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호

법정에서 발견한 삶의 해답

  • 고승철│저널리스트 koyou33@empas.com│

    입력2010-07-06 17: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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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정에서 발견한 삶의 해답

    ‘우는 사람과 함께 울라’<br>윤재윤 지음/ 좋은생각/ 352쪽/ 1만2000원

    언론정보학과, 미디어학부, 언론홍보영상학부…. 과거 ‘신방과’라고 하면 통했던, 대학의 이런 과에서는 전공 필수과목으로 기사 작성법을 가르친다. 흔히 전·현직 언론인이 강사로 나선다. 필자도 여러 학교에서 이 과목을 가르쳤다.

    수강생 대부분은 기사를 잘 쓰는 ‘술(術)’을 배우려 하지만 필자는 ‘도(道)’를 가르치려 한다. 다양한 유형의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를 세심히 살핀 다음, 본 대로 들은 대로 간결 명료하게 정리하도록 연습시킨다. 학생들은 학교 구내 구두수선공 아저씨에게 다가가 인터뷰를 시도하거나 노숙자를 심층취재하기도 한다. 유명한 연예인을 인터뷰하는 데 성공하는 학생도 가끔 있다.

    형사재판 르포르타주를 작성하는 것도 과제의 하나다. 대다수 학생은 생애 처음으로 법정에 가본다. 떨리는 가슴으로 법정에 들어선 학생들은 수의(囚衣)를 입은 피고인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온실에서 자란 대학생의 눈에 ‘인생 막장’에 몰린 형사범은 어떤 인간으로 비칠까? 성범죄자는 비난의 대상으로, 생계형 좀도둑은 연민의 대상으로 투영된다. 여러 학생은 “법정에서 인생 공부를 하니 세상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고 털어놓는다.

    수강생에게 읽어보라고 추천할 만한 ‘우는 사람과 함께 울라’란 책이 나와 눈이 번쩍 뜨였다. 법정에 가볼 일이 없는 분들이 읽어도 진한 감동을 얻을 수 있다. 책의 부제가 두 개인데, ‘눈물의 현장 법정에서 찾아낸 삶의 해답’과 ‘윤 판사가 보내는 치유와 희망의 메시지’가 그것이다. 사형 현장을 지켜본 경험 등에서 발견한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실제 있었던 사건을 씨줄로, 저자의 다양한 독서 편력을 날줄로 엮어 흥미진진하면서도 깊이가 있다.

    사랑의 결핍이 만든 범죄



    저자는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로 법관 생활 30년차를 맞았다. 프로필을 보니 몇 가지 특이점이 보인다. 1985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비행청소년과 시민을 연결해 보호하는 ‘소년자원보호자제도’를 만들었다. 청소년잡지인 ‘십대들의 쪽지’에 청소년의 고민을 상담하는 글을 썼다.

    저자는 서문에서 “범죄, 재산 분쟁, 관계의 갈등 등 삶을 해치는 어두운 것들은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하나의 공통된 원인을 가졌다”면서 “그것은 바로 사랑의 결핍과 거부, 즉 자기 속에 있는 연약한 어린이를 제대로 품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 설명했다.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하면 혼란이 생기는데 이 혼란이 자신을 향하면 정신장애가 되고 남을 향하면 난폭해지거나 범죄자가 된다는 것이다. 주변 사람과 자주 충돌하는 까다로운 사람도 사실은 필사적으로 사랑에 목말라 하는 외로운 사람이라는 것.

