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막걸리 업체의 맹주인 장수막걸리, 막걸리의 변신을 주도해온 국순당, 포천막걸리를 포함한 중형 막걸리 제조장, 막걸리에 새로 뛰어든 소주회사. 여기에 유통에서 강세를 보이는 식음료회사들까지 합류하면서 막걸리 시장이 격전장으로 변모했다.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까.
2008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 술 시장은 출고가 기준으로 8조6224억원 규모. 그중에서 맥주가 3조5680억원으로 42.7%, 희석식소주가 2조8803억원으로 33.4%를 차지했는데, 탁주인 막걸리는 고작 1471억원으로 1.7%에 불과했다. 막걸리 매출은 2005년 1330억원, 2007년 1427억원을 기록했다. 2009년엔 20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상황에 느닷없이 1조원 목표를 제시하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2010년 여름의 현실은 다르다. 막걸리 시장의 팽창은 더욱 가속화해 올 연말까지 5000억원 달성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이렇게 놀라운 신장세를 보인 동력은 어디에 있을까? 어디서 수요가 발생하고, 누가 생산량을 감당하는 것일까? 그 현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국순당의 발 빠른 변신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막걸리는 한순간도 뉴스의 중심에서 멀어지지 않고 있다. 2009년 막걸리 바람의 진원지로 엔고 현상에 따른 일본인 관광객의 증가, 언론의 지속적인 취재 열기, 막걸리 품질 향상에 대한 소비자의 재인식, 등산 인구 증가, 건강에 좋은 웰빙주에 대한 관심 증대, 햅쌀 누보 막걸리 행사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렇다면 2010년 막걸리 열풍의 동력은 어디에서 생겨난 것일까? 그 동력의 한 축으로, 국순당이 2010년 1월부터 내보내기 시작한 최초의 막걸리 TV광고를 꼽을 수 있다.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인기를 얻은 탤런트 황정음을 앞세우고, 가수 윤종신에게 ‘막걸리나’ 노래를 의뢰해 만든 광고 방송을 통해서 상큼 발랄한 이미지, 고급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국순당이 요즘 막걸리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생막걸리의 국내 유통 기간을 기존 10일에서 30일로 늘였고, 수출 생막걸리 유통 기간은 90일로 늘였으며 전국으로 냉장 유통망을 확대했다. 또한 단품종에 머물지 않고, 배용준을 이용한 일본수출용 고시레 막걸리, 최고가에 팔리는 탁주 이화주, 감초가 들어간 막걸리, 우리쌀 100%로 만든 우국생막걸리 등으로 변신을 주도하고 있다.
국순당은 1996년부터 캔막걸리를 생산하고 2007년 10월 페트병 쌀막걸리를 출시했지만, 2009년 5월 이전까지는 막걸리 시장에 주력하지 않았다. 그러다 2009년 5월 생막걸리를 처음 출시하면서 1년 만에 3000만병을 판매하는 기록을 세웠다. 막걸리를 출시하기 전 3000원대에 머물던 국순당의 주가는 1년 사이 5배인 1만5000원대로 올라섰다.
국순당의 2007년 막걸리 매출은 5억원이었다. 2008년 86억원, 2009년 105억원으로 성장하더니, 2010년 1분기에만 매출 105억원을 기록했고, 연말까지 500억원을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국순당이 기록한 경이로운 매출 확대는 막걸리 열풍을 등에 업은 것이다. 물론 이 지표가 모든 양조장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광고비를 쓰고, 생산 시설을 늘리는 등 다양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막걸리 업계 안팎에서는 국순당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한 다양한 전선이 형성되고 있다.
