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호

저작권 강국, 칼도 울타리도 필요하다

  • 류현정 / IT칼럼니스트dreamshot007@gmail.com

    입력2009-09-03 14: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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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 1970년대 주옥같은 명반 30장을 단돈 만원에 모십니다.”

    서울지하철 2호선에서 마주친 잡상인의 달변. 그저 그런 일상 풍경이다. 그런데 이 CD 판매원의 다음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저작권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이 CD세트는 정식 저작권 계약을 체결한 제품으로서 깨끗한 음질을 보장합니다.” 저작권이고 뭐고 가격 대비 성능을 따지는 게 길거리 판매상의 유일한 원칙이 아니던가. 지하철 행상의 마케팅에서 ‘저작권 보호’를 운운할 만큼, 저작권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십수 년 전과는 비교하기 힘든 수준으로 높아졌다.

    문제는 저작권 보호라는 게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무한복제를 가능하게 하는 디지털과 무한전송 시대를 만들어낸 인터넷은 저작권 문제를 복잡한 다차원 함수로 만들어버렸다.

    여기서 잠깐 퀴즈! 드라마 한 장면을 따서 인터넷에 올리는 행위, 비영리 목적으로 개인 홈페이지에 뉴스를 게재하는 행위, 책 속의 인상적인 글귀를 미니홈피를 통해 소개하는 행위, 노래 가사를 공유하는 행위, 좋아하는 가수를 따라 춤추는 장면을 찍은 동영상을 인터넷 사이트에 올리는 행위 중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는 것은? 정답은 현행법상 모두 저작권 침해에 해당한다. 인터넷 없는 생활을 상상할 수 없는 현대인의 평범한 콘텐츠 향유가 불법행위가 될 수 있다.

    최근 네티즌들이 저작권에 부쩍 관심을 갖게 된 것은 7월23일 발효된 새 저작권법 때문이다. ‘삼진아웃제’와 ‘비(非)친고죄’를 핵심으로 한 제재가 골자다. 먼저 삼진아웃제. 3번 경고한 후에도 저작권 침해행위가 계속되면 계정과 서비스를 문화부장관령으로 중단시킬 수 있다. 또 친고죄 조항이 삭제됐다. 저작권자의 고소, 고발이 없어도 문화부 장관이 저작권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처벌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저작권을 바라보는 시선은 주체마다 다르다. 정부는 세계 5대 콘텐츠 강국을 목표로 불법 복제행위에 확실한 제동을 걸겠다는 입장이다. 새 저작권법이 발효된 후 SM엔터테인먼트, 소리바다, 다날 같은 콘텐츠 업체의 주가는 일제히 상승했다. 반면 포털업체들은 사용자의 저작권 침해로 핵심 서비스가 중단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네티즌들은 걸면 걸리는 게 저작권 문제라며 ‘저작권 괴담’을 만들어낼 정도다.

    창작에 대한 정당한 대가는 문화산업 발전의 밑거름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높은 대가를 요구하는 저작 권리까지 보호하면 콘텐츠 활용과 이용이 위축되고 문화산업은 오히려 경직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말처럼 저작권자의 권리가 무한대는 아니다. 저작권 보호의 목적은 역설적이게도 ‘제대로 된 활용’이다. 정당한 대가를 바라는 저작권자와 공정한 사용을 원하는 사용자 모두 보호해야 이룰 수 있다.

    음악 및 영화 파일을 인터넷에 대량으로 올리면서 저작권자에게는 단 1원의 대가도 지급하지 않은 사용자와 사업자는 명명백백하게 공정한 사용자가 아니다. 반면, 앞서 ‘퀴즈’ 사례처럼 선의의 목적으로 정당하게 콘텐츠를 사용할 방법이 없거나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비용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저작권 제도라면 수정이 불가피하다.

    정부가 이번엔 저작권 보호를 위해 칼을 빼들었다. 다음엔, 아니 서둘러 정부는 시대에 걸맞게 창조적으로 저작권을 활용할 수 있는 울타리도 제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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