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으로 중국의 지도부는 10년마다 교체된다. 마오쩌둥(毛澤東)부터 덩샤오핑(鄧小平), 장쩌민(江澤民)까지는 최고지도자의 임기에 제한이 없었다. 진퇴 역시 제멋대로였다. 하지만 후진타오(胡錦濤) 집권 이후 중국 공산당은 똑같은 직책을 10년 이상 할 수 없도록 못 박아놓았다. 따라서 현재의 지도부는 2년 뒤엔 차세대 지도부에게 자리를 넘겨줘야 한다. 2012년 가을 중국 정치권력의 핵심자리에 등장할 차세대 지도자 30여 명을 살펴보고, 그들 사이의 권력투쟁을 전망하는 연재를 시작한다. 첫 회는 중국 공산당의 조직구조와 세대교체의 메커니즘을 통해 그 개략적인 지형도를 그려낸 서론이다. <편집자>
중국의 국가지도부는 사실상 중국 공산당 중앙지도부와 같다. 중국 공산당의 지도부 안에 들어가야 국가기관의 주요 직책을 맡을 수 있다. 따라서 중국의 미래는 중국 공산당의 차세대 지도부에 달려 있고, 중국의 차세대 지도부를 제대로 파악해야만 중국의 미래를 알 수 있는 셈이다.
중국 공산당이 발표한 공식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중국 공산당원은 7593만1000명이다. 같은 시기 중국 전체 인구 13억3474만명의 5.7%에 불과하지만 한국 전체 인구의 1.5배나 된다. 당지부 등 기층조직도 371만8000개에 달한다.
이렇게 당원이 많다 보니 전당대회를 열어 당의 노선을 결정하거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일선 당지부부터 시작해 여러 차례 선거를 거쳐 대표를 뽑아 의견을 수렴하거나 소수의 지도부를 구성해 당을 운영할 수밖에 없다.
중국 공산당은 5년마다 당 대표를 선출한다. 대표 선출방식은 일선 촌(村)이나 직장 단위의 기층조직부터 시작해 촌 대표가 향·진(鄕·鎭) 대표를 선출하고 향·진 대표가 다시 현(縣) 대표를 뽑는다. 현 대표는 성(省) 대표를 선출하고 성 대표는 전국대표대회의 대표를 선출하는 피라미드 방식이다.
가장 근래에 당 대표를 선출한 것은 2007년이다. 당시 중국 공산당은 2217명의 전국대표를 뽑았다. 이들 대표는 그해 10월15일 중국의 수도 베이징(北京)의 인민대회당에서 전국대표대회(제17차 당대회)를 개최해(실제 참가자는 2213명) 2007년 가을부터 2012년 가을까지 5년간 중국을 이끌 현 지도부를 선출했다.
따라서 중국에서 지도부 안에 들어오려면 먼저 공산당의 대표가 돼야 한다. 나아가 5년마다 열리는 전국대표대회에서 중앙위원 및 후보위원에 선출돼야 한다. 현재 중국 공산당의 중앙위원은 204명, 후보위원은 167명이다. 이들은 제17차 당대회 마지막 날인 2007년 10월21일 선출됐다.
중앙위원에 선출되면 중국 정부기관의 부장(장관)급 이상 자리와 지방 성의 당 서기, 성장,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위원장, 중국 특유의 정치기구인 인민정치협상회의의 주석 등을 맡을 수 있다. 후보위원이 되면 주로 부부장(차관) 자리에 임명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부장급 자리를 맡기도 한다. 하지만 200명이 넘는 중앙위원을 지도자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이들은 전국인민대표들이 뽑은 간부이긴 하지만 당의 주요 결정 및 국가 중요 사무를 처리하기 위해 모이는 것은 1년에 단 한 번뿐이다.
중국인들이 흔히 부르는 ‘영도자(한국의 지도자에 해당)’는 이들 중앙위원 가운데서 다시 선출하는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을 말한다. 한국의 부총리급에 해당하는 이들은 현재 25명이다. 이들은 대략 한 달에 한 번 모여 당과 국가의 중요 업무를 처리한다. 자주 모이는 만큼 평소에는 자신의 고유 업무가 따로 있다.
중국 정치권력의 심장부이자 최고지도부는 중앙정치국 위원 중에서 다시 뽑힌 상무위원으로 이뤄지는 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다. 2007년 10월22일 열린 제17기 중앙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에서 선출된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은 9명이다. 이들은 수시로 만나 당과 국가의 주요 정책을 결정한다. 언제든지 중요 결정사항이 있을 때 상무위원회가 소집되지만 실제로는 일주일에 한 번꼴로 열린다.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의 힘
17차 당대회에서 선출된 9명의 상무위원 중 가장 권한이 큰 최고지도자는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다. 후 총서기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주석과 중화인민공화국 중앙군사위원회 주석도 겸임하고 있다. 당·정·군의 최고자리를 모두 차지한다.
