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호

6·2지방선거와 민심

보수 대 진보 구도의 복귀, 민주주의 체험의 위력

  • 김호기│연세대 교수·사회학 kimhoki@yonsei.ac.kr│

    입력2010-07-01 14: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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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번 지방선거 결과에 담긴 가장 중요한 의미는 불균형의 정치에서 균형의 정치로 돌아선 정치사회 구도의 전환이다. 지방권력이라도 교체함으로써 행정권력과 입법권력의 독주를 제어하라는 국민의 요구가 표출됐다. 천안함 사건은 여권에 크게 유리하지 않았으며, 야권이 선점한 무상급식 이슈는 정책선거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젊은 세대를 포함해 적지 않은 국민이 정부의 국정운영 방식이 권위주의적이라고 느끼고 있다. 이 점에서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
    참으로 놀라운 선거였다. 6월2일 치러진 지방선거를 두고 하는 말이다. 민주화시대가 열린 이래 1997년 대통령선거와 2002년 대통령선거처럼 그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웠던 선거가 없지 않았지만, 이번처럼 놀라운 결과를 안겨준 선거도 드물다.

    두 가지 점에서 그러하다. 첫째, 여론조사가 철저히 어긋났다는 점이다. 선거 막바지 여론조사 발표가 금지된 기간에 민심이 빠르게 바뀌었을 수도 있지만, 찬찬히 돌아보면 처음부터 여론조사는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둘째, 여러 언론에서 지적했듯이 민심이란 참으로 무섭다는 생각이다. 국정 중반에 치러지는 선거가 으레 중간평가적 성격을 갖게 마련이지만, 정부의 국정운영 지지율이 나쁘지 않은데도 정권심판론이 큰 영향을 발휘한 선거였다.

    과연 무엇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을까. 정권심판론만으로 설명하기에 이번 선거는 사뭇 복잡했다. 선거 기간 내내 논란을 일으킨 천안함 사건발(發) 북풍도 북풍이거니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년을 맞이해 예상된 노풍(盧風)을 포함해 여러 요인이 중첩된 것으로 보인다. 이 길지 않은 글에서는 이번 선거 결과를 분석한 다음, 그것에 기반을 두고 정부, 여당 그리고 야당의 과제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불균형 정치’에서 ‘균형의 정치’로



    크게 보아 이번 지방선거 결과에 담긴 가장 중요한 의미는 불균형의 정치에서 균형의 정치로 돌아선 정치사회 구도의 전환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선거 결과에는 지방권력이라도 교체함으로써 행정권력과 입법권력의 독주를 제어하라는 국민의 요구가 담겨 있다.

    정치사회학적으로 이번 선거에 큰 영향을 끼친 요인은 크게 배경적 요인과 직접적 요인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선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요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정권심판론이 일관된 위력을 발휘했다. 일반적으로 어느 정부이건 국정 초반에 치러지는 전국 단위의 선거는 여당에 유리하고, 국정 후반에 치러지는 선거는 야당에 유리하다. 이번 선거는 국정 중반에 치러지는 선거라는 점에서 과연 어느 쪽으로 균형추가 기울지 예측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 지지율은 50% 내외를 기록한 반면 4대강 사업 반대, 무상급식 실시 등에 대한 지지율이 60%가 넘은 것에서 볼 수 있듯 상반된 민심이 공존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국정안정론과 정권심판론 가운데 영향력이 더 컸던 것은 후자였다. 선거 성적표를 놓고 볼 때 야권의 일방적 승리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과 보수 우위의 정치사회에 대한 견제심리가 일관된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다. 집권 2년 4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권력에 대한 견제,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 프레임이 크게 작동했고 또 반영된 선거였다.

