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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감정 불감증이신가요?

  • 김현미│동아일보 출판팀장 khmzip@donga.com

당신, 감정 불감증이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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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나이 마흔 중반 무렵부터 슬금슬금 달라지는 것이 있다. 첫째, TV 드라마에 빠진다. 사랑, 실연, 불륜 이런 이야기는 할 일 없는 여자들이나 보는 것이라며 눈길도 주지 않던 사람이 언제부턴가 아내 옆에서 드라마 쪽에 곁눈질하다가 나중에는 누구보다 먼저 채널을 챙기는 성의를 보인다.

그 나이쯤 해서 남자들이 은근히 밝히는 게 또 있다. 점집이다. 사주 보는 집이라고 해도 좋다. 젊은 시절 점 이야기만 꺼내도 미신이라며 펄쩍 뛰던 사람이 이제는 “한번 가서 물어보지 그래?” 하며 슬쩍 아내를 부추긴다.

한 가지 더, 중년의 남자는 수다스러워진다. ‘노래방에서 애국가만 부르던 사람(회사 밖에서도 일 이야기만 하던 사람)’이 온갖 장르의 유행가를 뽑는 수다쟁이가 된다. 자식 자랑, 건강 자랑, 인기 드라마에 연예인들의 사생활까지 즐겁게 떠든다. 그이가 주책없어진 것일까, 나약해진 것일까. 걱정할 것 없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졌을 뿐이다. 세월이 그를 ‘사내다움’이란 굴레에서 해방시킨 것이다.

엘리트 남성들은 오랫동안 ‘stiff up-per lip’(윗입술을 고정시킨다는 말로, 모름지기 남자란 어떤 상황에서도 표정에 감정의 동요를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다)의 교육을 받아왔다. “남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는 말처럼 감정을 늘 통제 상태에 두는 것이 ‘사내다움’의 징표라 여겼다. “슬플 때 쥐 죽은 듯이 있고, 화가 날 때는 조용히 꾹 참고, 무서움을 느낄 때는 밀쳐내도록 배워왔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통제하거나 혹은 남이 보지 못하도록 숨기라고 교육받아왔다.”

‘감정공부’의 저자이며 심리치료가인 미리암 그린스팬은 그러한 오랜 관행이 남성을 감정 불감증 환자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감정 불감증이란 자신의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데도 서툴 뿐만 아니라 타인의 감정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여성들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린스팬에 따르면, 여자아이들은 침묵 속에서 괴로워하는 방법을 배웠고, 남자아이들은 괴로워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도록 학습받은 것의 차이일 뿐이다. 만일 있는 그대로 감정을 드러냈다면 당신에게 당장 ‘과민’이라는 딱지가 붙을 것이다.



오늘날 심리학자나 정신과 전문의들은 현대인이 좀 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감정의 통제에는 한계가 있으며, 찰랑거리는 컵에 한 방울의 물이 떨어지는 순간 넘쳐흐르는 것처럼 돌발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감정의 부메랑 효과’라고 한다. 그린스팬은 “감정에 대한 두려움과 평가절하의 바로 뒤편에서 우리는 자신들의 감정을 인공적으로 자극할 거리를 필요로 한다. 이는 일종의 감정적 포르노에 대한 중독”이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TV에서 쉼 없이 소리를 질러대는 가학성 코미디와 불륜과 학대로 점철되는 ‘막장’ 드라마가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것도 ‘감정적 포르노에 대한 중독’이 아닐까.

당신, 감정 불감증이신가요?

감정공부 미리암 그린스팬 지음/ 이종복 옮김/ 뜰/ 382쪽/ 1만3500원

분노와 수치심도 쓸모가 있다

‘감정공부’는 슬플 때는 울고, 기쁠 때는 웃고, 화가 날 때는 소리치는 감정의 해방을 주장한다. 특히 슬픔, 절망, 두려움처럼 소위 드러내지 말아야 할 ‘나쁜 감정’으로 취급당해온 것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라고 충고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슬픔을 느끼고 눈물을 흘리는 것은 당연하다. 애써 눈물을 감추지 마라. 그린스팬은 상실, 슬픔의 유용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감사는 슬픔의 눈을 통해 바라볼 때 일어난다. 삶에 집착하는 것을 그만두고 삶에 그저 감사하며 살 수 있는 것이다.”

‘감정공부’가 명상적인 방법으로 이성에 의해 억압된 감정을 해방시켜 삶의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꿀 것을 제안한 책이라면, 프랑스의 정신과 전문의인 프랑수아 를로르와 크리스토프 앙드레가 함께 쓴 ‘내 감정사용법’은 분노, 시기, 기쁨, 슬픔, 수치심, 질투, 두려움, 사랑 등 8개의 감정을 기능별로 살펴보고 이러한 감정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알려주는 매뉴얼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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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동아일보 출판팀장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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