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호

박근혜와 언론

특종도 낙종도 없는 특이한 평화

  • 송국건│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입력2010-07-01 11: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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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언론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을까. 유력 차기 주자의 정치활동은 언론을 떼어놓고선 생각할 수 없다. 박 전 대표의 언론 대응은 일반적인 정치인과 달리 어떤 언론과도 개별 인터뷰를 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언론과 평화를 유지하는 ‘특이함’이 있다.
    박근혜와 언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2월10일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이명박대통령이 제기한 ‘강도론’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은 이정현 의원.

    친박근혜계의 대(對)언론 창구는 이정현 의원이다. 대통령후보 경선 때 박근혜 캠프의 대변인을 지낸 인연이 쭉 이어졌다. 지금도 주요 사안이 발생할 때면 박 전 대표의 생각을 들어 기자들에게 직접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평의원 신분인 박 전 대표가 공식 대변인을 둘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에 직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언론은 그를 항상 ‘대변인 격인 이정현 의원’으로 지칭한다. 박 전 대표는 그를 “매우 헌신적인 분”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일각에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세종시 수정안뿐만 아니라 4대강 사업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박 전 대표는 4대강 사업에 대해선 특별히 거부감을 표시한 적이 없다. 언론창구인 이 의원은 이러한 차이점을 언론에 정확히 전달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박 전 대표의 측근은 “4대강 사업의 필요성과 부작용에 여러 가지 생각이 있겠지만 사업 자체에 그다지 부정적이지 않고 정부의 국책사업에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언급을 하지 않고 있는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박 전 대표의 지역구인 대구 달성군 주민들도 대체로 달성군을 통과하는 낙동강 정비 사업이 지역발전에 보탬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친박계의 대언론 창구가 단일화 돼 있지는 않다. 다른 친박계 의원들이 박 전 대표의 말을 들어 직·간접적으로 언론에 흘리는 경우도 많다. 또 의원이 개인의견을 피력한 것이 ‘박심(朴心·박 전 대표의 심중)’이거나 친박계 전체의 견해처럼 보도되기도 한다.

    이정현 의원은 “일부 의원이 박 전 대표의 진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자신의 입장을 언론에 설명하는 바람에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사례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박 전 대표가 계파정치 자체에 부정적이기 때문에 이른바 ‘(전체) 친박계의 입장’이란 것은 있을 수 없고, 나도 다만 박 전 대표의 말씀을 언론에 전하는 역할을 하는 것뿐”이라고 덧붙였다.

    여기자 배치하고…



    박 전 대표의 코멘트만 전하는 데 충실하려는 이 의원은 때로는 상당한 순발력을 발휘한다. 미디어법 대치가 한창이던 지난해 7월19일 이 의원은 “박 전 대표가 ‘본회의 표결에 참석한다면 이는 반대표를 행사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고 기자들에게 전했다. 당시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가 기자간담회에서 미디어법 표결 처리 방침을 밝히며 “박 전 대표도 표결에 참여할 것”이라고 밝힌 데 대한 반박이었다.

    이런 일은 박 전 대표 본인이 웬만하면 언론에 나서기를 꺼리는 데서 발생한다. 언론 입장에서 보면 박 전 대표는 2007년 8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이후 여전히 ‘칩거 중’이다. 현재 그의 유일한 출근처가 국회의원회관이지만 아무리 자주 가도 만날 수가 없다. 경선 이후 개별 언론과 공식 인터뷰를 한 적은 한 차례도 없다. 다른 정치인과 달리 각사 편집국이나 보도국 간부들과의 사적인 자리도 되도록 피한다.

    각 언론사에 ‘박근혜 전담 마크’ 기자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들도 박 전 대표와 직접 대면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는 극히 제한돼 있다. 각사 한나라당 출입기자의 ‘반장’이나 전담 기자들이 바뀌었을 때 그들이 면담을 요구하면 가끔 시간을 내서 티타임이나 식사 자리를 갖기도 하지만 그런 기회가 많지 않다. 또 대화 내용도 기자들이 먼저 민감한 정치현안을 꺼내지 않는 것이 관례처럼 돼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전담 기자들이 자리를 마련해놓고 박 전 대표를 초청한다. 가령 박 전 대표의 해외 방문 때 동행 취재했던 기자들이 귀국 후 친목 모임을 갖기도 하는데, 이 자리에 박 전 대표와 당시 수행했던 친박계 의원들이 간혹 참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때도 정치현안을 두고 질문과 대답이 오가기보다는 방문 당시의 후일담이나 가벼운 정치·사회 문제가 화제로 오른다.

