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호

대한법률구조공단 정홍원 이사장

“찾아가는 맞춤형 법률서비스 시대가 왔다”

  • 김지은│신동아 객원기자 likepoolggot@empal.com│

    입력2010-07-01 17: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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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조계 문화가 변하고 있다. 딱딱하고 경직됐던 분위기가 어느새 따뜻하게 감싸고 가족처럼 도와주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한여름 무더위보다 뜨겁게, 법조문화를 바꾸는 데 열정을 불태우는 대한법률구조공단의 정홍원 이사장을 만났다.
    대한법률구조공단 정홍원 이사장

    ● 1944년 경남 하동 출생<br>● 1972년 사법시험 14회 합격<br>● 대검 중수부 4·3과장, 서울지검 특수부 3·1부장, 대검 감찰부장, 부산지검장, 법무연수원장<br> ● 법무법인 로고스 공동대표 변호사<br>● 現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

    법원과 검찰청 그리고 수많은 법조계 관련 사무실이 즐비한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의 끝자락에 접어들면 작고 반듯한 대한법률구조공단(이하 법률구조공단) 건물이 있다. 이곳과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자리한 아담한 근린공원에는 신록이 푸르다. 그 앞으로 푸른 하늘 그림으로 치장한 산뜻한 대형 버스가 조금씩 몸을 움직인다. ‘찾아가는 법률상담서비스’를 위한 이동상담 차량이 출범 준비를 완료한 것이다. 한여름 무더위를 식혀줄 단비를 만난 것처럼 반갑다.

    “강원도 동해시에 법률구조공단 지소가 설치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분쟁이 생겨 400만원을 떼이게 생긴 분이 계셨는데 때마침 지소가 개설되어 도움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분 말씀이 이전에는 그런 법률적 분쟁이 발생하거나 억울한 일이 있어도 강릉이나 춘천 같은 큰 도시로 나가지 않으면 짧은 상담 한 번 받기가 어려웠다는 겁니다. 400만원 돌려받자고 그 먼 길을 몇 번이나 왔다갔다 하다 보면 배보다 배꼽이 커져 지레 포기했을 것인데 가까운 곳에 지소가 생겨 얼마나 고맙고 반가운지 모른다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법률구조공단 정홍원(66) 이사장, 그에게 주어진 법률구조공단의 사명은 답답한 사람이 우물을 찾았을 때 물을 내어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물지게를 지고라도 힘이 닿는 데까지 물을 날라주고 목을 축여주는 것이 공무를 집행하는 사람의 소임 아니겠냐”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오는 7월1일로 예정된 15개 지방 지소 개소식을 앞두고 그는 어느 때보다 분주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지난해 15개 지소를 개소한 데 이어 2013년까지 67개 지소를 설치해나갈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전국의 무변촌(無辯村)은 완전히 사라진다. 여기에 찾아가는 무료 법률상담서비스를 위한 이동상담 차량을 운행하면 교통이 불편한 오지까지 법조계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게 된다.

    검사시절 특수통으로 이름을 날렸던 정홍원 이사장의 이력은 어쩐지 이런 친절하고 참신한 아이디어와는 어울리지 않는 듯했다. 그가 손수 법정에 세웠던 수많은 권력자는 분명 엄중히 다스려졌을 것이다. 그와의 일문일답이 몹시 긴장되면서 흥미로웠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 무료 진료봉사를 위한 의료상담 차량은 보았지만 법률상담 차량은 생소합니다. 어떤 일을 하나요?



    대한법률구조공단 정홍원 이사장

    법률구조공단은 이동상담 차량도 운영하고 있다. 경제적·사회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무료 법률서비스를 제공한다.

    “안타깝게도 경제적·사회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분 중에는 스스로 법률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포기하거나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상당수 있습니다. 이런 분이 제때 공단을 찾아온다면 자신의 권리를 합법적으로 찾을 수 있지 않겠어요? 지난해 15개 지소를 만든 이후 지역민들의 반응은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습니다. 가슴 벅찰 정도의 보람을 느꼈습니다. 앞으로 지소를 점차 늘려나갈 계획이지만, 지소까지 찾아오기 어려운 분도 꽤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동상담 차량은 이런 분들에게 법률 상담은 물론 소송 접수까지 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입니다. 한마디로 ‘움직이는 법률구조공단’이라고 보면 됩니다. 7월부터는 강원 양구, 전북 진안, 경기 포천, 경북 영양 등 15개 지역에도 지소가 증설됩니다. 이동상담 차량은 이 지소들을 거점으로 운행될 겁니다. 이미 이동상담 차량 내부 구조를 법률상담에 적합하게 완전히 개조한 상태입니다.”

    전국 15개 지역에 지소 증설

    ▼ 지소가 늘어나면 그만큼 인력이 필요할 텐데요. 법률구조공단 같은 복지기관에서 일하려는 법조계 인력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해결 방안은 있나요?