    6·2지방선거와 민심


    둘째, 야권 후보단일화가 상당한 효과를 발휘했다. 이른바 연합정치가 추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지난 2008년 서울시 교육감선거와 지난해 경기도 교육감선거에서 연합정치가 이미 추진된 바 있다. 이 가운데 후자의 연합정치는 진보개혁적 유권자에게 승리의 기억을 갖게 했으며, 이는 이번에 큰 영향을 미쳤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일련의 후보단일화 과정은 진보개혁 세력의 주요 지지층인 화이트칼라와 젊은 세대의 관심을 불러 모았으며, 이 관심은 이들 그룹의 투표 참여를 이끈 것으로 보인다.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 가운데 하나는 구도다. 선거 구도에서 후보단일화는 보수 대 진보의 대립을 더욱 선명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진보개혁 세력의 경우 노선에 따라 여러 정당이 공존할 수밖에 없는데, 후보단일화를 포함한 연합정치는 매우 중요한 선거전략이라고 하겠다. 이번 선거에서 나름대로 성과를 거둔 진보개혁 세력은 앞으로 지속가능하고 실현가능한 연합정치를 어떻게 모색할 것인지 과제를 안게 된 셈이다.

    셋째, 노풍의 영향력이 상당했던 선거였다. 선거 전 관심을 모은 이슈 가운데 하나는 ‘현실 속의 북풍’과 ‘마음속의 노풍’ 중 과연 어떤 바람이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인가였다. 결과적으로 볼 때 노풍은 진보개혁적 유권자에게 이른바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의미) 감정을 불러일으켰고, 이것이 투표로 직접 연결됐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지난해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재평가가 서서히 이뤄져왔다는 점이다. 올해 초 조선일보에 따르면, 20대 초반 ‘G세대’가 지난 100년간 우리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인물로 선정한 사람은 노 전 대통령이었으며, 최근 한겨레신문이 조사한 민주화시대 이후 복지정책 성적표에서 가장 우수한 점수를 받은 정부는 참여정부, 국민의 정부 순서였다.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가 2006년 지방선거,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에서 이미 세 번이나 이뤄졌는데도, 다시 한 번 심판하자는 한나라당의 주장은 그다지 설득력이 높지 않았다.

    넷째, 선거 기간 내내 논란을 일으킨 북풍은 이중적 결과를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천안함 사건으로 비롯된 북풍은 보수와 진보 유권자를 모두 동원했다. 보수적 유권자에게 안보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켰다면, 진보적 유권자에게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표방한 포용정책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흐름을 잘 보여주는 것은 5월24일 이명박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직후 형성된 선거의 마지막 국면이다. 이 국면에서 야권은 ‘전쟁 대 평화’의 구도를 제시했는데, 이 구도는 야권 지지 성향이 강한 젊은 세대와 화이트칼라에게 상당한 호소력을 발휘한 것으로 보였다. 천안함 사건은 정치적 의제라기보다는 기본적으로 국가적 의제다. 국가적 의제가 정치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국면과 상황에 따라 다르며, 반드시 보수세력에게만 유리한 것은 아니다.

    다섯째, 무상급식을 포함한 정책적 쟁점 또한 이번 선거에 나름대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지방선거는 교육감선거와 함께 치러졌는데, 교육감선거에서 특히 논란을 불러일으킨 무상급식 이슈는 학부모 세대인 30~40대 유권자들에게 상당한 호소력을 가졌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정치사회학 연구자로서 보기에 무상급식 이슈는 지방선거의 본령을 이루는 쟁점이었으며, 따라서 바람의 정치에 의해 그 의미가 희석된 게 크게 아쉬웠는데, 그래도 정책선거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서민경제 침체와 ‘숨은 표’

    이러한 직접적 요인들 못지않게 이번 선거에서는 특히 배경적 요인들이 중요했다. 선거 전체를 관통한 ‘국정안정론이냐 정권심판론이냐’를 가늠하는 기준이 지난 2년4개월 동안 진행된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에 대한 종합적 판단에 근거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배경적 요인은 서민경제의 침체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래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해소되지 않고 오히려 강화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예를 들어 2010년 1분기 경제성장률은 8.1%인 반면, 빈부격차는 크게 벌어졌다. 구체적으로 상위 10%의 월평균 소득은 1050만원을 기록했는데 하위 10%는 58만원으로 나타났다.