    각 언론사는 ‘박근혜 취재’가 쉽지 않자 다양한 접근 방식을 짜냈다. 박 전 대표와 좀 더 수월하게 교감을 나눌 것으로 기대해 여기자를 전담으로 배치하고,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당시 박근혜 캠프를 담당했던 기자를 다시 전담기자로 복귀시키기도 했다. 경선 이후 박근혜 캠프 담당 기자 가운데 상당수가 정치부를 떠나거나 야당 담당 등으로 옮겨갔다. 언론사 입장에서는 큰 선거가 끝난 뒤의 통상적인 인사이동이지만 친박계 안에서는 이명박 캠프를 담당했던 기자들이 청와대를 출입하거나 한나라당에 그대로 남았던 것과 비교해 “차별을 받은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박 전 대표의 해외 방문 때 언론사들이 큰 기사거리가 없음을 알면서도 적지 않은 출장비를 지출해가며 기자들을 동행취재에 나서게 하는 것도 그만큼 깊숙한 ‘박근혜 기사’에 목말라 있는 까닭이다.

    “이미 다 말씀드렸다”

    박근혜와 언론

    2006년 1월3일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출입기자들과의 신년오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지금은 기자들이 박 전 대표의 ‘한마디 정치’에서 간간이 갈증을 해소하고 있다. 박 전 대표 얼굴을 보기조차 어려운 전담 기자들은 국회가 열리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국회활동에 충실한 박 전 대표는 본회의나 상임위가 열리면 되도록 참석한다. 이때 기자들은 회의장 앞에 진을 치고 있다가 각종 현안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박 전 대표가 개인적으로 참석하는 외부 행사장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때마다 돌아오는 답은 “별로 할 말이 없다”거나 “이미 다 말씀드렸다”가 전부다. 기자들이 동선을 쫓아다니면서 이런 저런 유도 질문을 던지지만 한번 굳게 다문 입은 열리지 않는다. 박 전 대표를 전담하는 한 젊은 기자는 “첫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내용을 다시 물어보면 표정이 굳어지기 때문에 되묻기가 조심스러울 때가 있다”고 취재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또 다른 기자는 “현장에서 민감한 질문을 던질 때 박 전 대표의 얼굴을 보면 문득 ‘얼음공주’ 이미지가 떠오르곤 한다”며 웃었다. 보통의 정치인은 아무리 난감한 질문이나 본질에서 벗어난 질문이 나와도 성의껏 답변하는 노련함을 보이지만 박 전 대표는 원칙적으로 대한다. 그만큼 전담기자에게조차 박 전 대표는 다가가기 쉽지 않은 취재원이다.

    박 전 대표는 간혹 사석에선 기자들과 대화를 나눌 때 잘 웃고 가벼운 농담도 곧잘 던진다. 하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선 조금 다르다. 말 한마디에도 결코 실언(失言)을 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이는 개인의 삶과 관계가 있는 듯하다. 20대부터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면서 몸에 밴 자세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기자들과 만나서도 말을 아끼지만 예외가 있다. 특정한 사안에 대해 작심하고 기자들과 대면할 경우다. 그 때마다 박 전 대표가 툭 던지는 한마디는 정국의 흐름을 일순에 바꿔놓곤 했다.

    2006년 5월 지방선거 직전 ‘면도날 테러’를 당해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깨어난 뒤 곧바로 “대전은요?”라고 물었고, 이 한마디로 한나라당 박성효 후보는 대전시장선거에서 역전승했다. 2007년 초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개헌을 제안하자 “참 나쁜 대통령”이라는 단 세 마디로 자신의 뜻을 분명히했다. 이때까지는 당 대표로 있을 시기다. 대선후보 경선 이후 언론과의 접촉을 대폭 줄인 가운데서도 결정적인 고비 때마다 한마디를 날렸다.

    2007년 11월 당시 이재오 의원이 친박 진영을 압박하자 “오만의 극치”라는 한마디로 무력화시켜버렸다. 2008년 18대 총선 공천 파동을 겪으면서는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살아서 돌아오라”는 말로 당 안팎의 친박계를 하나로 결속시키면서 ‘박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유권자에게 각인시켰다. 지난해 경주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이상득 의원이 친박을 표방하던 무소속 정수성 후보에게 이명규 의원을 보내 사퇴압박을 넣었다는 보도가 나오자 “우리 정치의 수치”라고 일갈했다. 최근 세종시 논쟁이 벌어졌을 때는 “정치는 신뢰인데, 신뢰가 없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는 말로 자신의 입장을 정리했다.

