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지난 8월30일 총선유세 도중 머리를 매만지고 있다.
스탠퍼드의 로맨스
그러나 그가 걸어온 길을 보면 그는 결코 ‘소프트크림’이 아니다. 또한 그의 정치철학이 자민당 55년 체제로 굳어진 전통적 일본 정치판에서 보면 ‘우주인’으로 보일지 모르겠으나, 역설적으로 그의 올곧은 이상과 믿음은 이번 총선거에서 민주당 압승을 이끈 원동력이었다. 아무튼 일본 정치사에서 보면 야당인 민주당이 집권하게 되었다는 것 자체가 ‘우주인’의 도래에 필적할만한 사건이랄 수도 있겠다.
하토야마 총리는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으로 평가된다. 그는 정치가 집안인 하토야마가의 장손으로 태어났다. 증조부는 하토야마 가즈오(鳩山和夫)전 중의원의장. 조부는 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郞) 전 총리, 그리고 부친은 하토야마 이이치로(鳩山威一郞) 전 외무대신으로 그의 가문은 일본의 케네디가로 불린다. 어머니는 일본 재벌 ‘브리지스톤 타이어’의 창업자인 이시바시 쇼지로(石橋正二郞)회장의 장녀 야스코(安子)여사다.

하토야마 총리와 부인 미유키 여사의 젊은 시절.
하토야마 총리는 1986년 동생인 구니오(邦夫)보다 10년 늦게 자민당 간판으로 국회에 진출했다. 정계 입문 후 신념에 기초한 거침없는 정치행보를 보여주었다. 1988년 6선, 7선 의원이 득실거리는 보수적 분위기의 자민당에서 정치초년생 하토야마는 1986년에 같이 등원한 동기의원들과 파벌을 초월한 정책모임인 ‘유토피아정치연구회’를 결성했다. 이 연구회는 정-관-재계의 유착을 강하게 비판했고 돈이 들지 않는 정치구현을 위한 개혁을 주창했다. 특히 당시 자민당 최대 스캔들이던 리크루트 의혹을 집중 공격해 당내 정치개혁의 불을 지폈다.
자민당의 금권정치에 실망한 하토야마 총리는 또 다른 결심을 행동으로 옮겼다. 1993년 자민당을 탈당한 것이다. ‘유토피아연구회’를 모체로 ‘사키가케’라는 신당을 창당했다. 이후 그는 8개 야당의 연립으로 탄생한 첫 비(非)자민당 정권인 호소카와 내각에서 내각관방부 장관에 취임했다. 동지였던 다케무라 마사요시(武村正義)당시 사키가케 대표는 장관으로 취임했음에도 계속해서 자민당과 연락을 취하며 자민당 측과의 협력을 모색했다.
호소카와 총리 수석비서관을 지낸 나리타 노리히코(成田憲彦)씨의 최근 증언에 따르면, 당시 다케무라는 연립내각을 잘 추스르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총리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토야마 총리는 1996년 동생 구니오, 간 나오토 등과 함께 구(舊)민주당을 창당했다. 이때 이른바 ‘배제의 논리’로 동지인 다케무라와 완전히 결별하는 결단을 내렸다.
배제의 논리
하토야마 총리의 또 다른 결단은 2002년 연말에 나왔다. 그는 야당세력 결속만이 정권교체를 가능하게 한다는 신념아래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가 이끄는 자유당과의 합당 구상을 추진했다. 오자와는 일본 정계에서 ‘육식계’로 통하는 정치9단의 인물이다. 당시 하토야마 총리가 이끄는 민주당 구성원들은 오자와 그룹과 비교해 전투력이 떨어진다고 해 ‘초식계’로 불렸다. 오자와는 사실 하토야마 총리에게도 위협적인 존재였을 것이다.
오자와는 신진당을 파괴하는 데 중심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민주당에서는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인사가 많았다. 이들은 이러한 하토야마-오자와 회담에 맹렬한 반대를 표명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이 일로 대표직을 사임하면서 “작은 차이점은 뒤로하고 대동단결해야 한다. 야당이 결당하여 국난을 극복하는 길을 걸어가기를 기대한다”라는 사퇴의 변을 남겼다. 결국 하토야마 대표가 당시 오자와와의 연합을 어렵사리 이끌어낸 것은 현재의 정권교체의 초석이 되었다.
그의 결단력을 보여주는 일화는 한국과의 관계에서도 적잖이 있다. 2006년 교과서 문제, 독도 문제로 한일셔틀외교가 중단됐다. 한일관계는 살얼음판이었다. 하토야마 총리는 5월4일 서울을 방문해 한명숙 당시 국무총리를 만나 “모든 영토문제는 근본적으로 역사로부터 시작한다. 일본은 역사적 사실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또한 하토야마 총리는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해서도 일관된 반대 입장을 보였다. 2006년 4월 부산 방문에서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를 정면으로 비판한 바 있고, 같은 해 5월 서울 방문에선 “야스쿠니 참배를 중단하지 않는 한 한국과 중국의 신뢰를 가져올 수 없다”고 했다. 같은 해 8월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를 참배하자 “민주당은 당리당략에서 벗어나 역사를 직시하여 국익의 관점에서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를 반대한다”라고 했다.
일본 교과서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가 교과서를 검정하니까 문제가 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2006년 4월 부산 방문 때 “교과서 검정제도를 없애고 한일 간에 기탄없는 공동연구를 해 검증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