장수막걸리의 조용한 행보
서울탁주제조협회의 자회사인 서울장수주식회사 준공식이 2010년 5월26일에 충북 진천군 광혜원면 죽현리 현지 공장에서 진천군 기관단체장과 지역 주민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서울탁주는 10°C에서 10일가량 보관할 수 있는 장수생막걸리를 주력 상품으로 삼아 영등포, 구로, 강동, 서부(은평구), 도봉, 성동, 태릉 연합제조장 7곳이 사이좋게 수도권 시장을 균점해왔다. 그런데 막걸리 바람이 불면서 국순당이 공세적으로 나오고, 식품유통회사들이 지방 양조장 제품을 수도권에 유통시키면서 서울탁주는 방어적인 자세만을 취할 수 없게 됐다. 이런 연유로 서울탁주는 급기야 서울을 벗어나 진천에 새 양조장을 마련한 것이다.
장수막걸리 진천공장은 2만6769㎡의 대지에 연면적 1만4850㎡ 규모로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지어졌다. 1층에는 1일 10만ℓ가 넘는 막걸리를 생산할 수 있는 최첨단 시설, 2층에는 연구실험실과 세미나실을 갖췄다. 이곳에서는 국내산 쌀로 만든 유통기간 1년의 살균 막걸리 월매를 1ℓ와 750㎖ 페트병, 350㎖ 캔막걸리 세 종류로 출시(출고 가격 기준 1일 1억1000만원 정도)한다. 전국 시장 및 해외 시장 개척을 위해서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장수막걸리는 1978년 업계 최초로 말통에서 병으로 용기를 바꾸었고, 1992년 자동제국기를 사용하면서 쌀막걸리로의 전환을 시도했고, 병 입구에 탄산가스가 배출되는 홈을 만들었으며, 올리고당 10%를 넣어 맛이 부드럽고 탄산 기운이 오래가는 막걸리를 제조하면서 막걸리 시장을 선도해왔다.
장수막걸리의 시장점유율은 전국 막걸리 시장의 40% 정도인데, 서울 시장의 80%, 수도권 시장의 70%를 점유하면서 올린 성과다. 장수막걸리는 2008년 663억원 매출, 2009년에는 1135억원 매출을 올렸고, 2010년에는 1500억원의 매출을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2010년 상반기까지 막걸리 시장은 장수막걸리가 주도하는 판을 국순당이 추격하는 2파전 양상을 띠었다. 그런데 앞으로 이 양강 구도에 회오리가 불어올 전망이다.
소주 회사의 막걸리 시장 진입은 진로가 가장 먼저 시도했다. 국순당이 TV 광고를 하면서 막걸리 이미지 변신을 주도했다면, 진로는 일본에서 막걸리 TV 광고를 하면서 막걸리의 저변 확대를 꾀하고 있다.
하지만 진로는 제조 중심이 아니라 유통 중심으로 사업을 벌이고 있고, 국내 시장이 아니라 일본 시장에 먼저 접근하는 방식을 취했다. 막걸리업에 뛰어들기 위한 성동격서(聲東擊西) 전략으로 판단된다.
진로와 롯데의 聲東擊西
소주 업체 진로가 막걸리에 관심을 둔 것은 일본 시장의 트렌드 변화를 주목해서다. 2008년 일본에서 한국 막걸리 브랜드 조사를 했는데, 그때 진로가 이동막걸리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당시는 진로가 막걸리를 유통시키지 않았을 때다. 일본인들이 한국 술의 대표 상표로 진로를, 한국의 술로 막걸리를 떠올리면서 진로막걸리라는 조합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 뒤 진로는 본격적으로 막걸리 상품 개발팀을 구성해 2009년 12월부터 진로 막걸리를 일본에서 유통시키기 시작했다. 이때 진로가 택한 것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이다. 2009년 경남 진해시의 일송주조와 거래를 시작했고, 2010년 2월에는 경기 포천시의 상신주가와 손을 잡았다. 유통 물량이 늘어난 2010년 5월에는 전주시의 전주주조와도 손을 잡았다.
막걸리가 고급화하고 있다.
진로 막걸리가 일본 시장 점유율을 높이자 바짝 긴장한 업체는 포천 이동막걸리다. 이동막걸리는 이동재팬이라는 브랜드로 18년 동안 고군분투하면서 일본 시장을 개척해온 업체다. 그런데 진로가 일본 내 진로 소주 유통망을 통해 일본 전역에서 막걸리를 판매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졌다.