    청년실업에 관한 통계는 우리 사회 현실을 보여주는 또 다른 지표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20대 실업률은 8.4%지만, 이 세대의 실질적 실업률은 공식 실업자 34만2000명에 취업을 준비하거나 이직을 원하는 단기 노동자인 20대를 모두 합한 23.1%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6·2지방선거와 민심

    6월4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열린 당선증 교부식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왼쪽)과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당선자가 웃고 있다.

    2007년 12월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에게 표를 던진 적지 않은 국민은 이명박 정부가 ‘경제만은 살려주기’를 희망했지만, 다수의 서민층에게 그것은 여전히 실현되지 않은 꿈이라는 아쉬움과 불만이 이번 선거에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 배경적 요인으로 지목할 수 있는 것은 이른바 민주주의의 후퇴다. ‘숨은 표’라는 말로 흔히 지칭되는 여론조사와 실제투표 간 격차는 우리 민주주의의 현실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여러 사람이 지적하듯이 2008년 봄 촛불집회 이후 진행된 민주주의의 후퇴는 표현의 자유를 위축하고 언론의 자유를 제한해왔다. 미네르바 사건, PD수첩 사건, 그리고 이번 선거 과정에서 제기된 트위터 논란 등은 구체적인 사례들이다.

    국경 없는 기자회에 따르면, 한국 언론의 자유는 2002년 39위에서 2006년 31위로 상승했지만 2009년에는 69위로 크게 하강했다. 여기에 더해 미디어관련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대표되는 ‘정치의 사법화’에 대한 불만 또한 증가해왔는데, 법이라는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politics by other means)는 우리 민주주의에 대한 우려를 높였다.

    한때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나’라는 논란도 있었지만 ‘빵과 말’, 다시 말해 경제와 민주주의는 사실 다른 영역에 속한 문제다. 진보개혁적 유권자의 시선에서 이명박 정부가 그동안 취한 일련의 조치는 민주주의의 후퇴를 의미하며, 민주주의에 대한 이러한 우려는 숨은 표심으로 잠재했다가 야권 후보에 대한 지지로 표출됐다.

    정보사회의 진전은 세 번째로 주목할 배경적 요인이다. 2000년대 들어와 우리 사회에서도 정보사회의 진전에 따라 휴대전화, 트위터 등 정보기기가 선거에 미치는 영향이 커졌다. 이러한 정보기기들은 이에 익숙한 젊은 세대의 투표율 제고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선거 당일 오후 투표율이 크게 높아진 것은 바로 이러한 경향이 반영된 결과였다. 정보사회 또는 모바일사회로의 전환은 비가역적이며, 이 점에서 선거에 정보기기의 사용을 제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역풍을 불러올 수 있다.

    지역주의 완화와 세대교체

    정리하자면 이번 선거 결과에는 다섯 가지의 직접적 요인과 세 가지의 배경적 요인이 상호 결합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선거 결과에 담긴 함의는 어떻게 봐야할까. 이에 대해 필자는 세 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첫째, 이번 선거는 앞서 지적했듯 보수 대 진보 균형구도의 복귀를 함축한다. 야권을 지지한 유권자에게 이번 선거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한 적극적 반대이자, 민주당을 포함한 야권에 대한 소극적 지지와 기대를 담고 있다. 이 점에서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보수세력이 반성과 성찰의 계기를 부여받았다면, 민주당을 포함한 진보개혁 세력은 새로운 기회라는 선물을 받은 셈이다.

    둘째, 지역주의의 점진적 약화 또한 주목해야 한다. 경남의 김두관 후보 당선과 충남의 안희정 후보, 강원의 이광재 후보 당선은 기존 패권적 지역주의의 약화를 암시한다. 비록 선거에는 패했지만 부산에서 민주당 김정길 후보가 기록한 44.6%의 득표율은 노풍에 힘입은 바 크더라도 기존 지역주의에 균열이 생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호남지역에서 한나라당 후보들이 14~18% 지지를 얻은 것도 지역주의가 약화된 또 다른 사례라 하겠다.