    “턱없이 부족한 인력이 가장 고민스러운 부분입니다. 현재 법률구조공단에서 일하는 변호사와 공익법무관이 190명, 그 외 일반 직원은 500명 정도 됩니다. 일단 공익법무관을 이용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공익법무관은 사법시험에 합격한 군미필자들인데요. 군법무관이나 공익법무관으로 군복무를 해야 하는 사람들이죠. 지소를 3개씩 묶어서 순회근무를 하게 하면 부족한 인력을 자연스레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외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뿐 아니라 다양한 기업과 기관에서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대한법률구조공단 정홍원 이사장

    정 이사장은 무호적자들에게 주민등록증을 만들어준 일이 가장 큰 보람이었다고 말했다.

    ▼ 다양한 문제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요?

    “법률구조공단이 국가기관이긴 하지만 필요한 모든 부분을 국가가 해결해줄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법률상담서비스 자체가 수익사업이 아니다 보니 국가 예산으로 해결하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어요. 예를 들어 개인파산을 신청한 사람들은 재기하지 못하면 사회에 커다란 짐이 될 수밖에 없지만 현실적으로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취업 알선을 비롯해 생계유지와 안정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이는 법률적 테두리를 벗어나는 일이지만 법이 가진 ‘책임’이 어디까지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범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죄는 엄중히 다스려야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이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사회의 건강한 일원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법이 가진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법률구조공단은 이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고자 노동부와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습니다. 신용회복위원회에서도 갱생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고요. 필요에 따라서는 기업이 적극 나서기도 합니다. 농협에서는 농민들의 법률소송 관련 비용을 지원해주고, 수협에서는 어민들의 법률소송에 관련된 비용을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KT·G에서는 담배소매인 등 담배인삼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법률소송 관련 비용을 지원해주고 있어요. 신한은행도 생활보호대상자와 탈북자, 의사상자에 대해 무료 법률지원서비스를 진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사실 무슨 일이든 개인이 독단적으로 나서서, 혹은 국가기관 혼자 열심히 한다고 되는 일은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각자의 자리에서 얼마만큼 공조하고 협조해 문제를 해결해나가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취업알선 서비스도 제공

    ▼ 개인회생·파산종합지원센터는 정 이사장님께서 취임하신 이후에 생긴 것으로 압니다.

    “2008년 취임 당시 경제상황이 몹시 안 좋았습니다. 이런 시기에는 체불임금과 관련된 갈등이 대폭 증가하지요. 이 문제를 좀 더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초 마련한 것이 개인회생·파산종합지원센터입니다. 그동안 개인회생과 파산을 신청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법률지원서비스를 제공해왔는데, 앞서도 말했듯 공단에서 지원하는 것은 단순한 법률상담 수준이 아닙니다. 취업알선과 재무설계 등 재기에 필요한 다양한 서비스를 원스톱 시스템으로 병행한 것이 좋은 성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개인파산을 신청했던 사람들의 80% 이상이 사회 일원으로 복귀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요. 고마운 일입니다. 다행히 올해는 국내 경제상황이 조금씩 나아져 체불임금 관련 접수 건수 역시 감소하고 있습니다.”

    ▼ 법조계에 몸담고 있을 당시에도 범죄자의 계도에 적극 앞장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수부 검사 생활을 오래했는데 검찰 재직 당시에는 사회 비리를 척결하는 데 긍지와 사명감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나니 기억에 또렷하게 남는 것은 내가 사건을 맡았을 당시에는 피고인이었지만 이후 잘못을 뉘우치고 개과천선해 사회에 꼭 필요한 일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그는 이 부분에서 만면에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기억할는지 모르겠지만 김영삼 정부 시절, 우리나라 최초의 해커 사건이 있었어요. 이 사건을 처음 맡았을 때는 어마어마한 거물급 스파이가 관련된 줄 알았는데 범인을 잡고 보니 순진한 재수생이었습니다. 은행 휴면계좌에 묶인 돈이 수백억원이라는 뉴스를 보고 그걸 빼내 학비도 마련하고 집에도 보탬이 돼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거예요. 죄는 컸지만, 이 친구를 사회에서 완전히 격리시키면 국가로서는 오히려 큰 손해를 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해커나 인터넷상에서의 국가안보에 대한 인식이 뚜렷하지 않았을 때였어요. 이런 재능을 가진 인물이 성장해 국가에 이익이 되는 큰일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다행히 그 학생은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이후 국가에서 지정하는 신지식인으로 발탁되어 공직에서도 근무했습니다. 국가 정보를 지키는 보안 관련 업무를 맡았지요. 그 후에는 대기업 임원이 되어 기업정보를 지키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커다란 보람을 느끼죠. 물론 안타까운 일도 있습니다. 특히 톱스타였던 한 가수가 마약사건에 연루되면서 모든 사회적 명망을 잃어버린 일이 그래요. 죗값을 치른 그는 이후 한 시인과 함께 교도소를 순회하며 공연을 펼치는 교화원 역할도 톡톡히 해주었지요. 그의 행적이 고마워서 수소문했더니 큰 병을 얻어 춘천의 한 병원에 입원한 상태더라고요. 그제야 그를 찾아가 당시 검사로서의 소임을 다하느라 주고받지 못했던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마음이 몹시 아팠습니다.”

    ▼ 그동안 법률구조공단이 거둔 이런저런 성과도 설명해주시죠.

