의 최근 움직임 및 그 이유를 지금까지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정보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대남부서에 던져진 김 위원장의 화두
개성공단의 야경.
“특구 해서 우리가 득 본 것 하나도 없다. 개성공단 봐라. 4년 전에 삽 들고 시작했는데 지금 시범단계밖에 없다. 남에서는 마치 개성이 개방개혁의 성공사례인 것처럼 말하는데, 우리는 수용 못한다. 특구 하는데 개방개혁 정치선전 하려면 우리는 못 한다.”(‘한겨레’ 10월6일자)
다음날 오후, 노무현 대통령도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개성공단을 시찰하는 자리에서 전날 오전의 상황을 언급했다.
“이번에 (북측과) 대화를 해보니 ‘남측에서 개성공단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서 못마땅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동안 ‘개성공단이 잘되면 북측의 개혁·개방을 유도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을 해왔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곳은 남북이 함께 성공하는 자리이지 누구를 개혁·개방시키는 자리가 아니다. 개혁·개방은 북측이 알아서 할 일이다.”
문맥을 보면 개성공단 문제에 관한 한 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설득을 당한 모양새다. 틈날 때마다 개성공단 자화자찬에 열을 올렸던 노무현 정부로선 할 말이 없었을 법도 했을 것이다. 어찌 됐건 개성공단에 대한 평가를 둘러싼 남북 정상간의 ‘이견(異見)’은 10·4 공동선언에서 해주경제특구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개발 합의로 더욱 확대되어 나왔다. 개성공단이 성공적이지 못했으니 다른 형태로라도 성공사례를 만들어보자는 데 공감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올 만한 대목이다.
문제는 김 위원장의 ‘개성공단 발언’이 그 후 북한 내부에 끼친 파장이었다. ‘장군님 말씀=법 위의 법’이 되는 북한 사회에서 김 위원장이 개성공단에 대해 내린 ‘규정’은 모든 대남사업 부서에 화두가 되어 던져졌다. 북한 내부에서 지난해 10월 이후 진행된 대대적인 반(反)부패사범 조사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A씨의 설명이다.
“지난해 10월 중순부터 시작된 반부패사범 조사는 시간이 갈수록 확대되는 양상을 보여왔다. 애당초 보위부에서 시작된 조사는 11월경 당 중앙위 조직지도부 관할로 넘어왔고, 올해 1월부터는 장성택(김 위원장의 매제)이 부장으로 복귀한 행정부 소관 업무가 됐다. 조사 대상도 민경련(민족경제협력연합회), 아태(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민화협(민족화해협의회), 통일전선부에서부터 대남·대외관계를 담당하는 모든 부서와 기관, 회사로 확대됐다. 한마디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성립 이래 최대 규모의 반부패 조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일파만파, 反부패사범 조사
그 와중에 대남부문의 실세로 떠올랐다가 지난 연말께 지방으로 철직된 최승철 통전부 부부장은 추가 수뢰 사례가 적발돼 3월 중순경 다시 평양으로 소환돼 구금됐다는 소식도 나왔다. 지난 2월 말까지만 해도 최승철은 대남사업에 복귀할 것으로 예상됐던 인물이다. 지난해 그의 활동상을 고려하면 북측이 언제든 꺼내들 카드로 인식한 사람이 많았다. 국내 일부 언론에서도 1월 초까지 ‘대남 실세 최승철’을 제목으로 뽑아 그의 영향력이 여전함을 전했지만, 2월 중순 새 정부 출범 직전 지방으로 쫓겨났다는 정보당국의 비공식 확인이 나와 있었다. 그런 그가 부패사범으로 조사받고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상황이 이렇게까지 확대된 데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지난해 10월 김 위원장의 ‘개성공단 발언’이 발화점이 된 것은 분명하다. 개성공단을 담당하던 부서인 민경련에 대한 조사는 지난해 11월 본격적으로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12월이 되자 베이징, 단둥 등의 민경련 책임자들이 평양으로 줄소환당했다는 것이 확인됐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단순히 민경련에 대한 조사로 여겨졌다. 그러나 파장은 민경련뿐만 아니라 민화협, 그리고 통일전선부와 대외사업을 하는 전 부서까지 급속도로 번졌다.