    6·2지방선거와 민심


    다른 나라의 역사적 경험에서 볼 수 있듯이 지역주의 약화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지역 변수에 맞서서 인물, 정책, 이념 변수가 중요한 의미를 가질 때에만 지역주의는 약화될 수 있다. 물론 이번 지방선거 결과가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반복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지역주의에 반하는 선택을 한 유권자의 경험은 다음 선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이번 지방선거는 지역주의 구도를 약화시키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셋째, 이번 선거에 담긴 의미 가운데 하나는 세대교체다. 선거결과를 보면 40대 정치인들의 성과가 두드러지는데, 야권의 경우 인천의 송영길 당선인을 비롯해 386세대의 성공이 특기할 만하다. 더불어 이번 선거결과에는 자기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중앙정치적 인물을 키우고자 하는 유권자의 바람이 반영돼 있는데,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지방자치단체장의 경험이 정치적 리더십의 주요 조건이 되는 경향이 자리 잡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우리 정치사회가 균형 구도로 변화했지만 그것이 보수와 진보 간의 불안정한 균형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과연 앞으로 정치사회는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현재의 균형이 파국적 균형이 될지, 공존적 균형이 될지는 무엇보다 정부의 국정운영 기조에 달렸다. 이번 선거결과에는 정부의 주요 국정사업에 대한 평가가 담겨 있다. 세종시 수정과 4대강 사업 등을 밀고 나갈 것인지, 변경해야 할 것인지를 정부는 심사숙고해야 하며, 내각을 포함한 인적 개편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정부의 세세한 국정운영에 대해 논평할 능력을 필자는 갖고 있지 않다. 정치사회학 연구자로서 거시적인 시각에서 정부와 여당, 그리고 야당에 다음과 같은 충고를 하고 싶다.

    노무현 정부에서 배워라

    먼저 정부는 국정운영 방식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젊은 세대를 포함해 적지 않은 국민이 정부의 국정운영 방식이 권위주의적이라고 느끼고 있다. 권위주의적 국정운영은 산업화시대에는 나름대로 효과적이었을지 모르겠으나 21세기 세계화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적지 않은 국민에게 국정운영이 수직적이고 일방통행적이라고 느껴지는 한 정부가 어떤 정책을 펼친다 하더라도 다수의 공감대를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점에서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로부터 배울 필요가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노무현 정부의 국정운영 지지율이 이명박 정부보다 낮았을지는 모르지만, 노무현 정부는 시민사회와의 거버넌스를 포함해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국정운영을 실험해왔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경험은 비가역적인 것인바, 한번 그것을 체험하면 과거의 형태로 되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을 이명박 정부는 숙고해야 한다.

    더불어 그 무엇이라 명명하든 ‘제2의 친서민 중도실용’으로서 새로운 국정운영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현안인 세종시 수정과 4대강 사업은 여론을 존중하면서 이른바 출구전략을 적절히 모색해야 하며, 소수의 부유층이 아닌 다수의 서민층을 위한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

    그동안 ‘친서민 중도실용’에 대해서는 찬반 세력이 공존했다. 한편에서는 그 참신성을 높게 평가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무늬만 친서민’이라는 혹평 또한 적지 않았다. 주목할 것은 이번 선거가 정부의 친서민 중도실용이 적어도 중산층과 서민계층에게는 그렇게 효과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한다는 점이다. 보수든 진보든 이념을 넘어서 국가에 부여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시장이 낳는 사회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있다. 따라서 정부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경제 및 사회정책을 적극적으로 입안하고 추진해야 한다.

    한나라당은 이번 선거결과가 크게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특히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의원들은 당장 2012년 총선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선거 직후 당내 일각에서는 정부와 여당에 대한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당 지도부와 정부가 이런 요구를 어디까지 받아들일지는 지켜봐야겠지만, 분명한 것은 한나라당에 이른바 좋은 시절은 지나간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한걸음 물러서서 볼 때 이번 선거결과가 한나라당의 완패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서울과 경기의 광역자치단체장 선거결과는 물론 시도별 광역의원 정당득표율에서도 민주당을 앞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한걸음 물러서서 보면 상황은 자못 심각하다. 서울의 경우가 단적인 사례인데, 비슷한 득표율을 기록했음에도 한나라당의 지지는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에 집중됐다. 대선이라면 몰라도 이러한 지지 상태가 지속될 경우 2012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상당히 고전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 한나라당에 필요한 것은 당이 내걸고 있는 공동체 자유주의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최대의 과제는 바로 훼손되는 공동체의 가치를 복원하고 21세기 정보사회에 걸맞은 개인주의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있다. 보수주의가 기본적으로 권위주의적 성향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한나라당은 보수주의가 갖는 또 다른 장점인 공동체주의와 자유주의 정치 및 정책을 새롭게 강화할 필요가 있다.

