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면적의 85%가 임야인 강원도 화천군은 군 전체가 관광자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강 물줄기가 군 전체를 휘감아 흐르고, 높고 낮은 산들이 청량감을 선사한다. ‘평화의 댐’이 상징하듯 북한과 맞닿은 화천은 안보와 평화의 요충지다. 2004년부터 시작된 ‘에코 파라다이스’ 사업은 화천군을 한국을 대표할 녹색관광지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평화의 댐 위에서 바라본 DMZ.
서울에서 화천으로 가는 길은 크게 두 갈래가 있다. 하나는 지난해 개통된 서울-춘천고속도로를 타고 춘천을 거쳐 화천으로 가는 길이다. 대략 1시간40분 정도면 서울에서 화천군의 중심에 도착한다. 다른 길은 자유로를 타고 파주를 거쳐 연천 철원을 지나 화천으로 가는 길이다. DMZ(비무장지대)를 따라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하는 길인데, 여유 있게 운치를 즐기려면 구불구불한 이 길을 따라 가보는 것도 좋다.
기자는 이전에 화천군을 두 차례 찾은 적이 있다. 동해로 향하던 길에 파로호의 아름다운 풍광에 매료돼, 바다로 가는 대신 선상 낚시터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밤새도록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했지만, 새벽녘 물안개가 피어오르던 장관을 잊을 수 없다.
또 한번은 산천어축제 때다. 폐막식 날 우연치 않게 지나다 들렀는데, 너무 늦게 도착한 탓에 얼음낚시는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강 한가운데에 서서 폭죽이 터지는 멋진 풍경을 넋을 놓고 지켜봤다. 또 가족 모두 썰매에 태우고 한동안 얼음을 지치기도 했고, 인근 음식점에서는 산천어회를 안주 삼아 소주를 마셨다. 짧은 방문이었지만 화천군은 언제 어느 때 방문하더라도 먹을거리와 볼거리, 즐길거리가 풍부한 관광명소였다.
6월7일 세 번째 화천을 방문했다. 한국의 10대 생태관광지로 지정된 DMZ 인근을 탐방하기 위해서였다. 화천군청 입구에는 ‘화천군민의 집’이라는 큰 돌이 명패처럼 서 있었다. 군청이라는 딱딱한 관공서 명칭 대신 ‘집’이라는 표현이 포근한 느낌을 줬다. 청사 입구에 들어서자 로비 상단에 떼를 지어 원을 그리며 노니는 산천어가 그려진 커다란 전등이 방문객을 맞았다. ‘화천군은 산천어가 유명하다’는 점을 상기시키려는 듯했다.
강 위를 걷는 느낌, 산소길화천군청이 자리 잡은 화천읍 앞으로는 북한강이 굽이쳐 흐른다. 그 강에 기다란 데크가 설치돼 있다. 이름하여 산소길. 100리(40㎞)길로 조성할 계획이다. 현재 6㎞ 정도 조성돼 있는데 가장 큰 특징은 강 바로 위에 길을 낸 데다, 수면과 높이 차가 거의 없어 강 위를 걷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바람 소리와 물 소리, 간혹 지저귀는 새 소리 외에 잡음이 거의 없는 산소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휴식이 된다. 산소길은 화천군이 ‘에코 파라다이스 화천’ 구현을 위해 2004년부터 추진해온 녹색관광자원화 사업 가운데 하나다.
화천군은 관광객이 짧은 시간 안에 화천군의 명소를 두루 돌아볼 수 있도록 ‘수달과 함께하는 북한강 DMZ 생태관광’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1박2일 일정의 코스는 다음과 같다.
:첫째 날: 화천군 하남면에 위치한 연꽃단지를 둘러본 뒤, 연을 소재로 음식을 만들어본다. 동그레마을에 들러 야생화도 관찰하고 도자기 공방도 체험한다. 이어 화천읍으로 이동, 북한강변 트레킹에 나선다. 카누를 타고 붕어섬 일대를 돌아보거나, 자전거를 타고 레저도로와 붕어섬을 돌아볼 수 있다.
오후에는 산천어 맨손잡기를 체험하고 물고기 하늘길도 둘러본다. 화천댐에 설치된 물고기 하늘길은 하천을 거슬러 올라오는 습성이 있는 물고기를 댐 밑에서 어항에 담아 미리 설치한 레일을 따라 파로호로 올려주는 주는 역할을 한다.
민속박물관에 들러 전문강사의 도움을 받아 나무와 짚풀로 바구니 등을 만들어보고 새끼 꼬기와 가마니 짜기 등 민속체험도 할 수 있다. 민속체험 뒤에는 인근 수달연구센터로 이동해 천연기념물 수달을 직접 보고, 먹이도 줄 수 있다.