권력서열 2위는 한국의 국회의장에 해당하는 우방궈(吳邦國) 제11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위원장이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원자바오(溫家寶) 국무원 총리는 한국의 총리와 같은 일을 하며, 권력서열로 치면 3위에 해당한다.
권력서열 4위는 자칭린(賈慶林) 제11기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위원회(전국 정협) 주석이다. 5위는 이데올로기 분야를 담당하는 리창춘(李長春) 상무위원, 6위는 중국 공산당 중앙서기처 서기와 국가부주석, 중앙당교 교장을 맡은 시진핑(習近平) 상무위원이다. 7위는 국무원 부총리를 맡고 있는 리커창(李克强) 상무위원이고, 8위는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를 맡은 허궈창(賀國强) 상무위원, 마지막 9위는 중앙정법위원회 서기와 중앙사회치안종합치리위원회 주임을 맡은 저우융캉(周永康) 상무위원이다.
명실상부한 권력서열 1위인 후 총서기는 우방궈 상무위원장을 비롯한 나머지 8명으로부터 모두 보고를 받는다. 형식적으로 중국 최고의 권력기관인 전국인민대표대회의 상무위원장인 우방궈 상무위원은 국무원을 감시하며 허궈창, 저우융캉 상무위원으로부터 보고를 받을 권한이 있다. 원자바오 총리는 리커창 부총리로부터 보고를 받는다. 이런 보고의무와 감시권한이 권력서열을 결정하는 중요 요소인 셈이다.
이들은 자리에 앉을 때에도 권력서열대로 앉는다. 후 총서기가 가운데 앉으면 왼쪽 첫 자리에 권력서열 2위가, 오른쪽 첫 자리에 3위가, 다시 왼쪽 둘째 자리에 권력서열 4위가, 오른쪽 둘째 자리에 5위가 앉는 식이다. 만약 참석자 수가 짝수라면 오른쪽에 가장 서열이 높은 사람이 앉고 왼쪽에 그 다음 사람이 앉은 뒤 다음 사람은 오른쪽, 그 다음 사람은 왼쪽에 앉는 방식으로 자리가 배치된다.
이처럼 권력서열에 따라 앉는 자리까지 엄격하게 구분되지만 중앙정치국과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당과 국가의 정책을 결정할 때는 평등한 위치에서 자유롭게 토론을 거치며, 표결에 부칠 때도 모두 1인1표로 평등하다. 카리스마로 통치하던 마오쩌둥(毛澤東), 덩샤오핑(鄧小平) 시절엔 1인1표는 물론 자유로운 토론도 불가능했다.
마오쩌둥 시절엔 마오의 한마디가 그대로 정책으로 실행됐다. 덩샤오핑 시절엔 표결을 거치긴 했지만 공정하지 못했다. 덩이 먼저 특정 방안을 선택하면 나머지 정치국 상무위원들은 덩이 표시한 대로 동그라미를 치는 사실상의 공개투표제였다.
하지만 후 주석 시대에 들어와서는 비교적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해졌다는 게 베이징(北京) 정치분석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중앙정치국 상무위원들의 사무실과 관사가 있는 중난하이(中南海)를 오랫동안 출입해온 런민(人民)일보 기자에 따르면, 지금은 각 상무위원이 찬반의견 중 어느 쪽에 표시했는지 모르게 비밀투표를 실시한다는 것.
