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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유가 급등락 배경에 투기세력

‘엔론 루프홀’은 어떻게 세계를 흔들었나

  • 가와하라 가즈오│에너지전략분석가 uy8k-kwhr@asahi-net.or.jp│ 이준규│번역│일본 메이지가쿠인대 국제학연구소 연구원

국제유가 급등락 배경에 투기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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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가에 고민하던 미국과 영국은 즉시 이에 환영의 뜻을 표했지만 뉘앙스는 달랐다. 고든 브라운 영국 수상은 즉각 회의에 참석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사우디 등의 월스트리트 투기자본에 대한 규탄이 부담스러웠던 듯하다. 결국 부시 대통령의 참석이 어려워지면서 회의는 장관급 회담에 가까워졌고, 미국측에서는 역시 투기자본의 한 축인 골드만삭스 출신의 헨리 폴슨 재무장관 대신 새뮤얼 보드먼 에너지부 장관이 회의에 참석했다.

사우디는 월스트리트의 투기행위를 규탄한다는 취지에서 JP모건 등 대규모 투자은행의 CEO에게도 출석을 요청했지만 이들이 국제적인 비판의 무대에 모습을 나타낼 리는 없었다. 그 결과 지다 회의는 그로부터 두 달 전 이탈리아 로마에서 개최된 국제에너지포럼(IEF) 장관급 회담을 고스란히 반복하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이 시기 사우디는 1일 50만배럴 규모의 증산계획을 발표했지만 이는 앞서 실행한 30만배럴 증산을 포함하는 것이어서 실질적으로는 20만배럴이 증산된 것이었다. 제한된 증산은 그 효과도 미미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후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긴급대응기관인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비관적인 중기 석유수급 전망을 발표함에 따라 2008년 7월초 유가는 역사상 최고가를 기록하게 된다.

‘엔론 루프홀’과 버락 오바마

미국의 경우는 어땠을까. 부시 행정부는 투기가 원유가격 급등의 주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민주당이 주도하는 의회에서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미 상하원의 관련 위원회들은 2008년 5월부터 7월 사이에 유가 급등을 주제로 앞다투어 공청회를 열었다(그 가운데는 버락 오바마 당선자와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소속된 위원회도 있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나 연방거래위원회(FTC) 등 미 정부기관 관료들은 투기자본의 개입을 부인했으나, 다수의 민간 전문가와 학자들은 투기자본의 악영향을 증언하며 책임론을 제기했다.



이들 공청회에서 투기세력 원유시장 개입의 원인으로 주로 지목된 문제점은 이른바 ‘엔론 루프홀(Enron Loophole)’ 조항이었다. 엔론 루프홀이란 대형투자자들이 에너지 선물상품을 장외에서 전자거래하는 경우 CFTC의 감시 규제를 면제받을 수 있도록 규정한 2000년 ‘상품선물현대화법령(Commodity Futures Modernization Act)’의 관련조항을 가리킨다. 회계부정 스캔들을 일으킨 엔론사의 로비로 만들어진 이 조항 탓에 CFTC의 규제가 유명무실해져 대형 투자자들과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들이 장외에서 원유 선물거래를 급격히 늘렸고, 이러한 흐름이 방아쇠가 되어 최근 수년간의 유가급등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미 의회를 중심으로 이러한 논의가 진행됨에 따라 투기를 억제하기 위한 법안 제출도 줄줄이 이어졌다. 작게는 선물거래를 위한 위탁 보증금을 인상하는 방안에서부터 크게는 투기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방안까지 규제 내용도 폭넓다. 그러나 자유주의 시장국가를 표방하는 미국 입장에서 투기의 전면금지는 쉽지 않은 노릇이므로 법안 역시 ‘지나친 투기를 규제’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한편 연말 무렵에는 엔론 루프홀에 이어 ‘런던 루프홀’도 새로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NYMEX에서의 선물거래가 엄격한 규제를 받을 것으로 예상되자 상당수 투기자본과 대형 투자자들이 런던에 기반을 두고 있는 ICE(국제선물거래소)로 무대를 옮길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전부터 FSA(영국금융청)의 규제는 CFTC에 비해 덜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문제는 ICE가 미국 내에 단말기를 두고 NYMEX와 마찬가지로 서부 텍사스 원유의 선물거래를 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 의회에서는 이러한 경로의 ICE 거래가 규제당국의 사각지대가 될 수 있음을 주목하고 있다.

원유시장의 투기세력 움직임이 공론화되면서 이 문제는 마침 열기를 더해가던 미국 대선의 주요 이슈로 떠오르기도 했다. 2008년 6월22일 오바마 후보는 민주당 진영의 투기억제 움직임을 거의 그대로 선거 캠페인에 수용해 쟁점화했다.

이 같은 흐름을 통해 투기억제 분위기가 가시화함에 따라 마침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사우디의 증산과 더불어 원유가격은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투기세력에 대한 미국 국내정치의 견제 움직임이 원유가 인하에 효과적으로 작용하게 된 일련의 상황은, 역설적으로 석유를 실제로 사용하는 해당 사업자가 아닌 외부세력, 즉 투기세력이나 대형 투자자의 움직임과 원유가격 사이에 상당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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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하라 가즈오│에너지전략분석가 uy8k-kwhr@asahi-net.or.jp│ 이준규│번역│일본 메이지가쿠인대 국제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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