사건의 저변에는 이른바 ‘수뢰’가 가장 큰 요인으로 알려진다. 대외사업을 빌미로 한 착복은 3월 초순 민경련 정운업 회장의 집에서 몇백만달러의 현금이 발견됐다는 첩보 수준으로 알려졌지만, 대북소식통들은 이번에 대외사업 일꾼들의 자금 보유나 소비 행태까지도 전면 추적을 받았다고 말한다. 조사는 3월 중순이 지나면서 정리 수순에 들어갔지만 일부 사안은 4월 현재 아직도 진행 중이라고 한다.
2007년 10월4일 2차 정상회담 후 귀경길에 개성공단을 방문한 노무현 전 대통령.
그런데 왜 이 같은 사실이 밖으로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일까. 유례없는 반부패 단속사건은 간헐적인 소식으로만 외부로 노출됐다. 그만큼 평양은 이 부분에서 민감하게 정보 보안에 신경을 썼다는 얘기다. 외부에 알려져서 평양이 부패의 온상이라고 비판받는 상황을 원치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내부 비리 문제를 까발려 이미지에 좋을 일이 없고, 이런 일이 공개적으로 밝혀지기도 어려운 게 그쪽 사회의 특성임을 감안하면 나름대로 이해되는 대목이다.
北 군부의 문제 제기
그러던 중 남측에선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 새 정부는 인수위 시절부터 보수 컬러를 분명히 하며 예전과 확연하게 달라진 대북 자세를 과시했다. 이에 따라 관망 상태를 유지하던 북측도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대남 비판의 강도를 갈수록 높여갔다. 연례행사처럼 해오던 쌀·비료 지원도 올해는 거의 기대하기가 어려운 상태였다. 그리고 3월19일, 김하중 통일부 장관의 핵 문제-개성공단 연계 발언이 나오고, 이어서 북측의 개성공단 내 남측 인원 축출이라는 강수(强手)가 나왔다. 김하중 장관으로서는 조금 어리둥절했을 법도 한 상황이지만, 개성은 그만한 상징성과 무게가 있다.
당연히 북측 상부의 결정이겠지만, 이번에 개성공단 문제를 강하게 제기한 쪽은 북한 군부라는 것이 국내외 대북소식통들의 관측이다. 북 군부는 그렇지 않아도 지난해 11월 남북 국방장관회담 때 발생한 ‘액자 사건’으로 마음이 상해 있던 차였다. 당시 한국 언론에 가십성 기사로 간단하게 소개된 ‘액자 사건’이란 김장수 당시 국방장관이 회의실 벽에 붙어 있던 김일성·김정일 부자 사진을 가리키며 ‘저것 떼라’고 요구해 회의가 30분 지연된 해프닝을 말한다. 당시 북측은 “당신네는 아버지도 ‘저것’이라고 부르냐”며 강하게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일로 인해 회담이 끝난 후 북측 군 수뇌부 사이에는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통일은 꿈도 못 꿀 일이다’라는 비관론이 확산됐다고 한다.
북 군부 처지에서 개성공단은 자기네가 전략적 요충지인 개성을 양보함으로써 성립될 수 있었던 일이었다. 하지만 개성공단으로 인해 북측이 거둬들이는 이득은 애당초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개성공단을 내주고 받는) 연간 3000만달러도 안 되는 돈에서 군부가 배당받는 금액은, 무기 수출이나 다른 군사지역의 농산물, 광산물 판매를 통해 얻는 이익과 비교하면 ‘새발의 피’였다. 더군다나 공단이 만들어진 뒤에는 민경련이 관리해왔으니 군부가 특별히 요구를 제기할 명분도 마땅치 않았다. 2단계 공사나 시작돼야 뭔가 기대를 해볼 수 있는 국면이었다.