진로 막걸리의 일본 진출은 자연스럽게 롯데 막걸리의 일본 진출을 촉진시켰다. 두산 주류를 인수해 단숨에 일본 갑류 소주(희석식 소주) 매출 1위를 기록한 롯데는 이제 갓 생산에 들어간 장수막걸리 진천공장의 살균막걸리를 일본에 유통시키기로 했다. 롯데는 일본 주류 유통회사인 산토리와 손잡고 진로보다 더 파괴력 있게 일본 시장을 공략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막걸리 대전은 소주 유통 조직이 움직이면서 국내에서만 한정되지 않고 일본으로 전선이 넓혀졌으며, 중국으로도 그 불길이 번져갈 태세다. 그와 함께 전쟁의 피해도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한 병에 한 병을 끼워주는 홍보 행사가 가격 경쟁으로 이어지면서 400엔대 막걸리가 300엔대로 값이 떨어지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지방 소주 회사들의 참전
그렇다면 진로와 롯데는 언제부터 막걸리를 직접 만들게 될까? 이 대답은 지방 소주 회사인 무학과 보해에서 찾을 수 있다.
사실 소주 회사는 막걸리 회사의 적군이나 다름없다. 맥주와 소주의 판매량이 늘면서 막걸리가 밀려난 적이 있다. 이렇듯 시장에서 물리친 막걸리를 소주 회사가 앞장서 무대에 다시 올릴 까닭은 없었다.
더욱이 막걸리 시장은 생막걸리 중심으로 편성돼 있어서, 소주 회사의 제품을 취급하는 일반주류도매상은 생막걸리를 취급할 수 없다.(살균막걸리는 가능하다) 그리고 대중음식점이나 일반주점에서 맥주나 소주에 견주어 막걸리는 손님 1인당 평균 매상고가 낮기 때문에 취급을 꺼리는 분위기도 있다. 제조사와 유통상, 술집이 공생하는 유통구조 속에서 막걸리는 엇박자가 나는 술이었기에 소주 회사가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막걸리 시장이 커지고, 소주 회사들의 2009년 매출이 전년 대비 7.2%나 줄어들면서 유통상과 술집이 제기하는 문제들은 부차적인 것으로 전락했다.
2010년 3월 전남 소주 시장의 맹주인 보해양조는 탁주 제조에 관련한 조건부 승인을 취득했다. 보해양조 관계자는 “국내 막걸리 시장은 생막걸리가 93%를 차지하고 있으며 살균막걸리 시장은 아직 7%에 불과해서 시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경남 소주 시장의 맹주인 무학에서는 이미 해오름이라는 브랜드의 복분자막걸리를 내놓았는데, 6월 들어서 막걸리네라는 이름의 시험주를 내면서 소주 회사로는 가장 먼저 막걸리 제조 시장에 뛰어들었다.
무학과 보해가 막걸리 시장에 뛰어든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는 소주 업체가 막걸리 제조업에 뛰어드는 시대의 신호탄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지금처럼 막걸리가 성장세를 보인다면 진로와 롯데도 막걸리를 만들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진로 롯데와 같은 대형 주류 회사가 중소 양조장이 주도해온 막걸리 시장에 무턱대고 뛰어들면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이런 미묘한 판국에 상대적으로 매출 규모가 작은 지방 소주 회사들이 막걸리 제조업에 뛰어든 것이다. 대형 소주 회사들로서는 흥미로운 구경거리가 아닐 수 없다.
전국 단위 경쟁과 지역 단위 경쟁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식음료 업체들의 진격
막걸리 회사들의 생산 설비 확대, 약주 회사들의 막걸리 생산 라인 확보, 소주 회사들의 막걸리 유통과 생산 참여에 이어 식음료 회사들도 막걸리 시장에 속속 진출하고 있다. 식음료 회사들은 백화점과 마트, 편의점이라는 안정된 유통망을 확보하고 있어 짧은 기간 막걸리 판매량을 늘릴 능력을 갖고 있다.