연경화 정책의 위력
25명의 중앙정치국 위원 중 9명의 상무위원을 제외한 16명은 부총리이거나 베이징, 상하이(上海), 톈진(天津), 충칭(重慶) 등 4대 직할시 또는 광둥(廣東) 성 등 주요 성의 당 서기, 군부인사다. 중앙정치국 위원 25명이 표결할 때도 1인1표를 고수한다. 이들 25명 중 후 주석과 우 상무위원장, 원 총리 등 14명은 2012년 가을이 되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중국 공산당의 연경화 정책에 따라 중앙정치국 위원 역시 임명 당시 기준으로 70세, 부장급은 65세, 부부장급은 60세를 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연령상한선은 실제로는 68세, 63세, 58세로 두 살씩 낮춰 적용되고 있다. 2007년 10월에 열린 제17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에 당선된 사람은 모두 1940년 1월1일 이후 출생자였다. 홍콩 언론은 이를 ‘7상8하(七上八下) 원칙’이라고 부른다. 당시 후 주석, 원 총리와 함께 제4세대 트로이카 체제의 핵심 주역이었던 쩡칭훙(曾慶紅) 국가부주석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1939년 7월생인 그는 만 68세라는 나이 제한에 걸려 눈물을 머금고 지도부에서 퇴진해야 했다. 쩡 부주석은 후-원-쩡 트로이카 체제라는 말이 나올 만큼 권력이 막강했지만 중국 정치의 투명성과 미래예측성을 강화한다는 연경화 정책의 명분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는 제15차 당대회가 열렸던 1997년과 차이가 크다. 당시도 중국 공산당은 연경화를 내세우며 세대교체를 추진했다. 연경화는 장쩌민(江澤民) 당시 총서기가 당의 원로들을 퇴진시키기 위한 명분이었다. 하지만 70세가 중앙정치국 위원이 될 수 있는 마지노 연령으로 결정되면서 이는 장 총서기에게도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1926년생인 장 총서기 역시 71세로 퇴진 대상이 된 것이다. 이 위기의 순간에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을 지냈던 완리(萬里)의 주도로 원로들이 참여한 중앙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장쩌민과 화궈펑(華國鋒)을 예외로 인정, 중앙위원으로 선출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화궈펑은 제1세대 지도부 핵심인 마오쩌둥이, 장쩌민은 제2세대 지도부 핵심인 덩샤오핑이 지명한 후계자라는게 이유였다.
그러나 10년 뒤인 2007년엔 예외가 없었다. 17차 당대회에서 선출된 중앙위원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은 1940년 1월생인 화젠민(華建敏) 제11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 겸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국가기관공위(工委) 서기다.
따라서 2012년 가을엔 25명의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중 14명이 교체되는 등 중국 지도부의 대폭적인 교체가 불가피하다. 특히 당 총서기와 국가주석을 맡아온 후 주석이 한 자리에 10년 이상 앉아 있을 수 없다는 당의 인사원칙과 연령제한에 걸린 만큼, 지도부 전체의 세대교체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10년마다 지도부 교체
중국 지도부의 세대 구분은 아직 학자들 사이에 일반화된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후 주석을 핵심으로 한 지도부를 ‘제4세대 지도부’라 부른다. 이는 기본적으로 덩샤오핑의 발언에 근거한 학자들의 구분법에 따른 것이다.
덩은 1989년 6월4일 천안문 사태를 무력으로 진압한 직후인 6월16일 중국의 최고지도부 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건국 당시부터 문화대혁명까지 제1세대 지도부의 핵심은 마오 주석이었고, 개혁개방 이후 제2세대 지도부의 핵심은 사실상 나 자신이었다. 당의 영도는 안정적이어야 하고, 항상 하나의 핵심을 보호한다는 점을 의식해야만 한다. 현재 핵심은 모두가 동의하듯이 장쩌민 동지다”라고 강조했다. 덩의 이 발언은 마오 시대가 제1세대로, 덩 시대가 제2세대로, 장 시대가 제3세대로 불리는 계기가 됐다. 따라서 장 총서기가 물러난 2002년 이후 지도부 핵심은 후 주석이라는 점에서 후 지도부는 ‘제4세대 지도부’인 셈이다.
미국 해밀턴대 리청(李成) 교수도 2002년 펴낸 ‘중국의 지도자들’이라는 책에서 이 같은 구분법을 채택했다.(표 참조) 리 교수는 “지도부의 세대 구분은 성장과정에서 비슷한 시기에 특수한 인생 경험을 나눈 연령 그룹”이라며 1세대는 대장정을 겪은 마오를 핵심으로 한 지도부, 2세대는 항일전쟁을 경험한 덩을 중심으로 한 지도부, 3세대는 건국 직후 사회주의 개조시기를 경험한 장을 핵심으로 한 지도부, 4세대는 문화대혁명을 경험한 후 주석을 핵심으로 한 지도부, 5세대는 문화대혁명이 끝난 뒤 대학에 입학했고 경제의 개혁개방을 경험한 제5세대 지도부라고 명명했다.