바로 이런 상황에 반부패사범 조사가 시작됐다. 개성공단 사업을 담당하던 남측 기업이나 관료, 정치인들과 접촉한 일꾼들도 예외 없이 이에 걸려들었다. 수만달러를 받아 챙긴 하위직에서 수백만달러의 뇌물을 받아먹은 고위직까지 속속 드러났다. A씨는 “김하중 장관의 발언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고 말했다. 분노한 북 군부는 공개적으로 이 문제를 제기했다고 한다.
“군의 주장은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개성을 저대로 남쪽의 손에 맡겨놓을 수 없다. 둘째, ‘장군님 말씀’에 따라 군의 전략요충지를 내줬지만 해당 일꾼들의 관리가 부실하다. 실리적 성과가 없다. 셋째, (남측이 저렇게 도발하니) 개성 문을 닫을 각오를 하고 이참에 본때를 보여주자.”
문제는 북측 내부의 현재 분위기상 군의 이 같은 요구에 대해 어느 누구도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 웬만한 대남부서는 반부패 조사로 인해 할 말이 없어진 데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자세가 모든 부서를 대남 강경대응 쪽으로 몰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파국으로 가는 시나리오
북한은 원래 올해 ‘선군(先軍)’에서 경제제일주의로 방향 선회를 할 예정이었다. 그 점은 올 신년사에도 잘 드러나 있다. 이를 위해 남측의 대선 전부터 새 집권 측에 대해 비방을 자제하는 한편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장에 고위층을 참석시키겠다는 제안까지 했다. 그러나 핵 문제 해결을 다른 모든 현안의 전제 조건으로 내세우면서 10·4 공동선언마저 부인해버린 이명박 정부의 새 대북정책으로 북한의 이 같은 구상은 물거품이 됐다. 개성공단 확대는 기약할 수 없는 일이 됐고 ‘비핵·개방3000’ 로드맵으로 서해평화지대니 해주특구 같은 신사업도 사실상 ‘그림의 떡’이 됐다. 개성공단도 죽을 쑤는 판에 앞으로 될지 안 될지 모르는 ‘나들섬’ 운운하는 서울을 보면서 그들은 깊은 좌절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지난해 여당 대선 후보로 나섰던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개성공단을 득표 전략으로 내세웠다. 사진은 2007년 10월 개성공단을 방문한 정 전 장관.
남북의 개성공단 관리기구인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와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이 매년 8월에 월 최저임금을 결정하기로 합의한 상태라고는 하나 북측이 숙련도나 작업능력 등에 비추어 ‘우리도 베트남이나 중국 고급기술인력 임금만큼은 받아야겠다’고 나오면 남측 기업들로선 대책이 없다. 저임금의 임가공만 하자고 개성공단을 만든 건 아니라는 논리다.
북측은 또 예정보다 지연되고 있고, 앞으로 제대로 협의될 기약이 없어 보이는 2, 3단계 확장공사를 빌미로 ‘개성공단 (단기) 발전계획을 내놓으라’며 남측을 압박할 수도 있다. 이 점은 지난해 10월 김정일 위원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한 말과도 통한다. ‘시범단계’를 벗어나 당초 제시했던 경제 기여도만큼 어떻게 할 것이며 해줄 수 있는지 실행 요구가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김하중 장관의 핵 연계 발언이 이미 나온 마당에 이 같은 요구는 파국으로 가기 위한 핑계가 될 공산이 크다. 서울에서는 3통(通)문제의 해결 등 현실적인 과제를 언급할 수 있겠지만, ‘개성공단 개발은 엄밀히 말해 민간 주도가 아닌 정부 주도이고 경제가 아닌 정치 문제’라는 북측의 논리에 대응이 군색해질 수도 있다. 그 다음 수순은? 근로자 철수에 이은 공단 폐쇄다.
