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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스튜디오와 갤러리 연 박영사 안종만 대표

책과 미술에 미친‘모던 뽀이’

  • 김민경│주간동아 기자 holden@donga.com│

스튜디오와 갤러리 연 박영사 안종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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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와 갤러리 연 박영사 안종만 대표

사진 박해윤 기자

“말도 못한다. 정신적, 경제적으로 엄청난 손해를 봤다. 이 벌판에서 돈 벌겠다고 쇼핑몰 지었다면 정신병자다. 파주출판단지를 북시티로 활성화하기 위한 기반시설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출판사들이 빨리 들어와 사옥을 짓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일을 벌였다. 무모하긴 참 무모했다. 책 만드는 사람이 건설 분양업을 했으니 말이다. 그래도 여기까지 오게 된 것에 항상 감사한다. 후회는 하지 않는다.”

▼ 파주출판단지에 와본 사람들은 누구나 독특한 건축물들이 겸손하게 자연과 어울려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출판단지 자체가 하나의 문화상품 기능을 하고 있다.

“파주출판단지를 이렇게 만드느라 고생한 것도, 또 착각 속에 일을 벌이게 된 것도 돌아보면 그림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미술 작품을 컬렉션한 것이 20년쯤 됐는데, 2000년에 스페인의 빌바오 구겐하임 뮤지엄에 가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구겐하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프랭크 게리가 빌바오에 지은 건축물을 보기 위해 250만의 관광객이 몰려드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것이다. 렌조 피아노가 기획한 포츠담의 건축물들도 환상적이다. 영국의 유명한 책마을 헤이언와이, 독일의 슈투트가르트, 벨기에의 레듀 등을 다 돌아보고 파주 출판도시 건축물들 자체가 강력한 문화적 소프트웨어가 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상업건물인 쇼핑몰 설계도 일본의 세계적 건축가 미노루 야마사키에게 맡겼다.”

▼ 어떤 부분이 착각이었나?

“당시 우리나라 1인 국민소득이 1만달러 남짓이었는데, 출판도시가 활성화된 나라의 1인 소득은 4만달러는 됐다. 몇 년이 빨랐던 거다. 상황이 점점 좋아지고 있는 걸로 자위하고 있다.”



▼ 젊은 시절부터 남보다 앞서 일을 벌이는 성격이었나?

“선친(고 안원옥 박영사 창업자)에 이어 2대로 하는 사업인데다 선친이 병약하셔서 내가 더 부지런히 뛰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연세대 상경대 3학년 재학 시절부터 출판사에 나왔는데, 첫 번째 일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교정 보는 일이었다. 졸업하고 정식 사원이 돼 제주도 출장을 가는데, 출장비용이 너무 적어서 목포에서 여객선을 타고 10시간 걸려 제주도에 갔다. 제주시를 다 뒤져 제주서점과 거래를 트고 왔다. 지방을 돌며 신규 거래선을 넓히고 소장 학자와 필자들을 새로 발굴하는 게 내 일이었다.”

▼ 박영사는 한국에서 처음 정찰제를 시작했다. 당시 반발도 크지 않았나.

“지방 서점들을 다니며 책을 할인 판매하는 행위가 결국 제살 깎아먹기로 서점 부도의 원인이 되고 서점을 영세하게 만드는 원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대학원 논문 제목도 ‘출판사의 매출 채권 관리에 대한 연구’였다. 초기엔 서점들이 거래를 끊는 등 반발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대단히 잘한 결정이었다.”

박영사 초기엔 미술과 예술 관련 서적도 꽤 많이 출판했고, 1950년대 초반에 낸 김소월 시집은 당시 초판만 30만부가 넘게 팔리는 메가히트를 기록했다. 박영사가 학술전문 출판사로 인식된 건 ‘경제학대사전’ ‘경영학대사전’ 등이 학계에 워낙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일 것이다. 1960년대 초 박영사가 ‘경제학대사전’ 제작에 의욕적으로 뛰어들었을 때의 일이다. 창업자 고 안원옥 사장은 경쟁출판사인 법문사에서도 경제학과 법률학 대사전을 만들고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 고 안 사장은 법문사를 찾아가 작은 시장규모와 엄청난 제작비 등을 고려해 하나씩 나눠 출판할 것을 제안한다. 여기엔 두 출판사가 쉽게 동의했다. 그러나 당시 법률에 대한 인기가 더 높아 서로 법률학대사전에 욕심을 냈다고 한다. 고 안 사장이 결국 법률학사전을 양보하기로 하고, 법문사에서 경제학사전을 편찬하던 직원과 자료를 인수해 꼬박 3년의 작업 끝에 1964년 경제학대사전을 발행한다. 1850쪽에 가죽을 댄 호화양장본으로 정가는 3500원. 이후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법이 자주 바뀌는 바람에 법률학대사전은 수정과 보완이 그치질 않아 애물단지가 된 반면, 경제학대사전은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를 끌어 박영사의 위상을 크게 높였다.

▼ ‘경제학대사전’은 인터넷 시대인 지금도 경제 ‘지식’의 기본이 되고 있다. 책의 가치가 종이가 아니라 인간의 정신과 수고에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책이 인터넷과 경쟁하는 구도가 돼버렸다.

“70년 된 반즈앤노블을 아마존이 컴퓨터 몇 대로 4년5개월 만에 무너뜨렸다. 이것을 ‘발전’이라 말하지만, 우리 같은 출판사는 희생되는 면이 많다. 그래도 경제학대사전 같은 사전을 계속 보완해온 건 큰 자부심을 갖게 한다. 갤러리박영을 오픈하면서 ‘박영북스’라는 브랜드를 새로 만들었다. 소설 등 문학작품과 미술, 어린이 서적 등이 나와 새로운 독자층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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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주간동아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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