이 교수는 나아가 제4세대는 문화대혁명 세대로 1941~56년에 태어난 사람들이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이 구분법에 따르면 현 지도부도 4세대 지도부이고, 2012년 이후 중국 지도부를 형성할 사람들 역시 대부분 4세대 지도부가 된다. 우리가 보통 차세대 지도부라고 하는 시진핑, 리커창 상무위원도 모두 4세대 지도자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2012년엔 4세대 지도부의 핵심 후진타오와 권력서열 2, 3위인 우방궈 원자바오가 모두 퇴진한다는 점에서 이를 여전히 4세대 지도부라고 부르기에는 부적합하다. 게다가 후 총서기가 취임한 이후 중국 공산당은 같은 직책을 10년을 초과해 맡을 수 없도록 못 박아 누구도 최고 권력의 자리에 10년 이상 머무를 수 없다. 결국 앞으로 중국 지도부는 10년마다 핵심인사가 교체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1940년대 출생자 가운데 제18차 당대회가 열리는 2012년에 만 68세가 되는 1945년 이전 출생자는 모두 퇴진하게 된다. 1945년 이후 출생자 중 1950년 이전 출생자(4.5세대)는 2012년 이후에도 5년간 중앙위원과 중앙정치국 위원, 정치국 상무위원을 할 수 있지만 제19차 당대회가 열리는 2017년엔 물러나야 한다. 이처럼 새로운 지도부에서 10년이 아닌 절반만 일할 수 있는 사람은 권력서열 1위인 당 총서기나 2위인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3위인 국무원 총리 등 주요 포스트에 앉기 어렵다.
퇀파이, 태자당, 상하이방
이처럼 연령을 투명하면서도 엄격하게 제한해 지도부 인사의 진퇴를 결정하고 있지만, 해당 연령대의 고위간부 가운데 누가 최고 권력자가 될지, 주요 포스트에 갈지에 대해서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의 치열한 투쟁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현재 5세대 지도자 가운데 권력서열이 가장 앞선 시진핑 국가부주석이 차기 최고지도자로 유력시되고 있지만 아직 ‘황태자’의 자리에 오른 것은 아니다. 특히 2009년 9월 열린 중국 공산당 제17기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4중 전회)에서 시 부주석은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으로 선출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실제로는 이뤄지지 않았다. 아직 후 주석의 뒤를 이을 ‘황태자’로 공인받지는 못한 셈이다. 반면 후 주석은 2002년 가을 최고지도자 자리에 오르기 앞서 3년 전인 1999년 가을 제15기 4중 전회에서 중앙군사위 부주석에 선출돼 사실상 최고지도자 자리를 예약했다. 이와 관련, 당시 베이징에서는 “후 주석이 자신의 측근이자 심복인 링지화(令計劃) 중앙서기처 서기를 중앙정치국 위원으로 밀었지만 성공하지 못하자 시 부주석의 중앙군사위 부주석 선출까지 모두 무산시킨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그러나 시 부주석의 중앙군사위 부주석 취임이 늦어졌다고 해서 그가 최고지도자에 오를 가능성이 크게 줄어든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시 부주석이 올해 가을 열리는 5중 전회에서 중앙군사위 부주석에 선출돼, 큰 이변이 없는 한 후 주석으로부터 2012년에 당 총서기직을 물려받을 것으로 예상한다.
일당 체제인 중국 정치에서 계파 또는 파벌은 매우 중요하다. 중요한 정치적 결정이나 주요 포스트에 대한 임면권을 행사할 때 파벌끼리 의견이 갈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계파는 주로 고향이나 학교, 직장, 출신성분에 따라 형성된다. 장쩌민 주석을 좌장으로 하는 상하이방(上海幇)은 상하이에서 같이 근무한 인연을 바탕으로 이뤄진 파벌이다. 퇀파이(團派)는 중국공산주의청년단에서 근무한 경력을 바탕으로 형성된 계파다. 칭화방(淸華幇)은 칭화대를 졸업한 사람을 일컫는다. 태자당은 중국의 고관 자제들을 지칭하는 말로, 40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 전 주석은 자파(自派)의 자리를 늘리기 위해 심복이었던 쩡칭훙을 1997년 가을 15차 당대회 때부터 중앙정치국 위원으로 밀었으나 다른 계파의 반대에 밀려 무려 5번이나 쓴잔을 마셔야 했다. 중앙정치국 위원 자리 하나는 곧바로 자파의 세력 확대를 의미하는 데다, 장 전 주석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줄기차게 다른 파벌을 축출해온 쩡에 대한 다른 계파의 반대가 심했기 때문이었다. 정치국 위원이 되려면 정치국 내 정위원의 3분의 2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쩡칭훙은 계속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있다 16차 당대회에서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승진했다.