    “현재 법률구조공단은 전국적으로 72개 지부, 출장소, 지소를 두고 있으며 이곳을 통해 법률상담 서비스를 받는 사람은 한 해 120만명이 넘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법률구조공단의 존재를 모르거나, 안다고 해도 무엇을 하는 곳이며 어떻게 이용하면 되는지 잘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법률구조공단의 법률상담은 국민 모두에게 무료로 열려 있습니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 사회적으로 약자의 처지에 놓인 이들은 법을 몰라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거나 알아도 여건상 법률적인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런 이들을 위해 민·가사 소송대리와 형사변호 등 법률구조사업을 수행하는 것이 법률구조공단의 주요 업무입니다. 기초생활수급자, 농어민, 장애인, 임금체불 피해근로자, 한 부모 가족 등에게 전액 무료 법률지원을 해주는 것은 물론 전 국민의 50%에 해당하는 월수입 260만원 이하 국민에게도 민·형사, 행정, 헌법소원 등 전 분야에 걸쳐 소송업무를 대행해주고 있습니다. 지난해 성탄절 즈음에는 경기도의 한 노인요양시설을 방문해 호적이 없는 어르신들의 가족관계등록부를 만드는 기획소송사업도 진행했습니다.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국 땅을 밟고 산 엄연한 국민임에도 주민등록이 되어 있지 않아 아무런 권리도, 의무도 행사할 수 없었던 분들이었거든요. 고령의 어르신들이 주민등록증을 손에 쥐고 눈물을 글썽이며 기뻐하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무호적자로 살아가는 사람이 1만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런 이들에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를 전달하고 국민으로서 가져야 할 자긍심을 심어주는 것 역시 법률구조공단의 중요한 사명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다문화가정·탈북자에도 관심

    ▼ 지난해 법률구조제도를 주제로 한 국제회의도 개최한 것으로 압니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살펴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을 것 같은데요.

    “지난해 11월 미국과 영국, 일본 등지에서 법률 전문가와 학자들을 초빙해 법률구조 국제 심포지엄을 열었습니다. 법률구조제도의 발전방향을 모색하는 자리였는데, 서로의 장점을 알리고 단점을 보완할 방안을 찾는 자리가 됐죠. 우리의 법률구조제도가 운영 실적이나 효율 면에서는 선진국보다 앞서 있다는 것을 알린 좋은 기회가 되기도 했고요. 일본은 2004년에 우리 공단의 운영체계를 참고해 법률구조제도를 정비했고, 심지어 법률구조제도가 가장 발달한 것으로 알려진 영국은 법률구조를 위해 매년 2조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지만, 500억원 남짓한 예산을 쓰는 우리나라보다 서비스가 나빠요. 우리는 국민 절반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법률구조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거든요. 물론 적은 예산으로 많은 일을 하려다 보니 상대적으로 어려움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이 때문에 더 효율적인 운영방안을 모색하게 됩니다.”

    ▼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주시죠.

    “지금까지 추진해온 사업은 모두 취임 당시 내세운 ‘최상의 법률서비스, 최고의 법률복지국가’라는 경영 이념에서 나온 것입니다. 나름대로는 ‘법률보호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애썼지만 부족한 부분 역시 많았습니다. 남은 임기 1년은 그간 해온 일에 내실을 기해야겠지요. 법률구조 대상자를 확대해나가고 취약계층에게 절실한 법률적 소재를 꾸준히 발굴해 기획소송을 추진하는 일 등이 주요 골자가 될 것입니다. 최근 경찰청과 협조체계를 구축해서 추진하고 있는 보이스 피싱 사기피해자 신속 구조나 부동산중개 사기사건의 피해임차인 구제를 위한 기획소송이 그 예가 되겠네요. 앞서 소개한 지소 증설, 이동상담 차량 운행 등의 사업도 더욱 구체화해야 합니다. 할 일이 아주 많아요.”

    정 이사장은 지금까지 법률구조공단에서 펼쳐온 준법 계몽사업의 형태를 보다 적극적으로 변화시켜나가는 것에도 강한 의욕과 자신감을 보였다. 단순히 강연을 통해, 책자를 발간하는 것으로 준법정신을 계몽할 수 있으리란 안일한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사회는 다각적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새로운 법률분쟁이 늘어나는데 가만히 앉아서 계몽을 외치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가 준비하는 사업이 다문화가정과 탈북자(새터민)들을 위한 법문화 교육기관의 설립이다. 사전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법문화에 익숙지 않은 이들에게 이런 교육은 매우 절실한 상태다. 그의 말대로 이들 역시 엄연한 대한민국의 국민이 아닌가.

    경직되지 않은 유연한 사고와 재기 넘치는 법률서비스, 상황에 따라 적극적으로 공조·협조 체제를 마련하고 대안을 향해 나아가는 진취적인 성향, 이 모든 것이 법률구조공단의 미래를 밝혀주는 100만 볼트짜리 가로등 구실을 해주고 있다. 앞으로 남은 그의 임기, 그리고 그 이후까지 힘차게 이어질 법률구조공단의 행보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대한법률구조공단 정홍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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