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호

괜히 우울하고 초조해요

  • 김혜남│나누리병원 정신분석연구소 소장│

    입력2009-12-08 17: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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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괜히 우울하고 초조해요
    Q 45세 가장입니다. 중견 기업에 다니고 있고 아이들도 잘 커서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해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인생에 뭔가 빈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렇게 살려는 게 아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뭔가 잘못되지 않았나 불안합니다. 멋모르고 잘난 척하면서 살아온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어디에라도 숨고 싶습니다. 잘못한 일도 남에게 상처 준 일도 많습니다. 내 삶이 실패한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도 듭니다. 아무런 의욕이 없고 자꾸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은데, 왜 이럴까요?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어졌는데, 앞으로 중늙은이로, 그리고 늙은이로 처량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 초조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A 중년기가 지나면 영원할 것만 같았던 자신의 시간도 언젠가는 끝이 난다는 게 피부에 와 닿는다. 어느 날 갑자기 날아드는 동창 녀석들의 부고, 혹은 큰 병에 걸렸다는 비보에 새삼 자신도 정말 늙어가고 있구나 깨닫고 화들짝 놀란다. 어느덧 부모님을 모신 영안실에서 동창회 소모임이 이루어지고, 친구들 얼굴에서 세월의 흔적을 보면서 ‘세월 앞에 장사 없다’던 어른들의 이야기가 새삼스럽다. 40~50년을 살아오면서 많은 것을 경험하고 이젠 웬만한 것엔 놀라지도 않을 만큼 감정이 무뎌진 줄만 알았는데, 가슴 밑바닥에서 부는 바람 소리가 점점 거세져 그동안 이루어놓은 것이 무엇이며, 지금껏 어떻게 살아왔는지 돌아보게 된다.

    이루어놓은 것은 별로 없고 앞으로 감당해야 할 것들이 산적해 있는데 몸과 마음은 나이 들어가니, 허송세월한 것만 같아 지나온 세월에 대한 회한이 사무치고 더 많은 능력과 책임을 요구하는 남은 세월의 무게가 벅차기만 하다. 그렇기 때문에 점점 더 무력하게 느껴지고 땅속으로 숨고만 싶어진다. 나름대로 성실하게 살아왔는데, 남은 것이라곤 노쇠의 길로 들어서는, 아무도 반기지 않는, 그리고 언제 스러질지 모르는 초라한 몸뚱이뿐인 것 같아 인생의 가을은 쓸쓸하기만 하다.

    이 시기에 사람들 마음에는 인생의 거센 바람이 분다. 그 바람은 너는 누구냐, 너는 진정 네가 원하던 삶을 살아왔느냐고 뼈아픈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자기 안으로 침잠하다보면 문득 중년기를 훌쩍 넘어버린 자신의 시간이 젊음과 가능성, 미래에 대한 희망을 앗아간 것 같아 대상을 알 수 없는 분노가 가슴속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인생의 정오에서 살아온 날을 돌이켜보며 우울해지기 쉬운 시기가 바로 중년기에서 갱년기로 넘어가는 때다. 이 시기의 우울은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말해주는 자기 내면의 소리이기도 하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바로잡고, 무엇이 부족했는지 찾아보라는 경종이다. 다시 말해 이 시기의 우울은 변화와 교정을 위한 침잠의 시기라 할 수 있겠다.

    잃는 것에 익숙해져야 할 때



    나이 드는 것은 내가 소유했다고 생각했던 것, 내 곁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하나씩 떠나보낼 때가 됨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날씬했던 허리와 정열, 모험심, 시력, 정의에 대한 믿음, 쾌활함, 유명한 운동선수나 연예인 등이 되겠다던 꿈 등이 사라져가는 것을 바라봐야 한다. 세계 곳곳을 여행해 보겠다던 꿈도, 이 세상의 모든 책을 읽어보겠다던 꿈도 나의 한계에 부딪혀 맥없이 주저앉아버린다. 질병과 전쟁으로부터 세상을 구해내겠다던 야망도 현실의 벽 앞에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나이 들어가는 어느 시점에 우리는 흔들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뭔지 모를 두려움이 안개처럼 깔리고, 이제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으며, 그 어느 것도 안전하지 않다는 느낌, 인생의 중심이 흔들리고 주위의 많은 것이 흩어져 사라지는 느낌에 문득 소스라친다. 친구 중 몇은 사업이 망하고, 불륜에 휩싸이거나 이혼한 친구도 있으며, 불치의 병을 앓고 있거나 이미 세상을 떠나버린 친구도 생긴다.