    무상급식의 교훈

    야권은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새로운 기회라는 선물을 받았다.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 이후 우리 사회의 성장연합(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과 분배연합(민주당, 국민참여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은 비대칭적 구도를 이뤄왔는데 이번 지방선거를 분수령으로 대칭구도로 이동한 셈이다.

    이러한 대칭구도에서 야권의 분배연합이 새로운 대안세력으로서의 비전과 정책, 리더십을 얼마나 보여줄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해 민주당을 포함한 야권은 미국 민주당과 일본 민주당의 경험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 집권 이후 미국 민주당 정부나 일본 민주당 정부의 인기가 물론 예전만 못한지만, 두 정당은 새로운 비전과 정책을 제시함으로써 정권 교체에 성공했다.

    예를 들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정치란 목소리 없는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주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구체적으로 의료개혁을 통해 무보험자 3200만명에게 새로운 복지를 제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또한 일본 민주당은 ‘생활정치 구현’을 내걸어 자민당 장기집권의 기반인 ‘일본열도개조론’을 거부하고 토건국가에 맞서는 일본식 복지국가 패러다임을 제시해 큰 성과를 거뒀다.

    기억의 정치, 희망의 정치

    우리 정치 지형상 야권의 주요 지지층은 중산층과 서민, 그리고 젊은 세대다. 민주당을 포함한 야권은 중산층과 서민의 경제적, 사회적 삶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지속가능한 비전과 실현가능한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이번 지방선거에서 쟁점 정책으로 부상한 무상급식은 야권에 중대한 교훈을 안겨준다. 민주당이 중산층과 서민은 물론 전체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정책을 부단히 개발하고 이를 실천하는 역량을 보여준다면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둘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이번 선거에 대해 개인적인 소회를 밝히고자 한다. 선거 당일 필자는 오전 10시쯤 집 옆에 있는 초등학교 체육관에 가서 투표를 했다. 집에서 체육관까지 가는 데는 5분 정도 걸렸다. 길지 않은 5분이었지만, 필자의 머릿속에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2년 4개월 동안의 우리 사회 모습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때 문득 든 생각은 투표가 유권자들이 갖고 있는 기억에 따른 일종의 응답행위라는 것이다.

    선거가 끝난 직후에는 두 번 방송에 나가 토론을 했다. 하나는 개표가 진행되는 6월3일 새벽에 한국방송공사(KBS) 제1라디오의 특별방송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6월3일 오후 서울방송(SBS) TV에서 마련한 특집토론이었다. 개표과정에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과 놀라운 결과를 지켜보면서 필자는 새삼 선거와 투표가 갖는 의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6·2지방선거와 민심
    金 晧 起

    1960년 경기 양주 출생

    연세대 사회학과 및 동대학원 사회학과 졸업

    독일 빌레펠트대 사회학 박사

    미국 UCLA 사회학과 초빙연구원

    미국 스탠퍼드대 ‘한국 민주주의 프로젝트’ 공동편집인

    저서: ‘한국 시민사회의 성찰’ 등


    민주주의에서 투표는 국민이 갖는 가장 중요한 정치적 권리다. 평소에는 통치의 대상이지만, 투표하는 바로 그날은 그 통치자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극대화된다. 수사적으로 말하면 투표는 과거를 돌아보는 ‘기억의 시간’이자, 자기 사회의 미래를 전망하는 ‘희망의 시간’이다.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희망하는 이들이 결코 유권자만은 아닐 것이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이번 선거가 부디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시간을 계획하는, ‘기억의 정치’와 ‘희망의 정치’의 중대한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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