    저자는 1980년 12월 사법연수원생 시절에 서울구치소에서 교수형을 참관했다. 사형수를 의자에 묶고 목에 올가미를 건 다음 그 의자를 지하실로 떨어뜨리는 집행 방식이다. 검사, 교도관, 신부, 의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강도살인범인 청년 사형수가 나타났다. 그는 살인을 했을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온순하게 보였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피해자에게 사죄했다. 교도관이 그의 얼굴에 가리개를 씌우면서 “공포감을 줄이려면 ‘할렐루야’를 계속 외치라”고 했다. 그는 천주교 영세를 받은 신자였다. 그의 외침은 잠시 후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두 번째 사형수는 남편을 독살한 40대 여성이었다. 몸을 떨면서 울음 섞인 ‘할렐루야’를 외치다 지하실로 떨어졌다. 세 번째 사형수는 30대 중반의 강도살인범이었다. 신앙을 가지면서 매우 온화한 성품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남을 위해 헌신하는 행동도 보였다. 그는 평화로운 미소를 띠고 의연하게 죽음을 맞았다. 저자는 구치소를 나와 서울역까지 혼자 걸으며 죄와 벌, 법, 죽음, 믿음 등에 대한 상념에 잠겼고 인간은 진실로 존엄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훗날 법관으로 숱한 흉악범에 대해 판결을 내렸지만 그들이 존엄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고 한다.

    저자가 맡은 재판 가운데 몸이 왜소한 장애인인 A씨 살인 사건이 있었다. A씨는 음식점에서 10여 년 동안 숯불 피우기, 청소 등 허드렛일을 하면서 눈칫밥을 먹었다. 어느 날 주인이 밥도 주지 않고 야단을 치자 그날 밤 잠든 주인 부부를 칼로 찔러 살해했다. 오랜 세월 모욕을 받은 그가 마음에 상처를 받고 증오를 키운 결과였다. 저자는 이와 비슷한 사례들을 들면서 “모욕당하고 무시당한 이들에게 주위에서 조금만이라도 따뜻한 태도를 보여주었다면 그토록 끔직한 결과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통과 상처의 신비한 힘

    흔히 “살아가면서 병원이나 법원에는 되도록 가지 않는 게 좋다”고 말한다. 병들지 않고, 범죄와 관련 없이 살고 싶은 심경에서 나온 말이리라. 고통으로 신음하는 환자를 바라보는 의사, 수의를 입고 재판을 받는 피고인을 대하는 법관은 직장에서 웃을 일이 드물다.

    형사재판에서 아름다운 인간애가 나타나는 감동적인 장면은 희귀하리라. 저자는 형사 단독재판을 할 때 그런 장면을 목격했다. 중년 남자가 술 취한 청년 4명에게 맞아 중상을 입은 사건이었다. 피고인들이 범행을 부인해 피해자가 불편한 몸을 이끌고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청년들은 피해자 앞에서는 양심의 가책을 느낀 듯 고개를 떨어뜨렸다. 피고인들을 어떻게 처벌하기를 바라는지 판사가 묻자 피해자는 한참 생각하더니 “젊은이들이 처자식도 있는데 어떡하겠습니까? 잘못을 뉘우치면 용서해주시지요” 하고 대답했다. 피해자는 무리한 금전 보상을 요구하며 엄벌을 바라는 게 보통인데, 그는 치료비 한 푼 받지 못했으면서도 상대를 용서한 것이다. 피고인들의 초췌한 모습에서 연민을 느낀 듯했다. 스산하던 법정 분위기가 피해자의 말 한마디에 따스해졌다. 저자는 그때 받은 감동을 17년 지난 지금에도 마음속에 보석처럼 간직한다고 밝혔다. 연민에 대한 저자의 성찰(省察)을 옮겨보자.

    “상처와 고통 없이 사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나는 고통에 신비한 힘이 있다고 믿는다. 고통을 통해 사람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고 연민의 마음을 갖는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고통을 진심으로 이해해줄 때, 자신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짐을 느끼며 새로운 힘과 용기를 얻는다. 동시에 타인에 대하여 진정한 연민을 느낄 때, 자기가 갖고 있던 고통과 상처로 타인의 상처를 치유하는 신비를 맛볼 수 있다.”

    재판장은 대체로 근엄한 얼굴로 자리에 앉아 있다. 감정의 기복이 없는 듯하다. 사형이나 무기징역 같은 중형을 선고할 때도 겉보기로는 덤덤한 표정이다. 재판을 진행할 때 법관의 속내는 실제로 어떨까?