    카피라이터의 작품 같다

    그가 직접, 혹은 이정현 의원을 통해서 던지는 한마디는 마치 깊이 고민한 카피라이터의 ‘작품’ 같다. 사안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전후좌우를 모두 살펴보지 않고는 나오기 어려운 용어 선택이다. 미디어법 파동 때 “본회의에 참석한다면 반대표를 행사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 전해져 나중에 어조를 완화했지만 그 일도 ‘한마디’의 위력을 역으로 방증한다.

    그간 박 전 대표가 던지는 한마디의 대부분은 “…는 안 된다” 식의 일종의 ‘안티성’이었다. 이 때문에 친이계에서 “박 전 대표가 사사건건 국정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을 할 수 있는 빌미를 줬다. 또 일부 국민이 한마디 정치에 피로감을 갖는 이유가 됐다. 따라서 지금까지는 안티성이 통했지만 앞으로 국정운영을 준비하는 입장이라면 긍정적으로 대안을 제시하는 ‘자기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박 전 대표의 이런 스타일을 과거 그를 폄훼할 때 이용됐던 ‘수첩공주’ 이미지와 결부시키는 부정적 시각도 없지 않다. 처음 정치의 전면에 나설 때 그가 공식회의 때도 수첩에 적어온 내용만 읽는다는 비아냥거림이 나왔다. 이것은 곧 ‘콘텐츠 부족’이란 말로 이어졌고, 당내 반대파나 당시 여당이 그를 공격할 때 쓰는 단골메뉴였다. 하지만 대선후보 경선을 거치는 동안 후보자 TV토론 등을 통해 그런 비판론은 상당 부분 불식됐다. ‘한마디 정치’를 ‘수첩공주’에 대입할 수 없게 만든 셈이다.

    기자 출신으로 민주당에서 오랫동안 대언론 공보를 담당했던 한 정치인은 “박 전 대표는 자기의 메시지를 가장 정확하게 전달하고, 국민이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 현재 정치인 중에서 그만한 능력을 가진 인물은 없다”고 단언했다.

    한 언론학자도 “박 전 대표는 언론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정치인”이라며 “그의 한마디 정치는 과거 JP(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를 연상시킨다”고 했다. JP는 현역 정치인 시절 복잡하게 얽힌 사안에 대해 질문을 받으면 절묘하면서도 해석하기에따라선 심오한 의미가 있는 한자성어나 경구를 들려주는 것으로 답을 대신해 기자들의 탄성을 자아내곤 했다.

    그렇지만 차기 대권의 유력 주자이자 대중정치인인 박 전 대표는 한마디 정치 외에는 여전히 언론과의 접촉면을 되도록 좁히고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이정현 의원은 “언론 접촉을 꺼린다는 말부터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분명히 주목받는 공인이지만 특정언론과 인터뷰를 하지 않는 것은 현재 위치에서는 부적절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조용히 있는 것이 이명박 정부를 돕는 길이란 인식의 연장선상이다. 다만 국가적으로 굉장히 중요하고 시급한 사안에 대해선 분명히 입장을 밝혀오지 않았느냐. 그동안 4가지 중대 사안, 즉 미국산 쇠고기 사태, 보복 공천, 미디어법, 세종시 문제에는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언론사 여론조사로 피해”

    다른 친박계 의원은 이에 대해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박 전 대표가 특히 보수 언론으로부터 상당한 불이익을 당했다. 굉장히 심했다. 그런 점도 언론을 불신하는 배경이 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권 출범 후 상당수 언론사가 집권세력의 눈치를 보느라고 박 전 대표를 깎아내리더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박 전 대표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부터 유력 언론사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귀띔도 나온다.

    당시 전당대회에서 치른 대선후보 경선투표 결과, 이명박 후보는 선거인단 13만898명(유효투표수 기준)과 여론조사 대상자 5049명의 득표수를 합산해 계산한 결과 총 8만1084표를 얻어 7만8632표를 얻은 박근혜 후보를 2452표 차이로 누르고 대선 후보가 됐다. 이 과정에서 당초 예상을 뒤집는 결과가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개표 집계결과 박근혜 후보가 선거인단 투표에서는 이명박 후보에게 432표 앞섰으나 일반국민 상대 여론조사에서 8.5%포인트(표로 환산 시 2900여 표)가량 뒤져 패배한 것으로 나타났다.