    몸이 예전 같지 않음을 느끼면서 조금만 이상이 느껴져도 더럭 겁이 나 병원을 찾고, 장롱 안의 보험증서를 꺼내 본다. 신체에 변화가 일어나고 기능이 떨어지면서 자신의 인생도 끝자락으로 접어들고 있음을 발견하는 것이다. 더구나 강하게만 보이던 부모님이 늙고 쇠약해져 경제적, 심리적으로 자식들에게 의지하기 시작하면, 부모에게서 독립해 삶을 꾸려가던 우리는 다시금 부모의 생활 반경 안으로 끌려들어가는 느낌을 배제할 수 없다. 다 자란 아이들은 우리 곁을 떠나려 하는 반면, 이제 혼자가 되거나 병든 부모님은 자신들을 돌보아주길 바라는 것이다. 늙고 쇠약해진 부모님이 기대는 것에 우리는 신체적, 정서적으로 적응을 해야 한다. 부모에 대한 짜증과 원망과 슬픔과 죄책감이 때때로 부모에 대한 사랑과 의무감을 이겨 누르기도 해 우리를 괴롭힌다. 중년기에 접어들면서 우리는 부모의 부모가 되어야 하는 운명에 맞닥뜨린다. 자식 키우는 짐을 내려놓을 만하니까 늙은 부모를 봉양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보낸 시간의 책장을 넘기며, 그리고 그 안에 적힌 나에겐 현실이었던 과거를 접으면서, 이제껏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믿음이 도전을 받는다. 모든 것을 손에 넣었다 해도 내가 누구이고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오직 단 하나뿐인 인생에서 내가 성취한 것 그리고 내가 목표로 했던 것들이 가치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회의가 밀려온다.

    이제 인생의 끝자락이 어렴풋이 시야에 들어오면서 우리에게 남아 있는 시간을 생각할 시점이 된다. 아직도 원하는 것과 주고 싶은 것이 많은데 시간은 계속 흐르고 우리에게 남은 선택의 폭은 계속 줄어만 간다. 그리고 나의 일부분이었던 것들은 내 옆을 스쳐 지나가버린다. 우리의 어린 시절과 젊은 날은 가버리고, 앞으로 나아가기 전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잃어버린 것을 애도해야 할 시점이 된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이 상실을 받아들이고 나아가는 데 서툴다. 중년이란 나이가 싣고 가버린 것들, 그리고 또 다가올 많은 상실을 직감하면서, 그리고 결국 인생은 유한하며 언젠가 죽고 말 것임을 받아들이면서, 많은 사람은 온 힘을 다해 다가오는 세월과 사라져가는 것들에 맞서 싸우려고 한다.

    어떤 이는 구두 뒤축을 땅에 깊숙이 박고 꼿꼿이 서서 모든 변화에 저항하려 한다. 또 어떤 이는 필사적으로 다시 젊어지려고도 한다. 몸이 여기저기 아프고, 늙는다는 걸 부정하며 오히려 분주히 움직여 새로운 계획에 몰입하기도 한다.

    변화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힘에 집착하고 타협을 거부하며 현실을 부정하려 든다. 그들은 아직 아이들이 자신의 말에 순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젊은 직장 동료들에게 ‘분수를 지키라’고 충고하며, 때로 아내가 타락할까봐 밖에 나가지도 못하게 한다. 폭풍우 속에서 휘어지지 않는 나무가 그러하듯, 그들의 건강이나 결혼 및 직장생활에 어떤 변화라도 생기면 그들은 부러지고 만다. 그들은 적응하지 못하고 적응하려는 마음도 없이 변화에 저항하고 있다.

    젊음을 다시 찾으려는 사람들은 과거로 되돌아가려 한다. 그래서 이전에 가졌던 것, 좋아했던 것들을 다시 갖고자 한다. 오랜 시간 같이 산 배우자에게 등을 돌리고 젊고 새로운 상대를 찾아 헤매거나, 일시적으로 불같은 연애에 몰입하기도 한다. 성형외과나 피부미용실, 스파 등에 부지런히 드나들며 보톡스 주사로 주름을 펴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워진 사람은, 얼굴에서 주름과 함께 표정을 잃어버린다.

    내적 성숙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과거에 이루지 못했던 것을 부여잡고 분주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물론 적극적이고 활력 있는 삶을 살지만, 지나치면 치러야 할 대가가 크다. 늙어가는 자신을 부정하느라 자신을 소진해버리는 아이러니에 직면할 수도 있다.

    중년에 이르러 직면하는 또 다른 중요한 문제는 바로 창조성과 파괴성의 이중성을 통합하는 문제다. 창조성과 파괴성은 세계 곳곳에 그리고 우리 내부에 존재한다. 그리고 이 양극을 화해시키는 과정이 바로 아동기 때 가졌던 환상, 즉 ‘우리는 절대적으로 안전하다’고 믿는 아동기의 의식으로부터 한걸음 한걸음 멀어져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어릴 적부터 우리는 부모님의 보호 아래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하면 모든 것이 잘될 거라는 가르침을 받고 살아왔다. 중년이 되어서야 아무리 우리가 잘 해왔어도 결국 죽게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세상에 완전히 안전한 곳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배운다. 이때야 비로소 아동기 이후로 가졌던 믿음, 즉 ‘착한 아이가 되면 우리는 영원히 안전하고 보호받을 것’이라는 착각을 버리게 된다.