    이 책의 저자는 ‘법과 눈물’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몇 가지 사례를 들었다. 30대 후반의 어느 남자는 식칼을 들고 택시강도를 하다 붙잡혔다. 소형 트럭을 몰고 아내와 함께 아파트 주변을 돌며 채소 장사를 하던 중 아내가 중병에 걸렸다. 치료비를 대느라 재산을 날리고 아내의 병세는 악화됐다. 절망에 빠진 그가 부엌칼을 들고 나와 범행을 저지른 것이다. 택시기사는 “피고인이 벌벌 떨면서 칼을 들이대 별로 겁나지 않았고 나와 잠시 싸우다가 포기하고 순순히 잡혔다”고 증언했다. 집행유예 판결을 내려 병상의 아내 곁으로 보내고 싶었으나 불가능했다. 강도상해죄는 형기가 7년 이상이어서 아무리 줄여도 징역 3년6개월이 되어 집행유예 판결을 내릴 수 없었다. 집행유예는 징역 3년까지만 가능하다. 아내가 쓴 눈물의 편지를 읽고 판사로서 가슴이 너무도 아팠지만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하면서 “잘 지내라”라는 위로밖에 할 수 없었다고 한다.

    한 남자가 생활고를 비관해 아내를 살해한 후 자살하려다가 미수에 그쳤다. 재판 때 고교생 딸이 나와 “우리 아빠를 살려주세요” 하고 절규하자 판사인 저자도 눈물을 흘렸다. 피의자를 수사하면서 딱한 사정을 알게 돼 피의자의 가족을 몰래 도와준 검사나 경찰관도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다.

    재판의 불완전성

    범죄에 대해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을 때는 어떨까?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법정에 선 남편을 재판할 때다. 피고인이 범인이라는 심증이 강하게 들었으나 명백한 물증이 없어 무죄 판결을 할 수밖에 없었다. “100명의 죄인을 놓아주더라도 단 1명도 억울한 누명을 쓰지 않아야 한다”는 형사재판의 대원칙을 따른 판결이었다. 피해자의 친정아버지는 판사에게 편지를 보내 “만약 상급심에서 무죄가 확정된다면 법이 무너진 이 나라를 떠나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딸을 잃은 아버지의 심경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법적 사실과 진실이 차이가 날 수 있다. 불완전한 인간들이 사는 세상이어서 그 속에서 이뤄지는 재판도 불완전함을 면하기 어렵다 하겠다.

    저자가 조직폭력배 범죄를 심리하면서 ‘조폭’의 특징을 분석한 내용이 눈길을 끈다. 첫째, 조폭은 성격이 매우 불안정하고 미숙한 면이 많다. 겉모습만 강할 뿐 심리적으로는 허약하다. 신참들은 몸통을 불리려 돼지기름 상당량을 매일 강제로 먹는다. 몸을 드럼통처럼 불리기 위해서다. 둘째, 이들에겐 생활에 필요한 균형감이 없다. 사람의 목숨이 끊어지는 것을 빤히 보면서도 몽둥이질을 멈추지 않은 조폭 피고인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셋째, 이들은 미래가 없고 동물적 쾌락, 힘만이 유일한 가치다. 성폭행이나 잔인한 갈취로 상대방에게 극심한 고통을 주고서도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조폭 간부 몇몇만 부자로 살 뿐 나머지는 부하로 이용당하다 나이가 들면 대부분 초라한 백수로 전락한다.

    이 책의 백미(白眉)는 마지막 부분에 실린 ‘토머스 모어 공에게 드리는 편지’다. 저자의 내면세계에서 솟은 깊은 사유(思惟)가 배어 있다. 토머스 모어(1478~1535)는 영국의 인문주의자로 대법관 재임 때 낸 ‘유토피아’란 명저에서 이상향을 그렸다. 헨리8세의 수장령에 반대하다 참수형을 당했다. “가치와 양심을 지키는 대가(代價)로 공의 생명을 바친 그 결정을 지금도 옳다고 생각하시나요? 양심이 생명보다 그 정도로 더 소중한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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