    8월20일 투표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박근혜 후보가 높은 대중성을 바탕으로 이명박 후보에게 여론조사에서 유리할 것으로 예상됐었다. 선거인단 투표에서 얼마나 따라잡느냐가 관건인 것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투표일을 며칠 앞두고 나온 일부 언론사 여론조사 결과 이명박 후보가 큰 격차로 앞서 있다는 보도가 나왔고, 이는 곧 ‘이명박 대세론’에 힘을 실어줬다.

    당시 박근혜 캠프의 김무성 조직총괄본부장(현 원내대표)은 “투표 열흘 전 모 방송사 보도와 같은 날 모 신문 보도를 보면 대의원 대상 조사는 4.3%포인트, 당원 대상 조사는 5.8%포인트, 국민선거인단은 무려 8.6 %포인트가 차이난다”면서 “같은 날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언론사 여론조사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라고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같은 일을 두고 “박 전 대표가 언론의 최대 수혜자이자 피해자”라는 말이 나왔다. 사실 정치에 입문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아서 ‘선거의 여왕’으로 등극하고 유력한 대권주자가 될 정도의 높은 대중성을 갖추는 데는 언론의 도움이 컸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박 전 대표가 한마디만 하면 대부분의 언론은 크게 다룬다. 말을 하지 않으면 ‘왜 침묵하는지’가 또 기사가 된다. 전담 기자들은 매일 박 전 대표의 홈페이지를 검색하면서 홈피에 올린 의례적인 인사글에서도 의미를 찾아 기사화한다. 그러나 박 전 대표 입장에선 2007년 결정적인 순간에 언론 때문에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일이 발생한 셈이다.

    다른 측면에서 박 전 대표의 언론대응 기조를 설명하는 의견도 있다. 최영묵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박 전 대표는 비교적 언론을 이용하지 않는 정치인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친(親)정권’과 ‘반(反)정권’으로 양극화한 현재 우리나라 언론프레임에서 자신이 어느 쪽에도 적절하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나온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분석했다. 보수 언론의 경우 박 전 대표를 ‘뜨거운 감자’로 생각하는 데다, 그가 언론에 고분고분하지도 않기 때문에 서로가 접근하기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또 진보언론은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그를 애초부터 탐탁잖게 여기는 만큼 양쪽 모두 그다지 비중을 두지 않는다고 봤다. 따라서 박 전 대표가 지금은 언론노출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으로 거리를 두되, 중요한 순간에 ‘한마디 정치’로 언론을 활용한다는 게 최 교수의 설명이다.

    보수와 진보 모두 거리두기?

    박근혜와 언론

    2005년 11월6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동아일보 패널들과 인터뷰하고 있다.

    다만 최 교수 역시 2007년의 상황 등을 들어 “박 전 대표가 언론에 대한 피해의식이 많을 것”이라고 동의했다.

    박 전 대표는 언론접촉뿐만이 아니라 외부로 나가는 메시지 전달에도 매우 신중하게 대처한다. 보통 중진 정치인은 각종 행사에 초청을 받아 연사로 나가거나 직접 참석하지 않을 때는 축하 메시지라도 보내길 좋아한다. 각종 단체로부터 그런 요구도 끊임없이 들어온다. 그러나 박 전 대표를 행사에 초청하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닐 뿐만 아니라 영상이나 서면 메시지도 잘 보내지 않는다. 간혹 나가는 메시지는 국회의원회관에 근무하는 정호성 보좌관이 초안을 만들어 재가를 받는다. 하지만 박 전 대표가 정국현안에 대해 던지는 ‘한마디’는 정 보좌관의 도움을 받거나 다른 별도 메시지팀을 두지 않고 홀로 구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박 전 대표가 여론의 동향에 둔감한 것은 아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신문과 방송 보도 내용을 세심하게 챙긴다고 한다. 참모들이 그날그날 여론을 전하고 주요 보도 내용을 보고하지만 그 자신이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작은 뉴스까지 직접 챙길 정도라는 것. 한 측근은 “(인터넷 등을 통해) 워낙 꼼꼼하게 여론동향을 파악하시기 때문에 비판적인 기사라도 보고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결국 박 전 대표는 여론의 중요성을 알지만 아직 언론의 전면에 나설 때가 아니라는 판단을 한 듯하다. 그의 측근은 “‘박근혜 역할론’에 대한 입장과 언론에 적극 대응하지 않는 배경은 같다”고 했다. 지금은 평의원으로서 여권의 책임 있는 자리에 있지 않기 때문에 모든 역할을 친이 주류 쪽에서 하도록 하는 것이고, 그런 기조가 곧 MB 정부의 성공을 돕는 길이라고 보기 때문에 언론에도 나서지 않는 것이란 설명이다.

