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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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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진영

궁리 끝에

몰래 비누를 긁어먹던 쥐는

자신의 생가를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한다

취한 채

몸속 거품에 밀려



자신의 생가를 찾아가다가

덫에 걸려 죽은 쥐의

오므린 발가락들은

비유로서 우리에게 얼마나 친절한가

궁리 끝에

남의 고향을 무작정 따라간 날의 스산함 같은

밤에 발가락 모두 오므리고 있는 자들의 궁리 같은

가죽이 덫이 되어 걸리는 생은 비루하다 못해

피 범벅이다

그 피에 가장 취한 것은 아마 궁리일 것이다

김경주

1976년 광주 출생

200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서강대 철학과 졸업

시집:‘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기담’등


신동아 2009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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