    죄 없는 사람들이 전쟁이나 쓰나미 같은 재앙으로 처참히 죽어가고, 한순간의 선택이 범죄자를 만들기도 하고 성자의 길로 들어서게도 하는 것을 목도한다. 우리 자신이 범죄자의 어두운 동굴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더라도, 세상의 이러한 면을 보면서 우리 내부의 ‘어둡고 불가사의한 부분’, 즉 프로이트가 ‘이드’라 부른 무의식의 심연을 들여다보게 된다. 이렇게 우리 마음 안의 깊은 부분을 들여다봄으로써 자기 자신과 세상을 좀 더 포용할 수 있고, 그 안에 있는 에너지와 열정을 일부 꺼내 자신을 자유롭게 하며, 인생의 활력을 되찾을 수 있다.

    중년기에 접어들어 우리가 아무리 좋은 사람이 된다고 해도 누구도 우리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줄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러면 우린 우리 내부의 이드가 폭발할까봐 속박해왔던 것들을 풀기 시작한다. 일단 그 위험하고 흥분되는 탐험을 시작하면, 우리는 그 안에 있는 희망의 불꽃을 발견하게 된다. 그 희망이란 저 깊고 어두운 심연 안에서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어떤 발견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체념이 때론 기회가 된다

    이런 내적 세계로의 여행은 우리가 자신의 감정에 기계적으로 그리고 습관적으로 반응하지 않고도 자신의 느낌이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해준다. 자신의 감정을 알면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 그 감정을 부정하는 것보다 더 쉽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리고 이런 길들지 않은 아동기의 감정을 인정하고 풀어주면, 중년이 되어 남을 더 공감할 수 있고, 더 원기왕성해지며, 더 대담해진다. 좀 더 많은 색채를 지니고, 더 솔직해지며, 더 창조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중년이란 인생의 중간 역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미움과 죽음의 운명을 건설적으로 받아들이고 체념하면, 정신과 시야가 확장되어 더 넓게 트인 지평선을 볼 수 있다. 그 탁 트인 지평선을 보며 예술가들은 더 창조적인 작품을 만들어내고, 예술가가 아닌 사람들은 더 창조적인 삶을 살 수 있다.

    중년의 나이가 되어 다른 이의 죽음과 함께 자신의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보며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무한한 줄만 알았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자신도 언젠가는 병들고 늙고,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된다는 걸 인식하는 과정은 고통이다. 이 고통으로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지나온 과거를 회상한다. 그 과거에는 즐거움과 고통과 회한의 시간이 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주었던 상처, 내가 다른 사람에게 주었던 상처의 기억. 다른 사람이 악의로 자신에게 주었던 고통, 혹은 선의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신을 아프게 하고 상처를 남겼던 기억들과 함께, 자신이 얼마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아프게 하고 상처를 주었는지, 그리고 질투와 경쟁심 때문에 얼마나 여러 사람을 고통스럽게 했는지 떠올리면서 우리의 가슴은 미어질 듯이 아파온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이 곧 변화의 계기이자 기회의 순간이 된다. 그것은 우리에게 내려진 축복의 시간이기도 하다. 잘못한 것들을 되돌아보며 그것을 보상하고 놓쳐버린 것을 회복하기 위해 뭔가 하고 싶다는 마음이 솟아난다.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 무엇인가 만들어내고, 인류의 복지를 증진시키는 일에 참여하며, 다가올 세대를 위해 이 사회에 공헌하고 싶은 욕구다.

    괜히 우울하고 초조해요
    김혜남

    1959년 서울 출생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現 나누리병원 정신분석연구소 소장

    서울대 의대 초빙교수, 성균관대, 경희대, 인제의대 외래교수

    저서: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 ‘왜 나만 우울한 걸까’‘어른으로 산다는 것’‘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중년기에 들어서야 사람들은 인간의 영혼에는 파괴력과 창조력이 공존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는다. 그리고 이러한 깨달음은 자기 내부의 상반된 힘들을 새로운 방법으로 통합하는 길을 터준다. 통합한다는 것, 우리 내부의 선과 악, 사랑과 미움, 합침과 분리에 대한 욕망, 창조성과 파괴성, 여성성과 남성성, 그리고 삶과 죽음을 통합한다는 것은 내외적으로 평온을 안겨주고 삶의 지평을 넓게 열어주지만, 어딘가 모를 슬픔이 가득 배어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현재 우울하다면 그것은 당신 인생의 한 과정이며 우울은 당신 인생에서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탄이다. 당신 삶의 의미를 찾고 만들어라. 당신 자신을 중요하고 의미 가득한 사람으로 만들어라. 사람은 자신의 존재 의미를 발견할 때 가장 큰 기쁨을 느낀다. 그리고 나이 들어감이 주는 여유와 자기를 초월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자신의 후반부 인생을 향해 조금 더 깊은 발자국을 새긴다면 그 우울이 제시한 물음에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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