만에 하나 이명박 대통령이 방미·방일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다음 4월 말 이전에 북측에 모종의 대화 제의를 한다면 혹 상황이 변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한미동맹 강화를 제1의 화두로 삼고 있는 마당에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측이 반길 만한 소식이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전례를 볼 때 기껏해야 적십자사를 통한 대화 제의나 통일부 수준에서 만나자는 전통문이 들어갈 것이고, 최근 남북 간에 오간 설왕설래를 보면 그 대화의 수준은 아주 낮을 것이 뻔하다. 그렇게 보면 개성공단 파국의 시나리오는 이미 궤도 위에 올라타 달리기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다.
앞서 밝힌 대로 개성공단이 폐쇄될 경우 북측이 입게 될 일차적인 손실은 월 200만~240만달러의 현금이다. 공단 폐쇄로 인한 국제적 신뢰 추락에 대해선 북측은 별로 개의치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서도 개성공단 상품은 원산지 규정의 유보 조항에 묶여 있다. 공단과 상품이 따로 놀고 있는 게 개성공단의 현재 지위라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 남북 당국이 서로 상대방의 투자자산을 보호하기 위해 2000년 12월 체결한 남북투자보장합의서, 북측 개성공업지구법 중 투자자산 보호와 투자자산 국유화 방지 조항 등이 있다고 하지만, 이 또한 자산은 보호해준다고 하면서 저임금이라는 노동 요인에 초점을 맞춰 몰고 가며 무시해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면 남측이 입게 될 타격은 어떤 것일까. 먼저 입주 중소기업들은 상당한 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된다. 도산 위기에 처할 기업이 속출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 대비해 입주기업이 매년 투자금액의 0.5~3%(중소기업은 0.375%)를 수수료로 지급하면 총투자액의 90%까지 보장해주는 손실보조제도가 있다지만, 기업들이 ‘정치적 차원’에서 보상을 요구할 경우 정부의 부담은 단순한 돈 문제 차원을 넘어설 공산이 크다. 2차 분양이나 그 이상은 당연히 물 건너간다.
한번 신뢰가 무너지면…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이 같은 사태로 인해 초래될 남북 간의 신뢰 상실이다. 개성공단 파국의 현장을 지켜본 국내 기업들 중 어느 누가 훗날 대북투자에 선뜻 나설 것이며, 대북 경협에 자신의 운명을 거는 모험을 하겠는가. 다시 A씨의 말이다.
“내가 안팎의 정보망을 동원해 수집한 개성공단 관련 북한 내부동향을 밝히는 이유는 ‘개성공단은 결코 폐쇄되어선 안 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전임 정부들이 개성공단을 정치적으로 활용해온 것은 (문제가 많았지만) 논외로 치자. 어찌 됐건 개성공단은 현재 남북경협의 실험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런 존재가 폐쇄된다는 것은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 수차례 총격이 오가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남북관계에 정말로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남북 양측 당국에 한 걸음씩 물러나 상황을 바로 볼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남북이 이 조그만 공단 하나 제대로 발전시키지 못하면서 통일을 운위하는 것은 한마디로 웃기는 짓이다. 그게 말장난 아닌가.”
이명박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4월11일 ‘뉴욕타임스’와의 회견에서 북한의 대남 강경 기조와 관련해 “새 정부 출범에 따라 상대를 시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발언의 저변에서 ‘북한은 현금이 들어오는 돈줄인 개성공단은 어쩌지 못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인식이 읽힌다. ‘비핵·개방3000’의 로드맵을 짜면서‘북한은 쌀·비료 때문에라도 대화를 요청해올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과 마찬가지 논리다. 그러나 북한이 먼저 쌀·비료를 달라고 요청할 가능성은 갈수록 희박해지고 있다.
이 대통령은 또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가진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통미봉남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미국은 개성공단에 대한 북한 군부의 이러한 동향을 알고나 있는지, 알고 있었다면 그 사실을 서울에 전달해줬는지 의문이 든다.
정부 차원의 믿을 만한 대북정보 네트워크가 망가진 지 오래라는 것을 아는 이들은 다 안다. 막연한 낙관론, 상대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는 외골수 인식이 그나마 숱한 문제를 일으켜가며 근근이 쌓아올린 남북 간의 티끌 같은 신뢰마저 무너뜨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