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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와 독감바이러스의 ‘100년 전쟁’

  • 이한음│과학평론가 lmgx@naver.com│

인류와 독감바이러스의 ‘100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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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와 독감바이러스의 ‘100년 전쟁’
2001년 호주의 마크 깁스 연구진은 1918년 인플루엔자 유전자 중 하나가 다른 두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유전자들이 재조합되어 생긴 잡종 형태임을 발견했다. 그것은 1918년에 그 병이 대발생하기 직전에 어떤 두 조상 유전자의 짜깁기가 이루어져서 새 유전자가 생겼고, 두 조상 유전자 중 하나가 돼지를 감염시킨 균주임을 시사했다. 바로 이 재조합이 팬데믹을 일으킨 방아쇠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재조합 유전자는 바이러스의 껍데기를 만드는 단백질인 헤마글루티닌(H)의 암호를 담고 있었다.

독감바이러스는 RNA로 된 유전물질을 단백질 껍데기가 감싼 형태다. 껍데기는 헤마글루티닌과 뉴라미니다아제(N)라는 두 단백질로 이루어진다. H는 바이러스가 숙주세포로 들어가도록 하는 일을 하고, N은 새로 생긴 바이러스를 세포 밖으로 내보내는 일을 한다. 바이러스의 병원성은 주로 두 단백질의 변이에 따라 달라진다. H는 바이러스 껍데기에 가장 풍부한 단백질로서 숙주의 면역계가 방어할 때 공략하는 1차 표적이기도 하다. 스페인 독감바이러스에서 이 단백질은 구조가 조류의 것과 비슷했다. 그것이 팬데믹을 일으킨 이유일 수 있었다. 당시 인류는 그런 균주에 면역이 돼있지 않았다.

이런 연구 결과들은, 1918년의 독감바이러스가 어쨌든 원래 인간의 것이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서 유래한 것이 확실하지만 지금까지 연구된 그 어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도 유전적으로 다르다. 그것이 대발생 직전에 어떻게 유래했는지는 아직까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어렵게 찾은 균형이 깨지면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는 말이 있듯,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라는 적과 맞서 싸우려면 당연히 적을 더 잘 알수록 유리할 것이다. 1918년의 인류는 아예 적의 정체조차 모른 채 당했지만, 지금은 적어도 정체는 안다. 최근의 신종 플루 사례에서 보듯 적이 어디에서 어떤 경로로 출현했는지를 놓고 설왕설래가 벌어지기도 하지만, 이는 대책을 수립하는 데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실 1997년 조류에서 인간에게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감염이 일어나기 전까지, 인류는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거의 생각도 못했다. 조류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H5N1)는 진화적으로 정체 상태에 있고, 대부분 별다른 감염 증상이 없이 지나가는 종류라고 여겼다. 인간에게 심한 증세를 일으키는 것은 으레 인간을 감염시키곤 하는 H1N3형뿐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1997년 홍콩에서 H5N1이 발생하여 가금류와 사람 18명을 감염시키자 상황이 달라졌다. 새로운 팬데믹이 출현할 수도 있겠다 싶어 각국은 가금류를 살처분하는 등 부랴부랴 조치를 취했다. 거기에다가 최근에 등장한 신종 플루는 또 어떤가? 몇 개월이 채 지나기도 전에 수천 명이 감염되었고, 인간끼리 전파되는 것이 확실하다. 이제 인플루엔자는 더 이상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는 강력한 적이 되었다.

흔히 말하는 감기와 독감은 다르다. 감기는 다양한 바이러스로 콧물, 열, 호흡기 장애 등이 생기는 가벼운 형태의 병을 뜻한다. 반면에 독감, 즉 인플루엔자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병을 말한다. 독감은 일반 감기에 비해 전염성이 높고 호흡기에 일으키는 증상도 더 심하다. 주로 계절적으로 국지적으로 나타나지만, 때로 예기치 않게 대규모로 발생하여 세계적으로 유행하곤 한다. 이 같은 세계적인 유행은 주기성을 띤다고 알려져 있다. 그중 가장 심했던 것이 바로 서두에서 살펴본 1918년의 팬데믹이었다.

바이러스는 본래 생물의 세포를 강탈하여 자신의 사본을 만드는 공장으로 삼는 존재다. 불필요한 유전자는 다 버리고 자신을 번식시키는 데 필요한 유전자만 남긴 고도로 효율적인 존재다. 하지만 바이러스도 살아남아 번식하려면 숙주가 있어야 한다. 숙주를 몰살시킨 바이러스는 자신도 살아남지 못한다. 그래서 지나치게 높은 병원성은 바이러스 자신에게도 해롭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미래를 내다보며 계획하는 존재가 아니다. 때로는 뜻하지 않게 강력한 바이러스가 출현하여 숙주에 큰 피해를 줄 수도 있다. 그것이 바로 팬데믹이다. 그러다가 숙주가 대처 능력을 키우거나 바이러스가 더 약한 형태로 변하면 다시 적당한 균형상태가 회복된다. 1918년의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는 그런 상태로 돌아갔지만, 그렇지 못한 사례도 있다. 20세기 후반부에 등장한 에이즈 바이러스다.

1997년에 발생한 조류인플루엔자와 처음에 돼지에서 유래했다고 추정한 최근의 신종 플루는, 독감이 사실은 인간만의 질병이 아니라 사람과 동물에게 함께 나타나는 인수공통전염병임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것은 1만년 전 인간이 가축을 기르기 시작하면서 동물로부터 얻은 병일지도 모른다. 한곳에 정착해 농경생활을 하면서 가축과 늘 접촉하다보니 얻은 병들이다. 우리가 동물로부터 얻은 병은 100가지가 넘는다. 그런 병은 인간이 동물로부터 단백질을 얻기 위해 치르는 대가라 할 수 있다. 독감과 그에 따른 폐렴이 미국에서 일곱 번째로 많은 사망 원인이라고 하니, 대가치고는 꽤 큰 셈이다.

독감바이러스는 오르토믹소바이러스과에 속하며, A형, B형, C형이 있다. B형은 거의 인간만 걸리며, C형은 인간과 돼지가 걸린다. C형은 증상이 약하며 넓은 지역에서 유행하는 일이 거의 없다. B형은 A형보다는 약하지만 때로 유행병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래서 독감 예방 백신을 접종할 때 A형과 B형 균주를 섞어 쓰기도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A형이다. A형은 숙주의 범위가 아주 넓다. 인간뿐 아니라 여러 조류와 포유류에 감염된다. 하지만 본래 이 바이러스의 숙주는 야생 조류다. 특히 물새들은 이 바이러스의 천연 저장고라고 할 수 있다. 셋 중에서 A형 바이러스가 병원성, 즉 병을 일으키는 능력이 가장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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