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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사기열전(史記列傳)’

② 태사공자서

겨울을 난 벚나무에 향기로운 꽃이 피고

  • 원재훈│시인 whonjh@empal.com

② 태사공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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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릉의 화(禍)

“나와 이릉은 같은 문하에 있었는데 본래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취미도 달라 술잔을 나누며 친하게 환담한 적도 없다. 그러나 그의 사람됨을 볼 적에 본래 예사롭지 않은 선비였다. 효심이 두텁고 신의가 있으며 청렴하여 공연한 선물은 받지 않았다. 물건을 나눌 때에는 제 몫을 남에게 양보하고, 항상 공경하는 마음과 사양하는 몸가짐을 가졌다. 항상 분기하여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국가의 위난에 뛰어들었다. 이것이 그의 평생의 자세였다.”

사마천은 역사를 기록하는 독수리눈을 가진 선비였다. 그의 눈은 그의 입이기도 했다. 행동과 말이 다르지 않았다. 이것이 화근이었다. 전술했듯, 역사가는 단 한 문장 때문에 목숨을 버리기도 한다. 사마천은 이러한 일이 바로 되지 않으면,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군주가 군주답고, 신하가 신하답고, 자식이 자식다워야 함은 이러한 정직성과 정확성에 기인한다.

이릉은 5000 병력으로 흉노를 정벌하러 갔다. 북방의 호랑이 같은 수만의 흉노 대군을 5000 군사로 제압하려다 적군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식량과 화살이 떨어지고, 구원병마저 오지 않는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이릉이 진중(陣中)을 바라볼 때, ‘병사들은 몸을 일으켜 눈물을 흘리고 피로써 얼굴을 씻고 눈물을 마시며, 살도 없는 활을 당기면서 시퍼런 칼날에 몸을 던지고, 북을 향해 앞 다퉈 죽어’가고 있었다. 그때 궁에서는 이릉이 용맹무쌍하게 싸우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일찌감치 승리를 자축하며 술잔을 높이 들고 있었다.

이릉은 한나라의 장군으로서 적에게 항복했다는 죄목으로 한 무제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이때 사마천이 한 무제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제가 생각하기로 이릉은 평소 맛있는 것도 먹지 않고 부하와 더불어 고난을 함께하니, 모두가 이 사람을 위해서라면 죽음도 아끼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옛 명장도 이릉보다 뛰어나지 않았습니다. 몸은 비록 적에게 붙들려 있지만, 당초 생각은 적당한 기회에 한에 은혜를 갚으려 했던 것입니다. 이미 패한 건 어쩔 수 없으나, 흉노를 무찌른 공훈은 천하에 부끄러움이 없을 것입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세상을 사는 일은 시인에게도 그리 녹록하지 않다. 그러니 정치판 같은 곳에서야 오죽하겠는가. 그의 충성은 호도되었고, 결국 이릉은 온 가족이 사형에 처해졌으며, 사마천은 궁형을 당해 한겨울 벌판에 알몸으로 서 있는 형국이 됐다.

살아남아야 할 이유

사마천이 ‘사기’라는 대작을 집필할 수 있었던 것은 가혹한 형벌 궁형 덕분이다. 그는 살아남아야 할 이유로 글쓰기를 택했다. 그러고 나니 육체적인 죽음이라고 할 만한 궁형은 오히려 정신을 되살려냈다. 그는 형벌을 받으면서 심각하게 고민했다. 먼저 억울함을 곱씹었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런 수모를 겪는단 말인가’ 미치기 직전까지 정신이 팽창한다. 몸과 마음은 터져버릴 것 같은 공황상태에 이른다. ‘이것이 내 죄인가? 이것이 내 죄인가? 몸이 망가져 쓸모없게 되었구나.’ 몸의 망가짐이 정신의 죽음으로 이르기 직전에 사마천은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를 극복하고 자신의 쓸모를 찾아냈다.

“대체로 시경과 서경의 뜻이 은미(隱微)하고 말이 간략한 것은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바를 펼쳐 보이려 했기 때문이다. 옛날 서백은 유리에 갇혔기 때문에 ‘주역’을 풀이했고, 공자는 진나라와 채나라에서 고난을 겪었기에 ‘춘추’를 지었으며, 굴원은 쫓겨나는 신세가 되어 ‘이소’를 지었고, 좌구명은 눈이 멀어 ‘국어’를 남겼다.

손자는 다리가 잘린 후 ‘병법’을 논했고, 여불위는 촉나라로 좌천되자 세상에 ‘여람: 여씨춘추’를 전했고, 한비는 진나라에 갇혀 ‘세난’과 ‘고분’ 두 편을 남겼다. 시 300편은 대체로 현인과 성인이 발분(發憤)하여 지은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마음속에 울분이 맺혀 있는데, 그것을 발산할 수 없기 때문에 지나간 일을 서술하여 다가올 일을 생각한다. 좌구명이나 손자는 실명하거나 다리가 절단되자 희망을 잃고 물러나 책을 지어 토하고 글에 의지해 깊은 뜻을 세상에 알리려 했던 것이다.”

궁형, 거세를 당한 것은 그가 이제 더 이상 남성으로서 국정에 나가 이런저런 말을 할 수 없다는 의미기도 하다. 사마천은 이제 사회의 마이너리티로 그림자와 같은 삶을 산다. 그에게 오늘은 사라지고, 대장부의 명분도 없어진 것이다. 그에게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과거와 미래뿐이었다. 그래서 ‘지나간 일을 서술해 다가올 일을 생각하는’ 문장을 남긴다. 이것이 바로 역사가의 운명이었다. 그는 벗 임안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런 글을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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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훈│시인 whonjh@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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