    실제로 박 전 대표는 1998년 한나라당 소속으로 대구 달성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본격적으로 정치에 참여했을 때만 해도 언론과의 접촉을 그다지 마다하지 않았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이회창 총재의 전횡을 비판하며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다가 복귀하는 과정에서도 수시로 기자들과 만나 의견을 수렴하고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당 대표 시절과 경선후보 때도 사석에서 자주 언론사 간부나 일선기자들을 만났다. 그러다 대선후보 경선 패배 이후 ‘책임 있는 자리’에서 물러난 뒤 언론인과의 접촉을 최소화했다.

    하지만 이번 6·2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한 이후 ‘박근혜 역할론’이 다시 부상하면서 최근 친박계 일부 의원이 언론과의 접촉면도 넓혀야 한다는 건의를 했다고 한다. 친박계 한 중진 의원은 지방선거 직후 박 전 대표를 만나 “지금은 적극적으로 나설 때다. 새로운 지도부를 뽑는 7월 전당대회를 그냥 흘려보내선 안 되며 직접 출마하든지, 친박계에서 누구라도 내세워야 한다. 언론에 대해서도 보다 폭넓게 접촉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그는 박 전 대표가 자신의 지역구인 대구 달성군수선거를 지원하기 위해 공식선거운동 기간 내내 현지에 머물렀지만 한나라당 후보가 무소속 후보에 밀려 크게 벌어졌던 격차를 많이 줄이는 데 성공했을 뿐, 결국 당선시키지 못한 상황의 심각성도 설명했다고 한다. 그러자 박 전 대표는 “무슨 말씀인지 잘 안다. 맞는 말이다. 좀 더 기다려달라”고 대답한 것으로 전한다.

    대부분의 친박계 의원도 박 전 대표가 지금쯤은 서서히 언론관계를 점검하고 적극적으로 나설 시점이라고 본다. 이정현 의원은 “여러 가지 이유로 당분간은 지금의 기조를 유지하겠지만 일정한 시점이 되면 대언론 활동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박 전 대표가 언론을 찾는 것은 당장 어떤 식으로든 정치적 역할을 맡거나 본격적인 대선 시즌이 다가올 때라야 할것 같다.

    보통의 정치인은 자신에 관한 기사가 언론에 한 줄이라도 더 나오게 하려고 애쓴다.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부고기사만 아니라면 어떤 기사라도 이름이 나오는 게 좋다”는 말도 있다. 특히 큰 꿈을 꾸는 대권주자들은 두말할 나위 없다. 과거 3김 시절 YS(김영삼 전 대통령)와 DJ(김대중 전 대통령)를 전담하는 기자 가운데는 각각 ‘상도동계 기자’‘동교동계 기자’라고 불릴 정도로 밀착한 경우도 있었다. 이들이 나중에 대권경쟁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굳이 대권주자가 아니더라도 중진급 의원들은 특정 기자 집단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정보를 교환하고 훈수를 구했다.

    대선 여론전에서 밀린 기억

    지금은 언론사의 내부 시스템이 잘 갖춰져서 그런 식으로 개별 기자의 호·불호가 지면에 그대로 반영되기는 어렵다. 그렇더라도 대권주자가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꾸준히 ‘상품’을 알리고 선택받도록 하는 노력은 필요하다. 특히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때 박 전 대표의 패인 중 하나가 ‘여론전’에서 밀렸기 때문이란 분석이 많다. 당시 박근혜 캠프는 이명박 후보를 둘러싼 각종 의혹을 꾸준히 제기했지만 수집한 정보나 팩트가 제대로 언론에 보도됐다고는 볼 수 없다. 지금이라도 박 전 대표 입장에선 언론과의 관계를 다시 한번 점검하고 친밀도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친박계 내부에서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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