:둘째 날: 파로호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평화의 댐까지 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굽이굽이 흐르는 북한강을 거슬러 오르는 동안 우거진 녹음을 즐길 수 있다. 평화의 댐 주변에 설치된 국내 최대의 종인 ‘세계 평화의 종’을 직접 쳐볼 수도 있고, 본을 떠 전시해놓은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의 손을 직접 맞잡아볼 수도 있다. 관광해설사로부터 평화의 댐에 얽힌 역사와 남북한 물 문제에 대해 들을 수 있고, 6·25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는 비목공원도 관람한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천혜의 생태자원이 잘 보존돼 있는 DMZ로 이동해 안동철교와 양의대 습지를 둘러보는 것으로 화천군 생태관광 일정은 끝이 난다.
역사의 희생양에서 안보 파수꾼 된 평화의 댐 | 우리나라 댐 가운데 평화의 댐처럼 전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댐도 드물다. 중년에 접어든 사람이라면 “평화의 댐 건설하는데 시멘트 한 포는 댔다” “댐을 이루는 자갈 한두 개는 내가 낸 돈으로 산 것이다” 등 저마다 ‘평화의 댐’에 대해 한마디씩 할 얘기가 있을 정도다.
기자 역시 평화의 댐 성금 모금에 동참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 초등학교 고학년이었는데, TV에서 북한이 금강산댐을 폭파시켜 수공(水攻)할 경우 서울 여의도 63빌딩이 물에 잠길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을 보고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며 군것질을 참으며 용돈을 모아놓았던 돼지저금통을 깼다.
이후 평화의 댐이 정권 차원에서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계획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 댐은 냉대와 무관심 속에 국민의 기억에서 잊혀갔다. 그러던 중 1999년 8월 초, 북한의 수공은 아니지만, 태풍 ‘올가’의 영향으로 북한강에 엄청난 홍수가 발생했고, 이때 평화의 댐은 홍수조절 구실을 톡톡히 해냈다.
평화의 댐 상류는 북한이 임남댐(금강산댐)에 물을 가두기 시작한 2000년부터 유입량이 급격히 줄어 평소에는 강바닥을 드러내는 상태가 지속됐다. 그러다 2002년 1월초, 한겨울에 평소보다 50배나 많은 물이 평화의 댐으로 유입되는 이례적인 일이 발생했다. 원인은 북한이 임남댐의 훼손부위를 보수하기 위해 댐에 가둬둔 물을 대량으로 방류했기 때문. 만약 임남댐이 구조적 결함이나 다른 문제로 홍수와 겹쳐 붕괴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다면 북한강변과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지역에 엄청난 피해가 예상됐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2002년 9월 평화의 댐 2단계 증축공사가 긴급히 추진됐다.
2005년 10월에 완료된 2단계 공사를 통해 기존 1단계 댐에서 45m를 증축한 평화의 댐은 높이 125m, 길이 601m, 저수용량 26억3000만t 규모의 국내에서 가장 높은 댐이 됐다. 아울러 임남댐 붕괴와 같은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하류 지역을 홍수피해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현재 북한강 본류는 흐름이 정지된 상태다. 북한이 동해안 안변수력발전소를 가동하기 위해 수로를 통해 북한강으로 유입되는 물줄기를 동해안 쪽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현재 금강산댐-DMZ-평화의 댐에 이르는 북한강 19㎞에는 물이 흐르지 않는다.
평화의 댐으로 북한이 물의 흐름을 바꾸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평화의 댐은 성난 물이 있을 것에 대비해 굳게 서 있다. 훗날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오고 통일이 되면 평화의 댐은 다시 진정한 댐의 모습을 찾게 될 전망이다. | |
야생동물 천국, 양의대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하는 10대 생태관광 모델사업으로 지정된 곳은 평화의 댐 상류에서부터 남방한계선인 오작교까지다. 민간인통제구역으로 묶여 있던 탓에 사람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은 처녀림과도 같다. 말 그대로 생태의 보고다. 더욱이 이 지역은 북한강 상류에 속해 강과 산이 어우러진 풍광이 일품이다.
화천군은 자연환경의 훼손을 최소화하면서 관광객에게 질 높은 관람과 체험 기회를 제공하도록 개발할 예정이다. 화천군 정책기획단 강두일 팀장은 “우수한 자연자원을 관광자원으로 잘 활용하면 화천군이 저탄소 녹색성장의 성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현재 군에서는 수달 쉼터와 양의대 습지, 야생동물 서식지와 생명의 숲 등 자연생태탐방코스를 조성하고, 도보나 MTB, 보트 등으로 탐방할 수 있도록 체험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DOP(DMZ Otter Project·비무장지대 수달 프로젝트)는 화천군만이 추진할 수 있는 특화사업이다. 화천군은 통행증이나 여권 없이도 자유로이 남북을 왕래하는 중대형 포유동물인 수달을 북한강에 방류하고, 남북한이 공동으로 보존방안을 연구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몇 해 전에는 위치 추적장치를 단 수달 세 마리를 민통선 안쪽 북한강에 방류하기도 했다. 앞으로 남북 간 긴장이 완화되면 DMZ 일원의 생물 다양성을 보존하고 지속가능한 보존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공동연구도 적극 추진할 방침이다.