2012년 일곱 자리가 비게 될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을 놓고도 이들 계파 간 다툼은 매우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9명 가운데 후 주석을 필두로 한 퇀파이는 리커창 부총리를 비롯해 단 2명. 반면 상하이방은 우방궈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과 자칭린 전국 정협 주석, 리창춘 상무위원 3명이다. 또 태자당도 시진핑 국가부주석과 허궈창 중앙기율검사위 서기 등 2명이나 된다. 원자바오 총리는 친(親)후진타오 계열이다. 저우융캉 중앙정법위 서기는 태자당이자 상하이방으로 분류되는 쩡칭훙 계열이다. 결국 최고지도자인 후 주석이라 할지라도 다른 계파가 반대한다면 자기 뜻대로 일을 추진하기 어려운 구도인 셈이다.
2012년 새로 선출될 정치국 상무위원의 유력 후보로는 리위안차오(李源潮) 중앙서기처 서기 겸 당 중앙조직부장과 왕양(汪洋) 광둥성 서기, 보시라이(薄熙來) 충칭시 당 서기, 왕치산(王岐山) 부총리 등이 꼽힌다. 또 위정성(兪正聲) 상하이시 서기와 장가오리(張高麗) 톈진(天津)시 서기도 선출될 가능성이 높다. 장더장(張德江) 부총리와 류옌둥(劉延東) 국무위원, 류윈산(劉云山) 중앙서기처 서기도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이들 9명 가운데 퇀파이가 4명으로 가장 많다. 하지만 태자당과 상하이방 역시 각각 3명, 2명이다. 결국 상무위원 자리를 하나라도 더 차지하기 위한 계파 간 암투가 어느 때보다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또 전체적으로는 후 시대에 이어 제5세대 지도부에서도 퇀파이와 상하이방, 태자당의 3대 세력이 정립(鼎立)하는 현상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4.5세대와 6세대
앞으로 연재를 통해 소개할 중국의 차세대 지도자는 1950년대에 출생한 제5세대 간부들이다. 이들은 2012년 가을 구성될 제18기 중앙정치국 상무위원과 위원으로 중국 국가 주요 기관의 책임자가 된다. 이들 중에는 시진핑, 리커창처럼 이미 정치국 상무위원인 사람도 있고, 리위안차오 중앙조직부장이나 왕양 광둥성 서기처럼 중앙정치국 위원인 사람도 있다. 또 링지화, 왕후닝(王?寧) 중앙서기처 서기 등 지위와 권력이 중앙정치국 위원에 맞먹는 사람도 있다. 왕민(王珉) 랴오닝(遼寧)성 서기와 자오러지(趙樂際) 산시(陝西)성 서기, 루잔궁(盧展工) 허난(河南)성 서기, 장춘셴(張春賢) 신장웨이우얼(新疆維吾爾) 자치구 주석 등 지방 제후도 적지 않다.
5세대 지도부가 권력의 전면에 나서는 시기(2012~22년)에 중국의 지도부가 5세대만으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비록 5세대 인사는 아니지만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즉 5세대 지도부의 전반기엔 4.5세대(1945~49년 출생자)도 여전히 5세대 지도부와 함께 중국을 이끌어간다. 이런 4.5세대 지도자 중 대표적인 인사로는 왕치산 부총리와 위정성 상하이시 서기, 장더장 부총리, 류옌둥 국무위원, 장가오리 톈진 시 서기, 류윈산 중앙서기처 서기 겸 중앙선전부장, 보시라이 충칭시 서기 등이 있다.
또 1960년대에 출생한 6세대 간부 중 일부 선두주자도 2012~22년 5세대와 더불어 중앙정치국에 진출해 중국을 이끌어갈 것으로 보인다. 현재 1960년대에 태어난 6세대 지도부 가운데 부장급 이상 선두주자는 저우창(周强) 후난(湖南)성 서기와 후춘화(胡春華)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 서기, 쑨정차이(孫政才) 지린(吉林)성 서기, 장칭웨이(張慶偉) 중국상용비행기유한책임공사 이사장, 루하오(陸昊) 중국공산주의청년단 제1서기, 누얼 바이커리(努爾白克力) 신장웨이우얼 자치구 주석 등 6명이다.
앞으로 차세대 최고지도자로 가장 유력한 시진핑 국가부주석부터 리커창 부총리 등 중앙정치국 상무위원과 중앙정치국 위원, 국무원 국무위원 및 중앙서기처 서기, 중앙 및 지방의 주요 직책을 맡은 부장(장관)급 이상 중앙위원 순으로 30명 안팎을 소개할 계획이다. 대상자의 출생부터 현 위치에 이르기까지 경력은 물론 정치적 업적과 배경, 계파와 인간관계, 성격 및 소질, 가정사, 한국의 지인까지 독자가 궁금해할 만한 사안을 총망라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