막걸리 제조와 유통에 가장 먼저 관심을 기울인 식음료 회사는 CJ제일제당이다. 2010년 3월 CJ제일제당 김진수 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막걸리 균주에 대한 기초 연구는 진행 중이지만 제조 공장은 짓지 않는다”며 “해외 유통 네트워크를 통해 다른 제조사들의 해외 수출을 대행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CJ제일제당은 6월 용두산조은술, 우포, 은자골막걸리, 전주주조 등과 판매 대행 계약을 체결해 국내 유통에도 뛰어들었다.
농심의 막걸리 시장 진출도 초읽기다. 농심은 3월19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특정주류도매업을 신규 사업 목록에 추가했다. 농심은 중형 규모의 막걸리 업체 인수를 추진하면서 자사 제품인 제주 삼다수를 기반으로도 막걸리 사업에 뛰어들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농심의 제주 삼다수 막걸리 프로젝트는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마을 주민들이 마을 수익 사업의 일환으로 삼다수 마을 막걸리를 만들어보겠다며 농심에 유통과 판매를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농심의 이런 시도가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낼지 주목된다. 제주 삼다수라는 차별화한 물과 제주 삼다수 유통망을 가진 농심의 합작이 돌풍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코파이로 중국 러시아 동남아 시장을 호령하는 오리온도 막걸리 업계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관계사이면서 영화 투자 및 배급 업체인 미디어플렉스가 2010년 5월 참살이탁주의 지분 60%를 50억원에 인수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룹의 의향인지, 미디어플렉스의 사업 다각화인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발표 이후 상장사인 미디어플렉스의 주가는 이틀 연속 상한가를 치더니 7000원대에서 단숨에 1만1000원대에 진입했고, 6월 현재 1만원 선을 넘나들고 있다.
참살이탁주는 2009년 5억원의 매출을 올린 작은 술도가지만, 유기농쌀로 막걸리를 빚어왔고, 전국대회에서 우수 막걸리로 선정된 적도 있다. 문근영 서우 천정명 주연의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의 배경이 되면서 주가를 더 높였다. 경기 광주시 생산 공장에서 월 20만ℓ를 생산해 5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게 올해 목표였는데, 상반기 중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아 양조장 규모를 늘릴 계획이라고 한다.
막걸리 대전의 최후 승자는?
막걸리 업계의 맹주인 장수막걸리, 막걸리의 변신을 주도해온 국순당, 포천막걸리를 포함한 중형 막걸리 제조장, 막걸리업에 새로 뛰어든 소주 회사. 여기에 유통에서 강세를 보이는 식음료 회사들까지 합류하면서 막걸리 시장은 격전장으로 변모했다. 그렇다면 이 대전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이 싸움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자본력과 유통망에서 앞서는 소주 회사와 식품 회사가 유리할 것은 자명하다. 그렇다면 중소규모 막걸리 양조장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현재 정부는 막걸리 산업에 관심을 가지고 지원하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막걸리 전용 잔 16개를 개발하고, 월드컵 16강 진출 기원 16강 막걸리를 선발했으며, 막걸리 영문 애칭으로 드렁큰 라이스(Drunken Rice)를 홍보하고 있다. 월드컵 개막전이 있던 날 서울시와 함께 서울 무교동에서 ‘G20 정상회의 성공 기원 2010 막걸리 한식 페스티벌’도 개최했다.