DMZ 생태관광 지구로 선정된 양의대 습지에는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물을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도록 ‘사파리’를 운영할 계획이다. 이곳에는 천연기념물인 사향노루와 삵, 멧돼지, 고라니 등 야생동물이 많이 서식하고 있다. 정갑철 화천군수는 “군 차원에서 양의대 인근에 야생 멧돼지 등 동물들이 좋아하는 돼지감자(뚱딴지)를 심어놓았다”고 했다.
기자와 함께 양의대 습지를 탐방한 강두일 계장은 “양의대 습지 인근에서 멧돼지 일가족이 먹이를 찾아 나온 광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고라니는 수시로 뛰어 다닌다”고 했다.
화천군 DMZ 생태관광 후보지는 역설적이게도 분단이 안겨준 선물이다. 그러나 현재 통행증 없는 민간인의 출입은 엄격히 제한된다. 화천군 DMZ가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자원으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군 당국 등 관련 부처의 적극적인 지원과 협조가 필수적이다.
인터뷰 | 정갑철 화천군수
“‘DMZ 국립공원’을 지정해 세계적 평화의 상징으로 만들자”
| ‘맘씨 좋은 옆집 아저씨.’ 정갑철 군수의 첫인상은 그랬다. 일단 편안했다. 처음 만났지만,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화천군의 자원은 산과 물 그리고 청정성입니다. 산천어와 수달의 고장이고요. 자연이 잘 보존됐다는 점이 화천군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정 군수의 화천군 자랑은 쉼 없이 이어졌다. 취재진은 정 군수와 인터뷰를 갖기 전 군청 인근에 있는 ‘산소길’을 막 둘러보고 온 참이었다.
-산소길을 둘러봤는데 마치 강 위를 걷는 느낌이었습니다.
“100리길이 모두 조성되면 생태 탐방로로는 그만일 겁니다. 자연의 품에 안겨 휴식을 취한다고 할까요. 숲 속을 거닐고 때로는 강 위를, 또 이따금 강변을 따라 걷거나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조성하고 있습니다.”
산소길은 현재 6㎞ 남짓 조성됐는데, 앞으로 화천댐까지 이어지면 40㎞의 순환로가 완성된다. 화천댐으로 향하는 길에 보니 자전거도로 조성공사가 한창이었다.
-최근 정부에서 녹색관광 활성화를 위해 여러 정책을 펴고 있는데, 화천군은 일찌감치 녹색자원의 관광자원화를 추진해왔더군요.
“2004년에 ‘에코 파라다이스 화천을 만들자’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환경적으로 청정한 자원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노력이죠. 산소길도 그 가운데 하나고요. 화천군의 85%가 산입니다. 호수와 강 등 물의 비중도 5%나 되고요. 또 화천의 청정함은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자랑거리입니다. 수달과 산천어가 살고 있는 곳 아닙니까. 6·25전쟁 이후 제한적인 상황이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자연이 잘 보존돼 있습니다.”
-화천은 평화의 댐이 있는 곳이기도 하지요.
“6·25의 마지막 산물이 바로 평화의 댐 아닙니까. 그래서 분단의 아픔이 서린 화천을 평화의 상징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평화의 종을 설치하고, ‘세계의 종’ 공원을 조성하고, 평화아트파크를 조성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분단의 상처를 평화의 상징으로 승화시키려는 노력입니다. 2006년에 평화의 댐을 중심으로 평화안보생태특구로 지정됐습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무형의 자원인 화천의 청정성을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여러 정책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북한강과 어우러진 화천군의 DMZ 일대를 생태관광지로 지정했는데요.
“민간인통제선에서부터 남방한계선까지 생태가 가장 잘 보존된 지역이 바로 화천입니다. 직선거리로 15㎞ 정도 됩니다. 이곳을 ‘DMZ 국립공원’으로 지정해줄 것을 관계부처에 요청했습니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는 것을 규제로 인식하는 경향도 있습니다만, 화천군은 산과 호수가 많고 사유재산이 많지 않기 때문에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활용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전쟁 후유증으로 만들어진 이 지역이 국립공원이 되면 세계적인 평화의 상징으로 각광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관계부처에서 적극 검토해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평화의 종’도 그 연장선에서 추진하신 거군요.
“그렇습니다. 세계 30여 개국에서 탄피를 모아 녹여 만든 평화의 종 역시 분단과 전쟁을 평화로 승화시키자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지난해 5월에 준공했는데, 구 소련의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이 시종했습니다. 남과 북이 강으로 연결된 DMZ 일대를 잘 관리하는 것이 안보를 튼튼히 하는 것은 물론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로 나아가는 길이 될 것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