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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할머니의 죽음과‘웰다잉’에 대한 소고(小考)

한많은 삶에 황망한 죽음… “‘준비된’죽음을 맞고 싶다”

  • 김수영│프리랜서·시인 kimsu01@hanafos.com│ 박병혁│사진작가 k2p00@korea.com

한 할머니의 죽음과‘웰다잉’에 대한 소고(小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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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할머니의 죽음과‘웰다잉’에 대한 소고(小考)
삶과 죽음의 경계

방에는 할머니 외에도 8명의 할머니가 더 있었다. 한 분을 빼고는 모두 치매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그중에서 몇 분은 의식조차 있을까 싶을 정도로 위중해 보였다. 20년 전에 풍을 맞아 오른쪽 팔과 오른쪽 다리를 쓰지 못하는 할머니는 이 방에서 도우미 역할을 자처했다.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 할머니들의 입에 넣어주기도 하고, 가까이 누워 있는 사람들을 불편하지 않게 조금씩 밀어서 떼어놓기도 한다. 할머니들에게 필요한 것이 있거나 조처를 취해야 할 점이 있으면 요양원에 건의도 하는 ‘시어머니’이기도 했다.

정릉에서 살다 3년 전에 요양원에 왔다는 할머니는 방에 있는 다른 할머니들을 일일이 소개해줬다. 97세, 93세, 91세, 88세, 83세, 85세, 그리고 의식이 없어서 나이를 모르는 할머니들…. 두 다리를 가슴에 모은 채 앉아 있던 털모자 쓴 할머니가 이 방의 큰언니로 97세였다. 일어서 걷지는 못했지만 엉덩이로 밀어서 움직일 수 있었고, 본인의 이름, 자식, 며느리, 손자의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다.

“다들 말은 못해도 눈치는 빤해. 다 알아.”

모두 침묵하고 있었지만, 정신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사지가 뻣뻣하게 굳은 채 눈도 못 뜨는 할머니도 싫다는 의사표시는 한다고 했다. 말을 못하면 눈으로, 눈을 뜨지 못하면 온몸으로 전해지는 어떤 기운으로. 의식을 완전히 잃어버리지 않는 한 감정은 전달됐다.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하는 의문은 곧 풀렸다. 8년 전에 요양원에 왔다는, 중증 치매에 걸린 할머니 한 분의 시선이 내게 고정됐다. 사람의 눈이라기보다 강아지나 고양이의 눈빛에 더 가까운 천진함이 묻어나왔다. 나는 무슨 말이든 해야 할 거 같아서 웃으면서 큰소리로 아이들의 이름과 나이, 어디에 사는지, 이곳에는 왜 왔는지 설명했다. 나의 설명을 듣자 빙긋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말을 알아들었는지, 알아들었다면 어디까지 알아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는 느낌 또한 들지 않았다.



흔히들 오감 외에 육감이 있다고 한다. 오감이 마비되어가는 할머니들은 육감으로 소통하고 있었다. 치매로 지능을 잃어버렸지만, 분명한 건 아직 의식을 가지고 살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안락사도 존엄사도 논의할 수 없는 시간을 살고 있었다.

완강한 고립에 담긴 곡절

아이들이 노래를 시작하자 방금 나와 대화를 나눈 바로 그 할머니가 가장 먼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봐여. 할머니들 모르는 거 같은데 다 알잖아여. 애들이 오면 좋은 거라. 누워 있지만 다 알아여.”

할머니들은 아이를, 사람을 좋아했다. 조금이라도 육신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은 아이들 얼굴 밑으로 얼굴을 갖다 넣기도 하고 일부러, 아이들 곁에 바싹 다가오고 싶어했다. 우리가 할머니들의 냄새를 느끼는 만큼 할머니들도 우리들의 냄새, 요양원 바깥의 냄새를 느낄 것이다.

97세 할머니는 아이들이 벗어놓은 오리털 파카를 가지런히 펴놓고 마치 인형놀이를 하는 것처럼 팔을 접었다 폈다 하며 몇 시간이고 만지작거리며 쓰다듬었다. 손자의 나이와 이름을 기억하는 할머니는 손자의 얼굴을 기억할 것이다. 할머니는 파카를 뺏기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러나 할아버지 방은 할머니 방과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다섯 명의 할아버지는 나이가 일흔 남짓했다. 이곳 할머니들의 평균 연령이 90세인 것을 감안하면, 할아버지들은 할머니들의 아들뻘이다. 차이는 그것말고도 또 있었다. 할머니들은 우리가 낯선 방문객이지만 아이들의 몸을 어루만지고, 내 손을 잡고 반가움을 나타냈다.

반면, 할아버지들은 누구 한 사람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상 차리는 것을 도와주려고 했지만 인사할 겨를조차 주지 않았다. 남편은 일부러 할아버지 방에 가서 앉아 있어봤지만, 마치 투명인간이 된 듯 철저하게 무시당했다. 할아버지들은 시선을 텔레비전 화면에 고정한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같은 방에 있는 동료끼리도 대화하지 않았다. 아이들조차 할아버지 방의 침묵을 깨지 못했다. “안녕하세요”라고 배꼽인사를 해도 누구 한 사람 웃으면서 받아주지 않았다. 누구와도 대화를 하지 않고 이렇듯 완강히 고립을 고집할 때는 필경 무슨 곡절이 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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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프리랜서·시인 kimsu01@hanafos.com│ 박병혁│사진작가 k2p00@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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