농림수산식품부가 방점을 찍은 것은 우리쌀로 빚은 막걸리로 막걸리 세계화를 이루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막걸리 세계화에 군불을 때고 있는데, 막걸리 세계화의 주도 세력은 누가 될 것인가? 지방의 영세한 막걸리 제조장이 주도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당장에 성과를 내려면 대형 주류 회사가 막걸리업에 뛰어들어, 최첨단 막걸리 생산 시설을 확보하고 세련된 디자인과 광고로 무장한 뒤 글로벌화한 유통망을 통해 안정된 공급을 기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대형 주류 회사의 막걸리 시장 진출을 유도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 됐다.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대자본이 알아서 유입되고 있는 것이다. 막걸리의 세계화는 더 이상 요원한 얘기가 아니다. 수년 내로 내수 시장보다 수출 시장이 더 커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하지만 ‘막걸리 세계화로 우리가 얻을 것은 무엇인가?’ ‘세계적인 막걸리 회사를 만드는 게 세계화의 목표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진로와 롯데가 OEM 방식의 일본 수출을 중단하고 직접 막걸리를 생산하겠다고 나서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진로의 OEM 방식으로 일시적인 호황을 누리는 막걸리 업체로는 상신주가와 전주주조가 있다. 상신주가는 2009년 매월 3억원 규모의 내수 판매 실적을 올리던 업체인데, 진로 수출 물량을 맡으면서 월 6억원 규모로 매출이 늘었다. 상신주가는 진로의 주문 물량을 대기 위해 철야 작업을 하면서 공장 규모를 늘렸지만 주문량이 늘어날수록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주문자에게 종속될 수 있으며 진로가 언제든지 거래처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밀월 관계는 오래가지 않을 소지가 크다. 진로에 인수 합병되거나 거래처를 잃으면서 부도가 날 수도 있다. 이는 OEM 방식으로 막걸리를 제조하는 업체의 아킬레스건이다. CJ가 판매 대행을 하기로 한 중형 규모 막걸리제조장들의 운명 또한 마찬가지다.
막걸리 대전 와중에 지금까지 지역을 기반으로 근근이 연명해온 영세한 막걸리 양조장들은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하고 질식사할 것이다. 충북 영동군 상촌양조장의 김선도 대표는 “김천과 구미로 직접 술 배달을 하면서 회사를 운영했는데, 전국 유통 막걸리 회사들의 제품이 밀려오면서 수요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몇 년이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할아버지 때부터 해오던 일이고 아버지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어서 당장 접겠다고 말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사람 몇 명 채용해서 새로운 술을 개발하더라도 요즘 사람들 입맛도 까다롭고 유행도 빠르게 바뀌어서 이를 따라가기 어렵습니다. 한숨만 나옵니다.”
작은 양조장들은 차별화, 지역화를 강화하지 않는 한 살아남을 길이 없고, 공동브랜드 마케팅을 통하지 않는 한 시장을 넓힐 길이 없는 상황으로 접어들고 있다. 문제는 작은 양조장들이 이를 잘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할 의지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점인데, 그러한 움직임이 나타나지 않는 게 더 큰 걱정이다.
현재 펼쳐지는 막걸리 대전의 승자로 누가 등극할까. 이 싸움의 승자는 대자본이 아니라, 막걸리가 돼야 한다. 지금은 한국산 막걸리라는 파이를 키우는 중이다. 단순히 매출을 늘리는 데 목표를 두어서는 안 된다.
싸구려 막걸리가 아니라 다양한 고급 제품의 안정된 맛, 차별화한 맛을 제공하면서 막걸리가 한국문화의 상징으로, 매력 상품으로 거듭날 수 있어야 한다. 막걸리가 저알코올 쌀 발효 음료로 음미되고 조상들이 즐기던 갈증 해소 스포츠 음료로 해석돼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일조해야 한다.
그러려면 막걸리 세계화의 함정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막걸리가 나아갈 길은 대량으로 생산해 대량으로 유통하고 대량으로 수익을 올리는 소주, 맥주의 길과는 달라야 한다. 대를 이어온 지역 양조장들이 우리 문화의 일부로 살아남을 수 있어야 한다. 막걸리 대전은 자본과 자본, 기업과 기업의 경쟁이 아니라 막걸리와 소주와 맥주의 경쟁, 한국문화와 외래문화의 경쟁, 지방화와 세계화의 경쟁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